[독자마당] 장미꽃 한 송이의 믿음에도

오늘은 꼭 실행에 옮기리라 결심했다. 요즘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말하지 않고 묵묵히 괜찮다고만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불안과 불신의 마음이 엉켜 내 속이 편치 않았다. 저녁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연산동 집에서 출발하여 서면까지 50분 남짓 지하철을 타고 내려 걸어서 남편 회사 부근에서 망을 보다가 퇴근하는 남편을 미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초등학교 5학년쯤, 내 아들 또래로 보이는 한 사내아이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나에게 오더니 무작정 꽃을 사라고 했다. 내가 사지 않겠다고 해도 내 옆에서 가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장미꽃을 사라고 졸랐다. 내 아들 또래라서 왠지 측은한 마음에 3천 원을 주고 장미꽃을 샀다. 집에 가서 ‘성모님 상 옆 꽃병에 꽂아드려야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내 마음속에 저절로 평온이 찾아왔다. 성모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는데,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 부끄러운 마음에 아들의 손을 잡고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매캐한 연기 냄새가 확 몰려왔다. 가스레인지 위 음식은 새까맣게 타고 있었고 집 안은 온통 연기로 꽉 차서 깜깜했다. 놀라서 얼른 가스불을 끄고 모든 창문을 연 뒤 안방 문을 여니, 아홉 살 어린 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무엇에 홀린 듯 성모님 앞에서 장미꽃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그렇게 서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에게 꽃을 사라고 졸라댄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모골이 송연했다. 그 사내아이를 누가 나에게 보냈을까? 왜 떠나지 않고 장미꽃을 사라고 끝까지 졸라댔을까? 성모님께서 이렇게 미약한 믿음에도 하해와 같으신 자애를 베풀어 주신다고 생각하면, 경건한 두려움으로 반성의 기도를 올리게 된다. 벌써 삼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게 된다. 초라한 나의 믿음에 너무나 큰 은혜로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이렇게 다복하게 지켜주신 성모님께 깊이깊이 감사드린다. 글 _ 김희님 마리아(부산교구 장림본당)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22면

[독자마당] 코끼리 때

땡볕이 내리는 정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 폭풍우가 올 것 같은 바람이 부는 날, 경북 의성에 다녀왔다. 문화마을길 6-5 하얀 문 앞에 서니 지난 4월 선종하신 두봉 주교님의 ‘기쁘고 떳떳하게’ 좌우명이 새삼 눈가를 촉촉하게 하는 날이다. ‘세상에 예수님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가셔도 되었는데…’ 하면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쩌다 시작한 독서 모임이었다. 서로에게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 오래되었다. 가족사와 서로의 걱정을 아는 사람들이다. 만나면 정답고 즐겁다고 지은 이름이 ‘독서 정겨미’다. 창의성이 조폭 이름 짓는 경찰도 울고 갈 수준이다. 창의성이 늙어감의 즐거움이다. 또 하나의 좋은 점은 힘 빼고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믿음이 가장 강한 크리스티나의 신앙 설명을 잠시 듣고 자리를 옮겼다. 아녜스는 취향에 맞는 차를 섬세하게도 챙겨왔다. 누가 누가 가장 남을 잘 웃기나 하는 시간이다. 크리스털 목소리의 소유자이자 우아한 크리스티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야 개그우먼 아녜스를 이길 수 없었다. 개그 감각은 하느님이 주신 재능이다. 언젠가 빛을 보게 될 테니 더 갈고 다듬으라고 우리는 아녜스를 격려했다. 이번에 크리스티나가 독서한 내용을 말했다. 그녀는 책 제목을 말했다. 동화이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같았다. 내용이 어렴풋하지만 적어본다. 목욕탕이 있었다. 손님으로 코끼리가 때를 밀고 갔다. 주인은 목욕탕이 더러워져 코끼리보다 작은 하마를 받았다. 그런데 그 동물 역시 목욕탕을 더럽혔다. 그래서 하마보다 작은 동물, 그보다 작은 동물을 차례차례로 받았다. 마지막에는 화가 난 주인이 개미만 받는다고 했다. 개미가 목욕탕에서 안 나오자, 주인이 탕 안으로 들어가 봤다. 개미는 커다란 수챗구멍에서 발견되었는데, 알고 보니 코끼리의 때 때문에 익사하지 않은 것이다. 때가 수챗구멍을 막고 있었다. 여기까지 줄거리를 듣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쓸모 있음을, 모든 것이 귀함을 다시 깨달았다. 하찮은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기쁘게 살자고 결의하고 대구에서 헤어졌다. 만물이 지어진 이유는 하느님이 아신다. 오늘 아침 읽은 성경 구절 또한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다. 이사야 44장 21절이다. “야곱아, 이것을 기억하여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종이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라.” 우리는 하느님께서 빚으셨다. 어디에 있든 소중하며 필요한 존재다.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글 _ 정영란 가타리나(대구대교구 월성본당)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22면

