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아 6월 27일 제1대리구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사제 성화의 날 행사’를 열었다. 앙상블 올랑의 현악 4중주 공연으로 시작한 행사는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베드로) 주교의 강의와 성시간으로 진행됐다. 강우일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회칙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 안에서 사제직 수행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회칙은 1장에서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 주교는 심장과 속마음 모두를 의미하는 ‘Heart’를 우리말 ‘얼’, 즉 참된 마음의 속살로 해석할 것을 권했다. 강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을 통해 우리 현대인들은 우리의 이성적, 기술적 측면을 과장하거나 우리의 본능적 측면을 과장하는 행동 유형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심장을 위한 자리가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한다”며 “그 원인으로 헬레니즘과 합리주의 그리고 관념주의, 물질주의를 지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와 오락,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삶은 심장의 자리가 사라진, 얼이 빠진 상태라는 게 강 주교의 설명이다. 강 주교는 “이런 시대일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과 온기를 전해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얼에 생기와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교황님은 말씀하신다”며 “그 방법으로 목요일마다 성체조배 시간을 갖는 것을 충실히 실천한다면 성체 안에서 우리는 육화된 말씀의 심장을 통해 인류를 극진히 사랑하셨던 하느님 사랑을 맛보고 흠숭하게 된다고 회칙을 통해 권고하신다”고 설명했다. 세속화된 교회에 대한 성찰도 당부했다. 강 주교는 “해마다 연말 연초가 되면 사목계획을 세울 때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행사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왁자지껄하게 뭔가 바쁘게 돌아가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 우리 본당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사업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착각”이라며 “오늘날 세상을 주름잡는 공리주의적 가치관이나 눈에 보이는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적 트렌드에 교회도 중독돼 세속화되는 경향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매우 우려하며 경고하신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강 주교는 사제 성화의 날을 보내는 교구 사제단에게 “예수 성심께 돌아갈 것”을 당부했다. 강의에 이어 사제단은 총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 주례로 거행된 ‘성시간’에 함께하면서 예수님의 인류를 향한 사랑과 수난 전날 밤의 고통을 기리며 성체 앞에서 깊이 묵상했다. 한국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매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대사제인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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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순교성지, ‘달빛순례’로 순례객 맞아…“신앙 깊이 더하는 시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水原華城)방화수류정 아래에는 아름다운 연못 용연(龍淵)이 있다. 여름이 시작되는 7월, 버드나무와 연꽃잎의 푸른빛은 용연을 찾는 방문객에게 자연 속 휴식을 선물한다. 해가 지면 용연의 풍경에는 운치가 더해진다. 연못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용지대월(龍池待月)’은 화성의 절경으로 꼽힌다. 어둠이 깊기에 달빛은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기우제를 지냈던 용연에서 박해시기 신자들은 달을 보며 신앙의 자유를 간절히 빌었다. 어둠에 가려진 신앙이 달빛에 비쳐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랐던 기도는 2025년에 와 닿았다. 수원화성순교성지(전담 김승호 요셉 신부)의 ‘달빛순례’를 통해 연결된 과거와 현재의 기도는 신앙에 깊이를 더하고 있었다. 순교자와 함께 걷다 “내가 평소에는 진실되게 천주를 공경하지 못했는데, 오늘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이번에 끌려가 죽게 된다면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로 가서 살겠소.” 6월 27일 오후 7시30분. 달빛순례는 수원 관아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박원서 마르코의 신앙 고백을 들으며 시작됐다. 