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디자인이 주는 즐거움, ‘구하우스’에서 만나요

‘리버마켓’으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 문호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끼고 차로 10여 분 달리면 다다를 수 있는 문호리에서는 ‘집 같은 미술관’을 표방하는 구하우스 미술관(관장 구정순 아우구스티나)을 만날 수 있다. ‘구하우스’라는 독특한 이름은 설립자인 구정순 관장의 성(姓)과 영어로 집을 의미하는 ‘하우스’(house)를 조합해 만들어졌다. 구하우스 미술관은 미술관에 대한 기존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개념의 ‘집 같은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다. 예술과 디자인이 주는 즐거움을 생활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집’을 콘셉트로 2016년 개관했다. 가정집 분위기를 연출한 전시실은 서재, 거실, 침실, 복도, 다락 등 생활공간의 이름을 붙였다. 10개의 전시실에서는 회화를 비롯해 설치 미술, 조각, 영상과 사진, 빈티지 가구까지 현대미술 작품 3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집 안을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들풀과 수목으로 조성된 정원과 파빌리온은 덤이다. 건축물 자체도 놓칠 수 없는 하나의 조형 작품으로, 특히 빛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픽셀레이션 방식의 외관이 감상 포인트다. 미술관 설계는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 건축가가 했다. 구하우스에서는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예술 애호가인 구정순 관장이 40여 년 동안 열정과 심미안으로 수집한 세계 유수의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구하우스의 소장품은 죽음의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 비디오 아트 대가 백남준 등의 작품과 스티브 잡스가 유일하게 집에 둔 가구인 조지 나카시마의 의자까지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가 없다. 구 관장은 ‘예술품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철학으로 미술관을 설립했다. 그가 수집한 첫 작품은 박수근(1914~1965) 화백의 드로잉이었다. 구 관장은 기업의 CI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 ‘디자인 포커스’의 대표이기도 하다. 1983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시작으로 KBS, 쌍용, 카스, 뚜레쥬르, 국민은행 등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가 그의 손을 거쳤다. 또 구하우스는 계절과 일상의 소소한 변화와 때를 같이 해 매년 3~4회의 기획전을 마련하고 있다. 4월 30일까지 구하우스의 회화 컬렉션을 살펴볼 수 있는 20회 기획전 ‘Insight of Painting’이 열린다. 5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는 예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유쾌한 Fake’ 전을 마련한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알고도 속는 즐거움’과 ‘알고 보니 가짜’라는 반전의 묘미를 경험할 수 있다. 이밖에 ‘구하우스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다양한 전문가들을 초청해 특별 강연도 들을 수 있다. 5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진행되는 구하우스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가드닝 전문가 오경아씨(5월 28일), 시대를 예보하는 송길영 대표(6월 13일), 신인류 문화를 탐구하는 인플루언서 허은순 디자이너(6월 20일), 공간 정리의 마술사 이지영씨(7월 27일), 미술사학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양정무 교수(7월 4일)가 강연에 나선다. 다가오는 햇살 좋은 봄날, 구하우스의 안과 밖을 두루 즐기며 일상 속 예술을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2024-04-28

[이준형의 클래식 순례](3) 빈 포위의 고통을 위로하는 미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세상은 아주 어지럽습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이미 2년을 넘겼지만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작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역시 계속 수렁 속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이 1963년에 반포한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서 ‘원자력을 자랑하는 현대에서는 전쟁이, 침해당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불합리하다’라고 한 말씀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번 주 소개할 교회 음악은 전쟁의 고통과 아픔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요한 카스파르 케를(Johann Caspar Kerll, 1627-1693)이 쓴 ‘빈 포위의 고통을 위로하는 미사’(Missa in fletu solatium obsidionis Viennensis)이지요. 빈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지만 국경에서 가깝기 때문에 헝가리나 오스만 제국에게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빈에 가보면 중심부의 구시가지를 둘러싼 둥근 원 형태의 거리가 있습니다. ‘링슈트라세’(Ringstraße)라 부르는 이 거리는 19세기 중반에 기존의 성벽을 허물고 조성한 것으로, 지금은 이 도로를 따라 국립 오페라 극장과 시청 등 아름다운 건물이 즐비하지만, 본래는 빈이 성곽 도시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1683년 7월 오스만 제국 군대가 빈을 포위했습니다. 1529년에 이어 두 번째 공격이었습니다. 20만 명이 넘는 군대가 대치한 이 전투는 쇠퇴하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이며, 서양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불에 타기 쉬운 목조 건물을 대거 철거(이때 빈 최초의 오페라 극장도 철거됐습니다)하는 등 결사 항전 태세를 취했고, 오스만 군대는 장기전을 노리며 빈을 포위했습니다. 두 달에 걸친 공방전 끝에 빈 성벽이 무너지며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9월 초,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온 구원군이 당도하면서 빈은 극적으로 함락을 면했습니다. 이 기간 빈 사람들은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렸는데, 지금도 빈에서는 아이가 말썽을 피우거나 떼를 쓰면 ‘문밖에 튀르크 군대가 왔다’면서 겁을 준다고 하네요. 당시 황실 오르간 연주자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한 케를은 오스만 군대가 물러간 후 이를 회고하는 미사곡을 썼습니다. 전쟁의 공포를 표현하려는 듯 미사곡의 분위기는 어둡고 울적하며, ‘대영광송’(Gloria)과 ‘신앙 고백’(Credo) 끝에 있는 ‘아멘’은 당대 음악에서 보기 힘든 극단적인 반음계로 비통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바흐나 헨델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던 위대한 작곡가가 주님께 직접 겪은 전쟁의 아픔을 고하는 듯한 이 미사곡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2024-04-28

