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차원의 초대로, 새벽을 깨우는 말씀의 미사

인간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느님이 정교하게 짜 놓으신 거룩한 타임라인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 지난 1년 6개월간 내 절망의 밭을 희망으로 일궈주셨던 영적 지도신부님께서 아일랜드로 떠나셨다. 이제 홀로 직면해야 할 큰 파도 앞에 선 듯한 막막함이 밀려왔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 주 토요일 성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고해를 보던 중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나의 고해 내용을 가만히 들으시던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미사가 끝난 후 사무실 앞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며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미사를 봉헌하는 내내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마주 앉은 신부님 집무실에서의 면담 시간. 신부님께서는 내 교적까지 미리 받아놓으신 채 한 시간가량 깊은 대화를 나눠 주셨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건네셨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일 새벽미사를 나오면 좋겠어.” 사실 나는 이미 매일 오전 10시 미사에 참례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에는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가끔 본당에 갈 때마다 새벽미사를 강조하시던 주임신부님의 말씀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 주님께서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마련해 두셨다는 잔잔한 울림이 일었다. 나를 이끌어주시던 신부님이 외국으로 떠나시자마자, 주님께서는 지체 없이 또 다른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내 영적인 과정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보는 말씀 카드에도 ‘허접한 그릇’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꽂혔다. ‘이쯤 하면 됐지’ 하는 나의 허접함을 주님께서 복된 그릇으로 바꿔주시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에 나를 준비시켜 주시는 느낌이 들었다. 신부님께서는 매일 봉헌할 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미리 10번씩 읽고 오라는 영적 숙제를 주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성무일도를 바치고 5시30분까지 성당에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전날 밤 미리 말씀을 10번씩 읽고 묵상한 뒤 잠자리에 들기로 마음먹고 실천에 옮겼고 그런 힘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드렸다. 그전에는 부담스러운 10번 읽기가 며칠 만에 10번을 넘어 그 이상을 읽고 또 읽는 나를 보면서 그 능력도 함께 주시는 주님께 감사했다. 그날의 말씀 중 내 마음에 온 일부 말씀이다.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2베드 3,12-17 참조)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를 봉헌할 때, 전날 읽었던 말씀들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을 앞당기는 것은 나보다 주님께서 더욱 기다리신다는 마음과 그러기 위해서 오류에 휩쓸리지 말고 흠 없고 티 없이 평화로이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정진하라고 이 새벽 주님은 오늘도 나를 깨우신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22면

움막의 거리 30미터

나의 유년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미움과 분노가 뒤섞인 차가운 관계였다. 할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밥상을 엎으시던 할아버지의 서슬 퍼런 모습, 할아버지 보란 듯 작은 실수만 있어도 매를 들고 화를 내며 때리시던 아버지. 부자는 상대에게 소리치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그리도 화를 내며 지내셨다. 결국 할아버지는 우리가 사는 집에서 불과 30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움막을 지어 스스로를 유배시키셨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차마 한 울타리 안에 머물지 못했던 그 30미터의 거리는, 우리 가족이 대대로 짊어져 온 상처의 깊이와도 같았다. 늘 소화가 안 되던 할아버지는 손자인 나에게 약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움막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황도 통조림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셨다. 폭군 같은 노인이 건네는 황도의 달콤함은, 가족에게 표현이 어색한 할아버지에겐 최선의 사랑 표현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미워하며 지냈지만, 세월이 흘러 마주한 아버지는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닮았다. 결혼 전, 나의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은 이 상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지금까지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며 마주한 현실은 시렸다. 아버지의 호통과 그 뒤에 숨겨진 손주들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아이들은 늘 혼란스러워했다. 할아버지의 서툰 다정함조차 위협으로 느낀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피해 방으로 숨어들었고, 아버지는 그런 손주들이 피하는 모습을 보며 화를 내곤 하셨다. 그런 이후엔 아이들은 더욱 할아버지를 마음에서 더 멀게 피하곤 했다. 꼭 우리 할아버지가 물리적인 30미터 움막의 거리에서 사신 것과 같이 아버지와 아이들은 심리적 30미터 움막의 거리를 두고 사는 듯했다. 주님께서는 ‘수술’이라는 예기치 못한 도구로 이 낡은 움막의 문을 두드리셨다. 한 달 전 쓸개 제거 수술에 이어 담석 제거를 위해 다시 입원하신 아버지는, 더는 호령하던 호랑이가 아니셨다. 아버지는 왜 왔냐고 하시면서도 몸 상태와 지난 수술 얘기 등을 하셨다. 떠나기 전, 어머니의 기도 권유로 나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기도가 시작되자 아버지는 어색해하며 피하시기는커녕 제 손을 더 꼭 맞잡으셨다. 곁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게 젖어 드는 동안, 투박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며 그 시간을 감사했다. “주님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 바오로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주님과 화해하고 이 수술을 통해 회복하게 도와주소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주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섬세한지 느꼈다. 육신의 수술을 통해 주님은 아버지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셨다. 할아버지의 움막에서 느꼈던 그 황도의 사랑 표현처럼, 아버지와 내가 서로에게 기도로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주셨다고 본다. 이제 남은 수술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린다. 아버지가 회복되어 돌아오시는 날, 이번에는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손을 먼저 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내어주길 소망한다. 그 심리적 30미터, 움막의 거리가 이제는 더 가까워져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22면

