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 이후 누적 한국인 사제는 7019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누적 사제 수는 전년 대비 98명 늘었다.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전국 교구와 남자 선교·수도회에서 자료를 수합, 정리한 ‘한국 천주교회 사제 인명록(2024)’(이하 ‘인명록’)을 5월 27일 전자책과 온라인으로 발행했다. 인명록 작성 기준일은 2024년 3월 1일이다. 인명록에는 성 김대건 신부(조선대목구, 1845년 8월 17일 사제 수품)부터 최민석 신부(서울대교구, 2024년 2월 2일 사제 수품)까지 총 7019명이 수록됐다. 지난해 인명록과 비교하면 사제 수는 98명 증가했다. 1845년부터 3월 1일까지 누적 선종 사제는 717명이었다. 인명록은 사제품을 받고 교구나 선교·수도회에 입적‧이적한 한국인 사제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제 명단이 사제 수품 순서에 따라 수록돼 있다. ‘비고’에는 해당 사제의 특기 사항 또는 교구장 등의 주요 소임 이력도 게재됐다. 인명록에 따르면, 원로 사목자를 포함해 활동 중인 추기경·주교 포함 한국인 사제는 5694명으로 지난해보다 39명 늘었다. 16개 교구 소속 사제는 4795명(84.2%), 해외 활동 사제를 포함한 수도회 소속 사제는 874명(15.4%), 교황청을 비롯해 해외 교구 등에서 활동 중인 사제는 25명(0.4%)이었다. 한편 2024년 3월 1일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사제는 122명으로 지난 해보다 4명 줄었다. 베트남 국적(복수 국적 포함) 사제가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필리핀 각 12명, 멕시코‧스페인‧인도 각 10명, 프랑스‧아일랜드‧이탈리아가 각각 8명이었다. 수도회 별로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이 각각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10명, 파리 외방 전교회 9명 등이었다.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개설된 ‘한국 천주교회 사제 인명록’ 온라인 페이지에서는 사제의 이름과 세례명, 수품일, 소속, 선종일에 따라 사제 검색이 가능하며, 소속‧수품 시기별 통계도 찾아볼 수 있다. ■ 한국 천주교회 사제 인명록(2024) 바로가기 전자책 https://www.cbck.or.kr/Board/K7250/20242210 온라인 페이지https://cbck.or.kr/Priests

