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성당 ‘작은도서관’ 인기

이승훈
입력일 2025-07-29 17:06:07 수정일 2025-07-29 17:06:07 발행일 2025-08-03 제 3453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작지만 큰 도서관’…“책장 넘기며 신앙도 키우고 문화도 나눠요”
‘책’ 매개로 한 문화사목의 장, 신앙 서적부터 일반 교양까지 다양한 도서 갖춰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단순한 ‘인테리어’를 넘어서는 효과를 지닌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책이 많은 환경은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특히 아동·청소년기의 인지 기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상적인 점은 실제 독서량과는 별개로, 책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만으로도 이러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힘입어 ‘북 인테리어’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성당을 포함한 다양한 공간에서 북카페를 조성하는 등 북 인테리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책을 비치하는 것을 넘어, ‘작은도서관’으로 공간을 확장해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사목의 일환으로 교회와 지역사회가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 ‘작은도서관’ 성당과 교회 기관들을 소개한다.

Second alt text
7월 23일 서울 상봉동본당 ‘스텔라 작은도서관’에서 신자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승훈 기자

책 있는 성당? 책 읽는 성당!

서울대교구 상봉동성당 1층은 평일 낮에도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스텔라 작은도서관’과 카페 덕분이다. 본당은 다소 삭막하게 느껴졌던 성당 1층 공간을 2023년 북카페로 리모델링했다. 미사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기 바쁘던 신자들은 이제 이곳에 머물며 책을 읽고 차를 마신다. 신자들은 “책이 가득 있으니 더 안정감이 드는 것 같다”며 호평일색이다.

“예전엔 한두 권 정도 읽었는데, 요즘엔 한 달에 일곱, 여덟 권은 기본이에요.”

스텔라 작은도서관에서 사서 봉사를 하고 있는 배진이(소화데레사) 씨는 “성당 안에 좋은 책이 많은 도서관이 생긴 덕분에 지난해에는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면서 “성당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때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책이 있는 공간 자체도 중요하지만, 결국 책은 읽힐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스텔라 작은도서관의 한 달 평균 대출도서는 120여 권. 대출 없이 현장에서 읽히는 책까지 고려하면 실제 이용량은 훨씬 많다. 인기 있는 책은 서가에 꽂힐 틈도 없이 연이어 대출된다.

이처럼 도서관 운영이 활발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스텔라 작은도서관이 공식적으로 ‘작은도서관’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은도서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법인, 단체, 개인이 설립·운영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다. 지자체에 작은도서관으로 등록하면 도서관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와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일정 운영 기준을 충족하면 서적 구입비용도 지원받을 수 있다. 스텔라 작은도서관은 이 지원금으로 매달 20여 권의 신간을 구입하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문화사목의 장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스텔라 작은도서관에서는 독서모임을 비롯해 시낭송회, 독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또한 공공시설로서의 역할을 살려 지역 주민을 위한 북테라피 프로그램도 운영했으며, 최근에는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요리 수업과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상봉동본당 주임 김민수(이냐시오) 신부는 “작은도서관은 책과 독서에 국한하지 않고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칠 수 있다”며 “신자들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교회를 알리고, 나아가 하느님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Second alt text
서울 상봉동본당의 ‘스텔라 작은도서관’ 전경. 이승훈 기자
Second alt text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이 운영하는 ‘책 더하기 사랑 작은도서관’ 열람실 모습.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제공

교회 서적 ‘허브’ 역할부터 동네 사랑방까지…작은 공간이 여는 넓은 세상

책은 무엇보다 하느님과 신앙을 알게 해주는 길잡이다. 한국교회가 선교사 없이도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서학 서적이 있었다. 그런 믿음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책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교계 출판사와 기관들은 신자들을 위해 다양한 신심서와 신학서를 펴내고 있지만, 발행 부수가 적다보니 절판으로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책 더하기 사랑 작은도서관’은 바로 그런 어려움을 해결해주고자 설립된 가톨릭 전문 도서관이다. 

1만6400권의 장서 대부분이 가톨릭교회의 철학·신학·신심서적이다. 장서들은 웹페이지(kccei.libp.net)를 통해 온라인 도서 검색도 가능하다. 특화사업으로 영성심리상담가 양성을 위한 ‘도서관 안의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취지로, 고가의 심리·상담·인문학 전문서뿐만 아니라 심리상담에 필요한 검사 도구도 구비돼 있다.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조규주(프란치스코) 차장은 “책 더하기 사랑 작은도서관은 이용자들이 가톨릭 영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중복 소장한 도서들을 본당과 공소 등에 나누는 등 교회 서적의 허브 역할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운영되는 작은도서관들도 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의 ‘만남의집 작은도서관’은 지역 아동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30여 년 전 주부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수도회가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을 위해 조성한 도서 공간에서 시작됐다. 

현재는 주부를 위한 사도직 활동은 없지만, 어린이 도서가 많아 인근 어린이집의 체험학습 장소로 사랑 받고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도서들도 비치하고 있어 인근 개신교회나 지역 주민들도 자주 방문한다. 어르신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에 맞춰 큰 글자 도서도 갖추고 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최공자(예레미야) 수녀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던 공간에서 출발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작은도서관으로 새롭게 자리 잡았다”며 “교회 안의 작은도서관이 신자들이 영적 독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작은도서관’ 운영 조건은?

작은도서관은 주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개인이 설립하는 소규모 문화 공간이다. 단순한 책 읽는 공간을 넘어, 정보 공유의 사랑방이자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소통하고 성장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6,867개의 작은도서관이 운영 중이다.

작은도서관은 면적 33㎡ 이상, 열람 좌석 6석 이상, 장서 1,000권 이상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관할 지자체에 등록해 설립할 수 있다. ‘작은도서관 웹사이트’(www.smalllibrary.org)를 통해 전국의 작은도서관을 검색하거나, 설립·운영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김민수 신부는 “작은도서관을 사목적으로 잘 활용하려면 초기 조성 단계부터 각 본당의 여건에 맞춘 컨설팅이 필요하다”며 “성당 내에 작은도서관 설립을 고민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