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쌍둥이 함께 중환자실…무너진 엄마 마음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쌍둥이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의료 장치들을 몸에 붙이고 치료 받는 모습을 보는 엄마 응웬티흐엉(36)씨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베트남에서 남편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 어렵게 임신한 쌍둥이가 지난 3월 7일 저체중 미숙아로 태어나 병실을 나가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를 손에 받아 든 엄마는 덜컥 겁부터 나 쌍둥이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아기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흐엉씨를 돕고 있는 광주이주민지원센터 허명숙 수녀(발렌티나·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는 쌍둥이를 지금 집으로 데려가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설명을 반복하면서 겨우 흐엉씨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허명숙 수녀도 한 달 입원에 7000만 원까지 예상되는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애만 태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흐엉씨는 21살이던 2009년 베트남에서 남편 황당흥(41)씨와 결혼할 때만 해도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전통적인 베트남 정서에서 손주를 원하는 시부모님의 소망을 이뤄 드리고 싶었지만 원하는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 사이 남편은 가난한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2011년에 한국에 입국해 전남 지역에서 주로 일용직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베트남에 보냈다. 남편이 보내주는 돈을 베트남에서 받아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던 흐엉씨는 2015년 남편이 있는 한국으로 왔다.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 그러나 아기는 계속 생기지 않았고 2020년에야 어렵사리 난임을 극복하고 첫딸 황안니엔을 낳았다. 첫딸은 6개월 뒤 양육비를 줄이려고 베트남에 있는 시부모님께 보냈다. 그 후 3년여가 지나 쌍둥이를 임신했지만, 잦은 조산기로 목포에 있는 산부인과에 입원해 2주 동안 치료를 받던 중 3월 7일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병원비 문제로 떨어지지 않는 발을 이끌고 전남대학교병원으로 갔다가 입원실이 없어 인근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동해 쌍둥이를 출산했다. 1kg이 겨우 넘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들은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에 저혈당까지 동반돼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 중이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남편 황당흥씨는 일거리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월세와 기본 생활비, 공과금, 베트남 가족에게 보내는 부양비를 겨우겨우 부담해 왔다. 그러던 중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 흐엉씨에게 조산기가 있을 때마다 큰 병원비를 지출해야 했다. 갑작스런 출산 당시 발생한 1000여 만 원의 병원비는 급한 대로 여기저기서 빌려서 지급했다. 흐엉씨 부부는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얻었다는 기쁨은 잠시도 느끼지 못한 채 감당이 불가능한 쌍둥이 치료비 7000여 만 원의 무게에 짓눌린 채 눈물만 흘리고 있다. 허명숙 수녀도 떨리는 목소리로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은 차별 없이 귀하다”며 “쌍둥이가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께서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성금 계좌 우리은행 1005-302-975334 국민은행 612901-04-233394 농협 301-0192-4295-51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 모금기간: 2024년 3월 27일(수) ~ 4월 16일(화) ◇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 발행됩니다.)

2024-03-31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당뇨합병증으로 왼쪽 다리 절단한 이종천씨

이종천씨는 심한 당뇨합병증으로 왼쪽 다리가 절단된 채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겨 “죽기 전에 가족들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모든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연락이 끊기고 심한 당뇨합병증으로 한 쪽 다리가 절단된 채 서울 영등포의 한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이종천(70)씨는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70년 세월이 야속하지만 죽기 전에 가족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는 거동조차 할 수 없고 손에는 돈 한푼 쥔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아 야속하다. 이씨는 1954년 서울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5살 무렵 부모님과 부산으로 이사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학급 회장을 맡기도 하고 성적도 우수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이때부터 일용직으로 일하며 가족들 생계를 도왔다. 군복무를 마친 뒤 중동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1977년부터 5년간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중동에서 번 돈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남기고 모두 가족에게 보냈다. 자신은 힘들게 생활해도 가족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하고 싶었다. 중동에 다녀온 후에는 1983년 돈을 벌 생각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뒤 택시 운전사, 샌드위치 장사 등을 하며 돈을 모아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1988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당시 다니던 교회 목회자 소개로 한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해 자녀를 하나 낳았다. 그러나 성격 차이로 2000년 이혼 후 전 배우자가 자녀를 양육하게 되면서 관계가 단절됐다. 이후 좌절감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는 가끔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연락이 끊어졌고, 4년 전부터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택시 운전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겨우 하루하루 생활하느라 지병인 당뇨병 관리를 하지 못한 이씨는 2022년 당뇨합병증이 악화돼 왼쪽 엄지발가락을 절단해야 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죽기 전에 가족들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커져 2023년 10월 관광비자로 한국에 왔다. 수중에 있던 200만 원으로 귀국해 부산의 허름한 모텔에 거주하며 가족과 친지들을 찾았지만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텔 주인 할머니가 이씨를 딱하게 여겨 먹을 것을 챙겨주던 중 방 안에서 악취가 나 확인해 보니 이씨의 왼쪽 발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후 이씨는 부산백병원에서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다리 절단과 가족과의 연락 두절이 겹쳐 절망과 우울감이 날로 커졌다. 아무 데서도 받아주지 않던 이씨는 부산백병원의 도움으로 서울 성가복지병원에 전원했지만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서울의료원으로 다시 전원했다. 해당 병원들에서는 최대한 복지혜택을 부여하려 노력했고 현재는 2월 14일부터 영등포의 한 요양병원에서 “진료비 부담이 있긴 하지만 오갈 데 없는 환자를 우리가 맡겠다”며 보호하고 있다. 이종천씨는 “내가 젊었을 때 생계를 도왔던 가족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건강을 회복해 죽기 전에 가족들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성금계좌※ 우리은행 1005-302-975334 국민은행 612901-04-233394 농협 301-0192-4295-51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모금기간: 2024년 2월 21일(수) ~ 3월 12일(화)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 ※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 발행됩니다.