집착을 넘어 희망으로,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2024년 가을의 초입,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공원을 달리던 그날의 절박함을 기억한다. 너무 답답해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달렸다. 긴 광야의 삶, 보이지 않는 안개를 걷는 듯 희망이라곤 없는, 어디론가 숨고 싶고,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뛰고 또 뛰었다. 탈출구를 찾으려 무작정 다이얼을 누르고 지도 신부님과 한 통화는 내 삶의 밭을 새롭게 일구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매주 이어온 신부님과의 면담은,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절망의 밭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은총의 과정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이 모든 만남이 내가 간절히 희망했기에 이루어진 선물이라 말씀하셨고, 나는 그 가르침을 등불 삼아 성실히 걸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매달렸던 희망의 이면에 사실은 무서운 집착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집착이 주인이었던 내 마음에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어”라는 두려운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비로소 손에 쥔 힘을 빼고 주님 앞에 고백했다. “주님, 저는 희망합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려놓음 뒤에 찾아온 평화 속에서 어느 날 성당의 십자가를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의 음성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그 말씀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희망은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 믿음은 다시 나를 흔들림 없이 걷게 했다. 그러던 중, 작년 우리 가족은 ICPE 공동체 40주년 행사를 위해 폴란드로 향했다. 평생 서약을 앞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한 그 여정은 주님의 세심한 안배 그 자체였다. 큰아이의 기말고사 일정 때문에 서둘러 귀국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공동체의 배려 덕분에 우리 부부만 따로 평생 서약 미사를 하게 된 것이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께서 향을 치시는 순간, 내 영혼을 관통하는 강렬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이제 광야는 끝났다.” 제대 뒷벽에 그려진 광야의 천막과 숫자 ‘40’ 로고를 바라보며, 나는 신부님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지난 세월 걸어온 고단한 광야의 길이 떠올랐다. ‘아, 정말 끝났구나.’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감사와 충만함이 차올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평생 서약의 자리가, 실은 내 인생의 긴 광야를 마감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입성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나를 지도해주셨던 신부님께서 5월이면 아일랜드로 먼 길을 떠나신다. 신부님도 희망을 이루신 것처럼, 나 또한 주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의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이 희망은 나를 더욱 가난한 마음으로 이끈다. 무언가에 집착하던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하루하루를 선물로 여기는 감사가 채워졌다. 더는 초조해하거나 떼쓰지 않는다. 그저 내게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때가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집착을 버리고 희망으로 채워진 이 가벼운 마음, 하루를 온전히 감사로 봉헌할 수 있는 지금 이 삶이야말로 주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고 희망이다.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을 향해 걷는 이 걸음걸음마다,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하시리라 나는 믿는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22면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용기: 자기 주도적 신앙의 길