인보 성체 수도회(총봉사자 한미란 사비나 수녀) 서울 인보의 집(원장 홍미라 루치아 수녀)은 2022년부터 서울 신림동과 수유동에서 화·금요일 저녁 6시~9시까지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무료 밥차를 운영 중이다. 고시원이나 원룸이 많은 신림동 밥차에는 취업준비생들이, 오락 시설이 많은 수유동 밥차에는 주로 학교 밖, 가정 밖 청소년들이 밥차를 찾는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오늘도 트럭을 모는 홍미라 수녀와 백남실(모니카) 수녀를 찾았다. 2022년부터 무료로 운영하며 취업준비생·학교 밖 청소년 등 돌봄 필요한 계층에 식사 제공 “끊임없이 기다리며 사랑 전해요” ■ 대화가 싹트는 곳, 밥상 “저도 수녀님처럼 남에게 베풀고 싶어요. 본받고 싶습니다.” 성 마티아 사도 축일인 5월 14일. 이날 가장 먼저 밥차를 찾은 민희(22·가명)씨는 벌써 2년째 알고 지내는 수녀들과 편안한 대화를 나누며 30분 넘게 밥을 먹었다. “네가 정말 최선을 다할 것 같으면 학원비도 대줄 수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 중 생계에 대한 화제로 넘어가자, 수녀들은 민희씨의 미래를 걱정하며 말을 건넸다. 민희씨는 항상 선의로 대해주는 수녀들에게 감동받는다며 음식들을 한가득 싸서 돌아갔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찾는 밥차 메뉴는 토스트를 기본으로 매일 바뀐다. 오늘은 돈가스와 웨지감자, 오므라이스와 군만두다. 평소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불고기덮밥, 김치볶음밥, 오징어덮밥, 해물찜 등이다. 특별식으로 여름 중엔 한 번씩 철판에 삼겹살이나 목살을 구워주고 겨울에는 떡볶이에 어묵을 준비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메뉴를 준비하다 보니 늘 잘 먹는 모습을 보게 돼 보람이 있다. 하지만 단골 아이들이 한 번에 3인분씩 먹는 모습을 보면 예쁘고 기분 좋은 한편, 마음이 아프다.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는 요즘 청소년들은 아무리 성장기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안 먹는데, 거리의 아이들은 마음의 허기가 합쳐져 그런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중2짜리 여자애가 어느 날 와서 낙태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수녀님이 미혼모 시설 연결해 줄 수 있으니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말해’라고 해줬죠.” 밥 먹으러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편하게 하다 보니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 어려움 중에도 힘이 나는 이유 ‘돈이 없어서 어떡하지, 이러다 거덜 나겠다’고 생각할 때면, 하느님께서는 미리 알고 채워주신다. 쌀이 떨어졌다 싶으면 다음 날 신기하게도 쌀이 들어온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다 채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그냥 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밥차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다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초수급자도 소액 후원을 해주고 있고, 폐지를 주워 판 돈을 보내 주는 사람도 있다. 어려움은 체력이다.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정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밥차의 특성상, 조리를 하면서 크고 작은 화상과 상처는 부지기수다. 큰 트럭을 운전하다 보니 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한 번은 뺑소니를 치고 도망가는 운전자를 붙잡은 적도 있다. 갑자기 지나거던 행인 한 명이 수녀들에게 음료수 두 캔을 쓰윽 내밀고는 웃으며 지나갔다. 음료를 받은 홍 수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런 분들이 간혹 있으세요. 덕분에 힘이 나죠.” ■ 신뢰감이 형성될 때의 기쁨 홍 수녀는 한 번씩 식재료를 빠뜨리고 올 때도 있다. 한 번은 재료를 직접 사러 가는 대신 진수(19·가명)군에게 수녀원 법인 카드를 주며 “여기에 집도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은데 수녀님이 진수 믿고 줄 테니까 계란 한 판만 사다주렴”이라며 카드를 건넸다. 처음 진수는 알록달록한 머리에 거친 아이였다. 하지만 꼬박꼬박 밥을 먹으러 오면서 홍 수녀와 진수 사이에 신뢰감이 형성됐고, 카드를 선뜻 내주고 계란을 부탁할 정도로 믿게 됐다. 진수의 팔에 있는 자해 흔적은 홍 수녀에게도 아픈 상처다. 지금은 잘 오지 않지만 홍 수녀의 부탁으로 생존 확인은 가끔 해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오늘 밥차를 찾은 정운(30·가명)씨는 수녀들이 꽉꽉 담아준 오므라이스며 돈가스 등을 챙기며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저는 기초수급 청년이라서 수녀님들 밥차 덕분에 살아갈 수가 있을 정도예요. 지금 생활이 너무 어려운데 정말 감사해요.” 기본 메뉴 외에도 유명한 제빵사의 빵이라며 두세 개씩 챙겨주는 수녀들의 손은 바빴다. ■ 여러 기관과 연계하며 자리잡아 “안녕하세요 수녀님, 여기 경찰 될 친구인데 잠깐 같이 일하게 돼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밥차를 찾아온 거리상담 전문요원들이 수녀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2~3분 잠깐 나눴지만 함께 고민한 내용은 모두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에 대한 것이었다. 5월 31일 신림역에서 연합 거리상담을 진행한다는 정보도 공유했다. 홍 수녀는 오늘 방문한 담당자와 연계됐던 한 아이가 시골로 내려간다며 연락 두절이 됐다는 제보도 했다. “한 아이에 대해서도 서로 역할이 달라 서울 A지T(담당 은성제 요셉 신부)라든가 서울시 청소년 이동쉼터, 거리상담 등 여러 지역 단체와 연계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엔 밥만 해주려 했다. 그런데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홍 수녀 눈에 아이들의 여러 사정들이 안 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일상에도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2022년 시작한 밥차는 자리 잡는 데 3년은 걸릴 것 같았지만 아이들의 입소문과 여러 단체들과의 연계로 1년 만에 어느 정도 터를 잡았고 이제는 3년 차가 됐다. ■ 아이들 곁에서 묵묵히 기다림 특히 마음을 열기 어려운 청소년 사목, 이에 대한 어려움을 홍 수녀는 서정주(1915~2000)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로 대신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힘들지만 아이들을 끊임없이 기다리는 시간, 성모님처럼 바라보고 묵묵히 기다리는 시간을 뜻하는 것 같아요.” 2년 넘게 통성명도 안 한 채 마음을 닫고 있다는 이들부터 검정고시를 통과하거나 취업에 성공해 인사 온 이들까지. 수녀들은 이 모두를 품어주며 그저 밥 먹고 가라고 토닥인다. ※ 문의: 02-793-9178 서울 인보의 집

