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힘과 용기의 지도자, 여호수아

이스라엘 역사에서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는 모세가 가나안을 지척에 두고 숨을 거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고 광야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동고동락했던 사람들과 이별했다. 광야에서 자신들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가 세상을 떠나자, 이스라엘 민족은 큰 시름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전사로서 용맹하게 가나안의 각지에서 계속 싸우며 결국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한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찰하고 전략을 세워 전투를 벌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희세지웅(希世之雄)이란 사자성어는 난세에 보기 드문 영웅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역사에서 보면, 때에 맞는 지도자가 나타나 활약하는 것은 그 나라나 민족을 위해서는 큰 행운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탄생시킨 지도자라고 하면 여호수아는 실제 전투에서 큰 활약을 했던 전사(戰士)형 리더였다. 이미 오래전에 터를 잡아 살고 있는 가나안 주민들을 공격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 점이 많았지만, 여호수아는 이를 극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한다.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실제로 국가를 세운 사람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였다. 모세는 그를 무척 신임하고 일찍부터 후계자로 생각했다. 여호수아는 실제 전투에서 많은 공을 쌓았고 실전 경험을 터득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측근으로 이집트 탈출을 하면서 광야 생활 내내 큰 공로를 세운 충직한 인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작 가나안 땅 가까이에 도착했을 때 그동안의 광야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모세에 대해 반란이라도 할 기세였다. 게다가 이들이 맞이한 가나안에는 만만하지 않은 적들이 버티고 있었다. 가나안에 있는 민족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보잘것없었다. 싸우기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의 기세에 눌려 전전긍긍했다. 전투에서 전의(戰意)를 상실하면 싸움은 해보나 마나 필패이다. 이때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와서는 옷을 찢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외치며 사기를 진작시켰다.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과 같은 땅에 들어갈 수 있소. 적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하느님이 우리 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반대하고 이집트로 돌아갈 궁리만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 환경에서 여호수아의 외침이 제대로 먹힐리 없었다. 오히려 전투를 독려하는 여호수아는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에 빠졌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죽음을 무릅쓰고 소신있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위기에서 포기해 버리고 모험에 나서지 않는 지도자는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여호수아의 용기 있는 행동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꾼다. 그는 무엇보다 힘과 용기를 가지라고 하며 함께하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었다. 여호수아는 전투에서는 맨 앞장서서 싸우는 힘과 용기가 있는 유능한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믿음이 강한 인물이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4-28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명예와 재물에 빠져 타락한 예언자 발라암

예전에 사목했던 본당 중에 주변에 무속인들이 유난히 많았던 곳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성 무속인이 예비자 교리에 등록했다. 그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리를 들었고 시간이 흘러 세례식을 앞두고 있었다. 개인 면담 시간에 그는 “그동안 너무 심한 어지러움과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면서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고 특히 주변의 신자들이 함께 기도해 주어서 다행히 오늘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신자들도 열심히 기도하지만 무속인들도 정말 무섭게 열심히 기도한다”며 알듯 모를듯한 이야기를 했다. 무속인을 찾은 사람에게 예언을 해주면 그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무속인도 산속에 올라가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금식하면서 자신이 모시는 신(神)에게 기도를 바친다고 한다. 점술이 맞지 않으면 밥줄(?)이 끊긴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분은 세례를 받고 모든 고통에서 깔끔하게 벗어나 열심히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요르단 건너편 모압 평야에 진을 쳤는데, 모압 왕인 발락의 눈에 이스라엘 백성의 기세가 등등했다. 그 숫자도 너무 많아 겁에 질릴 정도였다. 모압 왕은 당시 명성이 자자한 점쟁이 발라암을 불렀다. 그러나 처음엔 발라암이 순순히 왕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끈질기게 부르자 결국 발라암은 왕이 보낸 관리들을 따라나섰다. 왕은 발라암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주면 무엇이든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발라암은 제단을 쌓고 황소와 숫양을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발라암이 왕에게 점술 내용을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왕의 소원과는 정반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상심한 왕은 발라암에게 세 번씩이나 장소를 옮겨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제사를 지내게 했지만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발라암은 계속해서 제사를 지냈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떠한 재앙도 어떠한 불행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왕은 할 수 없이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발라암에게 돌아갈 것을 분부했다. 