적색·백색·녹색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하얀색, 녹색 초를 봉헌한 22명의 순례객은 이날의 여정이 단지 순교자의 신앙을 기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임을 마음에 새겼다. 성지를 출발해 300여m 걸어 도착한 곳은 행궁동 마을정원. 정원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들이 직접 디자인해 조성했다. 순교자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도착한 이곳에서 순례객들은 녹색순교의 의미를 생각하며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순례를 이어갔다. 장안문 순교터를 지나 화홍문, 용연, 방화수류정, 형옥터, 팔달문 순교터에 이르기까지 4km가량을 걸으며 순례객들은 곳곳에서 순교자들의 신앙과 마주했다. 장안문과 팔달문 순교터는 각각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 심원경 스테파노가 순교한 장소다. 순례객들은 수원화성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이곳이 왜 순교터가 됐는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당시 모습을 회상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장안문과 팔달문에서는 수많은 신자가 공개 처형되어 순교했다. 천주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장소로 활용된 것이다. 달빛 머금은 용연에서 봉헌하는 ‘무명 순교자’ 위한 기도 오후 9시, 짙은 어둠 속에서 달빛이 드리운 용연은 그 아름다움만큼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복을 빌었던 이곳에서 신앙 선조들은 신앙의 자유를 빌었다. 지금처럼 밝은 조명이 없었던 당시에는 어렴풋한 달빛에 의지해 몰래 손을 모으고 한 손에 묵주를 들고 기도했을 신앙 선조들. 신앙을 지키기 위한 안타까운 노력을 기억하며 순례객들은 무명 순교자를 위한 기도와 사향가를 부르며 가장 오래 이곳에 머물렀다. 9시30분을 넘은 시간, 낮에는 사람들로 붐볐던 팔달문 시장은 적막하기만 하다. 시장 골목 끝에 모인 순례객들은 팔달문 밖 장터에서 모진 매질로 순교한 하느님의 종 심원경 스테파노·심봉학 부자를 기억하며 기도했다. 달빛에 의지해 화성의 성곽길을 오르고 개천을 건너는 여정은 녹록지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길을 밝혀준 덕분에, 순례객들은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놓치지 않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수원화성의 성곽길을 걷는 순례객들이 신기한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말을 걸거나 함께 해설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라 순례 중이에요”라는 말은 천주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순교자’라는 단어를 각인시켰다. 이날 순례에 참여한 이수정(사비나·제1대리구 고색동본당) 씨는 “순교자들이 지나셨던 길을 함께 걸으면서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사형장으로 가셨을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며 “밤에 하는 순례라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감성적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어서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 수원화성순교성지 ‘달빛순례’는 수원화성순교성지는 수원화성의 중심에 자리한 순교성지다. 이곳은 조선 후기, 수원 유수부의 토포청이 있었던 군사적 요충지로 병인박해(1866~1873) 당시 순교기록에 남겨진 80여 명 외에도 무명의 많은 순교자가 토포청, 옥터, 성문 밖 장터 등에서 참수, 교수, 장살, 백지사, 옥사 등으로 순교했다. 2009년 9월 20일 순교성지로 공식 선포된 성지에는 조선 후기 순교자 17위와 근현대 순교자 3위 등 하느님의 종 20위의 시복시성과 무명 순교자를 위한 현양미사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봉헌되고 있다. 전국적인 박해가 시작되며 수원 유수부 관할 지역에서 붙잡힌 신자들은 수원화성에서 처형됐다. 순교자의 가족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이 되면 용연을 찾아와, 숨죽인 기도 속에 순교자를 기억하고 신앙을 기렸다. 이러한 역사를 기리기 위해 성지에서는 2008년부터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달빛 아래 신앙의 자유를 위해 기도했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달빛순례를 이어오고 있다. 순례에 동행한 김승호 신부는 “2주 전 부임한 후 처음으로 달빛순례에 참여했는데, 순교가 단 한 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해설사님의 말씀이 깊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봉헌하며 스스로를 포기하는 삶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순교로 이어졌듯이, 우리 역시 일상에서 순교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며 “주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오늘날의 순교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천주교회 ‘창립 246주년’ 경축 미사 봉헌

