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파로스(ὀμφαλός)’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세상의 중심을 찾기 위해 두 마리의 독수리를 동쪽과 서쪽으로 동시에 날려 보냈습니다. 두 독수리는 그리스의 도시 델포이에서 만났고, 그리스인들은 그곳을 세상의 중심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람 몸의 중심을 뜻하는 ‘배꼽’이라는 말, 곧 옴파로스를 그 상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리에티(Rieti)는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의 거의 중앙에 자리한 도시입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배꼽’이라는 뜻의 ‘움빌리쿠스 이탈리애(Umbilicus Italiae)’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에티의 특별함은 단지 지리적 위치에만 있지 않습니다. 리에티는 고대 로마가 탄생할 때 그 곁에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간 도시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8세기 로마 건국 신화에 따르면, 군신 마르스는 어느 날 땅에 내려와 레아 실비아(Rhea Silvia)를 만나게 됩니다. 레아 실비아는 이후 로마를 세우게 되는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레아 실비아는 순결 서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삼촌 아물리우스(Amulius)에게 벌을 받게 됩니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 리에티의 옛 지명은 레아에서 유래한 레아테(Rheate)로 전해집니다. 지금도 리에티 지역 사람들을 ‘레아티니(Reatini)’라고 부릅니다. 이런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리에티를 고대 로마의 어머니와 같은 도시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로마와 리에티의 관계가 늘 평화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두 도시는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고, 결국 기원전 290년 로마 공화국 집정관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Manius Curius Dentatus)에 의해 리에티는 로마의 식민도시가 됩니다. 덴타투스라는 이름은 ‘태어날 때 이미 이가 나 있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리에티는 로마식 도시 구조를 갖추며 로마 세계 안으로 편입됐습니다. 리에티가 그리스도교와 연결된 시기는 기원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드로의 제자로 여겨지는 성 프로스도치모(Prosdocimus) 주교의 도움으로 리에티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리에티는 신앙과 문화가 함께 자라난 도시가 됐고, 중세에는 교황들이 머문 도시 가운데 하나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리에티가 경제적·종교적으로 번영을 누린 시기는 ‘교황들의 도시’로 불렸던 아나니와 더불어 교황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1198년 리에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역대 교황 가운데서도 강력한 교황권을 행사한 인물로,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가 교회 안에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노리오 3세 교황도 1219년과 1225년 리에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칙을 인준해 준 교황으로 기억됩니다.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은 1227년, 1232년, 1234년에 리에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전 든든한 후견인이었고,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를 성인품에 올리며 새롭게 일어난 복음적 수도운동을 교회 안에 깊이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또 클라라 성녀와도 깊은 영적 인연을 맺었습니다. 니콜라오 4세 교황은 1288년과 1289년 리에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회 출신으로는 처음 교황좌에 오른 인물입니다.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1298년 리에티에 머물렀고, 1300년 교회 역사상 첫 성년을 선포한 교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교황들이 머물렀던 중심에는 리에티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1109년부터 1225년 사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지금도 리에티 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성당 왼쪽 문 위에는 리에티의 초대 주교로 공경받는 성 프로스도치모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교황들이 머물던 교황궁은 주교좌성당 오른편에 붙어 있습니다. 1283년에 세워진 이 건물 2층에는 교황들이 리에티 시민들과 프란치스코 성인을 축복했다고 전해지는 발코니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그 발코니 앞에 서면, 한때 이 작은 도시가 교회의 중심 가까이에 있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리에티가 누린 이 영광의 시기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이곳에 머물렀던 시기와도 겹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덕분에 리에티 일대는 오늘날 ‘거룩한 계곡’이라 불립니다. 