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만난 스페인 영적 유산…「스페인을 순례하다」

성지순례만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여정도 드물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신앙적 성찰을 목적으로 떠나는 순례길은, 방문지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간으로 남기 쉽다. 아무리 오래된 장소라도 역사와 맥락을 모른 채 마주하면 낯설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통번역학과 전용갑 교수(요셉·수원교구 성복동본당)의 신간 「스페인을 순례하다」는 의미 있는 안내서가 된다. 저자가 직접 스페인 전역의 성지를 답사하며 써 내려간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에 머물지 않는다. 아빌라와 톨레도를 비롯한 주요 성지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인물에 얽힌 배경들을 깊이 있게 풀어낸 인문 교양서라 할만하다. 전 교수는 10년에 걸친 유학 생활과 스페인어권 역사와 문화를 강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방대한 자료와 생생한 현장감을 한데 엮었다. 300여 개에 달하는 각주와 참고문헌은 책의 학문적 깊이를 더한다. 학술적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문체는 친근하다. 스페인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서술 방식은 복잡한 배경지식 없이도 성지를 따라가는 여정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책의 부제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을 찾아서’. 16세기 가톨릭교회 개혁의 중심에 섰던 두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이 남긴 영적 유산과 발걸음이 담긴 공간들을 차근히 되짚는다. 구성은 1부 ‘삶’, 2부 ‘성지’로 나뉘며, 인물에 대한 입체적 서술과 현장 기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전 교수는 “‘삶’에서는 두 성인의 생애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으려 했다”며,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바라보려 했다”고 말했다. “두 분이 살던 16세기 스페인은 안팎으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약자에 속했던 이들이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내면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어 그는 “성인들도 우리처럼 평범한 조건 속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나도 닮을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우리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특히 ‘성지’ 편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생생한 기록이 돋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을 바탕으로 서술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2008년 봄, 전 교수가 한 교회 잡지에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 씨앗이 됐다. 이후 2014년 출판사와 인연이 닿으며 기획이 구체화했고, 2023~2024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집필 작업이 이뤄졌다. 애초 스페인 성인 전반을 아우를 계획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두 인물에 집중하며 서술의 밀도를 높였다. 단순 정보 중심의 구성이 아니라, 전기적·역사 문화적 서술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방향도 수정됐다. “두 성인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큰 보람이었다”는 전 교수는 “그분들의 올곧은 신앙과 개혁의 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초심’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롭게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예수회를 설립한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삶과 이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북부와 동부 지역(바스크·나바라·카탈루냐) 등을 다룬 후속 책을 차례로 준비할 예정이다.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15면

‘인터뷰로 듣는 농인들이 바라는 교회’…「에파타!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

교회에서 농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청각) 수 없으므로 그분을 믿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천 년 이상 소외됐다. 소외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3년 3월 16일 발표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아시아 대륙회의 최종문서에서도 농인은 단순히 ‘장애인’ 범주에 포함돼 사목적 돌봄 대상으로만 언급됐다. 아시아 최초 농인 사제 박민서(베네딕토) 신부의 책 「에파타!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는 농인들이 고유한 언어(수어)와 문화를 간직한 소수자로 청인과 동등한 교회 일원임을 보여준다. 6월 1일 발행된 책은 2024년 5월 박 신부가 시카고 가톨릭 연합신학대학원에 제출한 실천신학 박사학위 논문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이 논문으로 박 신부는 세계 가톨릭 농인 사제 중 처음으로 실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책은 농인 신학자들의 연구뿐 아니라 참된 포용의 교회를 꿈꾸는 농인 신자들의 목소리를 실었다. 박 신부가 서울대교구 농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아시아 지역 농인 신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교회에 바라는 점과 신앙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1986년 설립된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부터 2019년 농인들의 독립된 본당인 에파타본당을 이루기까지의 역사도 기록했다. 농인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 왔는지 증언하는 역사다. 책은 농인들이 기도하고, 복음을 듣고 선포하는 모어인 수어가 농인 문화와 정체성을 담아내며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온전한 언어임을 증언한다. 농인 신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신앙과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청인 신자들에게는 농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교우로서 함께 걸어갈 만남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민서 신부는 “예수님께서 농인을 고치시며 하신 말씀 ‘에파타(열려라)’(마르 7,34)는 단순한 물리적 청각의 회복을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 말씀을 받아들이고 선포하라는 초대”라고 말했다. 이어 “책이 한국교회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하나 되는 교회로 거듭나는 이정표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농인들은 대다수 청인이 수어를 모른다고 청인들을 장애인 취급하지 않아요. 경청은 청각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우리 함께 기억해요.”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15면