그러자 발라암은 왕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패시키는 비법을 가르쳐주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하고, 예쁜 모압 여자로 유혹해 죄를 짓게 하라는 것이었다. 발라암의 비법이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어 수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발라암도 결국 칼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발라암은 다른 예언자 못지않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했지만 결국 명예와 재물의 유혹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점술이 발달하고 번성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하고 닥쳐올 화근을 없애줄 방법을 찾으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근본 성향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은 점술에 여전히 매력을 느낀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4-21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모세의 대변인 아론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대목은 미국 역사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위대한 연설로 평가된다. 명연설은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고 국민을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2004년 7월 미국 보스턴에서 3박4일 동안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치인들은 당원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보통 정치가들의 연설은 지루한데 정치신인 버락 오바마의 연설에는 기립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고 단 몇 분 만에 무명에 가까웠던 오바마는 벼락스타가 되었고 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거절할 이유로 자신은 입이 둔하고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형인 아론을 협조자로 보냈다. 아론은 말을 아주 잘하는 연설가였다. 아론의 출중한 연설 실력과 여유는 파라오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킬 때 유감없이 잘 드러났다. 그래서 말을 잘 못하는 모세에게 아론은 모세의 최고 대변인이었다. 아론은 동생 모세를 대할 때도 거들먹거리거나 교만하지 않고 지도자라고 부르면서 겸손한 자세를 가졌다. 아론은 순종적이고 온유한 성격을 지녔는데 이러한 마음 좋은 사람의 단점은 다른 이의 말에 잘 휘둘리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지닐 때도 많다는 것이다.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산으로 들어갔을 때 정치 공백을 아론이 맡게 되었다. 광야 생활에 지친 백성들이 모세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자연히 불평불만이 대단했다. 많은 백성이 아론에게 몰려왔고 백성을 지도할 신을 만들자며 우상인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성경에는 아론이 백성들의 요구에 쉽게 응답하여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협조한 이유가 잘 나오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상상을 해보면 모세가 없는 틈에 백성들의 불평을 들으며 혹시 권력을 탐한 것은 아닐까?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금송아지 사건을 보고 크게 화를 낼 때 아론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했다. 사실 그에게는 화난 백성의 요구를 거절할 용기도 애초에 없었다. 어떤 사람의 참다운 모습은 책임을 져야 할 때 나타난다. 특별히 정치지도자에게 책임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모세와 아론은 형제이면서도 성격에서 차이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실제로 오랫동안 두 사람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 모세는 형 아론에게 제사장직을 맡기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봉합하고 공동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은 모두가 십인십색이다. 그러면서도 공존하려면 타협과 양보가 필요하다. 나와 다른 타인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공존은 시작된다. 다른 이가 나와 성격과 사고방식, 가치관 생각이 다른 것을 너무 적대시해선 안 된다. 공동선을 향해 함께 나가야 하는 공동체의 같은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4-14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

중고등부 시절 소풍과 단체 영화관람은 가장 신나는 시간이었다. 당시 대작들로 꼽히는 유명한 작품들을 단체 영화관람으로 많이 보았다. 여학교에서 같은 시간에 관람 계획이 잡히면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온 학교가 술렁거리기도 했다. 찰턴 헤스턴이 모세로 출연한 영화 ‘십계’도 보았지만, 사실 그때는 성경의 배경을 잘 모르니 어떤 영화였는지 이해가 쉽지 않았다. 다만 흰 수염이 긴 모세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기둥 사이로 탈출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가 지도자가 되어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모세는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민족의 구원자로 추앙받는 위대한 인물이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탈출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역사 한가운데 있는 모세를 묵상하면서 이스라엘의 백성을 처음으로 세계사에서 탄생시킨 장본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탈출기 전반을 읽어보면 이집트에 내려간 야곱의 일가는 평화롭게 생활했지만, 시간이 흘러 요셉을 모르는 새 파라오가 등장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우선 이집트로 내려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숫자가 시간이 흐르면서 늘어나자 파라오는 위협을 느꼈다. 