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든 89세 “내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

한국 제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잔느·89) 작가 11월 24일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열리는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본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김윤신 작가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를 무색하게 전기톱을 비롯한 무거운 작업 도구를 들고 열정을 불태우고 있으며, 지난 4월 20일 시작한 제60회 베네치아비안날레 국제미술전 본선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연작에 속하는 나무 조각 4점과 돌 조각 4점을 선보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제작한 출품작 가운데 나무 조각은 소나무나 호두나무 같은 원목을, 돌조각은 오닉스와 재스퍼 같은 준보석(準寶石)을 재료로 하고 있다. 원목과 준보석을 조각하는 과정이 서로 다름에도 재료의 속살과 표면의 시각적인 대조와 조화가 이번 출품작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강인하면서 예리한 작가적 접근이 돋보이는 김 작가의 출품작들은 새로운 소재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개발해 온 과정을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작가는 이번 국제미술전 본전시 참가에 대해 “하마터면 놓칠 뻔한 기회였음에도 나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준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예술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며 “1974년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열린 비엔날레 이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해 왔는데 무려 50년이 지나 이런 크고 중요한 전시에 초대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2024년을 내게 큰 행운이 깃든 해로 생각하고,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응답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60여 년 동안 나무와 돌 등 자연 재료가 지닌 본래의 속성을 온전히 강조해 온 김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작품들을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제목으로 일관되게 이름 붙이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뜻을 지닌다.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조각 재료에 자신의 정신을 더하고 공간을 나누어 가며 온전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조각 과정이기도 하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나무와 돌 조각은 물론 석판화와 회화를 아우르며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1959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공부했다. 1969년 귀국한 뒤 1974년에는 한국여류조각가회 설립을 주도했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뒤로는 주로 남미를 무대로 작품활동을 해 왔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1895년 첫선을 보인 이후 격년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 권위의 전시다.

2024-05-26

[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Ave verum corpus)’

오는 6월 2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이즈음 전 세계 곳곳의 성당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는 성체거동 등 행사를 거행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주교구 풍수원성당이나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에서 거행하는 아름다운 성체거동이 유명하지요. 그리고 가톨릭신자가 많고 오랜 교회 전통이 있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정말 화려하고 장엄한 성체거동과 축하 행사로 축일을 기념합니다.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을 위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작품을 소개합니다. 바로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Ave verum corpus)입니다. 「가톨릭 성가」 194번에 ‘성체 안에 계신 예수’라는 우리말 번역으로 수록돼 많은 분에게 익숙한 곡이기도 합니다.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사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내용입니다. 모차르트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경건한 가톨릭 신앙이 사회를 지배했던 18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그것도 제후 대주교가 다스리는 ‘북쪽의 로마’ 잘츠부르크에서 나고 자랐죠. 아버지로부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을 물려받았고, 가족끼리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날짜를 언급할 때도 성인들의 축일로 부를 정도였습니다. 파리에 갔을 때는 연주회를 마치고 성당에 들러 묵주기도를 바치고 숙소에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보입니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두루 여행하며 다양한 교회 음악을 접했고, 10대 시절부터 훌륭한 작품을 썼습니다. 하지만 빈으로 이주한 뒤에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오페라와 피아노 협주곡에 전념하느라 그렇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 무렵부터 요제프 2세 황제가 교회의 영향력을 누르기 위해서 7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철폐하고 교회 전례와 음악에도 강한 규제를 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790년 9월에 황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고, 때마침 모차르트는 1791년 5월에 빈 스테파노 대성당의 부악장에 취임했습니다. 무보수지만 악장이 세상을 떠나면 승계할 수 있는 직책이었지요. 만약 그해 12월에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교회 음악에 다시 한번 힘을 기울였을 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베 베룸 코르푸스’는 1791년 6월, 성체 성혈 대축일에 빈 근교 바덴에 있는 성 스테파노 성당에서 열린 예식을 위한 작품입니다. 당시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몸이 안 좋아서 온천 도시 바덴에 머물렀는데, 아내와 아들을 만나러 방문한 모차르트가 그곳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친구였던 안톤 슈톨에게 작품을 선물했습니다. 마흔여섯 마디밖에 안 되는 짧고 단순한 곡이지만, 특유의 투명한 아름다움과 가사를 다룬 수사적인 효과가 인상적입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2024-05-26