한국교회 창립 246주년을 기념하는 제47회 한국천주교회 창립 경축 미사가 6월 24일 수원교구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주례로 천진암성지(전담 양형권 바오로 신부)에서 봉헌됐다. 성지 대성당 건립 터 야외 제대에서 총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와 전임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를 비롯해 성사전담사제 김학렬(요한 사도) 신부 등 50여 명의 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미사에는 150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미사 참례자들은 1779년 순수한 열정으로 진리를 탐구하며 이 땅에 신앙의 뿌리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애썼던 창립 선조들의 모습을 되새기고, 그들이 보여준 교회 정신과 순교 정신을 마음에 아로 새기며 교회를 위해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이용훈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거룩한 땅은 246년 전 젊은 학자들이 강학을 통해 스스로 신앙 공동체로 발전시킨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이며 탄생지”라며 “창립 선조들과 순교자들의 믿음으로 주님 구원의 신비를 이 땅에 드러내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순교자 정신으로 주님을 증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자”고 말했다. 또 “저는 교회법에서 명시하는 바와 같이 교황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오늘 이 미사에 참석한 여러분에게 특별히 전대사를 수여한다”며 “고결한 믿음의 삶으로 주님을 알도록 이끌어 주신 창립 선조들을 현양하자”고 말했다. 성기화 명예기자

수원교구 영통영덕본당, 3년째 거리 노숙인 찾아 사랑 나눔

“저희는 한 달에 한 번 수원역으로 예수님을 만나러 가요.” 매달 한 차례 수원역을 찾는 본당 공동체가 있다. 수원구 영통영덕본당(주임 백윤현 시몬 신부)은 지난 3년 동안 역 인근 노숙인을 위한 물품 나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 활동은 2021년 12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시작됐다. 당시 본당 전교 수녀의 제안으로 수원역 노숙인들에게 선물을 전하자는 취지였다. 현장 조사를 통해 약 50명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첫 나눔이 이뤄졌고, 현재는 70여 명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활동은 본당 사회복지분과(분과장 강혜숙 골롬바)의 주관으로 진행되며, 평일 미사 후 주임신부와 수녀, 신자 15명 내외가 함께 참여한다. 이들은 검은색 바구니에 물품을 담아 차량에 싣고 수원역 일대 노숙인들에게 직접 전달한다. 바구니에는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0)라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고, 안에는 속옷과 양말, 양치 도구, 컵라면 3개, 커피믹스 6개 등 간편식과 생활용품이 담긴다. 계절에 따라 담요, 쿨매트, 상비약 등을 추가로 준비하며, 물품 구입 비용은 매월 130만 원 규모의 본당 사회복지 예산과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마련된다. 봉사자들은 수원역에서 만난 노숙인들과 날씨나 일상에 관한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직접 묻는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을 넘어, 사랑을 나누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 자신들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가장 오랫동안 이 활동에 참여해 온 본당 사회복지분과 배도희(토마스 아퀴나스) 위원은 “개신교 단체들도 도시락을 나누고, 지자체에서도 관련 시설을 마련하는 등 물리적 지원은 예전보다 다양해졌지만 3년 전보다 삶의 의지와 자존감을 잃은 노숙인들이 많아진 점은 안타깝다”고 전했다. 백윤현 신부는 “우리 사회 구조나 행정 체계상,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지 않으면 만나기도,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다”며 “지역사회가 미처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을 찾아가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숙인 역시 공동체의 일원이며, 그들을 수혜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당은 노숙인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꾸준히 찾아 다양한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달 한 차례 독거노인을 방문해 밑반찬을 전하며 위로하고, 예수의 카리타스 수녀회가 운영하는 ‘애덕이네’에는 반찬을, 우만동의 어려운 이웃에게는 기저귀 등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이웃 이야기] 성우회 38년 봉사한 서한숙 씨

