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순례, 걷고 기도하고] 제주교구 ‘이시돌길2’

박효주
입력일 2025-07-29 17:06:02 수정일 2025-07-29 17:06:02 발행일 2025-08-03 제 345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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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km ‘이시돌길’ 3개 코스 중 두 번째 길
희년 전대사 순례지 금악성당 및 오름·숲길 등 자연 어우러져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가톨릭 성인은 누구일까? 바로 스페인의 농부 출신 성 이시도르(1070~1130경)일 것이다. 한림읍 금악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성이시돌목장을 시작으로 성지와 피정 센터 등이 조성돼 많은 사람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교구 순례길인 이시돌길 또한 이 일대 총 33.2km에 3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1코스는 성이시돌성지를 한바퀴 돌며, 2코스는 성이시돌센터 전시관에서 조수공소까지이고, 이어 3코스는 고산성당에서 마친다. 이중 성당과 오름 등 자연과 문화가 조화된 이시돌길2 11.8km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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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임피제 신부의 영어 이름을 딴 맥그린치로는 금악북로 3.8km 구간이다. 박효주 기자

‘푸른 눈의 돼지 신부’를 기리며

파랗게 펼쳐진 성이시돌목장 너머로 한라산이 구름에 겹겹이 싸여 어렴풋이 보인다. 이시돌길2 시작 지점인 성이시돌센터로 가기 위해 맥그린치로를 걷는다. 명예도로명인 맥그린치로 양옆으로 시원하게 가로수가 뻗어있다. 수의학을 전공한 아일랜드 출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임피제 신부(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1928~2018)의 이름을 딴 맥그린치로는 금악북로 3.8km 구간이다.

임 신부는 1954년 한림공소에 부임했다. 가난하고 피폐했던 제주에 정착한 임 신부는 양돈과 목축업, 신용 협동조합, 병원과 요양원 등을 통해 제주 경제와 복지 발전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 공로로 5·16 민족상, 막사 이사이상, 대한민국 석탑산업훈장, 아일랜드 대통령 특별 공로상 등을 수상했고 선종 후 명예국민증을 헌정 받았다.

성이시돌센터 앞에는 손을 내민 예수상과, 동물들과 함께 있는 임피제 신부의 상이 차례로 순례자들을 반긴다. 센터에 들어서면 밭을 일구는 성 이시도르의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을 마주하게 된다. 이어 내부에는 임 신부의 공로를 기리는 공간과 기념품 가게, 카페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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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시돌센터 내부에는 임 신부의 공로를 기리는 공간과 기념품 가게, 카페가 자리한다.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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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구역인 성 클라라 수도원. 박효주 기자

닫혀있지만 열린 곳

성 클라라 수도원은 봉쇄 구역이지만 수도원의 관할인 금악성당은 공개돼 있다. 금악성당은 2025년 정기 희년 전대사 지정 순례지이다. 전대사를 받기 위해 아침 7시 미사를 드린다. 바로 옆 성이시돌피정의집에서 온 순례자들도 눈에 띈다.

의자에 앉아서 제대 위의 성 다미아노 십자가를 바라본다. 성 다미아노 십자가는 아시시 성 클라라 대성당에 원본이 있다. 성 프란치스코(1181/1182?~1226)가 이 십자가가 있던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를 하던 중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성당 안 좌우 벽에는 물결치는 나무 살 사이로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터치의 ‘십자가의 길’ 유화가 걸려있다. 그 위로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맑은 천창이 있고, 흔치 않게 하단 부분에 연녹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자리한다.

오늘 미사는 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 이어돈 신부(리어던 마이클 조셉·성골롬반외방선교회) 주례다. 이 신부는 강론에서 “요 며칠 비가 오락가락하죠? 순례자들은 ‘비가 오지 마라’, 농민들은 ‘비가 와라’하면 하느님은 어떡하시라고”하더니 “비가 밤에만 오면 되나?”라는 현답을 내린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선다. 성당의 곡선과 직선 그리고 푸릇한 자연과 회색빛 벽돌이 오묘하게 조화롭다. 오른쪽에 일자로 솟은 종탑 상단에도 성 다미아노 십자가가 보인다. 노란 서양금혼초가 가득한 풀밭 위 최종태(요셉) 작가의 예수성심상이 특유의 따뜻한 모습으로 성당을 마주 보고 있다. 잠시 묵상한 뒤 이어지는 순례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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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악성당 내부. 제대 위에는 성 다미아노 십자가가 걸려 있으며, 좌우 벽에는 물결치는 나무 살 사이로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터치의 ‘십자가의 길’ 유화가 걸려 있다.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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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 좌우 벽에는 물결치는 나무 살 사이로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터치의 ‘십자가의 길’ 유화가 걸려있으며, 그 위로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맑은 천창이 있다. 박효주 기자

또 다른 시작 앞에서

신창본당 소속 조수공소로 가는 길에 금오름이 있다. 울창한 숲 안으로 슬쩍 들어가 본다. 출발 지점에 ‘희망의 숲길’이 조성돼 있다. ‘희망’이 주제인 이번 정기 희년과 잘 어울려 발걸음이 가볍다. 정상에 오르니 너른 분화구가 펼쳐진다. 탁 트인 풍경을 만끽하다가 세찬 바람에 돌아선다. 이것이 성령의 바람이라면.

걷다 보니 야자수와 돌담 안으로 아담한 붉은 벽돌 건물이 드러난다. 이시돌길2의 종점인 조수공소이다. 공소 건물 옆에는 현무암으로 작게 만들어놓은 동굴 안에 야외 제대와 루르드 성모상이 각각 모셔져 있다. 안내 리플릿에 보니 ‘야외 성모상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작은 성모상이 있다’고 돼있는데 찾지 못해 아쉽다. 공소에 딸린 사택은 사전 신청 시 개인 피정으로 사용 가능하다.

이곳은 끝이 아닌 이시돌길3의 시작이다. 우리 인생 순례의 마지막 순간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의 시작이듯이. 주님을 따라 걸으며 잠시 숨을 골랐던 쉼표를 뒤로 하고, 다시 인생 순례로 발길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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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와 돌담 안으로 아담한 붉은 벽돌 건물 조수공소가 드러난다.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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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건물 옆에는 현무암으로 작게 만들어놓은 동굴 안에 야외 제대와 루르드 성모상이 각각 모셔져 있다. 박효주 기자

◆ 순례 길잡이

- 제주교구 이시돌길2(santoviaggio.com)

- 성이시돌센터 :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북로 353

- 금악성당 :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북로 320

- 미사 : 월, 금~토(오전 7시), 화~목(오후 12시), 주일(오전 11시)

- 조수공소 :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조수2길 10

- 미사 : 주일(오전 8시 30분)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