[몽골 민경화 기자] 예수님은 허름하고 누추한 구유에서 가장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다. 입을 것도,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갓난아기를 본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자 마음먹었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계셨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해 55세 나이로 선종한 고(故) 김성현(스테파노) 신부는 몽골에서 선교한 23년 동안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의 가난한 모습을 기억하고 몽골인들에게 그런 예수님을 알려주고자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찾은 몽골에는 선교사의 업적과 같은 화려한 성당이나 그럴싸한 학교 건물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김성현 신부가 더 값진 것을 남겼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 한국에서 온 나의 아버지 “신부님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였습니다.” “신부님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빈자리를 채워 주신, 우리 아빠입니다.” “담배 피우실 때도, 걸어 다니실 때도 늘 기도하고 계시다고 느꼈어요. 신부님과 만나면 예수님이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신부님은 게르에서 불피워 밥을 지어 먹고 말 타고 양을 돌보며 몽골 사람처럼 살았어요. 잠깐 들렀다 돌아가는 다른 외국인들과 달랐습니다.” 김성현 신부 선종 1주기를 두 달여 앞둔 4월 1일, 몽골의 봄은 아직 차갑기만 했다. 초원의 봄은 더욱 황량했다. 아직 생명이 자라지 못한 초원에서는 먹지 못해 생명을 잃은 가축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몽골에서 스물두 번의 혹독한 겨울을 버텼던 김 신부도 따뜻한 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삶은 남은 사람들에게 봄을 선물했다. 아버지의 든든함, 친구의 편안함,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 김 신부의 삶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몽골교회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2000년 몽골에 도착해 2년 뒤 세운 항올 성모승천성당. 나그네가 쉬어가도록 문을 열어 놓는 몽골 전통 가옥 게르처럼 김 신부는 가장 먼저 성당 문을 열었다.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낯선 몽골에서 성당 문을 두드린 것은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이들이었다. 쓰레기를 주워 팔거나, 안전한 가정의 울타리가 없는 아이들에게 김 신부는 “성당에서 같이 살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12명의 아이들이 모였고 성당 한편에는 아이들의 침실과 공부방이 마련됐다. 그 순간 김 신부는 기도했다. “주님, 아이들을 보내 주십시오, 아이들과 평생 함께 살겠습니다. 이 아이들 중 몽골인 사제가 한 명만 나오게 해주십시오.” ■ 하느님이 몽골에 보낸 선물 성당을 짓고 안정된 공동체를 돌보며 숨을 돌릴 법한 순간, 그는 초원으로 향했다. 몽골에서 선교한 지 16년 만에 도심에서 200km 떨어진 에르덴산트로 떠난 것이다. 전기나 물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야 했던 시간을 김 신부는 “천국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안식년과 국내연수로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어교사자격증을 딴 그는 에르덴산트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에르덴산트 사람들은 그를 ‘신부’가 아닌 ‘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좋은 건물을 짓거나 초원에 없는 값비싼 물건을 내밀며 “하느님을 믿어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평소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던 김 신부는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함께 살았다.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물렀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에르덴산트에 머물렀다. 에르덴산트에서 김 신부를 만났던 지엑멧 더르지씨는 “김 선생님은 줄곧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해서 국가의 발전을 도와야 하고 아이들 공부도 열심히 시키라고 이야기해 주셨다”며 “우리는 가족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선생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몽골 바잉허쇼 소피아 본당 주임 노상민(토마스) 신부는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냉담 교우가 많아지자, 신부님은 새로운 선교 방법이 필요하셨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며 “가난의 영성을 살아가는 것이 선교 사제의 사명이라는 생각에 몽골인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고자 에르덴산트로 떠나신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김 신부는 가진 것이 없었다. 추운 나라에서 건강을 챙기라며 가족들이 사준 옷과 신발은 모두 몽골 아이들에게 나눠줬고, 한국 가는 길에 판공비를 아껴 산 선물들은 한국에 사는 몽골인들 것이었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았지만, 수많은 몽골 사람들이 곁에 남아 있었다. 기숙사에 살았던 아이들에게 김 신부는 “내가 죽으면 항올 성당에 공적비를 세워달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공세리성당 한편에 세워진 드비즈 신부의 공적비를 보고 “이 심심한 곳에 왜 오셨지?”라며 선교 사제를 꿈꿨던 자신의 과거가 몽골 신자들의 현재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만난 신자들은 한결같이 “신부님이 아직도 내 옆에 살아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바람처럼 김 신부는 초원의 바람으로 몽골교회와 몽골 신자들 곁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주요뉴스