“저는 성우회 활동을 봉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신부님들을 만나며 제가 받은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죠.” 6월 19일 열린 성우회 40주년 기념 미사 후 감사장을 받은 서한숙(소화데레사·71·수원교구 서둔동본당) 씨는 “38년간의 성우회 활동은 제게 큰 기쁨이었다”고 전했다. 교구 원로 사목자들을 후원하고 있는 성우회는 1985년 6월 10일 설립됐다. 당시 교구는 사제가 많지 않아 사제 양성을 돕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지만, 이후에는 원로 사목자들을 지원하는 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서 씨는 1987년 무렵, 이순자 성우회장과의 인연으로 회원이 됐다. “1980년대 당시 은퇴 신부님은 네다섯 분 정도였지만, 회장님께서는 앞으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시는 신부님이 많아지면 그분들을 돌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고민할 것도 없이 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30여 년을 활동하게 되었죠." 서 씨가 흔쾌히 성우회원이 된 것은 어린 시절 만난 신부님에 대한 따뜻한 기억 때문이었다. “안동교구의 작은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했을 때 주임이셨던 나성도(아르멜) 신부님께서 늘 제 손을 잡고 딸처럼 데리고 다니셨어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제게 신부님은 아버지와 같은 따뜻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현재 교구 원로 사목자는 53명. 서 씨가 성우회에서 하는 주요한 활동은 수시로 신부들에게 안부를 묻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오히려 신부님들이 저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늘 기쁜 목소리로 저희를 반겨주시고, 좋은 곳 함께 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저희에게 행복한 하루를 선물해 주십니다.” 성우회 활동을 하며 만난 신부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삶은 서 씨가 신앙을 다잡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사목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교구민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사랑을 아끼지 않고 있는 원로 사목자들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목하실 때는 많은 신자와 활발히 교류하셨던 분들이 은퇴 후 외롭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우회 활동을 그만둘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더 많은 신자가 원로 사목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성우회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우회에서 반평생 봉사하며 서 씨가 얻은 은총은 감사함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우회 활동을 했던 제 38년은 감사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봉헌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가 6월 25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됐다. 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가 주관한 이날 미사는 6·25전쟁 75주년을 맞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평화의 순례길을 함께 걸어갑시다’를 주제로 마련됐다. 총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 주례로 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미사에는 민족화해위원회 봉사자를 비롯해, 민족화해 활동을 하는 시설·단체 관계자,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파티마의 세계사도직 회원, 북한에 고향을 둔 북향민 등 50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특히 이날 미사 중에는 북향민들이 독서, 예물 봉헌, 보편 지향 기도 등 전례봉사자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미사 중에는 6·25전쟁 당시 군종사제로 사목하다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난 하느님의 종 에밀 카폰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한국 전쟁의 예수, 에밀 카폰 신부를 아시나요?>를 시청했다. 참례자들은 영상을 통해 처참한 전쟁터 속에서도 온 삶을 다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에밀 카폰 신부의 일화를 되새기며 평화의 도구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문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주영(시몬) 주교가의 ‘2025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를 낭독하고 참례자들과 함께 묵상했다. 