[독자마당] 왜관 홀리페스티벌 초청 공연을 마치며

올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열리는 ‘2025 왜관 홀리페스티벌’의 초청 연락을 받고, 우리 성가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번 초청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5월, 대구대교구 월성성당에서 열린 ‘성모의 밤’ 초청 공연, 그리고 그 해 12월 말 대구대교구 갈밭성당에서 선보였던 어린이 영어 뮤지컬 무대를 보신 분들이 기억해 주신 덕분입니다.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와 그 안에 담긴 순수함이 누군가의 마음을 울렸고, 그 울림이 왜관이라는 더 넓은 무대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하느님의 섭리를 깊이 느낍니다. 7월 12일 오후 6시. 그날의 감동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지만, 하느님의 손길인 듯 불어온 시원한 바람은 무대에 선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김동건 지휘자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인도 아래,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15명의 아이들이 수도원 전체에 울려 퍼지는 맑은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께서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고, 박수로 응답해 주시며 함께 노래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는 떨림보다도 감사와 기쁨이 가득했고, 그 진심이 관객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두드렸을 것이라 믿습니다. 음이 다소 흔들리거나 박자가 조금 엇갈리는 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진실된 모습이었고,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순수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번 무대는 단순한 무대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두 달간의 준비 과정에서 아이들은 함께하는 기쁨을 배웠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며 양보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도 익혔습니다. 노래를 함께 부르며 마음을 모았고, 틀릴까 걱정하던 순간에는 서로 손을 잡아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이미 하나의 ‘작은 천국’이었습니다. 갈밭성당 성 페트릭 어린이 성가대는 조완 리카르도 신부님의 깊은 사랑과 지지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이 주일학교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신 신부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공연은 우리에게 하나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아이들은 이번 경험을 통해 자신감과 희망을 얻었고, 더 큰 세상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작은 사도’가 되고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하고 서툴지만, 진심만은 누구보다 깊고 간절한 이 성가대의 노래가, 세상 곳곳에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씨앗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글 _ 박수진 모니카(대구대교구 갈밭성당 성 페트릭 어린이 성가대 단장)

발행일 2025-07-20 제3451호 22면

[독자마당] 비로소 알게 된 ‘말씀의 맛’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손상희 베드로 수녀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고 성경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껏 성경을 제대로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참 어이없는 신자다. 수녀님 말씀을 못 들었다면 성경 공부에 열중하는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복음을 안내하고 성경 공부를 권유하는 한 사람의 역할이 나에게 미치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의 노고를 귀하게 받아들인다. ‘성서 그룹공부’를 하고 있다. 말씀 봉사자와 그룹원 합하여 8명이다.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공부할 내 믿음의 이웃이다. 몇 번 모임을 했는데 한 번도 8명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 가며 빠진다. 그날 누가 빠지면 그 사람을 생각한다. 왜 빠졌을까? 그냥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짧게 기도한다. 안 좋은 일이 없기를! 다음 주엔 함께 공부할 수 있기를!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부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 혼자만 잘 사는 것보다 나도 잘살고 너도 잘살고 이웃과 함께 우리 모두 잘살면 그게 좋은 세상이지! 재물 나눔, 재능 나눔뿐 아니라 말씀 나눔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나누어 먹듯이 영혼의 양식인 성경 말씀이나 묵상도 나누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도 깨닫게 되고, 내가 겪어보지 않았던 다른 사람의 경험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감동과 은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성경 말씀을 반복해서 함께 읽고 묵상을 나눌 때 언제 어떤 사람이 이야기하는 말씀 한 구절, 묵상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쿵’ 하고 울릴지 모른다. 성경 공부하러 갈 때마다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감동과 기쁨이 넘치는 말씀과 묵상을 만나게 해주십사 기도한다. 아울러 지금의 배움과 묵상이 나중에 이웃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공부에 열중하고, 신앙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저 기계적으로 겨우 주일미사만 참례하던 지난날의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자주 돌아본다. 나는 내가 이웃을 예수님께 인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친구가 몇 있다. 그 믿지 않는 친구를 믿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해 못 한 것을 친구에게 잘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차분히 묵상하는 생활에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어 스스로 뿌듯하고 행복하다. 틈날 때마다 성경을 필사해서 마태오 복음을 끝내고 나니,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경 전체를 다 필사할 날이 오겠지 하며, 벌써 설렌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어느 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또 어느 때는 고통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섭리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우고 경험했던 일들이 성경 이해에 의외로 종종 도움이 되어 놀라기도 하였다. 어쩌면 청년일 때 성경 공부를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노년에 시작한 공부도 아직 늦지 않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잘 이해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이대로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믿을 만한(?) 신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글 _ 배정수 프란치스코(서울대교구 답십리본당)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2면

