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영성적 삶이란 진정 원하는 바 찾고 식별하는 것”…「여성영성수업」

이주연
입력일 2025-07-29 16:23:40 수정일 2025-07-29 16:23:40 발행일 2025-08-03 제 3453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박정은 수녀 지음/296쪽/2만2000원/옐로브릭
Second alt text

지난 2016년, 저자 박정은 수녀(소피아·미국 홀리네임즈 수도회)는 여성 피정 ‘지혜의 원’을 오랫동안 이끌며 정리한 「사려깊은 대화」를 펴냈다. 여성 영성을 쉽게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풀어낸 책은 많은 여성에게 자기 삶을 해석할 언어와 영성적 성찰의 공간을 제시했고, 이후 이를 기반으로 더 깊이 있는 영성 지도를 요청하는 바람이 이어졌다. 

「여성영성수업」은 그 응답이자 결실이다. 이번 책은 「사려깊은 대화」를 뿌리로 삼으며 ‘신비주의’, ‘식별’, ‘노년과 죽음’ 등 삶의 후반부를 아우르는 더욱 넓은 주제들을 더했다.

저자는 먼저 여성 영성의 특징을 세 가지를 정리한다. 고유한 관점을 중시하는 ‘인격주의’(personalism), 억눌린 목소리를 말하게 하는 ‘전복성’ 그리고 느슨하지만 깊은 ‘연대성’이다.  인격주의는  이론이나 교리를 앞세우기보다, 각 개인이 처한 고유한 삶의 자리를 중시하며, 작은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에 귀 기울이는 태도다. 또 전복성은 여성의 고통을 개인의 약함이나 수치심으로 돌리는 사회 구조를 돌아보게 하고, 말할 수 없던 경험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연대성은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나눔과 경청, 돌아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진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의 욕구를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개념을 빌려, 외부의 시선과 주입된 언어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식별하고 해방하는 과정이야말로 영성의 핵심이라고 밝힌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자신의 삶을 이끌 만한 중요한 여정인지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은 자기 삶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여성들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책은 ‘상실’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여성의 삶 후반부에서 피할 수 없는 실재로 다룬다. 노년은 단지 생물학적 퇴화의 시기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여전히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가야 하는 시기다. “상실의 미학을 배우지 못하면 가장 외롭고 슬픈 시기”라고 전하는 저자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처럼 허허로운 아름다움을 배워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더불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곧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살아내는 일이며,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성찰의 순간임을 일깨운다.

여성 신화를 통해 ‘여신’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정의했다. 여성 영성에서 말하는 여신은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고통, 상실과 희망을 끝까지 살아낸 인간의 한 형상이다. 제주 신화 속 자청비나 가믄장아기처럼 사랑을 선택하고, 하늘에 올라 신이 되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는 존재는, 여성의 자율성과 연대, 초월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박 수녀는  영성을 ‘삶을 텍스트처럼 읽는 태도’라고 말한다. 각자의 경험은 저마다 색과 질감을 지닌 텍스트이며,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 곧 하느님의 손길을 읽는 일이다. 중요한 사건을 과거의 해석에 고정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독선이 시작된다. 반대로 해석을 열어 두고 삶을 다시 읽어 나갈 때, 우리는 현재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머리말에서 그는 “내면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면서 고유한 진실을 엮어 나가는 것, 그것을 우리는 영성적인 삶이라고 부른다”며 “이 책이 여성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기본 틀을 제공하는 안내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