세상의 모든 만물은 가만히 두면 무질서한 상태로 흘러간다. 뜨거운 차는 식어가고, 가지런히 정리된 방은 시간이 지나면 어질러진다. 과학은 이를 ‘엔트로피 법칙’이라 부른다. 신앙의 세계에도 이 법칙은 존재한다. 우리의 영혼 또한 가만히 내버려두면 가장 편한 길, 내 자아가 만족하는 길, 즉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무질서의 상태로 급격히 기울어진다. 나도 그렇다. 그렇게 무질서로 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됐다. “신앙은 불편함이다.” ICPE 선교 공동체에 속해 있고, 지금은 리더를 맡고 있다. 이 리더란 자리는 나의 자아를 불편함으로 초대하는 자리다. 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MBTI가 I로 시작하는 성향인데 이런 나에게 리더는 참 맞지 않는 옷 같다. 그런 내가 선교회 회원들을 위해 자기 주도적인 신앙을 요구하고 제안하는 건 내 삶을 역행하는 투쟁이다. 그들의 영적 성장과 리더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살기 위해 독려하는 것. 자아가 귀찮아하고 거부하는 그 지점을 향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는 영적 투쟁을 해보자는 것. 쉽지는 않다. 현실의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누가 뭐라 해도 싫고, 내 눈앞의 이득이 주님의 일보다 늘 앞자리를 차지하는데, ‘주님의 뜻’을 묻기보다 ‘나의 형편’을 먼저 살피는 것이 우리의 욕구인데 그것을 거스르자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하면… 이 선교사들을 다시 뜨거운 신앙의 자리로 이끌 수 있을까?” 성체조배를 하는데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그러신 듯 느껴졌다. “그건 나의 일이다.” 그렇지. 주님의 일이지. 그건 주님의 일인데, 나의 노력으로 힘으로 애쓰고 있으니. 오직 그 일은 ‘주님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내가 무엇이라고 주님의 자녀들을 판단하고 억지로 끌고 가려 했던가. 그들은 내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장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당신의 자녀들이다. 나 또한 그들과 똑같이 넘어지고 흔들리는 연약한 죄인일 뿐임을 고백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심어두신 그 작은 사랑의 불꽃을 다시 지펴주시길 기도하며, 나 스스로가 먼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기 주도적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것뿐이다. “내가 뭐라고… 주님께서 아끼시는 당신의 자녀들을… 주님께서 잘 이끄시겠지.” 그렇게 의탁 드린다. 이건 포기가 아니다. 리더로서의 조급함을 내려놓고, 주님의 때를 기다린다. 누구나 사계절이 있다면, 누군 뜨거운 여름이고 누군 찬 겨울이라면, 여름인 내가 겨울인 상대를 기다려주고 인내해 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내 안의 게으른 자아를 깨우며 불편함을 선택한다. 기도가 귀찮을 때 무릎을 꿇고, 내 일이 바쁠 때 주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며 영적 엔트로피를 역행하려 애쓴다. 그 좁고 불편한 길 끝에 주님께서 예비하신 참된 평화와 성장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당신의 품으로 이끌고 계심을 신뢰하며 나는 오늘도 그분의 도구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22면