문 주교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그 자체로 비극이었고, 폭력이었고, 파괴였고, 죽음이었다”면서 “악마들은 인간과 인간,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분열을 원하지만,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화해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신자들에게 “평화의 도구가 되자”며 “증오, 적개심을 버리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평화를 샘솟게 하고 평화의 강물이 흘러가도록 우리가 먼저 우리 삶 속에서 이러한 노력을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허현 신부는 “평화가 가슴에 와닿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에밀 카폰 신부님처럼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평화를 위해 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서 “평화를 위해 이 미사에 함께 모여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매일 오후 9시 주모경을 바치는 기도 운동에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북향민 허영희(알레나·제2대리구 와동본당) 씨는 “해마다 봉헌하는 미사지만, 이 미사 때의 기도가 여느 때의 기도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이렇게 많은 분이 함께 기도하는 걸 보면서 언젠가 한반도가 하나 되고 평화를 이루는 날이 오리라 기대하게 된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2면

“유아실 벗어나 성전 앞으로”…아이와 함께하는 ‘어부바미사’ 인기

미사 중 아기 울음소리가 성전 안에 퍼졌다. 제대 앞자리에 앉은 엄마는 아기띠로 아이를 안은 채 조심스레 달랬고, 아이가 성전 한쪽 통로를 자유롭게 오가자 아빠는 조용히 뒤따르며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제지하거나 눈치를 주는 이 하나 없이,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받아들였다. 성전 맨 앞에는 유모차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수원교구 제1대리구 원천동본당(주임 김창해 요한세례자 신부)은 6월 21일 두 번째 ‘어부바미사’를 봉헌했다. 어부바미사는 5월 처음 시작됐으며, 이후 매달 한 차례 토요일 청년미사를 이 미사로 대체해 봉헌하고 있다. 미사는 영유아를 둔 청장년 세대가 유아실이 아닌 성전 앞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편안하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간이다. 청년회에서 활동하던 한 신자가 결혼과 육아로 인해 미사 참석이 어려워진 현실을 겪으면서 직접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실제로 본당의 30·40세대 청장년층은 청년회 활동에서는 물러났지만 아직 사목회나 본당 단체 참여에는 거리감을 느끼는 이른바 ‘낀세대’로, 결혼과 육아, 생계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신앙 활동이 단절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조규영(대건 안드레아·41) 청장년회장은 “30대부터 청년회에서 활동했지만, 40대가 되니 20대 청년들과는 자연스레 거리감이 생겼다”며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는 이들, 혹은 미혼인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청장년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혼 후 성당에 잘 나오지 못하거나 육아로 미사 참례가 어려운 청장년층이 마음 편히 올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이 특별한 미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어부바미사라는 이름조차 필요 없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미사에 참례한 하용현(가브리엘) 씨는 “청년회에서 활동하다 결혼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성당에 나오기 어려웠고, 주로 유아실에서 조용히 미사를 드렸다”며 “이제는 성전 앞 가까이에서 아이와 함께 미사에 참례할 수 있어 좋고, 본당 공동체가 함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본당 보좌 김준교(스테파노) 신부는 “어부바미사에 대한 문의 전화가 많아지면서, 청장년층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리를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이 미사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그들만의 찬미 방식이라 생각하며, 공동체가 함께 이해하고 품어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원천동본당 사례처럼, 영유아를 동반한 신자들이 성전 안에서 함께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낀세대 맞춤 사목을 시도하는 본당은 차츰 늘고 있다. 제1대리구 동탄송동본당은 2024년 12월부터 어부바미사를 매달 마련하고 있으며, 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 ‘마루’와 서울대교구 묵동본당 ‘요셉회’ 등의 단체들은 청장년 사목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1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평택성당