[독자마당] 어머니의 사랑에 기대옵니다

사랑이 가득하신 천상 엄마 당신의 따스한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언제나 곁에 함께 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 오직 저희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해주시고 하나도 남김없이 사랑을 다 내어주신 어머니의 크시고도 거룩하신 성심에 기대고 맡기오니 아기 예수님을 안아주시듯 안아주시어 제 영혼이 당신의 따스한 품에 안겨 쉬고 싶습니다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우신 천상 엄마 당신은 정녕 저희의 어머니이십니다 저희의 엄마가 되게 해주시어 사랑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엄마의 자비로운 성심을 통해 주님께로 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주님의 종이 되시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 사셨듯이 저희도 주인이신 아버지의 종이 되어 마리아 당신처럼 온전한 내맡김으로 살아가 아버지의 뜻만을 따라가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 되게 이끌어주소서 ​ 인간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따름이 참 진리의 길임을 알려주신 천상 엄마 아무것도 아닌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 어머니께서 손잡아주시고 아버지 뜻의 길로 인도하시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을 기쁨과 행복으로 여기며 걸어가게 하소서 천상 엄마 당신께서 주님께 순명과 겸손으로 응답하시어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셨듯이 당신의 말씀과 부르심에 귀 기울여 당신이 기뻐하시게 모든 것에 순명과 겸손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축복과 사랑의 빛으로 감싸주시고 한없는 사랑을 주신 천상 엄마의 품에 안기고 기대오니 엄마가 되어주신 당신께서 그윽한 미소로 웃음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_ 황애자 아녜스(수원교구 인덕원본당)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22면

[독자마당] 하느님의 종 62년

내가 천주교에 귀의한 것은 1964년 8월 14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사실 그 전에 하느님을 뵐 수 있었던 기회는 있었다. 6‧25전쟁을 피해 서울에서 대구로 피난 갔을 때였다. 계산동에 있는 적산가옥에서 부모와 함께 셋방살이 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은 어령칙하다. 큰길가에 있는 개신교 건물 건너 골목길에 들어서면 계산동이다. 바로 인접한 곳에 있는 가톨릭 주교좌성당 앞을 늘 지나쳤다. 높다란 첨탑 가운데 십자가가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쳤다. 부모님도 가톨릭교회와 인연이 없었다. 하느님을 만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강원도 주문진에 이사 와서였다. 동네 여자 친구가 인도하여 성당에 발을 들여놓았다. 벌써 62년 전의 일이다. 주문진본당에 교적을 두고 50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다. 지금은 강릉 임당동본당에 적을 두고 있다. 주문진본당에서는 두 번의 사목회장을 역임했다. 첫 번째는 31살 때였다. 본당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나섰다. 헌금에 10원짜리 동전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성당은 가난했다. 작은형제회 소속 스페인 신부들은 교무금과 주일 헌금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에서 들여온 헌 옷가지를 비롯해 식용유와 우윳가루 등 구호물자를 지원받아 나누어 주었다. 그때만 해도 ‘밀가루 신자’가 많았다. 사제품을 받고 곧바로 낯선 땅 한국에 입국한 신부들은 일선 사목 경험이 없었다. 나는 본당 신부와 함께 수개월에 걸쳐 신자 가정을 방문했다. 가정방문을 끝내고 맞춤형 사목활동을 했다. 우선 본당 구역을 12개 지역으로 나눠 반을 조직하고 베드로회 등 12사도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매월 대화의 장인 ‘반회’를 개최했다. 친목을 도모하고 성당 사정을 알게 했다. 모임에는 본당 신부, 회장, 사목위원들이 참여했다. 저절로 자립의 기초를 다졌다. 오늘날 구역회보다 훨씬 앞선 일이다. 어려운 처지의 신자에게는 취업을 알선했다. 이때의 활동을 ‘우리는 이렇게 일한다’라는 제목으로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에 기고하여 1977년 6월 12일, 19일, 26일 3회 연재되었다. 두 번째 사목회장은 본당이 침체의 늪에 빠져 어려울 때였다. 내 나이 38세였다. 냉담자는 늘어가는 데 비해 입교자는 적었다. 성당이 노후되도 개‧보수는 엄두도 못 냈다. 공교롭게도 화재가 발생해 사제관이 몽땅 타 버렸다. 주일학교를 사제관에서 했는데 고물 미제난로가 과열로 삽시간에 천정에 불이 옮겨붙어 전소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난감했다. 교회 재정 형편으로 수천만 원의 재원 마련은 언감생심이었다. 당장 본당 신부가 거처할 곳이 없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1월이었다. 하느님께 매달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자들이 십시일반 거들었다.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직영공사 체제로 공사를 했다. 하지만 공사비는 부족했다. 70%밖에 조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춘천교구장 박 토마 주교에게 읍소했다. 마침내 교구의 지원으로 동해 일출이 보이는 훌륭한 사제관이 건립됐다. 애초에 하느님과 연을 맺게 해준 소화 데레사와 주문진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하고 부부가 되었다. 슬하에 4남매를 낳아 9명의 손주를 두었다. 이 모두 하느님의 가없는 은총의 덕분이다. 어느덧 산수(傘壽)가 되었다. 세상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 회개하는 삶이다. 나의 인생, 하느님을 만난 것은 최대의 수확이자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글 _ 정인수 아우구스티노(춘천교구 임당동본당)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2면