실제 지형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평야 지대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신앙의 기억 안에서 이곳은 프란치스코의 발자취가 깊이 새겨진 영적 계곡입니다. 이곳에는 십자형으로 이어지는 네 곳의 프란치스코 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209년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시시를 떠나 로마로 가는 길에 포조 부스토네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참된 회개와 하느님의 용서를 통한 평화를 체험했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1223년 11월에는 ‘프란치스코회의 시나이산’이라 불리는 폰테 콜롬보에서 회칙을 완성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베들레헴과 닮은 마을 그레초에서 처음으로 살아 있는 구유를 마련하고 성탄 밤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성탄 구유 전통의 중요한 시작으로 기억됩니다. 1225년에는 눈 수술을 받기 위해 리에티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때 프란치스코 성인은 라 포레스타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포도주의 기적을 통해 주님의 섭리를 드러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그는 그곳에서 <피조물의 찬가> 일부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리에티는 이탈리아의 지리적 중심일 뿐 아니라, 중세교회가 새로워지던 시기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영성이 깊이 새겨진 자리였습니다. 무너져 가던 교회를 다시 세우라는 부르심을 들었던 프란치스코에게, 리에티의 네 성지는 네 개의 기둥과도 같았습니다. 그 기둥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다음 회부터 네 차례에 걸쳐, 리에티의 거룩한 계곡에 남은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평화의 섬 제주, 생명과 가정을 노래하다.”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이하 가정과생명위)가 주최하고 제주교구 가정사목국이 주관한 ‘2026 가정과 생명을 위한 미사&생명대행진’이 5월 30일 제주시 일대와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열렸다. “너희는 생명을 선택하여라”(신명 30,19)를 주제 성구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가정과생명위 위원장 문창우 주교(비오·제주교구장)와 위원, 전국 10개 교구 가정사목 담당 사제, 혼인 멘토링과 아버지·어머니학교, 틴스타 봉사자 등이 함께했다. 이날 오전 제주시 사라봉 인근 평생학습센터에 집결한 5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생명 존중’, ‘태아 보호’가 적힌 스포츠 타월을 두 손에 펼쳐 들고 중앙성당까지 약 4km 구간을 행진했다. 본당 자모회원들과 함께 참가한 김정열(젬마·제주교구 한림본당) 씨는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잊고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직접 참가하고 행동으로 나서야 생명의 소중함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시현(요엘·12·제주 중앙본당) 양은 “학교에서 가끔 생명 존중 교육을 받았지만 오늘처럼 직접 활동에 참가한 건 처음”이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해 뜻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행진을 하며 느낀 생명의 소중함을 친구들에게도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행진 후 참가자들은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가정과 생명을 위한 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미사를 주례한 문창우 주교는 “가정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기 때문에 생명을 선택하는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우리의 가정이 희망을 낳는 자리인지, 지치고 닫혀 있는 자리인지 깊이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행사의 주제 성구인 ‘너희는 생명을 선택하여라’(신명 30,19)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미사 중에는 제주교구 청년 찬양팀 ‘열세번째사도’의 공연과 가톨릭문화기획 imd의 퍼포먼스도 열렸다. 퍼포먼스는 낙태 대신 생명을 선택하고 아이를 품는 부모의 용기와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700여 명의 미사 참례자들에게는 임신 10주 차 태아의 발 모양 배지가 전달됐다. 한편 이날 행사에 앞서 가정과생명위는 29일 제주교구청에서 위원회 위원과 생명운동본부 관계자, 각 교구 가정사목 담당 사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석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부본부장 김수규(요한 사도) 신부가 본부 내 자살예방센터의 활동을 소개하고, 교구 차원에서 자살 예방 등 생명 보호 활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가정과 생명을 위한 미사와 생명대행진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태아에서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대외에 선포하는 자리다. 2021년 수원교구를 시작으로 매년 5월 전국 교구를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다.

