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미술관, ‘화업 60년’ 권순철 작가 초대전 개최

해방 1세대 원로 작가로 60여 년간 인물을 소재로 화업을 이어온 권순철(요셉·82)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은 2026년 첫 전시로 권순철 작가 초대전 ‘응시, 형상 너머’를 2월 6일 개막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탐구해 온 ‘한국적인 얼굴’을 선보인다.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거칠고 울퉁불퉁한 느낌을 주는 마티에르 기법으로 한국인의 원형을 찾기 위한 작업을 거듭해 왔다. 미술은 흔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업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어떤 작가 또는 작품은 아름다움 너머의 진실, 즉 고통과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감동을 전하곤 한다. 거친 필치로 캔버스를 수놓은 작품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두꺼운 물감에 잠긴 듯한 형상은 오히려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투박함 너머의 깊은 울림과 숙연함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개인적 상처가 녹아 있다. 6·25 당시 7세였던 그는 민간인 학살로 알려진 ‘보도연맹’ 사건으로 아버지와 삼촌을 잃었고, 이후 남은 가족과 함께 트라우마 속에서 오랜 시간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때문에 그림은 자신의 상흔을 고백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작품 속 형상은 삶의 지층을 담고 있으며, 한국인의 넋을 위로하고 ‘한(恨)’을 승화하는 작업이 된다. 또한 전시에는 채찍질 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등>과 <몸>도 공개된다. 고통과 수난을 온몸으로 견디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평생 응시해 온 인간 존재의 상처와 맞닿아 있으며, 상처를 넘어 구원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묵묵히 보여 준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14면

‘교회조각 선구자’ 최종태 작가 개인전 ‘Face’, 3월 29일까지 가나아트센터

한국 교회조각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이끈 최종태(요셉·94) 작가의 개인전 ‘Face’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마련됐다. 작가의 화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얼굴’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는 25년 만이다. 3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얼굴> 연작의 시대별 변천사를 조명한다. 작가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해 온 <얼굴> 연작을 포함한 조각 51점, 회화 19점 등 총 70점의 작품을 살펴 볼 수 있다. 얼굴은 작가가 자신만의 조형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고(故) 김종영 조각가(프란치스코, 1915~1982)를 스승으로 만난 작가는 졸업 이후 1968년 작업실에서 즉흥적으로 깎은 두 점의 얼굴을 통해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얼굴이되, 추상 성향이 강한 형태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 것이다’ 하는 사전 준비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즉흥으로 단시간에 해결된 것이다. 더 손볼 데가 없었다. 단순하고 납작한 얼굴조각이 만들어진 시초의 일이었다. … 세계 미술사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스승의 품을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얼굴은 인간의 심상을 나타냄과 동시에 시대상을 드러내는 창작물이다. 1970년대 제작된 <얼굴>에서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삼각형의 얼굴 조각이 나타나며, 1980년대에 들어서는 작가 특유의 조형성을 녹여낸 ‘도끼형 얼굴’을 강조했다. 이는 작가가 당대 현실을 목격하며 축적된 감정을 담은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후 작가는 모두 도끼형 얼굴을 기본 골조로 <얼굴>을 작업했고, 2005년부터 채색된 얼굴 조각을 시도하는 등 형태와 소재 측면에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 왔다. 작가는 “인체의 한 부분이 아닌 하나의 조형으로서 ‘완전한 얼굴’을 완성하고 싶고, 여전히 그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14면

서울 목동본당 사진가회 ‘빛 사모’, 갤러리1898서 정기전 개최

서울대교구 목동본당 사진가회 ‘빛 사모’가 2월 20일부터 3월 1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제26회 정기전 ‘가톨릭 전례, 사진으로 하는 말씀 묵상’을 갖는다. 2009년 3월 설립된 사진가회는 그간 사진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을 체험해 왔다. 회원들에게 사진은 ‘세상의 빛’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신앙의 여정이다. 회원들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주님의 빛을 따라 걷는 것은 내 안의 어둠을 고백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총의 시간이라고 고백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16명의 작가는 11월 말 대림 시기부터 이듬해 10월 묵주기도 성월까지 전례력에 따른 각자의 기도와 묵상을 사진에 담았다. 대림 시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 10,10 참조) 말씀을 묵상한 김문숙(요세피나) 작가의 <생명의 빛 나비>, 성모성심을 담은 정성모(베드로) 작가의 <성모님의 기도> 등을 포함해 총 50작품을 전시한다. 빛 사모 회장 김문숙 작가는 “회원들과 함께 주님이 지으신 세계를 자신의 시선과 말씀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며 “관람객의 마음속에 현존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14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조스캥 데프레의 〈미제레레〉와 사보나롤라의 「비참한 나」

