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선교사들이 순교하면서 병인박해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866년 시작된 병인박해는 그해로 끝나지 않고 수년간 이어지면서 전국에서 8000명 이상의 신자들이 목숨을 잃는 혹독한 박해로 변모했다. 왜 병인박해는 이토록 가혹한 박해로 확대됐을까. ■ 병인양요 경기 안성시 죽산면사무소 앞에 있는 순교자 현양비는 많은 신자가 희생된 병인박해를 기억하게 해준다. 죽산 도호부는 지금의 안성시 죽산면·일죽면·삼죽면과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백암면 등 넓은 지역을 관할한 행정기관이었다. 교우촌이 다수 형성됐던 지역을 관할했던 만큼, 많은 신자가 이곳으로 잡혀 들어왔고, 이곳에서 약 4km가량 떨어진 현 죽산성지 자리에서 순교했다. 1866년 시작된 병인박해는 1873년 말이 돼서야 끝을 맺게 된다. 1866년에 선교사들과 수많은 지도급 신자를 처형하면서 한 차례 소강상태가 되지만, 오히려 그 이후 더 많은 신자가 순교하게 된다. 죽산성지도 그런 순교지 중 하나다. 이렇게 박해가 거세진 계기는 프랑스군의 조선 침공, 바로 병인양요의 영향이 컸다. 병인양요는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한 일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함대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공한 사건이다. 병인박해를 피해 조선을 탈출한 리델 신부는 프랑스 극동 함대가 있는 중국 톈진으로 가서 선교사들의 처형 소식을 전하고, 남은 선교사들과 조선인 신자들의 구출을 요청했다. 이에 극동 함대 로즈 사령관은 이 사실을 본국과 베이징 주재 프랑스 공사 대리에게 알렸고 조선 출정을 계획했다. 프랑스군은 9월 정찰을 위해 원정을 나서 한강 양화진, 서강까지 전진했다가 철수했고, 이어 10월 본격적인 침공에 나섰다. 프랑스 함대에는 리델 신부와 통역으로 조선인 신자들이 동행했다. 프랑스군은 10월 14일 강화의 갑곶진에 상륙, 강화부를 점령했다. 한강 하류를 막아 서울에 물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면 조선 정부가 굴복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프랑스군은 강화도 내에 있는 주요 방어진지를 무너뜨리고 불을 질러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정족산성에서 조선군의 기습으로 전투에 패배하자 로즈 사령관은 퇴각하기로 결정하고 11월 11일 떠났다. 프랑스군이 물러가자 박해가 더욱 심해져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신자들이 체포돼 순교했다. 대원군을 비롯한 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거슬러 올라온 것이나 강화도를 침략한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내통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특히 대원군은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침입한 것은 천주교 때문이고, 그로 인해 조선의 강역이 서양 오랑캐들에 의해 더럽혀졌으니, 양화진을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병인양요에 대한 책임을 묻고 프랑스와 내통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양화진에서 신자들을 처형했다. 이곳이 오늘날 절두산순교성지다. ■ 덕산 사건과 신미양요 병인양요로 박해가 가열된 가운데 또 외국에 의한 사건이 발생했다. 1868년 5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충청도 덕산에서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파헤치려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오페르트는 1866년 2차례에 걸쳐 조선에 통상 제안했다가 실패했다. 그러던 중 그는 중국에서 페롱 신부와 조선 신자들에게 “남연군의 묘에 있는 부장품으로 대원군과 협상하면 통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제안을 받고 1868년 5월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봉분을 파내고, 석회층을 제거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자 작업을 중지하고 도주했다. 덕산 사건은 박해에 더욱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충효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 사회에서 무덤을 훼손한 사건은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도굴 시도를 보고받은 고종은 “바다 밖의 서양 놈들이 어떻게 길을 알아서 거침없이 쳐들어왔겠느냐”며 “필시 우리나라의 간사한 물리들 가운데 그들을 부추기고 길을 인도한 자가 있었을 것”이라며 분노했다. 조정의 대신들도 서양 사람들이 일으킨 변란은 조선 사람들이 호응한 결과라고 하면서 신자들을 모두 잡아 처형할 것을 강조했다. 1866년에 체포됐다가 배교한 피영록의 증언에 따르면 “교우가 잡혀 배교하면 놓아주는 법인데, 덕산 사건 후에는 잡히면 배교하건 아니건 죽였다”고 한다. 실제로 1866~1879년 체포된 신자 수의 기록을 살피면 1868년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죽산에서 순교한 복자 박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부부도 1868년 9월 순교했다. 덕산 사건 3년 후인 1871년에는 신미양요가 발생했다. 신미양요는 미국함대가 조선을 침공한 사건이다. 대동강에서 불에 타 침몰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통상 조약을 요구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은 미국의 불법 침략을 문제 삼고 교섭을 거절했다. 미국의 아시아 함대사령관 로저스는 강화도 초지진을 시작으로 덕진진, 광성진을 공격, 점령했으나 결사 저항하는 조선의 항전에 결국 철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강화도 갑곶 나루터 등지에서 여러 신자들이 체포돼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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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김영배 신부 장례미사 봉헌