한국교회 주교들이 생태환경 보전과 자원 순환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본당 공동체를 찾아, 기후위기 시대 교회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되새겼다. 주교회의는 5월 28일 의정부교구 고양 마두동성당에서 ‘주교 현장 체험’ 행사를 가졌다. 주교 현장 체험은 주교들이 교회 안팎의 주요 사목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과 만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사목적 응답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생태환경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원주교구장 조규만(바실리오) 주교, 의정부교구장 손희송(베네딕토) 주교가 함께했다. 마두동본당은 본당 생태환경분과 소속 환경동아리 ‘초록더하기’를 중심으로 제로 웨이스트 운동, 줍깅 캠페인, 자원 재활용 활동 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초록더하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에 따라 공동의 집 지구생태계 회복에 탁월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25년 제20회 가톨릭 환경상 우수상을 받았다. 본당 생태환경분과장 장인이(사비나) 씨는 초록더하기의 활동을 소개하며, “본당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바탕으로 생태 영성을 일상 안에서 실천하기 위해 2022년 10월 분과를 설립했다”며 “일회용품 줄이기, 텀블러와 손수건 사용, 버리지 않고 수리해 다시 쓰기 등을 이어오며 자원 순환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활동을 통해 본당 공동체의 생활 습관도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주교들은 성당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도 둘러봤다. 이어 초록더하기가 펼쳐 온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활동 사례를 듣고, 지구촌 탄소 배출량 변화와 지구 온난화에 따른 평균기온 상승 추이 등을 함께 살펴보며 생태환경 보전의 필요성을 되새겼다. 이어진 실습 시간에는 생활 속 자원 순환의 의미를 익히는 생활용품 만들기에 직접 참여했다. 주교들은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양말목으로 네잎클로버 키링을 만들고,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커피박 도어벨과 주물럭 비누도 제작했다. 완성한 생활용품을 서로 비교하고 직접 착용해 보기도 했다. 주교들은 이어 본당이 조성한 ‘초록더하기 텃밭’으로 이동해 바질 모종을 심었다. 이날 행사를 기념해 주교들의 서명이 담긴 팻말도 텃밭에 세웠다. 현장 체험 뒤 열린 신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주교들은 공동체가 생태환경 위기 속에서도 자원 순환을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 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박현동 아빠스는 “오늘 체험을 통해 본당의 생태환경 보전 활동이 다른 교구와 본당에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특히 텃밭에서 바질 모종을 심는 체험을 하며 본당 활동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많은 분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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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상식 더하기] 왜 성혈은 모시지 않을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우리가 성찬의 전례 때마다 듣는 말씀입니다. 문득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두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셨는데, 정작 미사 때 우리는 성체만 모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성혈은 왜 모시지 않는 걸까요? 그 이유는 성체와 성혈 안에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는 우리의 믿음에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74항) 비록 우리의 눈에는 빵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살이고, 또 모든 지식과 감각을 동원해도 포도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피라는 것을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아주 작은 성체의 한 조각이나 성혈 한 방울일지라도 그것이 예수님의 일부분이 아니라 완전하고 온전하게 계신 예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체나 성혈 중 어느 한 가지 형상만을 모시더라도 “그리스도를 참된 성사로, 온전하게, 그리고 모두 다 모시는 것”이고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얻는 데 아무런 결함이 없다”는 것입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282항) 트리엔트공의회 교부들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들어 이 내용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해주시려고 내어주시는 당신의 몸과 피에 관해 설명하시는데요. 이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생명의 빵”(6,48)이심을 강조하셨습니다. 교부들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6,53)고 말씀하신 분께서 또한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6,51)이라고 하신 것을 상기시키면서 “단형 영성체로도 구원에 충분하다는 것”을 가르칩니다.(트리엔트공의회 제21회기 「영성체에 관한 교리와 법규들」 제1장) 물론 단형 영성체로도 충분하지만, 역시 양형 영성체가 성찬 잔치의 표지를 한층 더 완전하게 드러냅니다. 양형 영성체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주님의 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표현되며, 성찬 잔치와 아버지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 잔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281항) 그래서 세례 후 첫영성체 등 전례서에 규정된 경우나 피정·영성 모임·사목 모임 등의 경우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모독할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합니다.(교황청 경신성사부 「구원의 성사」 101항) 아무래도 성체와 달리 성혈은 분배할 때 엎지르거나 흘릴 염려가 크니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미사 때 성체의 수가 부족할 때 신부님께서 성체를 작게 쪼개서 나눠주시기도 하지요. 우리 눈에는 너무도 작은 조각이지만, 온전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신비를 기억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중)