2024-02-25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의식불명 아버지와 지체장애 어머니 돌보는 청년 가장 김경태씨

새벽미사를 빠뜨리는 법 없이 신앙생활도 충실했고, 퇴직 후에도 한 초등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도울 만큼 헌신적인 삶을 살던 아버지였다. 그토록 영육 간에 건실했던 김종환(바오로·68·서울 노원본당)씨는 2022년 5월 어느 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전증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날은 아들 김경태(요한 세례자·39·서울 노원본당)씨의 생일이었다. 그날부터 경태씨에게 생일은 “축복의 날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빼앗긴 저주의 날”이 됐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거동하던 아버지가 무사하길 어머니와 함께 절박하게 기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병원 응급실에서 찾아온 심정지와 함께 완전히 의식을 잃은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상실감에 슬퍼할 틈도 없이 경태씨 모자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밀물처럼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병원 측은 중환자실 입원비와 이런저런 검사비를 합쳐 병원비 2000만 원을 한꺼번에 내라고 청구했다. 게다가 “더는 해줄 것이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옮겨라”는 냉정한 뜻만 전했다. 김경태씨의 어머니 박춘령씨가 누워있는 남편 김종환씨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김경태씨 제공 간신히 요양병원을 찾아 아버지를 모셨지만, 입원비와 간병비를 합쳐 매달 500만 원가량 나오는 병원비는 경태씨가 부담 가능한 액수가 아니다. 원래 가구회사 직원이었던 경태씨는 코로나19로 구조조정을 당하는 바람에 목수 일을 해야 했다. 일을 구하면 월수입은 최대 300만 원, 일을 못 구하면 그마저도 없다. 간병비도 큰 부담이지만, 그렇다고 간병을 도울 가족도 없다. 어머니 박춘령(루피나·66·서울 노원본당)씨는 6세 때 뇌막염을 앓은 뒤 왼쪽 몸을 못 쓰는 지체장애인으로, 경제 활동은커녕 보살핌을 받을 입장이다. 새벽에 출근해 저녁에나 돌아오는 경태씨는 어머니를 챙기기도 벅차다. 카드 빚 2000만 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7000만 원가량 빚이 생겼다. 앞으로 빚은 더 불어나겠지만, 경태씨는 아버지가 영영 깨어나지 못 할까봐 더 가슴 아프다. 경태씨는 “아버지의 소중한 집을 담보로 내놓던 그날이 가슴에 사무친다”면서 “불효 밖에 못 해드리는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다”며 가슴을 쳤다. 9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와 약속했던 결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믿고 30대 시절을 꼬박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희망 없는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 달라고 할 만큼 경태씨는 모질지 못하다. 죄책감은 그런 경태씨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 “아버지에게 심정지가 찾아왔던 그때 ‘차라리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한 경태씨는 “그런 나 자신이 괴물 같고 죄스러워 성당에도 못 들어갔다”며 눈물 흘렸다. 노원본당 빈첸시오회 윤진수(토마스 아퀴나스) 회장은 “20년 가까이 함께 새벽미사를 다니던 두 부자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본당 활동에도 적극적이던 신심 깊은 경태씨에게 하느님 자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본당 주임 이윤헌(아우구스티노) 신부도 “부친의 갑작스러운 발병에 장애를 앓는 모친까지 책임지는 청년 가장 김경태 형제가 적어도 지쳐 쓰러지지는 않게 해 달라”며 도움을 호소했다. ※성금계좌※ 우리은행 1005-302-975334 국민은행 612901-04-233394 농협 301-0192-4295-51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모금기간: 2024년 1월 31일(수) ~ 2월 21일(화)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 ※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 발행됩니다.