고(故) 김영배(요한 사도) 신부의 장례미사가 5월 24일 오전 10시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됐다. 이날 장례미사는 교구 총대리 이성효(리노) 주교가 주례하고, 교구장대리 문희종(요한세례자) 주교와 전임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 교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미사에는 사제단·수도자·신자 1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성효 주교는 강론을 통해 “신부님은 당신의 서품 성구인 ‘기쁨으로 주님 섬겨 드려라’를 몸소 사셨던 분”이라며 “어떤 처지에서도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만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셨고, 만나는 신자들의 신심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셨다”고 김 신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50년간 교구를 위해 기도하시고, 특히 교구 발전을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면서 “우리 시대 희망의 순례자이셨던 김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자”고 말했다. 문희종 주교가 주례한 고별식은 ▲분향 ▲약력 소개 ▲고별사 순으로 진행됐다. 김 신부의 동창인 최덕기 주교는 고별사에서, “김영배 신부님은 사제로서 강론과 말씀도 잘하셨고, 손재주도 좋고, 무슨 일이든 똑소리 나게 해냈던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며 “신부님의 책을 보니, 고통을 많이 받으시면서도 주님께서 신부님에게 베풀어 주시는 과분한 사랑에 감사하며 사셨고, 신자들과의 사목 생활을 통해 큰 위로와 기쁨을 누리며 사신 것 같다”고 김 신부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사제생활 50년 동안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해 온 신부님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환영해 주실 것”이라면서, “신부님은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나 뵙게 됐기에 기쁘실 것이고, 우리는 신부님이 주님 품에 안겨 기뻐하실 것을 믿기에 위로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어 김 신부의 ‘무덤 축복식 및 하관 예식’은 같은 날 오후 안성추모공원 내 성직자 묘역에서 문희종 주교 주례로 거행됐다. 김 신부의 삼우 미사는 5월 27일 오전 10시 안성추모공원 성당에서 봉헌됐다. 김 신부는 1942년 충북 진천군 덕산면 상신리에서 태어나, 1974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해 반월성본당 보좌로 사제생활을 시작한 김 신부는 장호원·호계동·군포 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또 교구 교육원장, 예수의 성 대건회 총장, 성 빈센트 병원 원목 사제 등을 역임했다. 1993년 분당성요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면서는 분당성요한·분당성마태오·분당야탑동 성당 등 ‘분당 신도시’ 성당 건립에 큰 역할을 했다. 김 신부는 2003년 1월 요양에 들어간 후 2006년 9부터 성사전담 사제로서 생활하다 2024년 5월 21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마음껏 뛰놀며 말씀 매력에 푹 빠진 ‘축제’