124위 복자 기념일은 왜 5월 29일일까

오는 5월 29일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기념일이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시복식을 통해 124명의 복자가 탄생했다. 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형을 집행하던 관청이 밀집해 있던 광화문에서 시복식이 거행됐다는 것도 의미가 크지만, 교황청이 아닌 지역교회에서 거행된 시복식을 교황이 직접 주례했다는 사실 또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124위 복자 시복 예식서(Ritus beatificationis)를 보면, 당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교황에게 “한국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주교는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 주시기를 겸손되이 청원합니다”라고 요청하자 교황이 “본인의 사도 권위로,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라고 답한다. 시복식을 통해 복자 124위 기념일이 5월 29일로 공식 선포되는 순간이다. 순교자 기념일은 보통 순교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24위 복자 중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1759~1791)이 전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12월 8일이 124위 복자 기념일로 논의됐다. 하지만 12월 8일은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점을 감안해 한국 주교단은 다른 날을 선택했다. 한국 주교단은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이 전주교구 순교자인 점을 고려해 전주 숲정이성지(전라북도 기념물 제71호)에서 이일언(욥), 신태보(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정태봉(바오로), 김대권(베드로) 등 5위가 1839년 기해박해 중 순교한 날짜인 5월 29일을 124위 복자 기념일로 정해 교황청의 허락을 받았다. 2015년 5월 29일 안명옥 주교는 담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첫 기념일을 맞이하여’를 발표하고 124위 복자들에게 전구해 구체적인 기적 한 건이 증명되면 시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그분들의 시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 주교는 한국교회가 124위 복자 기념일을 지키는 이유는 시복은 시성으로 가는 전 단계이지 종착점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은 9월 20일이다. 본래 103위 성인 시성 이전에는 9월 26일을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로 지내고 있었지만, 한국 주교단은 1984년 103위 성인이 탄생함에 따라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없애고 9월 20일을 103위 성인 대축일로 지내기로 결정했다. 9월 복자 성월은 순교자 성월로 변경했다.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며 일치에 한 걸음 더”...신앙과직제, 제23회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포럼 개최

천주교와 개신교 신학자, 일치운동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역사와 흐름을 성찰하고 향후 과제를 모색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공동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김종생 목사, 이하 신앙과직제)는 창립 10주년 기념일인 5월 22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제23회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을 개최했다. 기조 발제에 나선 장로회신학대학교 객원교수 안교성 목사는 개신교 선교사의 입국으로 비롯된 ▲대치기(1884~)와 ▲병존기(1945~),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대화기(1962~), 민주화 운동 시기의 ▲연대기(1970~)와 1998년 이후의 ▲일치기로 구분해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주요 흐름을 소개했다. 안 목사는 “그동안 일치운동의 기구화와 교회 간 외적 운동에 주력한 나머지 일치운동의 대중화와 민주화가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종교가 주입이나 해방의 단계를 넘어 자기를 찾아가는 순례가 되고 있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천주교와 개신교도) 지도 없는 순례의 길 위에서 우정을 쌓고 날로 새로워지는 일치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앙과직제 창립선언문에서 보물 찾기’를 주제로 발제한 신앙과직제 전 공동사무국장 김태현 목사는 “다양성이 전제되지 않은 일치란 있을 수 없고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다양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이는 일치운동의 전담 기구인 신앙과직제가 지키고 보장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목사는 “신앙과직제는 일치운동의 토대를 튼튼히 하고 앞으로 진행될 일치운동의 공론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10주년을 맞이한 신앙과직제의 과제로 일치운동의 확산을 위한 ▲함께 공부하기, 그리스도의 향기가 널리 퍼지도록 하는 창조적 행위로서의 ▲함께 행동하기,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 일치를 경험하며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될 ▲함께 기도하기를 제안했다. 신앙과직제 전 신학위원장 박태식 신부(프란치스코 하비에르·대한성공회)는 ‘신학위원회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명실상부한 한국 그리스도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 집단인 신앙과직제 신학위원회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심도 있는 토론과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제안되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며 “신학위원회 활동이 어떤 일치 대화보다 모범적이었던 이유는 각 교단을 대표하는 신학 전문가들이 타 종교 위원회들의 말을 귀 기울여 경청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교세가 축소된 가톨릭, 개신교가 모두 노인들의 교회가 되고 결국 몇몇 대형교회만 살아남는 비극적인 날이 올지 모른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그리스도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후대에 알리고 다시금 어리석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신학위원회의 책임이자 사명일 것”이라고 전했다. 신앙과직제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교파 간 신앙적 친교,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 삶을 살 수도 있도록 돕고자 2014년 5월 22일 창립했다. 현재 총회, 공동대표회의, 자문회의인 중앙위원회, 각 교단 실무위원회, 신학위원회로 구성돼 있으며 천주교와 개신교 양 교단 실무책임자가 공동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 일치포럼, 신학위원회, 신학생 교류모임, 일치피정, 성탄 축하 음악회, 일치 순례 등 기존 활동과 함께 일치아카데미와 에큐메니컬 문화예술제를 기획해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장을 넓혀가고 있다.

