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 민화위 청년 평화활동팀 ‘파라파쳄’ 최에스탤 대표

“평화는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내적인 평화, 가정과 이웃 간 평화, 사회적 평화 등 여러 의미를 갖는 포괄적인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 특히 청년들에게 평화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요즘 갈등과 분열이 너무나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소속으로 최근 창단된 청년 평화활동팀 ‘파라파쳄(para pacem)’ 최에스텔(에스텔) 초대 대표는 광화문광장에서 언제나 보게 되는 진보와 보수의 분열, 노년층과 청년층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호 불신과 불협화음을 한국 사회를 평화롭지 못하는 만드는 원인으로 꼽았다. 최에스텔 대표를 비롯해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모여 ‘파라파쳄’을 조직한 취지는 단체의 명칭처럼 ‘평화를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제 경우 2025년에 서울대교구 민화위가 주최한 ‘세계 평화의 바람 DMZ 국제청년평화순례’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평화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매주 화요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 관심을 같이하는 청년들과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평화에 대한 시야와 인식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최 대표는 세계 평화의 바람 참가자들과 후속 모임을 갖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 청년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발견했고, 서울대교구 민화위 사무국장 이종화(프란치스코) 신부도 청년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면서 ‘파라파쳄’은 창립될 수 있었다. 최 대표는 한국 사회가 회복해야 할 평화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가 가까운 곳에서부터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는 평화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가 서로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폭력 대화’부터 생활화했으면 합니다. 한국인들의 언어 습관에 알게 모르게 폭력성이 숨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파라파쳄 팀원들은 2월부터 월례 모임을 시작하고, 평화에 관한 폭넓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최에스텔 대표는 파라파쳄 팀원들과 서로 도우며 성장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서울대교구 민화위 부위원장 정수용(이냐시오) 신부님, ‘파라파쳄’ 지도사제 역할을 하시는 이종화 신부님을 모시고 앞으로 꾸준히 평화와 관련된 성경 말씀을 묵상하거나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가 어떤 영성을 가져야 하는지 배우려고 합니다. 평화와 관련된 영화와 연극 관람, 독서 토론, 특강 개최, 도보 순례도 하고 북한 지역 천주교 역사와 본당들에 관한 공부도 팀원들과 함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1면

[인터뷰] 브뤼기에르 주교 고향으로 선교 떠나는 서울대교구 이준 신부

“브뤼기에르 주교님처럼 신자들에게 공감하는 사제로, 또 기도하는 사제로 사목하고 싶습니다.” 190년 전 선교사로 조선을 향했던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출신 교구에 서울대교구 사제가 선교사로 파견됐다. 2월 20일 해외 선교 사제 파견미사를 통해 프랑스 카르카손-나르본교구로 파견된 이준(바오로) 신부는 “(현지에는) 젊은 사제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젊은 감각으로 사목에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주어진 역할에 묵묵히 함께하고 공감하는 선교를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프랑스에 가기 전에 유럽 성당은 텅 비어 있고 어르신밖에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막상 현지에는 정말 많은 신자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교회를 통해 기도하는 자세, 영성 생활을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조선대목구 설립 당시에는 박해받는 조선을 위해 선교 사제를 파견하던 프랑스교회였지만, 오늘날에는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성소자 감소로 오히려 선교 사제를 필요로 하는 교회가 됐다. 이 신부가 파견되는 카르카손-나르본교구도 많은 외국 선교 사제를 통해 사목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6년 동안 프랑스 유학을 하며 이 신부가 바라본 프랑스교회는 여전히 역동적인 힘을 지닌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검소하고 겸손한 사제들의 모습, 생활에 배어 있는 기도하는 자세 등은 지금 이 신부의 사제 생활에도 영향을 주는 보물과도 같은 경험이다. 특히 이번 선교를 준비하면서 접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신앙도 이번 선교에 그리고 앞으로의 사제 생활에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신부는 “사제로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도 있었는데,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생애를 공부하면서 더 열심히 사제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아울러 “프랑스 신자들에게도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생트크루아 앙 나르보네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하게 된 이 신부는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무엇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전구를 많이 청해 주시길” 요청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시면 너무나 흐뭇해하실 겁니다. 그분이 꿈꾸셨던 모습으로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주교님의 전구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또 프랑스로 순례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보다 우리가 이미 190년 전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받았던 그 신앙의 보물들, 그 기쁨을 많이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21면