수원교구는 5월 1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기도 평택시 송탄로 51 효명중학교 교정에서 ‘아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시편 34,12)를 주제로 제3회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을 열었다.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38개 본당 어린이 1100여명 참가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축제 진행 세계 어린이의 날 함께 기념하며 다양한 체험 학습장·놀이시설 운영 ■ 역대 가장 큰 축제 이번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그동안 열린 어린이 성경 행사 중에서 가장 크고 성대한 축제였다.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2019년 6월 제1회 어린이 성경 잔치로 시작됐다. 제1회는 제2대리구 차원에서 열린 행사로 제2대리구 관할 본당인 21개 본당에서 400여 명의 어린이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2020~2022년은 어린이 성경 잔치를 열지 못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교구는 교구설정 60주년을 맞아 제2회 어린이 성경 잔치를 교구 차원으로 확대해 진행했다. 참가 어린이도 2배 이상인 900명으로 늘었다. 특별히 올해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보편교회의 제1회 세계 어린이 날을 함께 기념하는 축제로 마련됐다. 세계 어린이 날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을 어린이들과 나누기 위해 제정했다. 교황청은 5월 25~26일 로마에서 열리는 대회에 세계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하길 바라는 한편, 각 교구 차원에서도 세계 어린이 날을 거행하길 요청한 바 있다. 세계 어린이 날을 기념하는 만큼, 어린이들의 호응도 역대 최대로 컸다. 이번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에는 38개 본당에서 참가 어린이 수만 1100여 명이었다. 축제 장소의 공간적 제약으로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다 보니 참가하고 싶었지만 아쉽게 참가하지 못한 본당들도 있었다. ■ 성경공부에 열정적인 어린이들 이번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에서는 성경공부를 향한 어린이들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공부한 성경에 관해 실력을 뽐내는 성경골든벨의 열기가 뜨거웠다. 교구 청소년국은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을 앞두고 지난 3월부터 예상문제집을 공유하고 어린이들이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올해 성경공부 범위는 마르코복음과 요한복음으로 각 본당에서 치러진 예선을 통해 444명의 어린이들이 성경골든벨 현장 예선에 참여했다. 현장 예선에서는 OX퀴즈로 진행, 본선에 진출할 91명의 어린이를 선발했다. 성경골든벨은 예상문제집에 실린 200여 문제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의 성경공부 수준이 높아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을 주관한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조성경(프란치스코) 신부는 “아이들이 성경을 통으로 외운 것 같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깜짝 놀랐다”면서 “우리 아이들 공부 좀 적당히 시키라”며 농담 섞인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성경골든벨 결과 이윤호(유스티노·10·제1대리구 영통영덕본당)군이 1등을, 윤채령(에스테르·12·제1대리구 동탄반송동본당)양이 2등을, 이준성(요한 사도·12·제1대리구 매탄동본당)군이 3등을 차지했다. 성경골든벨 1등을 차지한 이윤호군은 “엄마와 함께 성경을 공부한 덕분에 성경골든벨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도 하느님 말씀을 소중하게 보물처럼 생각하고, 성경을 늘 곁에 두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 자유롭게 체험하고 즐기는 어린이들의 잔치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다채로운 체험 학습장을 마련해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체험 학습장을 방문하며 즐길 수 있도록 구성돼, 어린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체험 학습장에 참여하면서 ‘탈렌트’를 얻고, 이 ‘탈렌트’로 놀이시설과 먹거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체험학습장에는 기도 체험과 말씀 체험을 비롯해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생애가 담긴 ‘김대건 카드 놀이’, 미니골든벨 등 신앙 공부를 위한 프로그램 이외에도 이웃을 생각하고 사랑 실천을 고민할 수 있도록 장애 공감, 노인 체험, 생태환경 체험 프로그램 등도 운영됐다. 또 레트로 감성 놀이 체험, 흡연 예방 카드 놀이, 스포츠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체험학습장에서 ‘탈렌트’를 획득한 어린이들은 다양한 즐길 거리를 통해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교구 청소년국은 어린이들을 위해 바이킹, 회전그네, 다람쥐통, 트램블린 등 놀이기구를 준비했을 뿐 아니라 뽑기, 미니 은총잔치를 통해 어린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의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인생4컷, 페이스페인팅 등도 운영했다. 그리고 먹거리 차량에서는 슬러시, 아이스크림, 소떡소떡, 닭꼬치, 닭강정, 음료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조성경 신부는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교구 어린이들이 성경을 주제로 즐기면서 배우고, 또 신앙생활 안에서 놀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라면서 “이 시간을 통해 우리 어린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아주 푹 젖어들 수 있는 그런 경험이 될 수 있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피드백을 통해 내년에는 더 풍성하고 풍요로운, 더 유익한 시간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신앙 교육 이끄는 공동체 되길”