수원교구 평택본당(주임 김현중 요한 보스코 신부)은 하느님의 종 조제프 몰리마르 신부(Joseph Molimard, 牟 요셉, 1897~1950)에 의해 시작된 역사 연구와 보존, 몰리마르 신부의 유해 안치 등 성역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본당 공동체의 보금자리인 성당 또한 하느님이 사랑하신 아름다운 자연과 신자들의 기도를 돕는 성상 등이 자리한 ‘찾고 싶은’ 공간이다. 6·25 한국전쟁 때 순교한 몰리마르 신부가 사랑한 곳, 6월 끝자락에 더욱 의미가 깊은 평택성당을 찾았다. 땅에 모든 걱정 내려두고 한발한발 천국의 계단으로 유치원 건물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오면 복잡한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나무와 꽃이 빽빽이 자리한 가운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 루르드 성모와 성 베르나데트 조각상이 들어선 ‘하늘 섬’ 같은 이곳은 자연스레 신자들을 묵상의 길로 이끈다. 예수님 조각상이 맞이하는 한가운데 계단, 혹은 왼쪽의 십자가의 길이 놓인 둥근 오르막길에 의해 이곳 지상과 성당이 있는 천상이 분리된 듯하다. 땅에 모든 걱정을 내려두고 한발 한발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 본다. 상부 공간의 성당 마당은 태초의 에덴동산이 생각날 만큼, 다른 곳에 비해 나무와 바위, 꽃이 울창하면서도 질서가 공존했다. 성당 건물 바로 앞에는 우람한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다. 몇 년 전 고사 위기를 겪기도 했던 나무의 나이는 200살. 100년 가까이 된 성당의 모든 역사를 나무는 성당 터 한가운데에서 지켜봤다. 느티나무뿐 아니라 봄에는 이름 모를 들꽃까지 가득 피어 성당에 고운 빛을 더한다. 마당에는 놓인 의자와 테이블이 잠시 숨 고르고 쉬라고 반갑게 맞이한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 마리아’ 주보로 모셔…파티마·루르드 성모상도 순례자 맞이 본당은 1928년 설립됐으며 현 성당은 1971년 재건축한 것이다. 본당 주보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 마리아’ 부조가 성당 종탑 외벽에 걸려 있다. 성모님을 주보로 모신 본당답게 곳곳에는 다양한 성모님이 모셔져 있다. 성당 문 왼쪽에는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고 있는 피에타상이, 성당 안에는 파티마 성모상이 신자들을 맞이한다. 루르드 성모님도 계단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성당의 창문은 형형색색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한국의 전통 격자무늬 한지 문을 그대로 가져와 성당의 100년 역사를 드러냈다. 창 옆에는 나무에 파스텔톤 색상을 입힌 십자가의 길을 놓아 바위에 무채색으로 새겨져 있던 마당 십자가의 길과 대조를 이룬다. 성당을 가운데 두고 왼쪽으로 사무실과 교실 등이 있는 몰리마르 관이 있고 오른쪽은 대강당이다. 몰리마르 관 앞에는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몰리마르 신부 흉상과 어우러져 순교의 의미를 더한다. 본당 역사의 시작 하느님의 종 몰리마르 신부…현양과 성역화 노력 지속 몰리마르 신부는 프랑스 님교구 보베르에서 태어났다. 1924년 사제품을 받은 뒤 파리 외방 전교회에 입회했고 1925년 한국에 파견됐다. 황해도 매화동본당, 경기도 병점 공소를 거쳐 1928년 비전리본당(현 평택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그는 10여 년을 평택본당에서 사목했다. 부임 전 야산을 매입해 성당 건물을 지은 몰리마르 신부는 서정리(현 평택시 서정동)에 공소 경당을 신축하는 등 신앙의 중심인 성전 건립을 통해 전교에 힘썼다. 매월 본당 소식지인 「성모 월보」를 발행해 신자들을 교육하고 신심을 고취시켰으며, 어린이를 사랑하고 늘 근검절약하면서 청빈한 생활을 했다. 본국에서 휴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몰리마르 신부는 평택본당 3대 주임과 서정리본당 초대 주임을 역임한 뒤 1948년 대전지목구가 신설되며 충남 금사리본당 주임으로 임명됐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여로 피신했던 그는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교우들에게는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 뒤 홀로 미사를 봉헌했다. 8월 말 인민군에게 체포된 몰리마르 신부는 대전 프란치스코 수도원으로 압송됐고 9월 23~26일 사이 수도원 뒤편 언덕에서 53세를 일기로 순교했다. 몰리마르 신부는 일찍이 유서를 통해 자신의 유산으로 부여나 규암에 성당이 건축되기를 희망했고, 유언에 따라 1955년 9월에 규암, 1972년 12월에는 부여에 본당이 설립됐다. 마당 끝 쪽에는 경건함이 느껴지는 묘가 있다. 본당 초대 주임 몰리마르 신부의 무덤이다. 오랜 노력 끝에 본당은 2003년 몰리마르 신부의 유해를 모셔 왔다. 교육관의 이름을 ‘몰리마르 관’으로 바꾸고 흉상을 세웠으며, 자료집 발간을 통해 몰리마르 신부를 현양하며 성당 성역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4면

설립 40년 수원교구 성우회…‘영원한 사제’ 돕는 일꾼들