하느님의 부르심 ‘식별’ 돕는 안내서 「성소 식별」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은 이라면 누구나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향해가는 여정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고유한 소명을 찾아 자유롭게 응답을 드리도록 초대받았다. 어떤 특정 성소를 살겠다는 결심은 일생 그 방식으로 거룩한 생활을 살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다. 때문에 결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부담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는 앞서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저자는 지금까지 젊은이들을 동반하면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성소를 식별할 것인지 알려준다. 이 책은 결혼성소뿐 아니라 독신성소까지 모든 성소 식별에 필요한 실질적인 안내서다. 총 7개 장에 걸쳐 자기 자신에게 더 알맞은 성소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성소를 식별할 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초대하고, 2~3장에서는 하느님의 성성을 향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고, 또 하느님과 진실한 관계를 맺기 위해 기도 생활에 집중해야 한다고 격려한다. 4~5장에서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과 영적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해 다룬다. 특별히 6장은 수도성소, 독신성소, 결혼성소의 삶이 어떤지 알기 위해 각각의 성소를 알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마지막 7장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식별하도록 제시한다. 각 장을 시작하며 나누는 체험이나 에피소드에는 저자가 사목 현장에서 겪은 내용들이 녹아 있는데, 자칫 심각하게 흐를 수 있는 성소 이야기를 편안하게 이끌어 준다. 식별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내용을 요약한 것이 눈에 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성소를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 성소를 살게 될 사람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중요하고, 선하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성소를 선택하지 마십시오. 각 성소에 대해 배우다 보면 모든 성소가 중요하고,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성소를 잘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197~200쪽) 어떤 한 부분에 치우친 선택이 아닌 올바른 식별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4-04-28

「의사 선우경식」, 자신을 녹여 잊힌 이들 치유했던 거룩한 삶의 기록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100길, 영등포의 화려한 쇼핑몰 거리 옆 쪽방촌 입구에 자리한 ‘요셉의원’의 사명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최선의 무료 진료’다. 올해로 개원 37주년을 맞는 이 특별한 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현재까지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지원 없이 순수 민간 후원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2월 말 현재, 의사 120명을 포함한 연인원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약 6700명의 도움으로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진료받는다. 이곳의 겨자씨 역할을 한 고(故) 선우경식 원장(요셉, 1945~2008)은 가난한 환자들을 ‘의사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하고 고귀한 꽃봉오리’로 여기며 평생을 가난한 환자의 무료 진료에 헌신했다. 「의사 선우경식」은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원장에 대한 공식 전기이자 유일한 전기다. 그동안 방송사 다큐멘터리나 기사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만 전해졌던 선우 원장의 삶과 진면목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이충렬(실베스테르) 작가는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이 책을 썼다.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후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접하는 이야기에서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전문의로 일하다가 부유한 미국 의사의 삶을 거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의료 봉사의 길을 찾은 모습, 요셉의원을 설립하고 운영해 가는 과정이 충실히 복원돼 있다. 암 투병 중에도, 생의 마지막까지 환자 진료를 놓지 않았던 장면은 자신을 태우고 녹여 빛을 내는 촛불을 떠올리게 한다. 1987년 신림동 사거리에 설립된 요셉의원에서 10년, 영등포역 옆의 현재 위치로 병원을 이전한 1997년부터 선종한 2008년까지 11년 등 21년을 요셉의원 원장으로 근무한 고인은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꿋꿋이 병원을 지키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봤다. 환자들은 몰려드는데 적자는 누적되고 외상으로 달아둔 약값을 몇 달 동안 갚지 못하자 ‘도대체 김수환이 누군데 돈을 안 갚느냐’는 제약회사 전화를 받기도 했다. 당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병원이라 대표가 김수환 추기경 명의로 돼 있던 탓이다. 생전에 선우 원장은 이 일을 두고 “내가 여기서 도망가면 누가 하겠나 싶어 계속했다”고 회고했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 재속 회원이었던 선우 원장은 요셉의원의 의미를 후원자, 봉사자, 직원들에게 돌리면서 자신을 낮췄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늘 자신을 돌아보았다. 책에는 선우 원장이 자필로 쓴 성찰의 글이 일부 소개돼 있다. “나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하기 힘들거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나는 받을 줄은 알지만 줄 줄은 모른다.”(285쪽)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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