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코헬 1,2; 2,21-23 / 제2독서 콜로 3,1-5.9-11 / 복음 루카 12,13-21
요즈음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관심을 받고, 이야기되는 것 중의 하나가 MBTI 프로그램입니다. ‘J ’유형인 저는 미리미리 계획하고, 계획한 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을 무척이나 선호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내일 또는 다음 달의 계획뿐 아니라, 일 년 뒤, 어떤 경우에는 더 미래의 시간을 위한 계획도 미리미리 세우고 준비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그런데 내일, 한 달, 일 년 뒤의 경우에는 내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년 뒤, 수십 년 뒤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인생살이가 제가 계획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종종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계획으로 살아야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보다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어떤 부유한 사람’(루카 12,16) 역시 저와 같은 J유형의 인물은 아닐지 짐작해 봅니다. 그 부유한 사람은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인물로 보입니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둘 정도로 성실하고, 수확한 것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운 더 큰 곳간들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울 만큼 치밀하고, 쌓아놓은 재산으로 쉬면서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역량 많은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도 복음에서의 그 부유한 사람과 같은 마음과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루하루의 삶을 위해 또 노후의 삶을 위해 어느 정도의 재산을 쌓고 준비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과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부유한 사람이 자기만을 위하여 재물을 쌓고 준비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는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루카 12,19)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 부유한 사람의 인생 계획 안에는 하느님도, 이웃 사람들도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적합한 역량을 주셨고, 그 역량을 발휘하여 자기 생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부유한 사람이 혹시라도 곡식과 재물을 모으는 과정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맺어 온 수많은 관계를 잊어버렸거나, 잘 맺지 못했거나, 또는 깨뜨려버렸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볼 여유 없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앞만 보고 재물을 모아 왔다면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제일 안타까운 것은 그 부유한 사람이 당장 오늘 밤 자신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날이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어느 날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어느 날을 맞이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의 생활 안에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저 위에 있는 것, 하늘나라의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콜로 3,1 참조) 그러기 위해서 우리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여야 합니다.(콜로 3,5 참조)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모으는 이 세상에서의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루카 12,21 참조)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은 매일매일의 삶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물질적 보장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곧 물질보다도 더 소중한 무엇이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적절한 재물을 쌓고 준비하면서도,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줄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중히 가꿀 줄 아는 사람이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노, 격분, 악의, 중상, 수치스러운 말, 거짓말은 버려야 합니다.(콜로 3,8 참조)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콜로 3,9)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글 _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