[독자마당] 제주에서 희망이란 길동무를 만나다

“드디어 처가에 왔다!” 제주도 서귀포 정난주 마리아 묘지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말했다. 황사영순교순례지 담당 민형기(안셀모) 신부다. 일행이 거들었다. “1801년에 헤어졌던 부부가 이백 년 만에 다시 만났네요.” 황사영(알렉시오)은 중국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밀서를 보내려다 발각돼 능지처참형을 당했고 아내 정난주와 아들 황경한은 제주의 관비로 유배당했다. 아들까지 관비로 살게 할 수 없었던 정난주는 추자도에 두 살배기 젖먹이 아들을 떼어놓는다. 37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모범을 보였고 ‘한양 할망’이라며 칭송을 받았던 정난주. 그래설까. 증거자 정난주의 묘는 일찍이 성지로 조성되었고 이름을 딴 순례길과 성당도 있다. 반면 순교자 황사영은 1980년에야 묘를 발견했으며 의정부교구가 성역화를 시작하는 단계다. 입구조차 찾기 힘든 황사영 묘와 다르게 정난주 묘는 공원처럼 잘 정비돼 있다. 진입로에 야자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커다란 십자가 너머로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모습은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성지에서 미사를 드린 후 모슬포성당까지 약 4km를 걸었다. 제주교구 순례길 중 고통의 길이라 불리는 ‘정난주길’의 일부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훈련장과 4·3 사건 때 주민을 가두었던 고구마 저장창고 등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도 만났다. 순교지를 순례하는 것은 고통의 발자취를 더듬는 여정이다. 가뜩이나 고달픈 인생인데 일부러 순교지를 찾아가 선조들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에 가면 희망의 뿌리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순교는 희망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언하는 사건이다. 정난주는 낯선 유배지에서 선행과 친절을 베풀며 신앙의 씨앗을 심었다. 지난한 삶을, 주님을 뵈러 가는 관문으로 알고 희망 속에 살았다. 그러자 신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제주에 복음화의 빛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난 어느 봄날 그 빛을 되새기는 여정에도 하느님 사랑이 가득했다. 제주에서 만난 따뜻한 마음마다 우정과 환대가 빛나고 있던 것이다. 제주교구 평협 임원들에게, 방문객과 동행하는 이 시간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보였다. 늘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지 않나,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안달하질 않나. 3일 여정이 끝나고 공항에서 헤어지는데, 꼭 친정 식구들과 이별하는 것처럼 서운했다. 9월에 의정부교구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없다면 발걸음을 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금 삶이 고단하다 느껴질 때면 나는 친정과도 같은 제주를 떠올릴 테다. 교우들과의 만남과 순례지의 추억 안에서 기어이 희망을 건져 올릴 것이다. 그렇게 친정을 하나둘 늘려가는 것도 좋겠다. 제주에는 ‘한양할망’ 정난주가, 의정부에는 ‘신앙만이 세상을 구하는 약’이라 믿은 황사영이 있다. 그들을 만나러 길을 떠나자고 재촉하는 희망이 우리 안에 있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작가·의정부교구 파주 목동동본당)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22면