두려움의 파도를 넘어 영원한 미소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얇은 유리 벽 같았다. 췌장암 3기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1년 6개월의 시간을 버텨오신 마르코 고모부님.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회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직접 운전대를 잡고 한의원을 다니시던 그 간절한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끔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나누실 때면, 젓가락을 움직이는 그 평범한 손길조차 우리에겐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집에서 마지막이 되어 버린 식사를 하고 나가실 때 고모부님은 고백하셨다. “무섭다, 참 무서워.” 떨리는 목소리로 남기신 그 말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본원적인 두려움이었다. 그 후 며칠 뒤 간 기능의 저하와 함께 찾아온 쇼크는 순식간에 고모부님을 의식 없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병원에서 마주한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이별’을 직감했다. 매일 묵주기도로 고모부의 영혼을 보호해 주십사 청했고, 미사 때마다 그의 영혼을 주님 손에 맡겨드렸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해 식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달려간 병실에서 식사를 마치시고 해맑게 웃으시는 고모부. 부은 손을 잡고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기도하며 눈시울이 자꾸 붉어졌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주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주님, 이렇게 고모부와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 후, 아내와 함께 찾아간 마지막 면회 날. 그날의 기억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침대에 누워 계신 고모부님. 황달로 눈은 색이 변했고 여기저기 터진 실핏줄과 부은 손. 그 모습에 마음이 무너지면서도 우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해맑은 웃음을 봤다.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아이처럼, 근심 하나 없는 천진난만한 그 미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그 웃음을 마주하는 순간, 오히려 위로를 드려야 할 우리 부부가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 미소는 “무섭다”던 한 인간의 두려움이 주님의 평화에 완전히 잠겼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인간의 의술이 멈춘 곳에서 주님의 자비가 완성되었다. 고모부님은 당신의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며 죽음이라는 파도를 넘어서고 계셨다. 그리고 며칠 후 주님께 가셨다. 이제 고모부님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정거장을 지나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음에도 내 마음이 이토록 잔잔한 것은, 고모부님이 보여주신 그 해맑은 미소가 주님의 약속임을 믿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절벽이 아니라, 주님의 손을 잡고 영원한 빛의 나라로 건너가는 아름다운 과정임을 고모부님은 온몸으로 가르쳐 주셨다. “주님, 저 또한 제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고모부님처럼 해맑은 미소로 장식하게 하소서.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으며, 주님의 품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소망하게 하소서.” 부활의 햇살 속에 마르코 고모부님을 주님께 돌려보내 드렸다. 이제는 두려움도, 통증도 없는 그곳에서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영원히 미소 짓고 계실 고모부님을 위해, 남겨진 우리는 다시금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2면

‘사랑’의 자리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을 때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참조) 한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성경 말씀 속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라는 권고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보았다. ‘나는 참고 기다립니다. 나는 친절합니다. 나는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문장을 완성해 나가던 순간, 내 안에서 거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라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머릿속은 나 자신의 성찰이 아닌,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한 사람의 얼굴로 가득 찼다. “내가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먼저 참았어야지. 내가 변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끄럽게도 내 마음의 첫 번째 순위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나’가 아니라, 여전히 ‘남의 탓’을 하며 그가 변화하기만을 바라는, 그것이 우선이라 믿는 심판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준 상처를 하나하나 들춰내며 마음의 수첩에 기록하고 있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는다는데, 나는 그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스스로를 향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주님. 저라는 사람은 아직도 이토록 멀었나 봅니다.” 꽃이 피고 세상이 부활의 생명력으로 반짝이는 이 시기에, 정작 내 마음은 무덤처럼 여전히 원망과 미움의 돌덩이로 굳게 닫혀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에게 잘해주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 가시를 돋친 이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부활의 길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는 말씀은 어쩌면 상대의 잘못을 견디는 것보다, 그를 미워하고 싶은 내 안의 본능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넣어 그 구절을 읽으셨을 때 느끼셨을 그 겸손과 고뇌가 오늘 제 마음에 낮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주님, 제 안의 ‘나’를 비우고 그 자리에 주님의 사랑을 채우기가 이토록 힘이 듭니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면 비명이 터져 나오듯, 상처 준 이를 떠올리면 사랑보다 억울함이 먼저 앞섭니다. 하지만 오늘 이 아린 마음마저도 주님 앞에 봉헌합니다.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 문 뒤의 빗장을 풀 수 없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닫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제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고, 제가 먼저 사랑해야 주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붙듭니다. 올봄,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제 안의 미움도 녹아내려, 언젠가는 부끄러움 없이 ‘사랑’의 자리에 제 이름을 넣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날을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22면