수원교구 원로사목자 후원회인 ‘성우회’(회장 이순자 막달레나)가 설립 40주년을 맞아 6월 19일 제1대리구 율전동성당에서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주례 미사에는 25명의 교구 성사 전담 사제와 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용훈 주교는 강론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우회는 매년 성사 전담 사제의 축일을 챙기고 설과 추석에 명절 선물을 보내는 등 끊임없는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병환 중에 있는 사제를 찾아가 말벗이 돼 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제가 있으면 한걸음에 달려가 손발이 돼 주었다”며 “이러한 성우회의 그동안의 노고를 하느님께서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크신 은총으로 보답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신부님들을 위해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며 살아오신 성우회의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전했다. 미사 후 열린 기념식에서는 40년 동안 성우회를 이끌며 헌신한 이순자 회장에게 공로패가 수여됐다. 이 회장은 “성우회가 지난 40년 동안 이어온 모든 활동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희년 기도 중 ‘온 인류와 우주가 떨쳐 일어나도록 아버지의 은총으로 저희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성실한 일꾼이 되게 하소서’라는 말씀에 대한 응답처럼 마음 깊이 다가온다”며, “비록 작은 봉사 단체이지만, 성우회가 지난 40년의 시간을 바탕으로 앞으로 교구 안에서 더욱 폭넓은 사명을 이어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성우회 초대 영성지도 정운택(안드레아) 신부는 기념식 축사에서 “40년 동안 일관된 활동을 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적인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시간”이라며 “변하지 않는 사랑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회장님과 후원회원들의 성실한 뚝심에 두 손 모아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성우회는 1985년 수원가톨릭대학교 신학생을 위한 장학회로 출범했으며, 이후 교구에 장학회가 설립되자 활동 방향을 전환해 원로 사목자를 위한 봉사단체로 거듭났다. 성우회는 ▲공동 활동을 통해 회원 간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원로 사목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연 1회 정기 모임에서 미사와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그분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을 주요 활동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성우회는 병환 중인 원로 사목자를 찾아 기도하고, 선종 사제를 위한 연도를 바치는 한편, 경로잔치와 야유회, 명절 방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원로 사목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섬기며 정성을 다해 봉사하고 있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면

청소년 찾아가는 버스 ‘아지트’…“아이들 마음에 희망 심다”

2025년 희년을 맞아, 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 ‘아.지.트’가 새롭게 단장한 ‘희년버스’로 다시 거리에 나섰다. 아지트는 안나의집(대표 김하종 빈첸시오 신부) 산하 성남시 남자단기청소년쉼터에서 운영하는 이동형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이다. 김하종 신부는 “희년 버스가 아이들이 희망의 문을 향해 들어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6월 11일, 보라색 외관의 희년버스와 그 옆에 설치된 붉은 천막은 많은 청소년으로 북적였다. 휴대전화도, 자극적인 놀이도 없었지만, 천막 속 아이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작고 낡은 천막 안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희망을 마주했을까? 희년 버스 타고 온 희망 “아지트에 오면 힘을 얻어요. ” 1년째 매주 아지트를 찾고 있는 정민재(18) 군은, 우울증으로 힘들던 시기에 이곳에서 다시 삶의 희망을 붙들었다. 6월 11일 오후 5시, 야탑역 1번 출구 앞. 빨간 천막에 가장 먼저 도착한 그는, 아지트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이 건넨 간식을 먹으며, 뒤이어 온 친구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고, 6시 무렵 도착한 봉사자 선생님에게는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도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그가 이곳에서 발견한 희망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제 말을 편견 없이 들어주고, 믿어주는 어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그 사실이 민재 군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천막을 세운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10개 테이블이 모두 채워졌다. 