이스라엘인을 박해하고 남자아이들마저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바구니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냈고 마침 강가에 나온 파라오 딸의 눈에 띄어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인데도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 모세는 약 35년간 이집트 궁정에서 왕손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이집트 자체를 뒤덮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최악의 상태로 박해를 받고 있을 때 태어났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모세는 파라오 람세스의 신임을 쌓고 지냈다. 어느 날 동족인 노예들을 박해하는 이집트 경비병과 시비가 붙어 그를 죽였다. 졸지에 모세는 광야로 피신해 도망자 신세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역사를 뒤바꾸는 엄청난 사건의 시작이었다. 광야에서의 인생 여정은 모세가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특급 수업 과정이 되었다. 광야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히브리 백성들을 구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도록 계시를 내린다. 모세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펄쩍 뛰며 거절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라며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땅 탈출이라는 ‘임파서블’한 명령을 내렸다. 모세는 진정으로 자신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은 다르다. 하느님은 인간의 결점까지도 이용하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4-07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고난 이겨낸 요셉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많다는 '호사다마‘(好事多魔),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은 우리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사자성어(四子成語)이다.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새옹지마(塞翁之馬)도 자주 쓴다. 그 유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변방 노인의 말(馬)에서 나온 말이다. 전쟁이 자주 일어나던 중국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가 기르던 말 한 마리가 어느 날 도망가 버렸다. “말이 도망가서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라며 위로했다.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어찌 알겠소”라며 오히려 담담했다. 얼마 뒤 도망갔던 말이 많은 야생마들을 끌고 노인에게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놀라며 부러워했지만, 노인은 이 일이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며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 다리를 크게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복이 될지 어찌 알겠냐며 대답했다. 그 후 전쟁이 일어나 마을 젊은이들이 모두 징집되었는데, 장애를 지닌 노인의 아들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 오히려 목숨을 지키게 되었다는 고사(古事)이다. 성경에서 이런 고사성어들이 잘 맞는 인물은 야곱의 아들, 요셉이라 생각한다. 그는 한마디로 드라마같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았다. 야곱은 사랑했던 라헬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요셉을 드러내놓고 편애했다. 당연히 다른 아들들은 요셉을 질투하고 미워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결과가 결국 요셉에게는 고통과 고난의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다른 형제들은 기회를 잡아 요셉을 이집트 땅에 노예로 팔았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오히려 좋게 작용하여 결국에는 이집트의 총리에 올랐다. 요셉의 형제들이 기근 때문에 식량을 구하러 이집트에 내려왔다가 첩자로 몰려 문초를 당하는 자리에서 형제들은 요셉을 재회했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형들이 고향으로 가서 베냐민을 데리고 왔을 때 요셉은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화해했다. 그의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끝은 모두 좋았다. 요셉은 어떤 과정에서도 실망하거나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요셉은 사람이 일을 아무리 잘 계획해도 이를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그의 삶에 펼쳐진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은 믿음이었다. 그 믿음은 선조에게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었다. 신앙인의 삶을 보면 우연이라 할 수 없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우리의 삶을 계획하고 이끄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고난과 실패, 죄까지도 선용하셔서 좋은 열매를 맺는 분이시다. 우리도 요셉의 믿음을 배운다면, 매일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면 결국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상황에서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오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성경을 읽어보면 요셉을 왜 구약성경에서 가장 착하고 훌륭한 믿음의 인물이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3-31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인내하며 하느님을 찬미한 레아