「종교, 다시 깨달음이다」 두 종교학자의 대담…AI 시대, 종교의 역할은?

신(神)은 잊히고 인간은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는 시대, 종교는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시대의 질문에 종교학의 두 석학이 해답을 제시한다. 비교종교학의 대가로 불리는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종교학과)와 종교심리학자 성해영 교수(서울대학교 종교학과)가 2011년 출간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이후 15년 만에 개정증보판 「종교, 다시 깨달음이다」로 다시 돌아왔다. 두 학자는 종교와 영성에 관한 대담을 통해 어제의 믿음을 해부하고, 내일의 영성을 내다본다. 책은 먼저 ‘탈종교화’에 주목한다. 최근 국내 한 여론조사 기업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40%에 그친다. 특히 저연령층일수록 종교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낮아져, 20대 4명 중 3명은 종교가 없다. 두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뿌리에 ‘표층종교’가 있다고 분석한다. 표층종교는 경전의 문자적 의미에만 몰두하고, 종교를 ‘현재의 나’가 잘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사후에 ‘좋은 곳을 가려고’ 헌금하거나 선행하는 모습도 결국 자신의 안녕을 위한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저자들은 오히려 자유가 확대된 사회에서 개인들이 공허와 혼란을 겪고 있으며, 기성 종교가 쌓아온 지혜가 인간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템플스테이 열풍과 명상·마음챙김 애플리케이션의 확산 역시 많은 사람이 깨달음과 영성에 갈증을 느낀다는 방증이다. 특히 개정증보판에서 새로 더해진 마지막 4부는 AI 시대의 종교를 묻는다. 저자들은 종교가 맡아온 위로와 치유의 역할마저 AI가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노동과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날수록 삶과 죽음, 초월과 같은 종교의 근원적 질문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커진다고 본다. 이에 저자들은 표층종교의 반대 개념으로 ‘심층종교’를 제시한다. 심층종교에서 헌금과 선행은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을 넘어 더 넓은 자아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이 된다. 저자들이 말하는 심층종교의 핵심은 바로 ‘깨달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책은 20세기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의 통찰도 소환한다. 라너가 “미래의 그리스도인은 신비가이거나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듯, 신앙은 제도와 교리의 외적 수용을 넘어 하느님을 체험하는 내적 깊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와 관상기도, 14세기 영국의 익명 수도자가 쓴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 등은 그리스도교 안에 이어져 온 관상과 수행의 전통을 보여준다. “붓다, 예수와 같은 위대한 스승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깨달음을 또렷하게 설파했습니다. 비록 후대의 종교 권력이 자주 왜곡했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여전히 경이롭게 다가옵니다.”(244쪽) 저자들이 말하는 깨달음은 이성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인간 이성이 다다른 한계 너머의 깊이를 체험하는 일이다. 신앙은 지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넘어서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책은 AI 시대의 종교가 제도와 형식, 자기 안녕을 비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 내면을 깊이 두드리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종교, 곧 ‘심층종교’로 돌아갈 때 종교는 다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맹신 금물…AI는 비판적으로 활용해야 할 도구”