수원교구 분당성루카본당(주임 최성환 바오로 신부)과 고잔본당(주임 최바오로 바오로 신부)이 5월 11일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아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주례로 거행된 분당성루카본당 설립 25주년 기념미사에는 65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했다. 본당은 이날 미사 중 본당 설립 25주년을 준비하며 진행해온 냉담 신자 회두, 묵주기도, 전신자 성경필사, 본당 설립 25주년사 등을 봉헌했다. 아울러 본당은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사업’으로 미바회 차량 2대 지원(8000만 원), 관할지역 불우이웃 돕기 (2000만 원), 안나의 집·미혼모 시설 등 복지시설 및 사회단체 후원(8000만 원), 고초골·동수원성당 신축금 후원(2000만 원)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용훈 주교는 강론을 통해, “여러분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어려운 상황을 겪으시면서도 올해 성당 부채를 모두 상환했을 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위한 성당 환경 조성과 관할 구역 및 사회복지 시설에 사랑의 손길을 펼쳐주셨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교회가 살아남을 길은 바로 이런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출산율 저하, 늦은 혼인, 성소자 감소와 약화된 신심 단체 활동, 냉담 교우, 고령화” 등 현재 교회와 우리나라가 처한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며, 청소년 신앙 교육과 선교 활동에 힘을 모아 주기를 당부했다. 본당은 1999년 1월 26일 ‘금곡동본당’으로 설립, 상가 건물에서 신앙생활을 해오다 2021년 10월 14일 새 성당을 봉헌했다. 현재 6600여 명의 신자들이 본당 공동체에 함께하고 있다. 고잔본당 설립 25주년 기념미사는 교구장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1부 기념미사와 2부 기념식 순으로 진행된 이날 미사에는 25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기념식 중에는 본당의 역사를 담은 동영상 시청과 본당 90세 이상 어르신 4명과 함께 축하식을 진행했다. 문희종 주교는 “아름다운 공동체는 멋진 성당 건물이 만드는 것도, 신자 수가 많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본당의 주인으로서 공동체를 잘 이끌어 가고 있고, 앞으로도 이 마음 변치 말고 건강하게 본당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1999년 1월 23일 설립된 본당은 현재까지 상가건물 3층을 성당으로 사용하며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본당 신자 수는 920여 명이다.