오래전 일이다. 어느 겨울 몹시 추운 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초등학생 형제가 있었다. 뒤에 귀마개와 장갑을 낀 동생이 털모자도 없이 낑낑대며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돌리는 형의 양쪽 귀를 잡고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도 목이 메었다. 나도 형과 동생에게 저렇게 따듯던 적이 있나 자연히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느 저녁 형과 영화를 보러 갔다. 막상 극장에 도착했는데 두 사람의 푯값에서 딱 10원이 모자라 영화를 보지 못했다. 풀이 죽은 내가 측은했는지 형은 나를 청계천의 중고 서점으로 데려가 책을 골라주었다. 그때 처음 본 소설이 삼국지였는데 며칠 동안 열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형제자매 사이는 무척 친하면서도 경쟁심을 갖고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고 한다. 그래서 형제자매 사이의 어린 시절의 관계는 평생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특히 부모가 자식을 편애하면 그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며 어른이 되어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예쁘고 아름다운 동생 라헬에 비해 레아는 눈에 생기가 없었다고 표현한다. 시력이 약하다는 것은 무엇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거나 이마에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당시 근동 지방의 미적 기준의 큰 결점이 되었다. 야곱이 라헬을 선택하는 순간 레아에게 열등감과 질투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레아는 야곱의 편애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한 여성이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 한 레아는 평생을 동생 라헬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편 야곱을 지켜보아야 했다. 레아는 인내심이 강하고 인성이 좋은 여성이었다. 레아의 아들들의 이름에도 남편에 대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첫아들을 르우벤이라 부르며 이제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 희망했다. 레아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살펴주셔서 아들을 낳아준 자신을 야곱이 사랑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둘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겼고 호소를 들어주었다며 시메온이라 불렀다. 셋째는 레위였다. 아들을 셋이나 낳았는데도 남편의 마음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레아는 넷째 아들을 출산하여 이제야말로 내가 주님을 찬송하리라는 뜻의 유다라고 이름을 붙였다. 레아는 소극적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레아는 삶이 힘들었어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 라반의 이기적인 행동과 남편의 냉대, 라헬에 대한 열등감에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던 레아를 하느님은 잊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창세 29,3) 하느님은 레아의 마음을 알아주셨고 은총을 내려주셨다. 마태오복음서 1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며, 그 다윗은 레아의 아들인 유다의 후손이다. 결국 레아는 세상을 구할 영광스러운 메시아의 선조가 되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3-24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2)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라헬

라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떠오른다. 스칼렛 오하라는 아름답고 예쁜 여성이지만 아주 강인하고 용감해 서슴없이 자신에게 다가온 역경을 피하지 않고 극복하는 매력 있는 인물이다. 소설의 인물인 스칼렛 오하라를 배우인 비비안 리가 잘 표현했다고 당시 비평가들은 칭찬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독백하는 비비안 리의 마지막 대사는 오늘날까지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이 대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뽑은 명대사 100개 중 1위라고 한다. 야곱은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 중에서 라헬을 더 사랑했다. 라헬은 곱고 아리따운 자태를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시대를 초월해 남자가 예쁜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만고(萬古)의 진리인가 보다. 라헬은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열정적인 성격을 지녔다. 어쩌면 시어머니 레베카와도 닮은 점이 많아 야곱이 매력을 느꼈다는 생각도 든다.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단 한 가지 자녀운(子女運)은 없었다. 언니인 레아가 자녀들을 계속 갖게 되자 질투심에 불타 자신의 몸종을 통해서 야곱의 아들을 낳았을 정도이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노력한 끝에 라헬도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환호했고 기뻐하며 아들을 더 가지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레아의 큰아들이 합환채를 밭에서 가져왔다. 아랍인들은 합환채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고 뿌리는 독성이 강한데 약간의 마약 성분이 들어있어 임신촉진제로 알고 있었다. 중동지역에서는 수태력 증진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식물이었다. 라헬은 레아의 큰아들이 가져온 합환채에 눈독을 들여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당돌하고 적극적인 행동은 훗날 야곱과 언니 레아 등 모든 식구가 아버지 라반의 집에서 몰래 도망칠 때 나타났다. 야곱도 모르게 집에서 수호신 상을 훔친 것이다. 사흘 만에 야곱 식구들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난 라반은 야곱 일행을 쫓아가 잡고는 왜 집에 있는 수호신 상까지 훔쳤냐고 화를 냈다. 라반은 야곱 일행의 숙소와 짐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수호신 상을 찾아내지 못했다. 맹랑한 라헬이 낙타 안장 속에 집어넣고 자신이 깔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수호신 상은 보통 나무나 은으로 만들었고 점을 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 세계에서 이 가정의 수호신 상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라헬은 자신은 지금 월경 중이어서 낙타에서 내리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처럼 라헬은 자신이 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성격이었다. 라헬은 여정 중에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질투심이 강했고 욕심과 집착도 심했던 라헬은 가족 묘지가 아닌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외롭게 묻혔다.