한국교회 최초로 교구 내에 ‘AI위원회’를 조직한 마산교구가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AI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책임 있게 활용하도록 돕는 데 본격적으로 나섰다. 마산교구 AI위원회는 5월 31일 KBS 창원홀에서 ‘AI와 청소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 주일에 맞춰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AI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 세대에 초점을 맞춰, AI의 올바른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특히 AI에 관한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 반포 직후에 심포지엄이 열려 교회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심포지엄에는 교구 내 각 본당 주일학교 학생과 성지여중‧고 학생들, 예비신학생 등 청소년과 교구민 500여 명이 참석했다. 심포지엄 기조 강연은 교황청 AI 연구 그룹의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주체성 회복」 을 번역·출간해 국내에 알리고 각종 콘퍼런스에서 AI 윤리 관련 강연을 하며 한국교회 AI 전문가로 평가받는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가 맡았다. 이 주교는 “청소년들은 고도로 복잡한 알고리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영혼은 그 복잡함 때문에 가장 소중한 마음의 평화를 너무나 쉽게 잃어버리고 만다”며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복잡한 마음을 비워 내고 복음의 단순함으로 돌아가, 보다 완전한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 지혜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심포지엄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I를 전적으로 의존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인간의 판단과 책임 아래 활용해야 할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AI는 거짓말쟁이?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생성 AI의 함정과 비판적 활용법’ 주제 발표에서 김민호 조교수(한국해양대학교 인공지능학부)는 “도구는 그것을 쓰는 사람을 닮아가는데, AI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비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더 의심하고 검증하면 더 깊이 사고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서 “진실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언제나 사람의 몫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박길성 명예교수(고려대학교 사회학과)는 ‘AI시대, 청소년을 위한 시대사적 소명’ 주제 발표에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차단이 아니라, 판단할 힘을 키워 위험은 줄이면서도 잘 쓰게 하는 능력을 키우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AI 기술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이끌어갈 윤리와 철학의 부재가 문제”라면서 “AI와 관련된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기에 역기능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굉장히 어려운데, 종교가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며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승언 신부(토마스 아퀴나스·마산교구 AI위원회 위원장 겸 청년사목위원장)는 ‘기술 문명 속 인간의 얼굴’ 주제 발표에서 교황 회칙 「고귀한 인류」의 핵심 내용을 전했다. 이 신부는 청소년을 위한 네 가지 실천 포인트로 ▲진리에 충실할 것 ▲교육에 투자할 것 ▲관계를 돌볼 것 ▲정의와 평화를 사랑할 것 등을 제안했다. 이밖에 임경헌 교수(경북대학교 윤리교육학과)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학을 통해 본 AI’, 김상준 신부(베네딕토·부산교구 청소년사목국 부국장)의 ‘AI시대, 질문하는 존재로서의 청소년’ 주제 발표가 이어진 심포지엄은 AI 전문가와 청소년 사목 담당자들의 현장 경험이 어우러져 의미를 더했다. 교구는 이번 심포지엄 내용을 바탕으로 「청소년을 위한 AI 문해력」을 발간할 예정이다.

