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 - 몸 신학 교리] ‘깨끗함’의 새로운 의미

이승훈
입력일 2025-07-29 16:24:15 수정일 2025-07-29 16:24:15 발행일 2025-08-03 제 345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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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그릇 더럽히는 것은 탐욕…‘깨끗함’은 성령이 주는 열매
‘몸’의 의미 발견하고 실현하며 거룩한 삶 위한 여정에 동참해야

마태오복음 5장 27, 28절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라는 말씀을 불러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뵐 수 있는 전제 조건으로 ‘깨끗함’을 제시하시며, 구약 전승의 깨끗함과는 다른 의미를 말씀하셨다.

구약에선 ‘깨끗함’을 주로 생리학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성적인 불결함과 연결시켜 정결례(제의적 ‘깨끗함’)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자선과 기도, 단식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고, 조상 전통 논쟁(마태오복음 15장, 마르코복음 7장, 루카복음 11장)과 겸손과 봉사를 촉구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행실을 따라하지는 마라”(마태 23,1-12; 마르 12; 루카 20 참조)라고 하시며, ‘깨끗함’을 새롭게 정의하셨다. 결국 마음의 그릇을 더럽히는 것은 탐욕(감사하지 못할 때)이며, 자족하는 마음이 없을 때 그리고 자비 즉 연민(자비, 긍휼)의 마음이 없을 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새로운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베드로는 세례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1베드 3,21 참조)이라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는 서간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 곧 성령에 따른 삶과 육에 따른 삶의 대립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마음의 깨끗함은 ‘성령(Spirito)에 따른 삶’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두 대립은 사실 성령과 함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한 성령께서 원하신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육은 보이는 물리적인 몸이지만, 성으로 축소된 의미가 아니라, 외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가 이해한 깨끗함은 윤리적인 덕이면서 성령이 주는 선물의 열매다. 바오로 사도는 존재론적 차원(육과 영), 윤리적 차원(윤리적 선과 악), 성령론적 차원(은총의 세계 안에서 하시는 성령의 활동) 등이 서로 겹치고 포개지는 관계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초월성을 지니고 있고 이 초월성을 통해 자신을 확장시키는데, 자신의 욕망 안에 갇히면 초월성은 어려워진다. 초월성은 내적 힘이며 창조적 힘이다. 카롤 보이티와(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는 「부성의 광채」에서 아담의 한탄을 말한다. “우리 사이의 유대 중 너무나 많은 것들이 외적인 것이다. 내적인 유대는 너무나 적다. … 너는 아주 가까이 있지만 내 안에 아주 조금밖에 살지 않는다.” 부정적 욕망이 커지면 바라보는 시선, 가치 평가, 사랑의 방식이 이성에 의한 갈망보다는 감성적 영역에서 오는 힘에 압도될 수 있다.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관한 질문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육의 생활에서 탈출한 영에 따른 삶은 해방이요 새로운 창조다. 새로운 창조란 자녀 됨을 말한다. 자유가 선물로 주어진 해방된 삶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준 선물이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나의 동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상에서의 내 선택 하나하나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파스카다. 이는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가는 부활의 형태를 지니기 때문이다. 

교회 윤리는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데 있다. 결국 ‘거룩한(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는 초대다. 거룩함의 근원은 이미 내 안에 내재해 있고, 나는 ‘깨끗함’을 통해 몸의 의미를 발견하고 실현한다.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깨끗함은 근원적 진리에 동참하고, 거룩한 삶의 양식을 가능케 하는 성화, 의화, 신화의 여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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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의 왕직 재속 선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