재의 수요일이 되면 우리는 참회의 상징인 재를 이마에 얹는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참조) 이는 말보다 먼저 촉감으로 인식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거룩한 공의회」는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 표징들(signa sensibilia)’을 통해 전례 안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피부로 느끼는 거친 잿빛 먼지. 감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필멸할 자이며 유한한 자임을 절감한다. 이를 새기며 재의 수요일 미사 화답송인 시편 51편, 일명 〈미제레레〉를 듣는다.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mei, Deus).” 자신의 나약함과 미소함을 깨달은 인간이 올리는, 간명하고도 진실한 간구이자 기도다. 그중 플랑드르의 거장 조스캥 데프레(Josquin des Prez, 1450~1521)의 〈미제레레〉는 특이하다. 다른 성부들이 시편 나머지 가사를 이어 가는 동안, 테노르(Tenor) 첫 성부가 오직 한 문장만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서 반복은 수사적 장치를 넘어, 지속되는 간청과 청원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독특한 형식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가 있다. 참회 시편을 가장 처절하게 붙들었던 인물, 이탈리아 교회 개혁자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다.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자이자 설교가였던 그는 이단 및 선동 혐의로 파문되어 투옥되었고, 죽음 앞에서 시편 51편을 묵상하며 「비참한 나(Infelix ego)」를 쓴다. 추종자들은 이를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에 비견되는 옥중 유고로 보았다. 두드러지는 부분은 글 전반을 통틀어 거듭되는 미제레레인데,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비참한 나, 모든 도움에서 버림받은 자. 하늘과 땅을 거슬러 죄를 지은 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중략)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당시 조스캥은 사보나롤라의 고향이자 그를 지지했던 에르콜레 1세 공작이 다스리던 페라라에서 활동했다. 1498년 사보나롤라 처형 직후 페라라에서 「Infelix ego」가 출판되었으며, 도시는 그의 사상적 거점으로 남았다. 공작은 조스캥에게 〈미제레레〉를 위촉했고, 작품은 사보나롤라의 강력한 자장 아래에서 탄생했다. 음악학자 패트릭 메이시는 동일한 참회로 회귀하는 텍스트 구조가, 조스캥의 순환 구조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곡은 호화로운 다성음악을 지양했던 그의 취향을 반영하듯, 간소한 작법으로 작곡되었다. ‘허영의 불꽃’이라는 참회 운동을 통해 예술품과 사치품을 소각했던 사보나롤라를 의식했던 것일까. 사보나롤라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존재다. 그렇지만 많은 이가 그의 텍스트에서 각자 의미를 찾았다. 조스캥을 비롯한 여러 음악가가 사보나롤라의 「Infelix ego」에 영향을 받았고, 선율을 붙였다. 16세기 박해받던 영국 가톨릭 신자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 역시 사보나롤라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우리는 사보나롤라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안다. 그는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고, 말 그대로 ‘재’가 되어 흩어졌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성경 말씀은,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문구가 되었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가 모두 마주할 보편적 운명이기도 하다. 재의 수요일에 얹히는 재, 전례 중 불리는 미제레레. 몸에 닿는 통회와 귀에 맴도는 후렴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사순의 초입에 선다. “Miserere mei, Deus(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결국 재로 돌아갈 존재가, 주님께 자비를 탄원하는 날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13면

작곡가 모란 마리아 “기도·묵상 담은 노래, 따뜻한 위로로 전해요”