[인터뷰]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첫 평신도 총무 유혜숙 교수

지난 2월 10일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전국위원회 중 하나인 복음선교위원회 총무에 대구가톨릭대학교 유혜숙(안나) 교수를 임명했다. 전국위원회 총무는 한국교회 차원의 주요 사목 과제를 다루는 핵심 실무 자리로, 그동안 사제가 담당해 왔다. 일부 소위원회에서 평신도나 수도자가 총무를 맡은 적은 있었지만, 전국위원회 총무에 평신도가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소공동체소위원회 총무를 9년 동안 역임한 경험이 있지만 전국위원회 차원의 첫 평신도 총무라는 점에서 남다른 무게와 두려움을 느낀다”는 유 교수는 “한국교회 복음선교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번 인사는 직책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교회 사명 수행에 있어 다양한 주체가 실제로 참여하고 책임을 나누는 시노달리타스 흐름 속에서, 그 구체적 실현이 구조적·실천적 차원에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로 받아들여진다. 유 교수는 “시노드 과정에서도 평신도와 여성의 참여 확대는 단순한 기능적 보완이나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식별을 위한 공동 참여라는 차원에서 교회의 식별 능력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로 이해됐다”며 “이런 맥락에서 이번 임명은 하느님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친교적 교회론의 흐름, 시노달리타스의 한 여정에 자리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복음선교 방안을 연구 모색하고 구현하는 복음선교위원회 업무와 관련 그는 “모든 활동의 과제나 방향은 위원장 주교님, 그리고 위원분들과 협의해 결정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특히 평신도가 일상 안에서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선교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급속한 세속화, 개인화, 관계 단절, 의미 상실이라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선교는 단순한 신앙 전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치와 존엄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유 교수는 “「사목헌장」에서 교회가 세상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함께 나눠야한다고 제시하듯, 복음선교 역시 세상과 연대하는 위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며, “따라서 오늘의 선교 언어는 동반의 언어여야 하고, ‘삶의 증거’로 이뤄지는 ‘복음의 체현’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여성 평신도 신학자로서 주교회의와 여러 교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조처럼, 교회는 성령 안에서 서로 경청하고 식별하는 여정 위에 있는 공동체”라며, “이런 경청과 공동 책임의 문화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뿌리내리는 데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는 기대를 표했다.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21면

[인터뷰] 김진택 한국평단협 제27대 회장

“교회를 섬기고 평신도들이 각자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낮은 자세로 헌신하겠습니다.” 2월 7일 열린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이하 한국평단협) 정기총회에서 제27대 회장에 선임된 김진택 회장(토마스 아퀴나스·서울대교구 연희동본당)은 “각 단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한 책무라 생각한다”며 “행정보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 듣는 회장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서 우리 평신도들은 한국교회의 얼굴 그 자체가 됩니다. 한국평단협은 평신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환대와 연대의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실 수 있도록 중간자 역할에 집중하려 합니다.” 김 회장은 1년 앞으로 다가온 서울 WYD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진력할 뜻을 비쳤다. 그는 “한국평단협은 각 교구의 다양한 평신도사도직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평신도들이 WYD 준비 과정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며 “모든 평신도가 환대의 주체가 돼주길” 당부했다. 김 회장이 WYD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냉담신자 회두다. 김 회장은 “올해나 내년은 WYD 효과로 미사 참례율이 다소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 또 10년 후의 성당은 어떤 풍경일까를 생각해 본다”며 “한국평단협을 시작으로 냉담신자 회두 활동이 전국 교구로 퍼져 더 많은 신자가 미사에 참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앙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에 맡겨진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 회장은 “시노달리타스는 말하기보다 먼저 듣고, 판단보다는 공감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시노드 이행 단계에 들어선 한국교회에 대해 ‘경청과 공감’의 태도를 특히 강조했다. 그는 “아직 교회 안에 경청하는 문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한국평단협은 시노달리타스 확산을 위해 체계화된 교육을 마련해 각 교구와 본당에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앙인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작은 사랑과 책임을 실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작은 증거가 쌓여 평신도들의 삶 자체가 시노드 교회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한 사람의 평신도로서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0면