“배고픔보다 두려운 외로움…대화가 절실했죠”

“말벗이 돼 주시는 고마운 분들과 제 지난 날 행복했던 이야기를 나누니, 오늘도 다시 힘내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5월 14일 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 이공률(요셉·82) 어르신의 집에서는 특별한 요리 교실이 펼쳐졌다. 한때 중식, 양식 등 못 하는 음식이 없는 50여 년 경력 베테랑 요리사였던 어르신에게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가톨릭사랑평화의집(사무국장 윤병우 미카엘 신부, 이하 사랑평화의집) 정서 지원 봉사자들이 찾아와 당근을 가지런하게 채 써는 기술 등 요리사의 비법을 배우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느 쪽방촌 주민처럼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살아가는 어르신은 “당뇨 합병증으로 점점 괴사하는 두 발의 고통보다 힘든 건 단절”이라고 호소하며 “봉사자들이 들를 때만큼은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사랑평화의집은 2022년부터 이처럼 쪽방촌 주민들에게 식사·물품 지원 외에도 정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도시락과 생필품을 전하면서 짧게 안부 정도 묻는 게 아니라 주민 한 명 한 명 주기적으로 방문해 20~30분씩 일상 대화를 나눈다.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단절에 대한 위로기 때문이다. 쪽방촌 주위에는 다양한 동행식당(쪽방촌 주민에게 하루 한 끼 무료 제공하고자 서울시가 지정한 민간 식당), 대형 급식소 등이 생기고 있어 굶는 주민은 없다. 주민들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는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믿었던 이에게 사기를 당하고, 고부 갈등처럼 방치됐던 사소한 가족 불화가 완전한 의절로 이어지고 가출하는 등 과거는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집 밖을 나가기는커녕 하루에 20 단어 이상 말하지 않는 주민도 많다. 주민끼리도 서로 경계해 쪽방촌은 늘 고독사 위험군을 면치 못한다. 사무국장 윤병우 신부는 “다들 상처가 깊어 의례적 인사만 할 뿐 주민끼리도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다”며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그들이 존엄을 잃는 것은 막아야 하기에 정서적 동행을 최우선 목표”라고 전했다. 봉사자들은 주민들이 지난날 행복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다가간다. ‘나도 이렇게 근사한 인간이었지’라는 자긍심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문도 열어주지 않던 주민들은 어느새 긍정적 변화를 보인다. 봉사자들에게 아끼는 물건을 보여주며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가는 길을 배웅하기도 한다. 만나지 않던 벗에게 먼저 연락하고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등 스스로 조금씩 단절을 극복하는 사람도 있다. “할머니 젊어서도 이렇게 예쁘셨네. 진짜 ‘퍄오량’(漂亮, 예쁘다)해요~” 이날 봉사자들은 중국에서 온 최복음(91) 할머니 집에도 들러 옛날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낙상 우려로 방 밖을 나서지 못하는 할머니는 하루 4시간 정도 머무는 요양 보호사 외에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다. 할머니는 “‘예쁘다’는 봉사자들의 칭찬은 태초에 나를 사랑으로 빚으셨던 ‘하나님’ 은혜를 생각나게 한다”며 “'자주 올게요'라는 봉사자들 말처럼 다음 만남을 기다리겠다”고 전했다. ※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502-645252(예금주 천주교서울대교구유지재단)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catholiclp