「교회의 탄생」…초대교회에 오늘날 신앙의 본질을 묻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신앙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 말은, 단지 교회의 기원을 상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 오늘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초심’을 회복하자는 부름이다. 초대교회는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시어 탄생시킨 교회,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들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의 뿌리다. 그런 면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표현은, 그 시기의 정신을 떠올리며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공동체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도 초대교회가 보여준 모범을 본받아 새롭게 되자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다소 막연하게 들릴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초대교회를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도행전과 바오로 서간을 많이 읽었다 하더라도,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전해진 경로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과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송봉모 신부(토마스·예수회)가 '사도행전 산책’ 시리즈의 첫 권으로 펴낸 「교회의 탄생」은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을 되살리며,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뿌리를 다시금 되묻는 책이다. 저자는 사도행전 1~2장을 중심으로 교회의 태동과 성령의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내며, “전자제품이 고장 났을 때 설명서를 다시 펼쳐 보듯, 신앙생활에 위기가 올 때 사도행전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사도행전은 가장 본질적인 지침이자 회심의 길잡이임을 강조한다. 책은 사도행전 본문에 대한 주해뿐 아니라, 당시 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알기 쉽게 해설한다. 또한 풍부한 예화를 곁들여 독자들이 본문의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성경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삶과 연결 짓는다. 바오로 사도, 성녀 에디트 슈타인 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신앙 여정을 생생하게 엮으며, 독자들이 사도시대 초대교회의 방대한 맥을 보다 쉽게 파악하고 그 본질을 오늘의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첫째 장에서 ‘교회의 탄생을 위한 준비’를, 둘째 장에서는 성령 강림과 그에 따른 교회의 탄생을 설명한다. 셋째 장은 새 신자 삼천 명의 회심을 집중 조명하며, 넷째 장은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초기 공동체의 신앙생활과 일치를 상세히 보여 준다. 베드로의 복음 선포와 오순절 성령강림 장면은 다시금 오늘날의 신앙인에게도 여전히 깊은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37)라는 물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저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일에 세례를 받은 삼천여 명은 베드로의 복음 선포를 듣고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혼란스러워했으나, 곧바로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의 방향을 묻는 말을 던졌다”며 “그 결과 ‘그 길을 걷는 자’(사도 9,2;19,9.23)로서 구원받은 삶을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송봉모 신부는 ‘글을 시작하며’를 통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이,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공동체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도 구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15면

‘성모 신심’ 바른 이해 돕는 ‘마리아론’ 연구 도서 출간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만큼, 한국교회의 성모 신심은 각별하다. 교회는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낳으신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로서, 성모 마리아를 신앙의 모범으로 따르고 하느님 은총을 전구할 수 있도록 그분께 기도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자칫 성모 마리아를 숭배 대상으로 오해할 수 있기에, 교회는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마리아론’이라는 학문 체계를 통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김준년 신부(베드로·대구대교구 월막 피정의 집 관장 및 성령봉사회 전담)가 번역·출간한 두 권의 저서는 오늘날 마리아 신심을 성장시키는 뿌리라고 볼 수 있는 교부(敎父) 시대와 중세 라틴 신학자들의 마리아론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두 권 모두 교부 시대 마리아론의 세계적 권위자 루이지 감베로 신부(Luigi S. M. Gambero·마리아회·1930~2013)가 남긴 대표 저서로, 김 신부는 이탈리아 로마 유학 시절 이 책들을 알게 된 후 줄곧 번역을 계획해왔다. 왜 교부 시대와 중세일까? 김 신부는 “모든 것은 원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대교회 교리의 정립과 교회 발전에 이바지했던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과 함께 살았거나 그 영향을 받았다. 교부들이 마리아 신심의 뿌리라면, 중세 신학자들은 마리아론을 더욱 학문적·체계적으로 탐구했다. 오늘날 학문 연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교부들과 중세 신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 언어와 사상을 연구해야 하기에, 현대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김 신부는 감베로 신부의 연구 결과가 한국 신자들의 마리아 신심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으로 책을 번역했다. 김 신부는 “「교부들의 마리아론」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의 위치를 알게 될 것이며 「중세 라틴 신학자들의 마리아론」에서는 성모님의 동정성과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신부는 이어 “많은 이가 이 책들을 통해 성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나아가 공동체와 개인 성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구입 문의 010-4549-0621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15면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역주」…비오 9세 교황 칙서 옛 한글 번역본 해제