교황 파격 인사…교황청 홍보 수장에 39세 여성 평신도 임명

[로마 OSV, 외신종합] 레오 14세 교황은 6월 2일 교황청 홍보부 장관에 마리아 몬세라트 알바라도 EWTN 뉴스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임명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성장한 멕시코계 미국인 가톨릭 신자인 알바라도 신임 장관은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부서 첫 평신도 장관으로 임명한 파올로 루피니 장관의 뒤를 잇는다. 신임 알바라도 장관은 11월 1일 공식 취임한다. 알바라도 장관은 수도자가 아닌 평신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청 부서를 이끌게 된다. 또 39세의 나이로 교황청 장관 가운데 최연소 인사가 된다. 교황청 부서를 이끈 첫 여성은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로 2025년 1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수도회부) 장관에 임명된 바 있다. 알바라도 장관은 임명 발표 뒤 성명을 통해 “최근 한 소중한 친구가 ‘우리가 두드리지 않았지만 열리는 문들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라’고 말해 줬다”며 “이번 임명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저는 교황님의 사도직을 돕고 섬기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또 “레오 14세 교황은 교황직을 시작하며 언론인과 커뮤니케이터들에게 진리 추구를, 우리가 겸손히 진리를 찾아야 할 사랑과 결코 분리하지 말고, 우리 각자의 인간성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지울 수 없는 표지인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를 지켜 달라고 요청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커뮤니케이터로서 우리의 소명을 이와 같이 이해하며, 깊은 감사와 겸손, 주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이 임명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는 알바라도 장관은 플로리다국제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정치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종교 자유 관련 소송을 지원하는 워싱턴 소재 비영리 법률단체 베켓 종교자유기금에서 홍보 업무를 시작했으며, 2017년 부회장 겸 상임이사에 올랐다. 2021년에는 가톨릭 언론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베켓기금에서 일하면서도 주간 뉴스 프로그램 ‘EWTN 뉴스 인 뎁스’ 진행자를 맡았고, 2023년 EWTN 뉴스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에 임명됐다. EWTN은 마더 엔젤리카 수녀가 1981년 미국에서 설립한 세계적인 가톨릭방송네트워크로, TV와 라디오, 뉴스, 온라인, 출판 등을 통해 여러 언어로 가톨릭 콘텐츠를 전하고 있다. 미국 가톨릭 매체 National Catholic Reporter(NCR)는 이번 EWTN 뉴스 사장 임명이 의외의 인사로 받아들여지는 배경을 짚어 눈길을 끌었다. EWTN은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기간 동안 교황과 공개적으로 긴장 관계를 드러낸 바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정 방송사를 지칭하진 않았지만, “교황을 계속 헐뜯는 데 주저함이 없는” 한 TV 채널을 비판하며 그것을 “악마의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발언은 EWTN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아울러 당시 스페인의 한 주교는 교구 방송에서 EWTN 송출을 중단했으며, 워싱턴대교구장 로버트 맥엘로이 추기경도 샌디에이고 주교 시절 EWTN을 교구 매체에 송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EWTN이 “교황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종교적 관점과 연결된 거대한 경제·문화 권력”을 대표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알바라도는 지난해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판 발언이 2021년에 나왔지만 이후 교황이 EWTN 아일랜드 지부가 제작한 영화에는 축복을 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EWTN의 사명이 “교회를 수호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세상과 나누며, 같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플랫폼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로마 교황청 개혁의 일환으로 교황청 홍보부를 신설했다. 홍보부는 바티칸 뉴스, 바티칸 라디오,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바티칸 미디어, 교황청 공보실, 바티칸 출판사 등 교황청 홍보·미디어 체계를 총괄한다. 루피니 장관은 알바라도 장관 임명 당일 발표한 성명에서 “교황청 홍보부는 빠르게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세계에 늘 귀 기울여야 할 의무를 DNA 안에 지니고 있다”며 “앞으로 몇 달 간 새 장관과 우리는 친교의 정신 안에서 긴밀히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인 오클라호마시티대교구장 폴 S. 코클리 대주교도 알바라도 신임 장관 임명에 대해 미국 주교회의를 대표해 축하의 뜻을 전했다. 코클리 대주교는 “우리는 가톨릭 언론인으로서 주교들의 활동을 충실히 보도해 온 그의 노고와, 베켓기금에서 종교 자유와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온 그의 활동에 감사한다”며 “그가 고유한 재능으로 보편교회를 계속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알바라도 신임 장관은 2025년 9월 6일 필라델피아대교구장 넬슨 J. 페레스 대주교와 함께 레오 14세 교황을 알현한 바 있다.

