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66년 된 한센인 보금자리…산이 쏟아져 내렸다

이나영
입력일 2025-07-25 13:01:52 수정일 2025-07-25 13:14:28 발행일 2025-08-03 제 345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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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19일 폭우로 경남 산청 ‘특별재난지역’ 선포…작은형제회 ‘산청 성심원’ 피해 심각
장애인 자립체험홈 반파…성심원 내 모든 배수로 토사로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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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쏟아진 폭우로 산사태 피해를 입은 경남 산청 성심원을 7월 24일 찾았다. 토사가 휩쓸고 지나가며 완전히 망가진 산책로와 십자가의 길을 성심원 원장 엄상용 수사와 관계자가 확인하고 있다. 이나영 기자

“66년간 가꿔온 공동체 곳곳이 처참하게 망가졌습니다. 한센인의 보금자리로 시작해 장애인, 노인까지…, 소외된 이들을 품고 은인들의 도움으로 유지되어온 이곳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7월 16~19일 쏟아진 ‘괴물 폭우’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경남 산청군. 그곳에 위치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원장 엄삼용(알로이시오) 수사는 “피해 복구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비용이 들지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산청(山淸). ‘산이 맑은 지역’이라는 뜻 그대로, 지리산을 끼고 있어 예부터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지역을 품어줬던 산은 지역민의 자랑거리였지만, 괴물 폭우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성심원 역시 공동체 뒤편으로 지리산 자락을 끼고 위치해 있다. 앞쪽으로는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 그곳에 1959년 한센인 정착촌이 형성됐고 그 공동체가 현재의 성심원으로 이어졌다. 1984년 폭우에 침수 피해를 입은 이후 성심원은 마을 앞쪽에 축대를 높이 쌓아 올려 수해에 대비해왔다. 

폭우가 예보될 때마다 강물 수위를 유심히 지켜봤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산이 무너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병풍처럼 든든하게 서 있던 산자락은 무너졌고, 거대한 토사가 공동체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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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쏟아진 폭우로 산사태 피해를 입은 경남 산청 성심원을 7월 24일 찾았다. 산에서부터 토사가 지나간 길이 선명하다. 뿌리째 뽑혀 쓸려온 나무가 산사태의 위력을 보여준다. 신동헌 기자

한센인 어르신과 장애인, 직원 등 200여 명이 머무는 곳.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었지만 20여만 평 임야 곳곳의 피해는 컸다.

35년간 이곳에 거주 중인 한센인 김성내(65‧치릴로) 씨는 꾸준히 가꿔온 농장과 텃밭을 잃었다. 김 씨는 “산사태가 일어날 거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면서 “초록 풀밭이 토사에 덮여 하루 만에 흙더미가 된 걸 보니 무서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성심원 측에서 파악한 산사태 구역은 총 8곳. 토사가 들이닥친 장애인 자립체험홈은 반파됐고, 한센인 어르신들의 거주공간도 흙투성이가 됐다. 산속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은 곳곳이 끊어졌다. 1976년 조성돼 성심원의 신앙 중심지 역할을 했던 ‘성모동굴’은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완전히 부서졌다. 산 중턱 높은 바위 위에 있던 성모상은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앞쪽 바닥에 반쯤 파묻힌 채 발견됐다. 엎드린 상태로 흙더미 속에 있는 성모상을 일으켜 세우고 싶지만, 인력도 장비도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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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 산청성심원 원장 엄삼용 수사가 2025년 7월 19일 쏟아진 괴물폭우로 부서진 성모동산의 성모상에 손을 얹고 있다. 산청성심원 제공

복구작업도 문제지만, 현재 성심원의 가장 큰 고민은 배수구다. 성심원 내 모든 배수로가 토사로 꽉 막혀버렸다. 이어지는 폭염, 사방을 끈적하게 덮었던 토사들은 빠른 속도로 굳어가고 있다. 배수로가 막힌 때에 비가 쏟아진다면, 어떤 피해를 볼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산청군 전체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기에 성심원의 순서가 언제 올지 알 수가 없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테살1 5,16-18)는 성심원의 ‘원훈’이다. 엄 수사는 원훈을 언급하며 “인명 피해 없이 우리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면서, “한 명의 봉사자라도 연락을 주시길 청하며 포크레인‧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정말 필요한 상황이기에 도움 주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