수원교구, 제22대 국회의원 당선 신자 축하미사

수원교구는 5월 16일 오후 5시 교구청 5층 성당에서 제22대 국회의원 당선 신자 축하미사를 봉헌했다. 축하미사는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총대리 이성효(리노) 주교, 교구장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 등 교구 주교단과 수원교구청·대리구청 사제단이 공동집전했다. 미사에는 수원교구 관할 지역 내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신자 10명과 가족, 비서진 등 30여 명이 참례했다. 이용훈 주교는 국회의원들에게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법제화에 동의해서는 안 되며, 기후, 생태, 환경에 관한 법 제정, 사법, 정의, 평화 등에 관한 사안들, 노동과 복지 입법 사안들, 곧 인간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하는 제도마련,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환경조성, 국민의 행복한 삶 증진에 최선의 노력과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참신한 윤리와 도덕, 정신적 위안과 평화, 신앙인의 모범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큰 뜻을 펴는 이 시대의 예언자적 정치 지도자들이 되어 달라”고 덧붙였다. 당선인을 대표해 인사를 한 조정식(요한 사도) 의원은 “국가에 산적해 있는 수많은 현안들을 정말 지혜롭게 잘 풀어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22대 국회에서 주님과 성경의 말씀에 따른 가르침대로 바르고 선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60개 선거구 중 교구 관할 구역은 39개소이다. 이중 당선된 신자 국회의원은 16명이다.

수원교구 관악본당, 어르신 잔치

수원교구 제2대리구 관악본당(주임 이종덕 가밀로 신부)은 5월 12일 본당 마리아홀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어르신 잔치를 열었다. 팬데믹으로 중단됐다가 5년 만에 열린 이번 행사에는 본당 어르신 150여 명이 함께했다. 또 이종덕 신부와 본당 상임위원 및 본당 신자 50여 명이 잔치에 함께해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날 잔치는 본당 신자들이 준비한 공연과 식사, 선물 전달 등으로 풍성하게 채워졌다. 초등부 주일학교는 율동부 어린이들의 흥겨운 율동 공연으로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본당 상임위원들도 축하 노래를 불렀다. 또 한국 무용을 가르치는 박명숙(아녜스) 안양1구역장과 여성소공동체 위원회가 어르신들의 장수를 기원하며 예부터 연회에서 펼치는 축원무를 재현해 어르신들의 호응을 얻었다. 공연 마지막에는 본당 연령회 박경옥(호로리나) 회장이 답가를 선보이기도 했다. 본당은 잔치 중 어르신들에게 본당 성모회가 준비한 식사와 선물을 전달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한동안 어르신 잔치가 없어 아쉬움이 컸는데, 이렇게 뜻깊은 행사를 열어 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자주 열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혼자여서 외롭게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좋은 음식과 공연에 선물까지 전달해 주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종덕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뜻 깊은 행사를 진행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면서 “오늘(예수 승천 대축일) 승천하신 예수님의 영광이 여기 계신 어르신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2024-06-02

수원교구 호매실동본당, ‘FC 호매실 천사’ 어린이 축구단 창단

제1대리구 호매실동본당(주임신부 이태희 토마스아퀴나스 신부)은 5월 11일 호매실동성당에서 어린이 축구단 ‘FC 호매실 천사’를 창단했다. 이날 어린이 미사 중 진행된 창단식은 ▲개회선언 ▲도움 주신 분들 소개 ▲창단 취지 소개 ▲주임신부 창단사 ▲축구단 소개 ▲유니폼 증정 및 안수 ▲폐회선언 순으로 진행됐다. 창단식 중에는 어린이 축구단 초대 단장인 이태희 신부를 필두로, 초대 감독에 배성수(이냐시오·본당 사목협의회 총무), 지원단장에 이기연(요세피나·본당 성소분과장)를 각각 임명했다. ‘FC 호매실 천사’는 초등학교 3~6학년 복사단으로 구성, 월 2회씩 훈련을 진행하며, 계속해서 복사단 확대와 함께 축구단 규모도 키워나갈 계획이다. 본당 이태희 신부는 창단사를 통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 체득, 공동체성과 협동심 향상 그리고 건강한 몸과 정신, 마음 지니기” 등을 강조했다. 이어 “축구단 친구들과 도움을 주고계신 모든 분들이 축구라는 단체운동을 계기로 본당 활동에도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초대 감독을 맡은 배성수 총무는 “우리 본당의 어린이 복사들이 축구라는 단체활동을 통해 친교를 다지고, 복사단 활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축구단을 창단했다”며, “협력하면서 소통해야 하는 축구경기를 통해 천주교인으로서, 나아가 사회인으로서도 한 걸음씩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축구단원 배민준(에보디오·13)군은 “본당에 축구단이 생겨서 너무 행복하다”며 “앞으로 복사단도 열심히 하고 축구단 활동도 즐겁게 하겠다”고 말했다.