전례미술연구소, 창립 5주년 전례조각초 전시

전례미술연구소(소장 김유리 율리아)가 창립 5주년을 맞아 5월 22일~30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전관에서 전례조각초 단체전을 연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필리 2,18)를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단체전에는 전례미술연구소에서 수 년 동안 배우며 성장한 권순옥(그라시아), 김선영(요세피나), 김은아(아드리아나), 김지영(클라라) 등 작가 14명이 참여해 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서울·인천·수원·군종교구 등 4개 교구에 소속돼 있다. 출품 작품 수 면에서도 대규모 전시여서 기대를 모은다. 전시 출품작들에는 주로 가톨릭적인 요소들이 표현돼 있지만 작가 개인의 묵상을 담은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참여 작가들은 전례조각초를 처음 배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를 돌아보며 첫 마음으로 돌아가 전시를 준비했다. 작가들은 이번 단체전을 앞두고 저마다 전례조각초를 처음 배우려던 동기나 목표는 달랐지만 이제는 같은 질문을 던지며 같은 지향점을 지니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든 작업들이 어렵기 그지없지만 긴 시간 고민하고 끊임없이 묻고 마음에 완성된 전례조각초의 모습을 품다 보면 점차 하나의 작품을 낳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마다 뜻을 담아 낸 전례조각초는 전례에 스며들어 하느님을 찬미하고 많은 신자들에게 다가가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게 됐다. 전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초는 자기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역할을 함으로써 예수님을 닮았다는 것 역시 작가들이 전례조각초 작업에서 매번 깨우치는 진리다. 작가들은 입을 모아 “우리의 작은 노력이 주님을 닮아 그리스도의 빛이 돼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다면 기쁘겠다”며 “부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기뻐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례미술연구소는 미술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고 올바른 성미술 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작돼, 전례조각초 제작의 기술적, 심미적 훈련과 더불어 교회사와 미술사를 바탕으로 디자인 및 성화 이론을 교육하고 있다. 한편 전례미술연구소 김유리 소장은 5월 18일 오후 4시~5시30분 갤러리1898 제3전시실에서 ‘중세 필사본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한다.

2024-05-19

“먼저 떠난 딸 향한 그리움, 매일 화폭에 담았죠”

허수아비를 주 소재로 자신만의 독창적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남궁원(알베르토·77) 화백이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리 남송미술관과 에코뮤지엄에서 6월 2일까지 ‘남궁원의 그림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부터 시작한 ‘남궁원의 그림축제’는 남송미술관에서 ‘남궁원 연대별 대작전’, 남송미술관 별관격인 에코뮤지엄 목련관과 진달래관에서 ‘남궁원 신작전’, 에코뮤지엄 들국화관에서 ‘남궁원 미디어아트전’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됐다. 모든 전시들이 남궁원 화백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전시는 에코뮤지엄 아트홀에서 펼쳐치고 있는 ‘남궁원 그림일기전’이다. 그림일기는 남궁 화백의 딸 고(故) 남궁송(베로니카)씨가 2000년 7월 20일 백혈병으로 25세 나이로 선종한 뒤 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표현한 글과 그림이다. 남궁 화백은 이란성 쌍둥이 중 첫째였던 딸이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가며 병마 중에도 생애 대한 의지가 강했고, 동생 남궁환(안드레아)씨로부터 골수 이식까지 받았음에도 세상을 떠난 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겪었다. 평생의 업이었던 작품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정도였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을 잊지 못해 피아니스트인 아내 김순미(미카엘라)씨와 추모 음악회와 전시도 열었지만 딸이 떠나간 마음 속 빈자리가 채워질 수는 없었다. 남궁 화백은 딸의 22번째 기일인 2022년 7월 20일부터 시작해 2023년 7월 20일까지 꼭 1년 동안 딸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일기를 썼다. 일기 내용을 표현한 작품도 매일 그렸다. 이렇게 해서 360여 점의 그림 작품이 탄생했다. 남궁 화백은 그림일기전을 구상하면서 딸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딸 송이는 생전 병실에서 “아빠 가진 거 있을 때 그때 그때 나눠 줘요. 어렵게 사는 사람 굉장히 많아요. 미술인이나 다른 예술인들도 조금씩 도와주면 좋겠어요. 하느님이 언제 생명을 거둬 갈지 모르는 일이에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궁 화백은 “딸에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딸이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남궁원 그림일기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크기에 따라 관람객들이 5~20만 원을 기부하면 원화를 제공하고, 기부금은 전액 가평군 내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쓰인다. ‘남궁원 그림일기전’이 열리게 된 가슴 아프고도 아름다운 사연과 기부 취지에 공감해 약정된 액수보도 더 큰 금액을 기부하는 사례도 있다. 또한 ‘남궁원 그림일기전’이 열리고 있는 에코뮤지엄 아트홀은 가평군의 청정 환경에 둘러싸여 주변 풍경만으로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지만 다소 교통이 불편한 점을 감안해 온라인(www.namsongart.com)에서도 작품을 감상하고 기부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에코뮤지엄 아트홀을 나오면 바로 볼 수 있는 고(故) 남궁송씨 추모 공간도 함께 관람하면 ‘남궁원 그림일기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수 있다. 남궁 화백은 평생의 작품 화두인 허수아비에 대해 “허(虛)는 비움과 나눔, 수(守)는 지킴, 아(我)는 키움, 비(非)는 세움이라는 의미로서 허수아비 철학은 내 안의 좋은 것은 나눔으로써 비우고, 나쁜 것은 버림으로써 비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남궁원 그림일기전’ 역시 허수아비 철학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남궁원의 그림축제’에 선보이고 있는 ‘남궁원 신작전’은 아내 김순미 피아니스트가 뜨개질로 만든 작품을 캔버스에 붙여 허수아비 철학을 새로운 형태로 시도해 관심을 모은다.