어떤 중학생은 학원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들러 간식만 먹고 돌아갔고, 한 고등학생 커플은 봉사자 선생님에게 타로카드 상담을 받았다. 24살 청년은 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 파견된 상담 선생님과 한 시간 넘게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중생 6명은 두 시간 넘도록 웃고 떠들며 천막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지트의 천막 안에서는 누구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신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긴 성적도, 집안환경도, 외모도 묻지 않는 공간이다. 대신 “요즘은 어떤 게 좋아?”, “언제 가장 행복해?” 같은 질문이 오가고, “네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따뜻한 말이 건네진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민재에게 한 봉사자 선생님이 해준 “네가 찍은 사진, 정말 멋지다”는 그에게 사진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안겨줬다. 민재의 친구 진형준 군은 아지트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2025년, 아지트에는 ‘희년버스’를 타고 온 희망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번지고 있었다. 예수님 여정과 닮은 아지트 활동 이동형 아웃리치(Outreach)는 청소년 밀집지역으로 직접 찾아가 위기 상황에 처한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하고, 상담과 심리검사,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활동이다. 쉼터나 기관에 스스로 오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다가가는 ‘찾아가는 돌봄’이다. 청소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방과 쉼터를 통해 오랜 시간 청소년을 도와온 김하종 신부는, 거리의 위기 청소년을 외면할 수 없었다. 2015년, 직접 거리로 나가는 아지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 “예수님은 성당을 지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으셨어요.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기쁜 소식을 전하셨죠. 청소년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아지트 활동은 예수님의 여정과 닮아있습니다.” 아지트는 현재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 ▲야탑역 ▲신흥역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행정복지센터 등을 찾아간다.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 이동형 아웃리치에 참여한 청소년은 총 6299명. 하루 평균 120~140명의 청소년들이 아지트 천막이나 버스를 방문한다. 이곳을 찾은 청소년들은 간식 등 먹거리뿐 아니라 특성화 교육, 심리상담, 의료상담, 기초생활 물품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해 동안 진행된 아지트의 상담은 1856건에 이르렀고, 필요한 경우 청소년의 상황에 맞는 유관 기관과 연계해 추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현재 아지트는 ▲성남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성매매피해상담소 WITHUS ▲성남시청소년쉼터(일시·중장기) ▲소아청소년상담센터 공감 ▲청소년자립지원관 등 43개 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아지트를 찾은 청소년들은 가장 먼저 이용 신청서를 작성한다. 이름과 연락처 같은 인적사항뿐 아니라 가출 여부, 현재 처한 상황을 함께 묻는 문항을 통해 위기 청소년 여부를 선별하고 필요한 지원을 신속하게 연결한다. 올해에만 아지트를 통해 발굴된 위기 청소년은 240명이다. 야외에 설치되는 붉은 천막 옆에는 늘 보라색 ‘희년버스’가 함께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 천막을 설치할 수 없는 날에도 청소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희년을 기념해 더 큰 버스로 교체했고, 내부 공간도 보다 쾌적해졌다. 기존에는 간이 칸막이였던 상담 공간도 문이 설치된 독립 공간으로 바뀌었다. 버스 입구에 걸린 ‘희망의 문’ 이미지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를 지켜주는 어른은 없다’고 느껴온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어른들을 만나 희망을 향한 문을 열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름도 ‘아지트버스’에서 ‘희년버스’로 새롭게 바뀌었다. 김하종 신부는 “아지트는 몸과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거리의 청소년들을 위한 치유의 야전병원이자 내 목소리를 가져본 적 없는 친구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의 공간”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희년을 선포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씀하신만큼 아지트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 후원 계좌 농협 301-0121-1372-01(예금주 성남시남자단기청소년쉼터)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