2024-06-02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24)] 남양성모성지 : 병인박해의 시작

남양성모성지는 오늘날 성모성지로 더 유명하지만, 남양이 성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이유는 성모신심 고양을 위서만은 아니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던 순교지다. 남양성모성지는 순교자들의 성모신심만이 아니라 박해 사상 유래없이 큰 규모로, 또 가혹하게 진행돼 ‘대박해’라고도 불리는 병인박해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 베르뇌 주교와 대원군의 접촉 1864년 1월 철종이 사망하자,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고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였고, 수렴청정을 하게 된 조 대비는 흥선군을 대원군으로 세워 국정을 위임했다.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던 선교사들은 이 집권 세력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조선 사람들 사이에서 천주교에 관한 인식이 변해 입교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해를 주도하던 당파가 권력을 쥐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대원군이 조선의 선교사를 찾았다. 당시 러시아는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함락하고 조약을 체결하도록 주선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대가로 시베리아 동부를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두만강을 두고 조선과 접경하게 되자, 러시아가 조선에 국교를 요청해 온 것이었다. 대원군은 러시아의 요구를 물리치기 위한 방안으로 프랑스 개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성 베르뇌 주교의 1864년 8월 18일자 서한을 보면 대원군은 베르뇌 주교와 안면이 있는 관장에게 “만약 러시아 사람들을 쫓아낼 수만 있다면 종교 자유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베르뇌 주교는 “러시아 사람들과는 종교가 달라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답했다. 베르뇌 주교의 거절에도 대원군은 한 번 더 베르뇌 주교에게 접촉했다. 러시아의 요구가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사이 조선교회의 지도급 신자들 사이에서도 방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신자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하는 방법이 영국·프랑스와 동맹을 맺는 일이며, 조선에 와 있는 서양 주교들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는 편지를 대원군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성 남종삼(요한)은 서한을 작성해 직접 대원군에게 전달했는데, 대원군은 좌의정 김병학과 의논한 후 남종삼을 불러 과연 베르뇌 주교가 러시아인들을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한 후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신자들은 종교의 자유가 곧 올 것이라는 희망에 기뻐했다. 신자들은 대원군과 주교들의 면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주교들이 서울에 올 수 있도록 보필했고, 1866년 1월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가 서울에 도착했다. 주교들은 서울에 머물면서 면담을 기다렸지만,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2월 19일에는 성 최형(베드로), 이어 2월 23일에는 베르뇌 주교가 체포됐다. 병인박해의 시작이었다. ■ 병인박해의 시작 면담까지 생각했던 대원군의 태도 전환에 관해 샤를르 달레 신부는 러시아의 통상 요구가 사라지고 조정 대신들의 압력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단 선교사를 만나고자 염두에 둘 만큼 골칫거리였던 러시아의 통상 요구가 사라지면서, 대원군은 굳이 서양 선교사를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 그 와중에 1866년 1월 중국에서 서양인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조선 사신의 보고가 도착했고, 이에 대신들이 서양인과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대원군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대신들의 의견을 따랐고, 병인박해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신자들이 잡혀 들어가기 시작했고, 특히 서양 선교사들이 표적이 됐다. 서울에 있던 베르뇌 주교와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가 체포됐고, 경기도 지역에서 사목하던 성 볼리외 신부와 성 도리 신부가 붙잡혔다. 그리고 충청도 제천 배론신학교를 운영하던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잡혔다. 이렇게 체포된 선교사와 신자들 중 베르뇌 주교와 브르트니에르·볼리외·도리 신부는 3월 7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리고 3월 9일 최형과 전장운이 순교했는데, 그 다음날 조 대비는 ‘사교(邪敎)를 금지하는 교서’를 반포했다. 조 대비는 교서에서 “단속하고 특별히 더 체포해 기어코 모두 소탕한 뒤에 그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만약 숨겨두고 조사에서 발각됐을 경우에는 결단코 응당 남김없이 코를 베어 죽여야 할 것이며, 사람들도 역시 다 같이 그를 처단하게 될 것”이라고 강경한 박해 의지를 내비쳤다. 박해령이 내리고 푸르티에·프티니콜라 신부와 신자들의 처형이 이뤄졌고, 충청도에서는 다블뤼 주교가 체포됐다. 포졸들이 다른 선교사들이 숨어있는 곳을 재촉하자 다블뤼 주교는 신자들이 쓸데없이 약탈과 고문을 당할 것을 염려해 성 위앵 신부를 불렀고, 다블뤼 주교의 심부름꾼과 포졸을 만난 위앵 신부도 붙잡혔다. 성 오메트르 신부도 다블뤼 주교의 체포 소식을 듣고 신자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생각에 자수했다. 불과 2달 사이에 당시 한국교회에서 선교하던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순교했다. 나머지 선교사들은 가까스로 조선을 빠져나가 중국으로 향했다. 이렇게 선교사들이 순교하자 신자들의 괴로움을 염려했던 선교사들의 바람처럼 박해는 소강상태가 됐다. 그리고 그해 9월 「척사윤음」이 반포되면서 박해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2024-05-19