“긴 새벽 속에 홀로 깨어 물결에 반짝이다 부서지는 저 별처럼, 먹먹히 까만 바다를 바라보던 날들….” 고요한 피아노 선율 위로 기도가 담긴 노랫말이 얹힌다. 화려하지 않지만 포근히 다가와 마음에 남는 노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곡가 모란(마리아) 씨는 “음악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작은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SNS에서 음악으로 다양한 사람과 소통해 온 모란 씨가 공식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24년 5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첫 앨범 ‘봄, 그리고, 민들레’를 내면서다. 타인의 아픔을 끌어안으려 출발한 이 노래는 자신의 상처까지 보듬는 기도가 됐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가까이해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어요. 음악을 업으로 삼으며 살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랐거든요. 그러다 음악을 접기로 마음먹고 다른 일을 하던 때 음악이 돌아왔어요. 덕분에 오랜 시간 지속했던 냉담도 풀 수 있었죠.” 일터에서 만난 동료들과 교류하며 다시 성당 문을 두드린 그는 교중미사 반주 등을 하며 다시 하느님 앞에 섰다. 미사 중에도, 기도문을 읽던 중에도 음악적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일상에 대한 감사부터 아름다운 시구(詩句),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까지 떠오르는 대로 작업을 이어갔다. 수년간 손 놓았던 작곡임에도 2022년부터 첫 앨범을 내기까지 묵은 체증을 풀 듯 100곡을 써 내려갔다. “만든 음악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혼자서만 작업하던 제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어요. 홍정수 신부님(베드로·대전교구 해외선교)과 추준호(예레미야) 찬양사도, 박동원(필레몬) 작곡가는 저를 세상과 잇는 다리가 되어 줬어요. 덕분에 ‘모란 마리아’가 존재할 수 있었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이름에 세례명을 붙인 활동명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일상과 기도의 경계에서 묵상을 닮아 있다.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음악을 되찾은 그는 앞에 놓인 길, 사람들을 향해 걸어간다. 그가 SNS로 음악을 나누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기 위해서다. “문화 선교의 장 SNS를 통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노래로 퍼지길 바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박동원 작곡가와 함께 운영 중인 유튜브 ‘위필너(위로가 필요한 너에게)’ 채널에는 “노래가 위로해 주는 것 같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등의 댓글을 찾아볼 수 있다. 2024년 이후 다양한 찬양사도, 사제·수도자 등과 함께 작업하며 30여 곡의 음원을 발표해 온 그는 올해도 위필너의 앨범 ‘꽃잎’을 비롯해 인천교구 사제들과 작업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언젠가 김태진 신부(베난시오·수원교구 광문본당 주임), 임선혜(아녜스) 소프라노와 함께하는 작업은 음악가로서의 꿈이다. “음악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어 준 다리예요. 제 노래의 소재와 이야기는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 있어요. 음악을 듣고 부르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길 희망해요.”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14면

“기후 재앙은 미래의 이야기인가”…대전 헤레디움 전시

“기후 재앙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머리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인공과 자연, 역사와 환상, 과학과 신비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세계를 선보이는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의 전시 ‘미래의 기억들’이 대전의 복합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에서 열리고 있다. 2015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기사)’를 수훈한 작가는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 캐나다 몬트리올 현대미술관 등 해외 유수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작업의 일환이다. ‘불시착한 현재’, ‘아직 오지 않은 과거’, ‘이후의 세계’ 등 3개 주제로 이어지는 전시는 기후 변화와 생태 위기에 놓인 현실과 미래의 변화를 연결한다. 대형 LED 영상을 비롯해 조각 등 총 20여 점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들을 제시한다. 특히 대만 란위섬의 모습을 담은 <오키드 섬(Orchid Island)>에는 산과 바다의 물결, 흔들리는 나뭇잎 등의 모습이 등장해 일종의 명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풍경 위에 배치된 검은 직사각형은 불안한 기후 현실의 긴장감을 전달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단순한 휴양지가 아닌 사회적 문제의 현장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상적인 자연환경을 가진 섬이지만, 섬 한쪽에서는 핵폐기물이 버려지는 곳”이라며 “검은 사각형을 통해 전쟁·정치·기후 등 다양한 위협을 나타내려 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월·화요일 휴무. 운영 시간 11시~19시.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14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팔레스트리나 <노인이 아기를 안았네>