아들아, 네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으렴

언제 그랬냐는 듯 큰아이의 신학기는 시작되었다. 반 배정과 교복을 구매하러 다니는 분주함 속에 고등학교 1학년이 시작된 것이다. 큰아들 요한이의 컨디션은 하루하루 파도를 타는 듯하다. 낯선 친구들, 서먹한 교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잠 못 들게 하는 관계의 피로함. 밤늦게 돌아온 아이는 학교의 후일담을 토로하며 한 시간가량을 우리 부부에게 털어놓는다. 위로도 해주고 편도 들어 주면서 그렇게 신학기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첫 모의고사. 잘하고 싶은 열망과 주변의 기대에 전전긍긍하는 아이를 보며 조건 없이 지지하지만, 아이를 챙기는 심정이 참 녹록지는 않다. 성장기의 아이에게 어떤 말로 거름 역할을 해줘야 할지 우리 부부가 나누는 대화의 중심은 늘 아이에게 있다. 참…. 그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오늘 저녁은 유독 큰아이가 힘겨워했다. 아이 입에서 부정의 말이 끊이지를 않는다. “해도 안 돼. 어떻게 하지. 엄마가 몰라서 그래” 등등 그 모습이 예전의 나를 보는듯하다. 나랑 참 많이 닮은 큰애. 사실 나 또한 오랜 시간 어둠 속을 걸었다. 배우로 살아온 28년, 배우를 아직도 하고 있는 건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이지만, 그 과정은 너무 쓰고 고달팠다. 우울증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도 있었고, 배우를 포기하려고 기도드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부정으로 가득했던 난 예수님을 만났고, 1년간 울며불며 상처의 회복을 경험했다. 현재는 180도 바뀐 삶을 산다. 예수님에게서 오는 희망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 내가 희망을 말하는 삶으로 변화된 걸 보면 이 기적의 삶을 우리 아이들도 함께 누리길 바란다. 요한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요한아, 항상 네 혀를 잘 다스려야 해. 아빠도 힘든 시기를 지났고, 부정적인 말이 버릇처럼 붙어 살았지만 주님은 새 삶을 주셨고, 비로소 삶이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했어. 그건 주님의 도우심이고, 동시에 그 도우심을 믿기로 한 아빠의 의지였어.” 우리는 흔히 상황이 좋아져야 좋은 말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앙의 신비’는 반대로 작용하는 듯하다. 내 마음의 밭이 바뀌고 말이 바뀌어야 상황이 바뀐다. 아이에게 “넌 안돼”라고 말하는 대신 “넌 무슨 일이든 가능해”라고 말할 때 그 아이는 가능한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 이 믿음은 세상이 말하는 ‘자신감’과는 결이 다르다. 내 성적이나 외모, 인기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주님께 근거를 두었기에 역설적으로 ‘근거 없는’ 무한한 신뢰가 뒷받침하는 것이다. 눈앞의 상황은 여전히 막막할지라도, 선하신 목자께서 반드시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맹목적인 사랑의 확신이다. 요한이가 겪는 이 진통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영적 ‘성장통’일 것이다. 아이가 뱉는 말 한마디가 거름이 되어 그 인생의 뜰에 희망의 꽃을 피우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첫 모의고사의 점수보다 더 중요한 건 네 입술의 고백이야. 네가 ‘주님 안에서 나는 괜찮다’라고 말할 때, 네 영혼은 이미 승리하고 있음을 잊지 말렴. 아빠는 오늘도 네가 뱉은 그 믿음의 말들로 네 삶의 지평을 넓혀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께서 너를 위해 예비하신 그 ‘가장 좋은 일’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믿으며.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22면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의 뜻