2024-02-04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극소 저체중아 낳은 푸딘다엔씨 부부

지난해 11월 28일 의정부성모병원에서는 태국인 닛타야 파라위치(27)씨가 응급 분만으로 31주 3일 된 아들 논타왓 푸딘다엔을 낳았다. 출생 직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실한 논타왓 아기는 몸무게 1.25㎏ 미숙아에 ‘신생아 황달’, ‘호흡곤란 증후군’ 등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일반 신생아 몸무게가 평균 3~3.5㎏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약 3분의 1 정도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왜소한 데다가 장기가 발달하지 못해 스스로 호흡할 수 없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그 작은 체구를 유지해 가고 있다. 나아지고 있지만, 정상 체중이 될 때까지 퇴원은 어렵다는 게 병원 측 입장이다. 한 달 정도 더 입원이 필요하다. 퇴원 후에도 계속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기는 미등록 외국인 처지라 입원 일주일 만에 병원비가 1000만 원을 넘겼다. 아기의 부모 알루엣벳 푸딘다엔(33)씨와 닛타야 파라위치씨에게는 알루엣벳씨의 월급 230만 원이 수입의 전부다. 종이컵 제조 공장에 다니며 버는 이 수입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주변에 돈을 빌려 치료비를 냈지만, 불어나는 병원비에 부부는 망연자실이다. 1월 8일 닛타야 파라위치씨가 의정부성모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을 찾아 아들 논타왓군을 바라보고 있다. 의정부성모병원 사회사업팀 제공 부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둘 다 매달 60만 원씩 고국에 송금하며 가족을 챙기던 중 교제하게 됐다. 그러다 닛타야씨가 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손가락 끝부분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일을 그만두고 치료하던 중 임신 사실을 알았다. 임신 3개월이 지난 상태였는데, 두 사람은 ‘찾아온 생명이 축복’이라 생각돼 다니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출산 비용을 따로 저축하는 등 태어날 아기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닛타야씨가 하혈 및 복부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태아를 지키기 위해서 장기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입원비가 부담돼 5일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계속된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고 결국 응급 분만을 하게 된 것. 닛타야씨는 일주일에 두 번 아이를 면회한다. 품에 안아보고 싶은 금쪽같은 아들이지만, 그럴 수가 없어 그저 눈물로 지켜볼 뿐이다. “아이가 안타깝고 불쌍해요. 남편도 이 상황을 많이 속상해하고 있어요.” 심경을 묻는 기자 질문에 그는 눈물을 훔치며 답을 이었다. “아이가 건강하지 못한 것이 제 탓 같아요.” 닛타야씨는 손 끼임 사고 당시 임신 사실을 모른 채 약을 복용하고 돈 걱정에 제대로 진료를 받지 않은 것을 자책했다. 부부는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5만 원 집에 거주한다. 입원비와 치료비 및 빌린 돈을 갚느라 고국에는 생활비 보낼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아기 치료비 외에 닛타야씨 입원비만도 약 700만 원에 달한다. 태국의 가족들은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는 거의 소득이 전무해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아이가 나으면 예쁘게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는 닛타야씨는 “건강할 때까지 전적으로 돌보면서 일을 통해 빌린 돈을 갚아나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낳았기 때문에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도 적절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다”고 인사한 그는 “도와주신 마음을 기억해서 아이가 건강하게 크도록 잘 돌보겠고, 저 또한 훗날 아들과 비슷한 아픈 아이를 만나면 후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정부성모병원 영성부원장 이상훈(미카엘) 신부는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안전하게 양육할 수 없는 여건이지만, 생명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지닌 젊은 부부에게 뜻있는 이들의 많은 관심과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성금계좌※ 우리은행 1005-302-975334 국민은행 612901-04-233394 농협 301-0192-4295-51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모금기간: 2024년 1월 10일(수) ~ 1월 30일(화)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 ※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 발행됩니다.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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