‘생태영성으로 읽는 신약성경’ 강좌 호응

교구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가 5월 2일부터 안양가톨릭회관 2층 강의실에서 ‘생태영성으로 읽는 신약성경 이야기’ 강좌를 진행, 호응을 얻고 있다. 위원회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생태계 위기의 시대에 신앙인들이 성경과 교회의 신앙적 전통에 맞닿아 있는 생태적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활동의 일환으로 이번 강좌를 마련했다. 이번 강좌는 우리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생태계 위기의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이 스스로 구원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도록 구성됐다. 특히 창조질서 보전이 정의·평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만큼, ‘가난한 이를 위한 복음’이라고도 불리는 루카복음서를 1장부터 24장까지 차례로 살피면서 그 안에 담긴 생태영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성경을 바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이해하고 심화시켜 나간다. 강의를 맡은 양기석 신부는 “생태영성은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하느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서 “하느님 말씀을 근거로 세상에 벌어지는 많은 모습 안에서 어떻게 보고 접근하고 또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나누고, 또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이번 강좌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생태영성으로 읽는 신약성경 이야기 강좌는 6월 27일까지 매주 목요일 8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2024-05-19

시대에 응답하는 사제 양성 방법은?

수원가톨릭대학교 40년의 사제 양성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이 시대에 맞는 사제양성은 어떻게 이뤄져야할지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수원가톨릭대학교 부설 이성과신앙연구소(소장 전홍 요한 세례자 신부)는 5월 8일 수원가톨릭대 하상관에서 수원가톨릭대학교 개교 40주년을 기념해 ‘시대를 사는 사제, 시대에 응답하는 양성’을 주제로 제46회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학술발표회에서 ‘수원가톨릭대학교 40년 사제 양성의 발자취’를 주제로 발표한 수원가톨릭대 교수 황치헌(요셉) 신부는 수원가톨릭대 개교 이전의 역사부터 초대 학장, 그리고 현 제12대 총장 재임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신학교의 사제 양성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조명했다. 이어 수원가톨릭대 교수 한민택(바오로) 신부가 ‘시노드적 양성을 위한 밑그림-신학생 양성을 중심으로’를, 대전교구 노은동본당 주임 김유정(유스티노) 신부가 ‘사제 양성자의 양성에 관하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대전교구 가수원본당 주임 안동훈(안드레아) 신부와 수원가톨릭대 교수 김의태(베네딕토) 신부가 각각 논평했다. 한민택 신부는 시노달리타스와 신학생 양성에 관한 교회 문헌들을 분석하고, 특별히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에 제출된 한국교회 의견서를 살폈다. 그러면서 시노드적 양성과 관련해 검토해야 할 주제로 ‘계급문화와 전통’, ‘그릇된 엘리트주의’, ‘공동체적 식별’ 등을 제안했다. 김유정 신부는 사제 양성자에 관한 교회 문헌을 통해 사제 양성자의 역할을 조명했다. 또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의 ‘그리스도교 성소 인간학’ 연구와 여러 양성 모델들을 제시했다. 