“선배님, 올해 데뷔 30주년이면 공연 한번 하셔야 하지 않아요?” 1996년 성령 세미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후, 찬양하는 도구의 삶으로 살아온 지 30년이 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하시며 말씀하실 때의 제자들 모습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찬양의 삶에 보호자이신 성령의 개입과 축복이 있었지만 개인의 이기적이고 교만했던 순간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처음에 주님께 세 가지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첫 번째는 내 성가가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 두 번째는 자주 외국에 나가 찬양 선교를 했으면 하는 마음, 세 번째는 문화선교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했고, 하느님의 일이라면 먼 거리라도 금전적인 걸 떠나 전국을 열심히 다녔다. 30년이 지난 지금, 참 많은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영적 지도 신부님께서 “만약 어느 교구에서 문화 관련 담당자를 찾는다면 해답은 너다”라고 하시면서 그동안 내가 교회 안에서 활동했던 내용들을 정리해 주시며 그 이유를 알려 주시기도 했다. 찬양 사도, 작사·작곡가, 음반 제작자, 뮤지컬, 연극, 공연 제작자 겸 교육극 연출자, 피정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자, 라디오 진행자, 유명한 TV 프로그램 출연 및 광고 모델, 국내외 성지순례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자 등등. 참 많은 일을 하고 살아왔다. 연극으로 필리핀과 미국 LA, 뉴욕, 워싱턴도 다녀오고, 가톨릭신문사 창간 90주년 기념 뮤지컬도 기획·제작했으며 제주교구 요청으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뮤지컬도 제작했다. 4년 전부터는 제주교구 신성학원의 요청으로 제주에 있는 문화, 예술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신성 뮤지컬 페스티벌을 매년 기획, 진행하고 있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을 활발히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나열한 이유는 나의 업적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신 성령의 놀라운 개입과 계획을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주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계획되었던 일들이기에 영광을 주님께 드리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내가 원했던 세 가지 기도도 이루어졌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자주 불리는 <사막의 별>과 <매듭의 어머니>는 내 앨범에 있는 곡이고, 해외 선교는 일 년에 수차례 다녀오고 있다. 첫 뮤지컬 작품인 <이마고 데이 -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진 문화선교 공동체는 지금까지 3000여 회 이상의 공연을 하고 있다. 나에게 늘 따끔한 영적 조언을 해주신 선배가 있었다. 늘 바쁘게 살고 움직였던 내가 가끔은 지치고 힘겨워할 때마다 그 선배는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의 뜻을 잘 분별하라”고 조언하셨다. 또 “모든 것은 너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과 축복이 함께하니 혼자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힘을 빼라”고도 하셨다. 이 말은 늘 내 삶의 모토가 되었고 지금까지 열정으로 살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하느님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 분별하고 걸어가는 찬양 사도, 문화선교사의 삶을 통해 주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세상에 선포하려고 한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22면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

어느 날 찬양 사도 후배가 제주도에 왔다. 부활을 맞이하여 제주교구 본당의 초대를 받아 공연차 미리 내려왔는데, 이를 어쩌나! 날씨 관계로 배가 뜨지 않아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말엔 항공료가 비싸 평일에 내려왔는데, 교통비만 날리게 됐다. 성당은 공연을 취소하는 게 크게 상관없겠지만, 찬양 사도들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손해가 크다. 그날 저녁, 위로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한잔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회포를 풀다 나름 억울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됐다. 신인 때 일이다. 작은 시골 본당에서 나를 초대해 주셨다. 행사 예산이 적으니 식사비 정도만 줄 수 있다고 하셨지만 승낙하고 무사히 행사를 마무리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이나 먹고 올라가라 하셔서 뒤풀이에 함께 하게 되었는데, 뒤풀이로 소고기 파티가 열렸다. 행사 예산은 적다고 했는데 식사비가 행사 비용보다 더 나올 만큼 성대하게(?)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식사비 일부를 출연료로 주시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올라온 적이 있었다. 수녀원에서 연락이 왔다. 행사가 있는데 출연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수녀원과 일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구 사항이 참 많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행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녀원 행사는 늘 난감했다. 한사람 정도의 출연료로 두세 사람이 함께 출연하기를 원하시거나, 음향 설비를 대여하려면 더 큰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산이 책정된 것 이외는 사용할 수 없으니, 올해는 이대로 해주시고 내년에는 더 올려서 진행하겠다”고 하신다. 이런 사정을 함께 섭외된 찬양 사도에게 설명하고, 다 같이 기쁘게 행사에 임했다. 마무리하면서 내년에 뵙자고 하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참 선하시다. 그런데 1년 뒤 같은 수녀회에서 행사 의뢰로 전화가 온다. “작년과 같은 금액으로 부탁드린다”며 “담당자가 바뀌어서 작년 금액으로 인수인계를 받았으니 그대로 해달라”고 하신다. 참 난감했다. 누구나 힘든 시기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더욱 그랬다. 행사는커녕 미사도 취소되는 상황 속에 찬양 사도들은 직업이 하나 추가되었다. 무직. 당시 본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활동했지만 유급은 아니었고, 피정이나 행사가 있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었기에 ‘풀타임’으로 활동하는 찬양 사도들은 하루하루가 인내의 시간이었다. 물론 당시 몇몇 공동체 신부님께서 개인적으로 후원과 위로를 해주시기도 해 큰 힘이 됐다. “한 달이면 되겠지? 석 달이면 되겠지?” 했던 시간 속에서 개인적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이 있었다. 동료 찬양 사도들이 혹시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만나서 밥 한 끼라도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다른 찬양 사도들도 서로 같은 마음으로 걱정해 주고 있었다. 본인도 여유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 이겨내려 노력한 모습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찬양 사도의 삶이 늘 부족하고 손해를 보는 듯 보이지만, 사도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주님의 향기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떼제성가 <사랑의 나눔>을 부르고 싶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22면