[독자마당] 해미순교자국제성지를 가다

당진본당 늘푸른 성서대학은 5월 15일 해미순교자국제성지를 순례했다. 성지에 도착한 어르신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곁을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조각상을 마주한 후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성전에서 성지소개 영상 관람이 있고 난 뒤 11시에 여러 본당의 많은 순례객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가 시작되었다. 성지 전담 한광석(마리아 요셉) 신부는 강론 중에 “해미순교자국제성지는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의 국제성지로 교황님의 이름으로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지로는 드물게 생매장 순교터와 묘가 함께 있는 곳으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함께 묵상할 수 있다”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인 힘과 용기를 이번 순례를 통하여 얻길 희망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의 저서 「그런 하느님은 원래 없다」라는 책을 소개하며 책 첫머리에서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라는 니체의 말을 좋아하며 인간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순교자의 무덤을 형상화한 원형 모양의 성지기념관에는 순교 당시 모습을 담은 조각과 판화, 성지에서 발굴된 순교자 유해가 안치돼 있었다. 오른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진둠벙’이 있었다. 생매장마저 번거롭다고 포졸들은 개울 한가운데에 신자들을 둠벙(웅덩이)에 빠뜨려 죽인 것이다. 오후에는 조선 박해시기 내포지역의 수많은 신자가 잡혀 와 고통받은 해미읍성을 찾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1000여 명의 믿는 이가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읍성 남문을 들어서니 성안은 평온하다. 저 멀리 다른 나무보다 훨씬 큰 회화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충청도 사투리로는 ‘호야나무’라고 한다. 300년 넘은 거목에는 ‘옥사에 수감된 신자들을 끌어내 동쪽으로 뻗어있던 가지에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했으며 지금도 철사가 박힌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회화나무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있다. “8월에 연황색 꽃이 새 가지 끝에 달리며 열매는 9~10월에 노랗게 익는다.” 거룩한 영혼들은 모두 부활해 떠났고 지금은 고요한 평화가 깃든 해미읍성에는 순교터와 증거터가 여러 곳에 있어 교육 효과가 큰 곳이며 넓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노약자나 어린이도 어렵지 않게 도보로 순례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다.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 글 _ 김윤구 미카엘(대전교구 당진본당)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2면

[독자마당]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100달러 유산의 의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신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분은 살아계시는 동안 많은 말씀을 남기셨고 삶으로 본을 보이셨으며, 생의 마지막까지도 큰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돌아가신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분이 남긴 전 재산은 고작 100달러였습니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묻게 하는 유언처럼 들립니다. 세상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낮은 자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소박한 숙소에 머무셨고, 황금 대신 쇠로 만든 십자가를 목에 걸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걸었습니다. 그분이 남긴 100달러는 신앙인들과 교회 전체에 던지는 질문의 무게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점점 더 크고 화려한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더 좋은 건물, 더 넓은 공간, 더 세련된 시설이 강조되지만, 그 안에서 소외된 신자들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이어가려면 일정한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들려옵니다. 교회는 하느님을 만나는 ‘야전병원’이자 쉼터라고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 본래 목적이 시설보다 사람에게 먼저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사제는 공동체의 영적 리더입니다. 그러나 리더십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며 ‘섬김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죄수의 발에 입을 맞추셨던 것처럼, 진정한 목자의 모습은 가장 낮은 자리에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고 사제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함께 지고 걸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부 공동체에서는 사제가 대화보다는 지시로, 경청보다는 독단적인 판단으로 이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견을 조심스레 내더라도 사제뿐만 아니라 신자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곤 합니다. 한국교회는 사제의 권위에 대한 존경이 매우 강한 구조를 갖고 있어 때로는 공동체 내 ‘대화의 부재’로 이어지는 점도 아쉽습니다. 호주교회에서는 사제와 평신도가 함께 참여하는 리더십 프로그램과 갈등 중재 교육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이러한 체계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가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할 자산은 무엇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100달러는 교회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상징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가난 자체를 두려워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교회의 자산은 값비싼 악기나 외형의 화려함이 아니라, 눈물 흘리는 신자의 곁에 함께하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물론 교회도 재정적 안정을 가져야 하지만,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높은 위치로 향할 것인가, 더 낮은 곳에서 걸을 것인가. 화려한 성과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에 신앙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 우리는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남기신 100달러는 숫자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교회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우리 모두에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사제와 평신도가 함께 그 질문 앞에 서야 하며, 교회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를 향해 다시 걸어가야 합니다. 이 길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여정이며, 교회의 본질을 되찾는 회개의 걸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 교회 공동체 모두가 그 여정에 작은 발걸음을 함께 내디딜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한국교회의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 글 _ 전백근 요셉(전주교구 호성동본당)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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