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비로소 알게 된 ‘말씀의 맛’

박정연
입력일 2025-07-09 09:51:06 수정일 2025-07-09 09:51:06 발행일 2025-07-13 제 345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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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손상희 베드로 수녀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고 성경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껏 성경을 제대로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참 어이없는 신자다. 수녀님 말씀을 못 들었다면 성경 공부에 열중하는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복음을 안내하고 성경 공부를 권유하는 한 사람의 역할이 나에게 미치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의 노고를 귀하게 받아들인다.

‘성서 그룹공부’를 하고 있다. 말씀 봉사자와 그룹원 합하여 8명이다.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공부할 내 믿음의 이웃이다. 몇 번 모임을 했는데 한 번도 8명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 가며 빠진다. 그날 누가 빠지면 그 사람을 생각한다. 왜 빠졌을까? 그냥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짧게 기도한다. 안 좋은 일이 없기를! 다음 주엔 함께 공부할 수 있기를!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부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 혼자만 잘 사는 것보다 나도 잘살고 너도 잘살고 이웃과 함께 우리 모두 잘살면 그게 좋은 세상이지! 재물 나눔, 재능 나눔뿐 아니라 말씀 나눔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나누어 먹듯이 영혼의 양식인 성경 말씀이나 묵상도 나누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도 깨닫게 되고, 내가 겪어보지 않았던 다른 사람의 경험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감동과 은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성경 말씀을 반복해서 함께 읽고 묵상을 나눌 때 언제 어떤 사람이 이야기하는 말씀 한 구절, 묵상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쿵’ 하고 울릴지 모른다. 성경 공부하러 갈 때마다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감동과 기쁨이 넘치는 말씀과 묵상을 만나게 해주십사 기도한다. 아울러 지금의 배움과 묵상이 나중에 이웃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공부에 열중하고, 신앙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저 기계적으로 겨우 주일미사만 참례하던 지난날의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자주 돌아본다.

나는 내가 이웃을 예수님께 인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친구가 몇 있다. 그 믿지 않는 친구를 믿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해 못 한 것을 친구에게 잘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차분히 묵상하는 생활에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어 스스로 뿌듯하고 행복하다. 틈날 때마다 성경을 필사해서 마태오 복음을 끝내고 나니,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경 전체를 다 필사할 날이 오겠지 하며, 벌써 설렌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어느 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또 어느 때는 고통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섭리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우고 경험했던 일들이 성경 이해에 의외로 종종 도움이 되어 놀라기도 하였다. 어쩌면 청년일 때 성경 공부를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노년에 시작한 공부도 아직 늦지 않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잘 이해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이대로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믿을 만한(?) 신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글 _ 배정수 프란치스코(서울대교구 답십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