놀라운 신비

4월이 되면 제주는 참 바쁘다. 봄 여행도 봄 여행이지만 부활 시기 많은 본당에서 ‘엠마오’로 제주를 방문하신다. 성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봄꽃 가득한 곳을 찾기도 하고, 맛있고 풍경 좋은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제주에 살고 계시니 좋으시겠어요?” 하며 뭐가 좋은지 묻는 분들도 있다. 이곳에 머물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좋은 점을 적어본다면, 첫 번째로는 자연이다. 매일 아침 보는 나무와 하늘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새로운 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난 창조주를 미술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머무는 서귀포의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에서 보는 한라산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차에서 내려 바라보는 밤하늘은 늘 맑고 초롱초롱한 별들이 수고했다고 웃어준다. 두 번째로는 겉모습으로 판단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흙먼지 가득한 바지를 입고 다니더라도, 아주 오래된 차를 몰고 다닌다 하더라도 이곳 제주에서의 편견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분 대다수는 넓은 감귤밭이나 땅을 갖고 있다. 세 번째로는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혼숨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옆집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담이 낮다. 가끔 정원을 정리하느라 장비를 마당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상황이 되어도, 차량에 물건을 실어 놓고 문을 잠그지 않더라도 물건을 집어 가거나 훔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표현을 안 할 뿐 관심도 많다. 물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도 많지만 이곳에 있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폐쇄적인 관계가 힘들 때가 있고, 오늘 말과 내일 말이 다르기도 해서 당황하기도 하고, 운전 문화도 달라 가끔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저 사람 왜 저럴까” 의심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4월이 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4·3.’ 아직도 정확한 용어 정리도 되어 있지 못할 만큼 아픈 단어다. 제주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조선시대 200년이 넘도록 제주 사람은 육지에 가지 못하게 한 ‘출륙 금지령’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이처럼 아프고 힘든 시간이 많은 곳이다 보니 사람을 믿지 못하고, 웃음이 사라진 삶을 사는 분들도 있다. 그런 제주를 주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서울 할망’이라고도 불리는 정난주(마리아) 선조는 대정현에서 관비(官婢)로 유배 생활을 했지만 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차귀도라는 곳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조난을 당하는 바람에 첫 미사를 봉헌하게 된 은총의 장소가 됐다. 또 제주교구 유일한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을 통해 제주도에 신앙의 씨앗을 맺게 하셨으니, 세상은 보잘것없고 가난한 곳을 외면할지라도 주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며 놀라운 신비를 보여 주신 곳이 제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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