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에세이] 순례 여정에 함께하신 주님

2023년 11월, 제2대리구 배곧본당 신자 60여 명은 주임신부님과 함께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순례 기간 두 명씩 조를 편성해 다니기로 했는데, 저는 성령기도회에서 함께 봉사하고 있는 자매님과 짝이 되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다리 근육이 약하게 태어나 보통 사람들처럼 빨리 걷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순례 떠나기 몇 달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들을 잃는 엄청난 슬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성지순례는 꼭 다녀오고 싶다는 말이 마치 아들과 함께 주님과 성모님을 만나러 가고 싶다는 말처럼 느껴져 저는 자매님을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인천공항을 떠나 무사히 다낭공항에 도착했고, 자리를 옮겨 바다의 별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을 시작으로 성지순례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둘째 날은 짜끼우성당으로 출발했습니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 성모 동산 경당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제 짝꿍 자매님과 저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우리의 속도에 맞추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와 숨을 고르고 맨 뒤에 앉아 미사를 드리는데, 힘들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미사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성체를 모실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를 또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여러 계단을 내려와야 했기에, 주님께 다시 힘과 용기를 청하고 힘차게 찬양을 부르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힘든 순례길을 함께 걷고, 쉬고, 찬양하는 가운데 자매님과의 우정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에도 순례 일정은 계속되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지를 따라 걷고,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가운데 우리는 감사와 은혜 가득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자매님을 부축하고, 손을 잡고 다니는 일이 조금은 버겁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매님께 짝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했을 때부터 이미 제 순례 여정은 시작이었고 여정을 다 마치는 그 순간까지 기쁘게 다니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자매님과 함께 걷는 순례길은 ‘도와준다’라는 생각보다는 ‘함께한다’라는 마음으로 다니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남들보다 빠르게 출발해서 걸어도 언제나 마지막으로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걷는 그 길과 그 걸음에는 항상 주님께서 동행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조금 느려도 괜찮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듯 했습니다. 나약한 저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었던 순간들. 그 여정 동안 늘 즐겁고 기쁜 마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자매님과의 순례 여정은 집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마침내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순례를 경험으로 또 하나의 희망을 약속했습니다. 서로 신앙생활도 잘하고, 체력·건강 관리도 잘해서 다음 순례 때도 꼭 함께 걷기로! 글 _ 송정숙 로사(수원교구 제2대리구 배곧본당)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3면

[밀알 하나] 교정사목의 문을 열며

교정사목 사제로 살아오면서 그 어떤 사목보다 지지와 이해가 필요한 사목임을 느끼게 됩니다. “왜 죄를 지은 사람들을 도와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사회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사목해야 한다는 점은 교정 사목자의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저 역시 주교님께 인사이동 연락을 받았을 때, 어색함과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교정시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 그 말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교도소는 죗값을 치루는 속죄와 응보의 장소임과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위해 노력하는 회복의 장소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6항) 처벌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복잡하고도 조용한 변화의 시간이 숨어 있는 공간을 2025년 정기 희년을 맞이하여 조심스럽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교정사목을 하며 자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물음은 어느새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에 닿게 됩니다. 회복적 정의란, 잘못에 대해 단죄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며, 교정시설이라는 공간에서 특별한 울림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6) 예수님께서는 감옥 안에 있는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고, 우리에게 그들과 함께하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다만, 그 활동과 성과가 눈에 띄거나 부각되지 않는 제도적·내재적 한계를 지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교정사목의 대상은 다양합니다. 수용자(미결수용자·기결수용자), 출소자, 범죄 피해자와 수용자 가족, 교정직 공무원, 교정 사목 봉사자 등입니다. 수용자 사목은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지 않으며, 불안과 수치심, 낙담 가운데 있는 이들이 희망을 되찾고 회개하여 재범을 방지하고, 올바르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 복음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 가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분들께서는 교정시설을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 그리고 처벌의 장소로만 인식하십니다. 2025년 정기 희년을 맞이하여, 교정사목에 대한 살아있는 복음의 현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결코 다른 곳에서 볼 수도 없고 느끼기 어려운 깊은 절망과 회복의 이야기, 눈물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속죄와 화해를 향한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복음이 오늘 어디에서 살아 움직이는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글 _ 유정수 루카 신부(수원교구 교정사목위원회 부위원장)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3면

[신앙에세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공동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어느 날. 매우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장폐색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제가 앓고 있는 장폐색증은 특이한 경우라 완전히 치료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고, 가끔 발병하면 그때그때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폐색증이 나타나 수없이 구토를 반복하고 다른 때보다 더 심해지는 증상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아 119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가 시작되고, 소장과 대장이 다 막혀 CT를 찍고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조영제를 투여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요? 의사와 간호사들의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신장 기능이 완전히 다운되어 긴급히 투석해야 하고 O형 혈액이 당장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AB형, 세 아이는 모두 B형이라 제게 혈액을 줄 가족은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본당이었습니다. 소공동체 회장님께 사정을 알리자, 곧바로 신부님의 긴급 공지가 내려져 청년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헌혈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한마음, 한 형제라는 말씀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몸의 모든 기능은 활동을 멈췄고, 겨우 희미한 의식만 남아있는 채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투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차디찬 혈액이 온 몸으로 돌기 시작하자 밀려오는 추위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괴로워 이불을 몇 겹씩 덮었고, 온몸은 급속도로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제 차디찬 몸을 크신 팔로 껴안아 주시는 어머니의 따뜻함이 느껴지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자, 구원자이신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라는 커다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런 마음이 든 것은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가던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순간 누군가 “구역장님!”하는 소리가 들려와 살며시 눈을 떠보니 함께 봉사하던 반장님이 제 머리맡에 서 있다가 재빠르게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에서는 생미사가 봉헌되어 신부님과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보호자이신 주님의 자비와 도우심으로, 모든 분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저는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기검진과 저염식단을 평생 해야 하는 어려움은 남아있지만, 저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드리고 어려울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며,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또한 배곧성당 주임신부님과 교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 _ 송정숙 로사(수원교구 제2대리구 배곧본당)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3면