2024-03-17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1) 뛰는 야곱 위에 나는 삼촌 라반

영어속담에 ‘Talent above talent’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로 표현된다. 성경에서 이 속담을 잘 나타내는 인물로 바로 레베카의 오빠, 야곱의 삼촌인 라반을 들 수 있다. 타인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마치 도움을 주는 척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 우리 주위에서 지금이나 과거의 사건에서 한두 명은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피해야 하는 부류의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혈연이나 지연, 직장 등으로 묶인 관계도 많다. 그런데 상대를 바르게 아는 것과 속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상대를 이용하는 사람은 자기의 발톱을 드러낼 때까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위장한다. 상대의 약점이나 취약한 점을 잘 이용하는 이는 상대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고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마치 은인을 만난 것처럼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야곱은 에사우에게 죽을 끓여주고 장자권을 샀다. 그리고 이사악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에사우는 분노에 가득 차 하루 종일 야곱을 찾았지만, 그의 머리카락조차 볼 수 없었다. 야곱이 어머니 레베카의 도움을 받아 삼촌 라반에게 피신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사기꾼, 모사꾼이라는 이름의 이미지처럼 꾀가 많고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항상 한 수 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삼촌 라반은 처음에는 야곱을 환대하고 반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반은 젊고 힘이 좋은 야곱에게 욕심을 냈다. 먼저 라반은 야곱이 자신의 딸인 라헬에게 마음이 있음을 간파하고 야곱을 붙잡아 둘 계략을 짠다. 라반은 야곱에게 라헬과 짝이 되면 좋겠다면서 조건을 걸었다. 라반은 야곱이 7년간 자신을 도와주면 라헬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어차피 형에게 쫓기는 신세인 야곱도 안전한 피신처가 되는 라반의 곁에 머물고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일거양득이라 생각했다. 야곱은 라반에게 최선을 다해 일하며 7년의 세월을 견디었다. 당시의 근동지방의 풍속은 친척 사이에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남자는 결혼할 때 장인에게 결혼 지참금을 지급해야 했다. 신랑 측은 돈이나 보석, 가축을 선물하거나 노동으로도 지참금을 대신할 수 있었다. 야곱은 라반과 무상 노동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셈이었다. 드디어 약속한 7년의 시간이 흘러 야곱은 라헬과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야곱은 자신이 결혼한 여인이 라헬의 언니인 레아라는 사실에 혼비백산했다. 그러자 라반은 당시 관습을 들먹이며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갈 수 없지 않냐며 7년만 더 일해주면 라헬과도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또다시 제안했다. 사실 라반은 언제부터인가 큰 그림을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야곱에게는 사실 선택지가 없었다. 14년 동안이나 야곱을 자신의 곁에 두고 좋은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라반의 계략이었다.