또한 이날 학술발표회 중에는 발표자만이 아니라 참석자 전원이 소그룹으로 토의하고 토의 내용을 공유하며 종합토론하는 시간도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학술발표회에 참석한 총대리 이성효(리노) 주교는 격려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신 분은 그리스도이고, 우리를 양성하시는 분도 그분으로, 양성을 받는 신학생과 양성을 하는 사제이기 전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학교의 동창생이고 동기”라면서 “오늘 학술발표회가 우리의 내적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께 나를 내어 드릴 수 있는 자리, 선교적인 교회, 함께 걸어가는 교회, 이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제 양성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수원가톨릭대 총장 박찬호(필립보) 신부는 개회사에서 “사제 양성의 목적은 결국 그리스도와의 내밀한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라며 “이 고귀한 목적이 현시대에 적절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오늘 학술대회를 통해 우리의 근본을 상기하고 한 걸음 도약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024-05-19

소외 어르신 사랑으로 돌본 30년 여정 조명

오로지종합복지원(원장 김종남 요셉 신부, 이하 복지원)은 5월 3일 오전 10시30분 복지원 설립 3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기념식을 거행했다. 경기도 안성시 미리내실버타운 1층 성당에서 열린 감사미사는 김종남 신부 주례, 복지원 대표이사 유승우 신부(요셉·교구 사회복음화국장)와 제1대리구 안성지구장 박한현 신부(요셉·대천동본당 주임) 등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김종남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1994년 복지원을 설립하신 방구들장(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역대 원장·부원장 신부님들과 그동안 함께 했던 직원들과 봉사자들 또 복지원 산하 시설에 오셔서 함께 하신 어르신들에게 하느님께서 은총과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구들장 신부님께서 돌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홀로 계신 어르신들을 도척성당의 사제관에 모시게 됨으로써 ‘작은 안나의 집’이 태동됐다”면서 “어르신들이 마지막 삶의 완성의 단계에서 인간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마음으로’ 교회가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설립자 방구들장 신부님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같은 법인 설립 목적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신앙 안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내어 놓는 성장하는 복지원이 되도록 다 같이 힘쓰자”고 덧붙였다. 총대리 이성효(리노) 주교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복지원의 모든 어르신, 직원, 봉사자분들에게 법인 설립 30주년을 맞아 진심 어린 축하와 감사를 드린다”며 “1992년 9월 26일 도척본당에서 사목하시던 방구들장 신부님께서 본당 관할 내 소외받는 어르신들을 사제관에 모셔서 따뜻한 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복지원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1994년 5월 3일 사회복지법인 오로지종합복지원으로 설립등기를 함으로써 법인으로 성립됐다”며 “복지원은 그 후 30년 동안 오로지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바탕으로 어르신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고자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교구는 앞으로도 복지원에 축적된 경험을 교회와 세상 모든 곳에서 더욱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기념식에서는 복지원 소개 및 그 산하 시설 활동 영상 관람에 이어 장기 근속자(10년, 20년) 및 우수 직원, 우수 프로그램 및 봉사자들에 대한 시상이 진행됐다. 복지원 산하 시설에는 현재 작은 안나의 집, 성 베드로의 집, 미리내 요양원, 요한나 주간보호센터, 대건효도병원, 미리내실버타운 등이 있다. 성기화 명예기자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