비오 9세 교황이 1854년 선포한 라틴어 칙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Ineffabilis Deus)의 1860년대 한글 번역본을 해제한 후 라틴어와 옛 한글로 다시 편집하고 현대어로 번역한 책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역주」가 나왔다. 번역과 주해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 곽문석 안양대학교 HK교수, 서원모 장로회신학대학교 고대교회사 교수가 맡았다.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한글 번역본의 존재는 조선대목구 제4대 교구장 성 베르뇌 주교(1814~1866) 서한에 조선에서 국경 너머로 보냈다고 언급돼 있지만 실제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다가 곽문석 교수가 교황청 도서관 디지털 문서고(분류번호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Sire.L.13)에서 발견했다. 그 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2021년 10월 1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2층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한글 번역본이 처음 공개됐다. 한국교회사연구소와 안양대학교 HK+ 사업단이 공동연구 과정을 거쳐 이번에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역주」가 나오게 됐다. 조한건 신부는 “라틴어 본문과 대조해 옛 한글 번역의 단어와 어구, 표현 등을 분석하고, 그 특징을 규명했다”며 “옛 한글 전체 문헌에 대한 역주 작업을 한 것은 물론, 전체 어휘를 라틴어 단어와 대조해 하나의 어휘 사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1970년대에 한국천주교회는 개신교와 협업해 공동번역성서를 갖게 된 것처럼 지금보다 오히려 천주교와 개신교의 연구와 협업이 잘 이뤄졌다”면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역주」 발간과 연구 작업이 서로의 학문을 공유하고 참된 진리와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15면

“성사 깊이 이해할수록 영적 보화 잘 받아들여”…「하느님 사랑의 손길 일곱 성사」

탄생, 성장, 병고, 죽음…. 인생에는 마디와 같은 전환점이 있다. 교회는 이런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깊이 개입하시고,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시는 방식으로 ‘일곱 성사’를 전한다.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스며드는 통로이자, 신앙의 여정을 동반하는 하느님의 손길이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20년 이상 성사론을 가르치는 한편 여러 강의 활동을 통해 성사를 신자들의 삶 속에 풀어내려 노력해 왔던 손희송 주교(베네딕토·의정부교구장)가 「하느님 사랑의 손길 일곱 성사」를 출간했다. 2015년 발행한 「일곱 성사」를 새롭게 다듬은 것이다. 이번 개정판은 초판 출간 1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손 주교의 주교 수품 10주년과 의정부교구 제3대 교구장 착좌 1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저작이다. 저자는 성사의 신학적 깊이와 일상적 의미를 동시에 담아내면서, 각 성사의 의미와 효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성사에 담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손 주교는 출간 배경에 대해, “교구장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에서 하느님 신비의 으뜸 분배자요 모든 전례 생활의 지도자이며 촉진자요 수호자이다”라는 「미사 경본 총지침」 22항을 언급하며 “주어진 새로운 임무에 대한 책임 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먼저 성사의 본질을 다룬 뒤, 일곱 성사를 차례로 서술한다.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며, 죄를 씻고 성령의 은총을 선물로 받게 한다. 견진성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 안에 굳건히 서게 하고, 성체성사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 이웃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고해성사는 죄의 용서를 통해 영적 건강을 회복하게 하고, 병자성사는 고통 중인 이들에게 위로와 평화를 안겨준다. 성품성사는 사제직을 위한 성사이며, 혼인성사는 부부가 서로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자리다. 손 주교는 성사를 “하느님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져 열매 맺는 과정”에 비유하며, 성사를 단지 받는 의식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으로 제시한다. 또 능동적으로 성사에 임하는 자세를 언급하며 “성사를 통해 주어지는 은총이 아무리 풍성해도 능동적으로 성사에 임하지 않으면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열매를 맺지 못하며, 성사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성사에 담긴 영적 보화를 더 잘 받아들여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성사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물론이고, 각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게 삶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신학적 설명과 함께 다채로운 실제 적용 예시들이 담겨 있어, 성사를 삶의 언어로 풀어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예비 신자뿐 아니라 성사를 통해 신앙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고 싶은 이들에게도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법하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성사를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어 주시는 하느님의 부드럽고 따듯한 손길”에 견줬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손길을 우리에게 건네십니다. 성사를 통해 그 손길을 느끼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도 전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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