‘서울 WYD’ 준비 교구 실무책임자 첫 전국 모임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이하 WYD) 준비를 위한 교구 실무책임자 전국 모임 첫 회의가 5월 17일 서울 중국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5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교구 대회’(Days in Dioceses)의 준비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회의는 올해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를 통해 교구 대회 준비위원회 결성 등 준비 책임을 맡은 청소년사목위원회(위원장 김종강 주교, 이하 위원회)가 주최했다. 김종강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교구 대회는 세계 청년들에게 한국인 신앙의 모습과 그 실천의 독특함, 한국적 그리스도교 문화와 영성을 체험시키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중요한 대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지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주교는 “각 교구만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교구 대회가 된다면 세계 청년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새로운 사명을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그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는 이날 첫 회의가 그다음 실무적인 고민들이 확장돼 나가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회의에서는 위원회 총무 최인비 신부(유스티노·인천교구 청소년사목국 국장)가 교구 대회의 실제 운영 방식, 지난 교구 대회들에서 마련됐던 프로그램 등에 대해 안내했다. 교구 대회는 본 대회가 열리는 주최 교구 이외의 지역 교구에서 본 대회 개최 직전 4박5일 또는 5박6일 일정으로 열린다. 개막미사, 교황 행사, 주교들의 교리교육 등이 펼쳐지는 본 대회와 달리 참가자들이 현지 신자들과 신앙 교류를 하며 개최국 문화를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체험한다는 데서 중요한 개최 의미를 지닌다. 서울대교구 WYD 지역조직위원회 사무국 차장 김세진(모세) 신부는 교구 대회의 사목적 준비에 대해 발제했다. 김 신부는 교구 대회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기초 개념인 환영, 발견, 선교, 문화, 파견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들이 실천될 수 있는 봉사 및 만남 프로그램, 지역 유산 발견 등 구체적 활동들을 제안했다. 회의에 참석한 전국 16개 교구 실무책임자들은 안건으로 ▲교구 대회 준비위원회 조직 구성 및 역할 ▲교구 대회 운영 기간 ▲준비 일정 등을 다루고 교구별 준비 상황을 공유했다.

종합

서울 계성고 개교 80주년 성모의 밤…“성모님 품성 본받는 이 시대 ‘샛별’ 길러내”

서울 계성고등학교(교장 민혜숙 효임 골룸바 수녀, 이하 계성고)는 5월 16일 개교 80주년을 기념하는 성모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학생들이 성모님과 같은 품성을 갖추도록 전인 교육을 펼쳐온 교직원, 배움을 삶으로 살아가는 학생·동문들과 기쁨을 나누며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자리로 마련됐다. 교장 민혜숙 수녀는 축사에서 “80년간 탄생하고 성장한 수많은 ‘샛별’(학생)이 사회와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빛이 되어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의 땅에서 샛별들에게 더 이상 어둠 속에 있지 않고 빛 속에서 기쁨을 품게 하신 전직, 현직 선생님들이 흘리신 땀을 기억하며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제1부 기도의 밤에는 오랜 세월 계성고를 사랑으로 보살피신 성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헌화 및 초 봉헌이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계성고가 앞으로도 세상에 빛이 되는 학생들을 한결같이 길러낼 수 있길 성모님께 청원하는 묵주기도를 함께 바쳤다. 제2부 문화의 밤에는 교사,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의 이야기 나눔이 이어졌다. 이들은 나눔에서 계성고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 입시로 힘든 고교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창조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고유성을 존중하는 교육 정신이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시간을 통해 조성된 것임에 목소리를 모았다. 계성고 김홍주(베드로) 지도신부는 강론을 통해 “학교에서 상주하며 주말에도 학교를 위해 여러 일을 하는 수녀님들, 헌신적이고 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교직원들이 있기에 학생들이 빛나는 인간으로 성장하며 보답해 올 수 있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주어진 길을 겸손하고도 용기 있게 걸어 가신 성모님처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고 전했다. 1944년 서울 명동에서 계성여자고등학교로 탄생한 계성고는 어두운 시대일수록 필요한 빛, 성모의 상징이자 태양을 예고하는 샛별(계성·啓星)로 학생들을 꾸준히 길러내 왔다. 지덕체·영성을 겸비한 전인적 인간 양성과 복음적 가치(사랑·정의·평화) 실천을 목표로, 평화 감수성 함양, 통합 생태적 교육, 세계 시민으로서 공존 역량을 심어주는 인성 수업을 교육 중점 과제로 수행하고 있다. 학교는 2016년 길음동으로 이전하고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서울 영등포에 ‘구상시인길’ 생겼다