[밀알 하나] 믿음·희망·사랑이 만드는 변화

“제가 만약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면, 여러분께 연락드리고 싶습니다. 와서 저와 함께해 주세요.” 사별가족 돌봄 모임 ‘치유의 샘 1기’를 마치며 제가 모두에게 드린 말입니다. 저는 아직 유의미한 사별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참가자들과 함께하면서 언젠가 맞이하게 될 상실의 고통을 이들과 나눌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내가 겪는 고통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이 그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의 샘 1기’를 함께 하며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는 경험은 나를 세상에서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을 함께하는 누군가를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분명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기억과 감정을 나와 함께하는 누군가와 나누는 과정 속에서 삶의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모임 첫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여러 걱정과 불안 속에 초조하게 참가자 한 분 한 분을 기다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맞이하려 애썼던 시간. 참가자들 역시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지만,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단절된 듯한 표정으로 각자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침묵이 공간을 무겁게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서로를 향한 경계심이나 넘지 못할 울타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처음엔 스스로를 지키려 서로를 밀어냈지만, 이제는 각자가 ‘함께’라는 울타리의 한 기둥이 되어 서로를 지켜주고 보살피는 존재가 됐습니다. 짧은 시간이 만들어낸 이 변화 속에서, 저는 희망을 봤습니다. 이웃을 향한 열린 마음이 그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꾼다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으며, 고통과 슬픔 속에 있을 때 반드시 내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더 나아가 이 희망과 믿음은 제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누도록 이끌어 줍니다. 때로는 지치고 좌절하더라도, 저에게 희망과 믿음을 심어주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8월 9일부터 사별가족 돌봄 모임 ‘치유의 샘 2기’ 여정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여전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합니다. 모임 참가자들에게 은총을 가득히 내려주실 성부 하느님께, 우리가 모인 곳에 함께 계실 성자 하느님께, 닫힌 마음을 열어주실 성령 하느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도 간절히 청합니다. 상실의 고통을 겪는 이들이 다시 사랑을 나누고 믿음 안에서 희망을 꿈꾸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글 _ 허규진 메르쿠리오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3국장)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3면

[신앙에세이] 주님께서는 늘 저와 함께 계십니다

“대장암 초기인 것 같습니다. 염증이 가득 끼어있는 대장 일부분을 절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7년 10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대장 협착증으로 응급실에 갔고 대장내시경을 마친 제게 전한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혼자서 멍하니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사랑하는 세 아이의 얼굴만 떠올랐습니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온 남편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저를 애써 위로하고, 조직검사에 들어갔다고 하니 며칠만 더 기도하면서 기다려 보자 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하루하루를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며 묵주 알을 수없이 돌렸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저를 이 고통스러운 시간과 혼란 속에서 구해주소서!” 일주일 뒤 조직검사 결과는 천만다행히도 의사의 오진으로 판명되었으나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달려가 또다시 대장내시경을 하게 되었고, 대장암 증상은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그제야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집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던 중에 저는 또다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이 엄청난 사실이, 정말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보호자로서 보호해 주시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감사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함께 반주 봉사를 하던 자매님의 부탁으로 본당신부님께서는 봉사자들과 함께 병원에 오셨고, 대장내시경을 받기 한 시간 전에 안수와 기도를 해주시고 가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변화시켜 주시고 저를 살리시려 애쓰셨던 주님의 사랑을 퇴원하고 나서 기도 중에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본당에서 행해지는 월례 피정 기간에 성령 치유 미사 안수, 성모 신심 미사 후 안수, 매달 한 번씩 진행되는 성령 기도회에서 찬양 봉사를 하며 또 한 번의 안수기도를 꼭꼭 챙겨서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따스한 손길로 직접 제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는 그 기적을 생각하며 한 달에 세 번씩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기도의 힘으로 또다시 한 달 한 달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게 되었고, 어떤 봉사든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제 눈에는 보이지 않으셨으나 이미 어떤 한 자매님의 마음 안에 성령을 보내시어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고, 신부님을 통하여 친히 저에게 오시어 축복하여 주시고 살려주신 하느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세 아이가 아직 학생들이었기에 뒷바라지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조금도 망설임 없이 25년 동안 해오던 학원 일을 그만두고 더욱 신앙생활에 집중하고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지금도 교회 안에서 봉사자로서 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 _ 송정숙 로사(수원교구 제2대리구 배곧본당)

발행일 2025-07-20 제345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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