지난 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이었다. 이날 교회는 성탄에서 주님 공현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마무리하고, 아기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에 의해 성전에 봉헌되심을 기념했다. 복음 역시 시메온과 예언자 한나가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찬미하는 장면을 중심에 뒀다.(루카 2,22–38 참조) 의롭고 독실했던 시메온이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감격하는 대목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이를 노래한 그레고리오 성가 〈노인이 아기를 안았네(Senex puerum portabat)〉 또한 인상적이다. 전통적으로 주님 봉헌 축일의 성무일도 ‘안티폰’(후렴)이나 미사 중 알렐루야로 사용되는데, 가사 내용은 이렇다. “노인이 아기를 안았네(Senex puerum portabat). 그러나 아기는 노인을 다스리니(puer autem senem regebat). 그분을 동정녀가 낳았고(quem virgo peperit), 출산 후에도 동정녀로 남았으며(et post partum virgo permansit), 자신이 낳은 그분을 흠숭하였네(ipsum quem genuit, adoravit).” 르네상스의 거장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는 이 텍스트를 5성부 모테트로 확장했다. 초입 “아기는 노인을 다스리니” 구절은, 만물의 통치자 그리스도(Pantokrator)를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다스린다(regebat)’라는 구절이 상행하는 선율과 성부 간 모방으로 이전 음형을 ‘지배’하듯 진행되기 때문이다. 시메온의 품에 안긴 연약한 아기가, 실은 세상을 다스리는 강력한 주권자라는 역설이다. 마지막 절 “그분을 흠숭하였네”에서 팔레스트리나의 천재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모든 성부가 한 호흡으로 합치되듯, ‘흠숭하였다(adoravit)’로 귀결될 때, 듣는 이들은 성모와 시메온, 한나와 함께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듯한 공통된 신앙 체험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전례가 요구하는 것은 결국 참여이며, 노래는 이 동참을 생생히 경험하게 한다.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 부분 역시 팔레스트리나 특유의 투명하고 순차적인 진행으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텍스트는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자로서, 교회 공동체와 신앙을 이끄는 어머니임을 선언한다. 이 전례적·음악적 의미는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마리아의 역할과도 맞닿는다. 2025년 11월 발표된 교황청 신앙교리부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는 성모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로 보는 입장과 분명히 거리를 둔다. 문헌이 강조하는 마리아의 순명, 고통의 동참, 신앙인의 모범, 교회의 어머니 역할은 “자신이 낳으신 이를 흠숭하는 자” 가사와도 조화를 이룬다. 복음은 감동과 희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메온은 예언한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참조) 때문에 주님 봉헌 축일의 초 봉헌과 행렬은 그저 환희의 빛이 아니었다. 고난의 그림자를 동반한 촛불이며, 기쁨과 통회가 공존하는 촛불이다. 축일은 그리스도의 봉헌을 넘어 훗날 수난과 십자가형, 이를 통한 인류 전체의 구속(救贖)을 예고한다. 시메온의 팔에 안긴 아기 예수의 장면을 통해 찬란한 빛을 보았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수난을 거쳐, 우리를 밝히고 살리는 구원의 빛. 글 _ 박찬이 율리아나 (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6면

광주가톨릭박물관, 양계남 작가 기념전 ‘지상, 파라디소’ 선보여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모두 / 그분의 길을 걷는 이 모두!”(시편 128,1) 광주가톨릭박물관이 1월 23일 고(故) 양계남 작가(크리스티나·1945~2023) 기념전 ‘지상, 파라디소(Terra e Paradiso)’를 개막하고 8월 31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이번 전시는 ‘전통이라는 자신만의 별’을 지키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유족이 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함에 따라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1945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양계남 작가는 조선시대 산수화의 거장 허백련과 구철우, 양수아를 사사하며 한국화와 서예, 데생 등을 익혔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 학·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1974년 광주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국내는 물론 유럽 각지에서 전시를 열며 창작에 매진한 작가는 초기에는 묵(墨)에 숨겨진 다양한 색과 여백의 깊이를 탐구했다. 이후 채색화를 통해 화사한 색채와 세필 묘사, 한국적 정서를 결합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자연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1991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세례받은 이후, 작가의 작품 세계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스승에게서 배운 ‘삼애 사상(애천·애토·애인)’에 ‘복음적 사랑’을 더하며, 인간의 유한한 사랑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랑과 구원의 의미를 화폭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전통미와 서양의 추상미, 종교적 숭고미를 아우르는 예술관은 이 시기에 완성됐다. 깊은 묵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유한한 사랑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랑을 화폭에 담으며, “함께함으로써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실천해 나갔다. 전시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지는 사유와 고뇌의 여정을 ‘지상’, ‘여정’ 등의 주제로 구성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심미적으로 풀어낸 <구름이 쉬어 가는 곳>을 비롯해 대표작 40여 점이 공개된다. 특히 <그 분이 가시는 길 - 십자가의 길>은 이승과 저승, 고통과 승화가 교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성스러운 새와 포도나무, 붉은색과 보라색의 배경 속 중앙에 놓인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구원 여정을 더욱 또렷이 드러낸다. 전시 기간에는 나비에 이름을 붙여 채색하는 ‘나비에 생명을’, 전통 먹을 직접 갈아 수묵화로 표현하는 ‘오만 가지 묵색 속 나의 별 찾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일·공휴일 휴관. 입장료 무료.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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