2024-03-10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0)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에사우

“자신의 나이에 맞는 정신을 갖지 못한 자는 자신의 나이에 겪는 온갖 재난을 당한다”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1694-1778)의 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 며칠 전 한 유명 시인과 이야기를 하는데 “젊은 시절엔 이성(理性)과 싸우지만 나이가 늙고 노쇠해지면 자신의 몸(자신)과 싸운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이 변화를 잘 이해하고 적응하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가치판단은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하고 소중한지, 혹은 꼭 필요한 것인지 등을 감정반응이나 자신이 학습한 원칙적 사고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는 선한 행동의 기준을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지, 이기심의 발로인지,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동인지로 구별했다. 사실 사려 깊은 사람은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자신을 바르게 볼 줄 알고 남을 쉽게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융은 정의(正義)만 외치고 선(善)만을 유독 고집하는 사람은 정작 선악의 경계나 인간의 한계를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융은 자신이 선과 악을 초월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인류 최악의 고문자라고 혹평했다. 그러니 생각 없이 사는 것도 큰 잘못이요, 죄다. 에사우가 허기를 때우는 대가로 생각 없이 장자권을 팔아넘긴 행위는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에사우는 장자권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의 가치를 모르고 행동하면 인생에서 많은 실패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찮지 않고 가치가 없지 않다. 다만 사람들이 하찮고 무가치하다고 잘못 판단할 뿐이다. 에사우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과 이미 장자의 지위를 갖고 태어난 점, 건강하고 씩씩하고 거침이 없는 자세 등 인생의 달콤한 면만을 맛보며 살았을지 모르겠다. 그는 능력이 있었고 큰 변수가 없는 한 장자권을 누리는 위치에 있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이다. 부족함도 없었고 걸림돌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너무 자신만만하게 방심하여 쉽게 결정을 내리고,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데에 자신을 노리는 복병이 숨어있었다. 어머니 레베카는 이사악의 장자권 축복을 동생 야곱이 받게 했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안 에사우는 길길이 뛰고 분통을 터뜨리며 아우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미 계약서(?)에 인감도장이 찍힌 형세였다. 농담처럼 생각했던 에사우의 생각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뜻밖의 결과는 에사우의 어리석음에 원인이 있었다. 에사우는 순식간에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자신이 누리던 지위를 잃었다. 우리도 쉽게 흥분하여 냉정한 판단이나 신중한 행동을 못 해 실수나 낭패를 본 적은 없는지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2024-03-03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9) 사기꾼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 야곱

몇 년 전 잘 아는 변호사가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신부님,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일어나는 범죄가 무엇인지 아세요?” “글쎄, 싸움, 폭력 같은 게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사기예요. 대부분 친하고 잘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안타깝죠.” 사기는 “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같은 방법으로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는 범죄”(형법 제347조)이다. 기망이란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모든 행위이고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새로 서품받은 신부님들만 노리는 사기꾼들(?)이 있었다. 나도 첫 임지인 수유동본당에 있을 때 신앙상담을 한다며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그의 기구한 삶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손수레라도 사서 일하고 싶다며 5만 원만 보태주면 백골난망이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선뜻 10만 원을 주었다. 당시 보좌신부였던 나의 수입에 비하면 과한 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창 모임에 갔는데 한 동창 신부의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였다. 그러자 다른 동창 하나도 그 사람이 찾아와 돈을 주었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에게 속은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 후 난 반포본당 보좌로 발령을 받았는데 며칠 후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전에 나에게 거짓말로 돈을 가져간 그 사람이었다. “지난번 수유동에서 우리 봤지요? 생각 안 나요?” 그러자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네, 신부님, 제가 그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라며 인사를 한 후 줄행랑을 쳤다. 그 사람 뒤에다 “인사이동이 난 주보 좀 보세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끔 그의 순발력(?)과 연기력에 감탄하곤 한다. 성경에서는 사기꾼, 모사꾼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사악의 아들 야곱이 있다. 야곱이 사기꾼인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는 논쟁은 끝장 토론을 해도 쉽게 끝나지 않을 사안이다. 야곱은 양쪽 면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기꾼의 면모도 있지만 야곱에게는 대단한 열정과 끈기가 있었다. 야곱은 탄생부터 운명이 기구했다. 어머니 레베카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쌍둥이로 형 에사우의 발목을 잡고 태어났다. 야곱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성조가 되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삶을 살았다. 야곱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처럼 세속적인 삶에도 열정적이고 투쟁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랑에도 열정적이었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처세술도 지닌 인물이었다. 야곱은 형 에사우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죽을 위험에 처하자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야반도주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고생하며 에사우에 대한 두려움 속에 노동에 시달리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20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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