2024-05-19

[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에마누엘 바흐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 C.P.E.바흐 <주님의 부활과 승천> 중 ‘주님께서 환호 속에 승천하시네(Gott fähret auf mit Jauchzen)’ 바로크 음악이 종말을 맞았지만 아직 빈 고전주의 음악은 등장하지 않은 18세기 중반, 사회와 예술에서는 매우 다채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보편적인 감정이나 자연을 모방하려던 음악은 이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음악가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시민 계급이 성장하면서 음악가들이 직접 시민을 상대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大)바흐’, 즉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둘째 아들입니다. 당대에 그는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음악가였고,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음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선구자였습니다. 에마누엘 바흐는 흔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밑에서 궁정 음악가로 30여 년 일한 뒤 1767년에 대부였던 텔레만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석이 된 함부르크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습니다. 함부르크는 부유한 상업 도시로, 일찍부터 시민 계급이 예술을 후원하고 즐겼습니다. 이미 베를린 시절부터 궁정 바깥의 시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에마누엘 바흐는 다섯 개의 주요 교회의 음악을 책임지는 직무와 더불어 일반 시민을 위한 대중 음악회를 열었고, 직접 악보 출판까지 하면서 빈틈없는 사업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했습니다. 그가 시민을 대상으로 열었던 연주회에서는 교향곡이나 협주곡뿐만 아니라 라틴어와 독일어 종교음악도 연주했는데, 이는 함부르크라는 도시의 특성과 사회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교회 음악을 교회가 아니라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관습을 시작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가령 예수님의 승천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아버지 대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1738년에 쓴 ‘승천 오라토리오’가 교회에서의 전례를 위한 작품인 반면, 아들 에마누엘이 함부르크에서 1774년에 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Die Auferstehung und Himmelfahrt Jesu)은 극장이나 콘서트홀을 위한 작품입니다. 에마누엘 바흐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힘차고 풍부한 표현으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맞이하는 기쁨을 노래하며, 특별한 줄거리는 없지만 전편에 극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릅니다. 그리고 1부와 2부의 끝부분에는 아버지 바흐를 연상케 하는 장대한 합창 푸가로 장엄한 주님의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마지막 합창은 시편의 마지막 구절 ‘숨 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 알렐루야!’로 끝납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입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2024-05-12

대구대교구 모든 성당 스케치화 주보 연재, 서원만 화백

2021년 1월 3일자 대구 주교좌계산대성당을 시작으로 지난 4월 28일 구미 형곡성당까지, 대구대교구 주보 1면에는 서원만 화백(베르나르도·64·대구 상인본당)이 그린 성당 스케치화가 연재됐다. 교구 164곳 성당을 모두 싣는 데 꼬박 40개월이 걸렸다. 연재를 마친 서 화백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연재하는 동안 한 번도 쉬어본 적 없습니다. 마감 시간 맞추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주보 그림은 교구민과의 약속이잖아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4년 가까운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나 모르겠어요.”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저 성당에 가고 싶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는 서 화백. 단지 외형을 묘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성당만이 줄 수 있는 영성적인 분위기를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냉담하고 있는 신자라든지, 신앙적으로 조금 자극이 필요한 그런 분들이 성당에 푸근함을 느끼고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모상을 그리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떤 곳 성모상은 작다 싶으면 크기를 조금 더 부각해 그렸어요. 미술이기에 할 수 있는 예술적 허용이라고 할까요.” 성당 스케치 작업은 직접 성당을 방문해 분위기를 잡아내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다음부터가 더 중요하다. 먼저 연필로 스케치한 밑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검토하고, 고민하고,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찢어버려 다시 그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 성당의 그림을 완성하는데 최소 한 달씩은 걸렸다”고 서 화백은 말했다. “힘들 때면 ‘주님께서 곁에서 도와주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어요. 제 능력 이상의 어떤 결과, 내가 추구한 이상의 분위기가 나온다면 주님의 도우심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항상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붓을 잡은 지 올해로 38년째인 중견 서양화가 서 화백. 신자들에게 영성적인 무언가를 주는 것이 필생의 화두라고 말했다. 가톨릭 미술작가로서 서 화백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그리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서 화백은 성당 스케치화 연재를 처음 제안한 당시 대구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최성준 신부(이냐시오·가톨릭신문사 사장)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 화백은 또 앞으로 자신이 주님의 도구로 계속 쓰일 수 있도록 공부하고 더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노년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 천착해 많은 사람에게 신비롭고 행복한 느낌을 전했던 샤갈(Marc Chagall·1887~1985)을 닮고 싶다고도 말했다. “신자들이 신앙 안에서 사랑과 평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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