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봉헌한 과부

최용택
입력일 2025-07-29 16:24:16 수정일 2025-07-29 16:24:16 발행일 2025-08-03 제 3453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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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츠 둘링거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1826)

사제품을 받고 처음으로 보좌신부 생활을 시작한 곳은 서울대교구 수유동본당이었다. 본당에 부임하자마자 봉성체 환자들을 방문하는 일을 맡았다. 봉성체를 나가는 날은 환자 수가 많아 점심을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고, 경험이 부족한 나는 그저 바쁘게 허둥대기만 하며 마음만 조급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오후가 되면 몸이 무척 피곤해졌다. 그럼에도 막상 환자들을 만나면 이상하게도 그 사소한 고통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사제를 맞이하는 환자들의 천진한 미소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방문하던 환자 중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분이 있다. 중풍으로 십여 년 이상 누워 계시던 한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몰골은 초췌하셨고, 말씀은 느리지만 또렷하게 하셨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집안에서는 할머니만 세례를 받으셨고, 이사를 거듭하면서 몇 년 동안 미사는 물론 신자들과의 교류도 끊긴 상태였다. 다행히 구역장님이 그 사정을 알게 되어 성당과 연락이 닿았다.

십여 년 만에 영성체를 모신 할머니는 서럽게 울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떠나려는 나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신부님, 다음에 오실 때 요구르트 한 개만 사다 주세요. 먹고 싶은데, 자주 이불에 실례를 한다고 가족들이 잘 사다 주질 않아요.”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나는 한 달에 한 번 봉성체를 갈 때마다 요구르트를 하나씩 몰래 사다 드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그것을 단숨에 드셨다.

어느 날, 할머니는 내게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으셨다. 그리고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오천 원짜리 두 장을 내 손에 쥐여 주셨다. 나는 깜짝 놀라 “왜 이 돈을 저에게 주십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제 나에겐 이게 필요 없어요. 신부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불쌍한 사람에게 써 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성경에 보면, 가난한 과부가 와서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자 예수님께서는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 12,43)고 칭찬하셨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하느님은 겉모습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전 재산인 렙톤 두 닢을 기쁘게 봉헌한 것은, 자신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과부는 가장 적은 금액을 봉헌했지만, 그의 마음에서는 ‘가장 많은 것’을 하느님께 드린 것이다.

인생의 선배들은 말한다. “세상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물질, 시간, 재능 등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로마 11,36 참조)

이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많은 이가 말한다. “나중에 돈을 더 벌면 헌금도 더 많이 하고 봉사도 제대로 하겠다.” 하지만 경험상, 그런 시간이 쉽게 오지는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우리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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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