종합

대구대교구 경주 성동본당 “지역 복음화 100년…기쁨의 공동체로”

경북 경주와 포항 지역 본당의 모 본당인 대구대교구 경주 성동본당이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성동본당은 5월 31일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설립 100주년 미사를 거행했다. 이날 미사에는 교구 4대리구 교구장대리 최환욱(베다) 신부를 비롯한 교구 사제단과 본당 출신 사제단과 신자 1000여 명이 참여했다. 특히 이날 99명의 신자가 견진성사를 받았다. 조환길 대주교는 “천년고도 경주를 찾는 많은 신자와 관광객이 성당을 찾아 성미술을 관람하며 묵상하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지난 100년 동안 본당과 지역 사회 복음화에 헌신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100년도 주님께서 본당 공동체와 함께하시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본당은 1926년 5월 30일 ‘경주공소’에서 경주본당으로 승격됐다. 당시 55명의 신자로 공동체를 꾸린 본당은 2026년 3월 기준 2500여 명이 넘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교회가 직면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에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한때 주일미사 참여자가 600명 이하로 줄어든 시기도 있었지만, 가두선교를 펼치며 복음화에 매진했다. 그 결과 해마다 50여 명의 새 신자가 탄생했고, 주일미사 참여자 수 또한 800명 대를 넘어섰다.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부침도 있었다. 특히 1992년 발생한 화재로 성당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 2016년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성당 건물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본당은 경주 11개 본당, 포항 17개 본당을 분가하며 지역 복음화의 기틀이 됐다. 본당은 100주년을 앞두고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그 과정에서 본당 신자인 한국 수묵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바오로) 화백의 작품, 성미술 작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화백의 십자가와 14처, 스테인드글라스 등 여러 작품을 성당 곳곳에 설치했다. 한편 이날 본당은 국내 순례 중인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을 모시고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 이어 오후 6시부터 ‘파티마 성모님과 함께하는 고리 기도’도 봉헌했다.

인천교구, 제2대 교구장 최기산 주교 선종 10주기 추모미사

인천교구는 5월 30일 교구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에서 교구장 정신철(요한 세례자) 주교 주례로 제2대 교구장 최기산 주교(보니파시오, 1948~2016) 선종 10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참례자들은 동료 사제와 수도자들을 믿고 품어준 자비로운 사목자이자 14년간 교구를 이끌며 신앙 내실화와 사회 복음화에 힘쓴 최 주교의 헌신을 되새기고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정 주교는 강론에서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찾아 평화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처럼, 주교님은 어려운 이들과 거리낌없이 함께하셨다”며 “우리도 그분의 헌신적인 삶을 이어받아 복음을 증거하는 공동체를 이루자”고 전했다. 최기산 주교는 1948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사제품을 받았다. 1999년 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돼 주교품을 받았고, 2002년 초대 교구장 고(故) 나길모 주교에 이어 착좌해 교구를 이끌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교육위원회·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6년 5월 30일 향년 68세로 선종했다. 교구 첫 한국인 교구장인 최 주교는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와 순교 신앙 계승, 해외 교포 사목 확장에 힘썼다.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 봉헌, 이승훈 베드로 성지 성역화 사업도 추진했다. ‘노동자 주일’을 기념하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쏟았고, 2008년에는 서해안 기름 유출 피해지역을 찾아 복구 활동에 참여했다. 북한이탈주민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 지원과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힘썼다. 한편 인천교구는 최 주교 선종 10주기를 맞아 최 주교를 기억하는 사제·수도자들의 증언과 회고를 담은 추모 다큐멘터리 영상 ‘故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10주기를 추모하며’를 제작, 유튜브에 배포했다.