구도자의 삶을 살았던 고(故) 구상 시인(요한 세례자·1919~2004) 선종 20주기를 추념하며 그를 기리는 ‘구상시인길’ 명예도로가 5월 16일 생겼다. 서울 영등포구청은 도로명주소법 제10조와 같은 법 시행령 제21조 규정에 근거해 영등포구 주소정보위원회 심의를 거쳐 ‘구상시인길’ 명예도로를 지정했다. ‘구상시인길’ 명예도로는 63빌딩에서부터 마포대교 남단을 잇는 여의동로 구간까지다. 시작점인 63빌딩은 구상 시인의 여의도시범아파트 서재인 관수재(觀水齋) 인근이며, 종점인 마포대교 남단에는 제2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구상시인길’ 명예도로 지정의 문화적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구상시인길’ 명예도로 지정에 힘쓴 서울시 영등포구의회 박현우(안셀모) 의원은 “영등포를 대표하는 세계적 문인 구상 시인을 한마음 한뜻으로 추념하고 함께 기억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구상시인길’ 명예도로 지정은 구상 시인과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문화를 통해 하나로 통합되고, 문화도시 영등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상징적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의원은 “구상 시인 기념사업을 확대하고자 구상 시인과 관련성이 있는 지자체인 경상북도 칠곡군, 대구광역시 중구와 영등포구가 자매결연을 체결해 상호협력을 증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칠곡군에는 ‘구상문학관’이 있고, 대구 중구는 구상 시인이 6·25전쟁 중 피난을 가 다른 예술인들과 교류했던 곳이다.

“은총 청하기 전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공로 쌓아요”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서울 서소문밖네거리 순교성지(주임 원종현 야고보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경당에서는 ‘공로를 쌓기 위한 기도 모임’이 열린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모임은 성지담당 이형전(루카) 신부 지도로 이뤄진다. 이 신부는 3시40분경부터 기도 모임에 대한 안내를 시작한다. 기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호흡법을 소개하고 감사 기도와 통회의 기도를 통해 평안한 마음으로 기쁘게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킨다. 호흡은 머리를 쉬고 생각을 멈추는 작업이다. 감사 기도는 일상 안에서 베풀어 주신 은총과 사랑을 느끼면서 하느님과 유대를 느끼도록 한다. 이는 통회로 연결된다.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하느님을 속상하게 해드렸던 것들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뉘우치는 기도를 바칠 때 기도의 차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0일에는 60여 명이 모여 이 신부 설명 후 고통의 신비 5단을 바쳤다. 이후에는 성무일도의 저녁기도를 바치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이 신부는 내내 자리를 지키며 기도에 함께했다. 거의 매주 기도에 참여한다는 한 신자는 “소원만을 비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와 통회의 기도를 통해 깊게 기도에 젖을 수 있는 자세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며 “신부님과 여러 신자가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더 소중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기도 모임은 이 신부가 사제생활을 통해 체험한 기도 방법과 은총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마련했다. 기도를 통해 어떤 은총을 구할 때는 기도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은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공로를 쌓았을 때 기도가 이뤄지는 경험을 전하고 싶어서다. 모임은 1~2월, 7~8월을 제외한 8개월 동안 계속된다. 형태는 정해져 있지 않고, 십자가의 길 등 다양한 기도가 바쳐질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우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어야 하는데, 분노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상태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 이 신부는 “기도 모임을 통해 신자들이 정말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고 그 기도를 통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은총을 체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로써 정말 하느님께 보답하려는 마음이 들어서 기꺼이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내어주지 못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