대구대교구 남산본당, 설립 100주년 감사미사 봉헌

대구대교구 남산본당(주임 박덕수 스테파노 신부)은 설립 100주년 기념일인 5월 30일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1000여 명의 신자가 성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봉헌된 미사에는 1대리구 교구장대리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 역대 재임·출신 신부 등 46명의 사제단이 함께했다. 특히 미사 중에는 공동체의 한 세기 역사를 집대성한 「남산성당 100년사」가 봉헌됐으며, 100주년 행사 준비에 앞장선 황배곤(대건 안드레아) 총회장 등 신자 대표들이 표창장을 받았다. 조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지난 100년 동안 지역 복음화와 본당 발전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주님의 강복이 있기를 빈다”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도록 노력하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과 참 기쁨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성당 새 단장과 함께 「남산성당 100년사」 편찬, 성지순례, 음악회, 바자, 역사 전시회 등의 기념행사를 열며 공동체의 내외적인 성숙에 힘썼다. 본당은 1926년 5월 30일 설립 당시 주보 성인의 이름을 딴 ‘남산 성요셉 성당’으로 출발했다. 1928년 본당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그레고리안 성가와 한글 가사의 성가들을 수록한 「공교셩가집」을 발행하고, 이듬해 5월에는 오늘날 사목평의회 형태인 ‘남산본당협의회’를 조직하는 등 교회 역사 속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뤘다. 본당은 교구 성모당과 인접해 있어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기도가 끊이지 않는 신앙 공동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도의 결실로 하느님의 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과 제2대 마산교구장 고(故) 장병화(요셉) 주교 등 본당 출신 사제는 39명에 이른다.

시민들과 함께한 ‘성모의 밤’…경춘선 숲길 묵주기도로 수놓다

서울 공릉동 경춘선 숲길. 폐철길을 공원으로 조성한 이곳에 남녀노소 신자 600여 명이 초를 들고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행진한다. 산책 나온 시민들은 신기한 듯 이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행렬 중인 성모상을 보고 한 아이는 “저게 뭐예요?”라고 엄마에게 묻는다. 서울대교구 공릉동·태릉본당이 함께한 특별한 ‘성모의 밤’ 풍경이다. 두 본당은 5월 30일 공릉동성당에서 출발해 태릉성당까지 경춘선 숲길 약 800m를 행진하는 ‘세인트 메리 퍼레이드(Saint Mary Parade)’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신앙 공동체가 성당 안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 속으로 나아가 천주교를 알리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홍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오후 6시 공릉동성당에 모인 신자들은 시작 예식과 말씀의 전례를 봉헌한 뒤 조별로 성당을 나섰다. 행렬의 앞에는 십자가가 섰고, 뒤쪽에는 성모상이 함께했다. 신자들은 초를 들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경춘선 숲길을 따라 태릉성당으로 향했다. 초와 기도, 성모상이 이어진 행렬은 평소 산책로였던 숲길을 잠시 기도의 길로 바꾸어 놓았다. 카페에 앉아 있던 청년들과 운동을 나온 부부, 산책하던 어르신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행렬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었다. 신자들의 조용한 기도와 시민들의 시선이 오가는 가운데, 성모의 밤은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와 만나는 시간이 됐다. 행진 후 태릉성당에서는 성모의 밤 예식이 이어졌다. 헌화회가 꽃바구니를 성모상 앞에 봉헌했고, 참석자들은 함께 성모 호칭 기도를 바쳤다. 이어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 낭독과 두 본당 연합 성가대의 특송이 마련돼 성모 신심의 의미를 되새겼다. 공릉동본당 주임 최용진(레미지오) 신부는 이번 행사가 지역사회와의 만남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최 신부는 “서울 노원구의 신자 비율은 9%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서울 WYD에 참가하는 외국인 청년들이 대규모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낯설게 느끼거나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부터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천주교를 알리고자 하는데, 이번 ‘성모의 밤’도 그중 하나”라고 밝혔다. 태릉본당 주임 김아론(아론) 신부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해 왔고 신자 수도 늘어났지만, 아직 신앙을 개인의 영역에 머무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며 “오늘 성모의 밤을 통해 우리가 만나 연대하고 힘을 모아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는 것을 모두 느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신자들도 이번 행사가 두 본당 공동체가 지역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한도연(미카엘·공릉동본당) 씨는 “행렬 전에는 혹시 시민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바라봐 주셨다”며 “서울 WYD를 준비하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두 본당이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복음을 선포하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