[인터뷰] 대구대교구 젊은이사목대리구 초대 교구장대리 장병배 신부

“언제부턴가 교회는 ‘젊은이들이 떠났다’고 하지만, 떠난 것이 아니라 오지 못하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가서’ 도와줄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대구대교구 젊은이사목대리구 초대 교구장대리 장병배(베드로) 신부는 젊은이들이 교회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현실을 깨닫고, 찾아가 그들과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언젠가는 그들이 돌아가고 싶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본당 신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당 신부님들은 젊은이사목에만 집중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언젠가는 본당 공동체라는 울타리로 돌아와 영적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장 신부는 본당 사제로 사목할 때 공동체를 벗어나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직접 찾아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교적 내 젊은이 가운데 학업이나 직장 등 이유로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 미사를 집전했던 경험이다. 장 신부는 이런 경험으로 젊은이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현실에 조금이나마 공감해 보자는 취지에서, 대리구 사제단은 도심에 작은 숙소를 마련해 언제든지 그들을 찾아갈 채비를 갖췄다. 또 젊은이사목의 방향 설정을 위해 ‘연구기획팀’을 신설했다. 연구기획팀은 현재의 젊은이 모습에만 집중할 뿐 아니라, 한때 젊은이였던 지금 기성세대의 신앙생활도 추적해 현재와 미래의 사목 방향 설정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계획이다. 아울러 도심에 있는 계산문화관을 교구 젊은이센터로 리모델링해 젊은이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결국은 하느님과 젊은이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우리 역할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을 깨닫도록, ‘영(Young)’한 이들을 위해 모두 비운 ‘영(0)’의 상태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영대리구’가 되겠습니다.”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0면

[인터뷰] 조정실 의정부교구 평협 첫 여성 회장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1월 31일 열린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제8차 정기총회에서 제4대 회장에 조정실(소피아·마두동본당) 씨가 임명됐다. 교구 평협회장에 여성이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조 회장은 “교회 직무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나누는 것은 사실 이미 지난 얘기”라며 “교구의 평신도 대표로서 주교님, 신부님들과 평신도 간 ‘부드러운 교집합’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조 회장은 네 자녀를 돌보던 10여 년 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큰 수술을 받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은 그는 감사 기도를 드리며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작은 역할이라도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회복 후 조 회장은 가정에 집중하느라 다소 소홀했던 본당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총구역장과 본당 첫 여성 총회장직을 맡아 봉사하게 됐다. “막상 하느님과 약속은 했지만, 총구역장과 총회장 직책은 사실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하지만 후유증이 흔한 뇌출혈을 겪고도 건강을 회복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때부터 봉사에 전념해 왔다. “본당에서 활동하다 보니 느꼈어요. 내가 지금까지 너무 내 일만 하며 살았구나, 이웃 사랑에 소홀했었구나” 교구 평협 회장직을 고심 끝에 수락한 것도 그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결정까지는 어느 때보다 긴 고민이 뒤따랐다. 교구장 손희송(베네딕토) 주교를 비롯해 본당 사제와 교우들, 가족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고, 모두가 격려와 응원의 뜻을 전했다. 특히 생사의 순간을 곁에서 지켜본 남편이 큰 힘이 됐다. 조 회장은 “의정부교구는 신부님들은 물론이고 교우들도 진취적이고 활발한, 한마디로 ‘젊은 교구’”라며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렇게 좋은 교구의 협력자로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회장직은 하느님께서 뽑으신 것이므로, 하느님이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교구장 주교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협력자의 마음으로 봉사해달라 당부하신 주교님의 응원을 받으며 어떤 일이든 혼자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든든합니다.” 마지막으로 조 회장은 “요즘 교회가 줄곧 강조하는 것이 바로 ‘시노달리타스 정신’”이라며 “의정부교구도 모두가 주체가 되어 하나의 공동체로, 물 흐르듯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서로 귀를 기울이고 낮은 자세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비록 힘들지만 중요한 일이고, 이게 진정한 시노달리타스가 아닐지 생각해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직무에 임하겠습니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1면

[인터뷰] 김보성 가톨릭농민회 제30대 회장

“'신앙과 생명의 길'이라는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이 더욱 깊이 뿌리 내리고, 다음 세대가 이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습니다.” 1월 29일 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열린 가톨릭농민회 제56차 정기총회에서 제30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보성(마르티노·전주교구 순창본당) 씨가 새 회장 임명 후 밝힌 포부다. 서울에서 태어나 농사와는 인연이 없던 김 회장은 2001년 전라북도 순창으로 귀촌해 고사리 농사를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막막하던 중, 본당 주보를 통해 가톨릭농민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신앙 안에서 양심껏 농사짓고, 그렇게 수확한 생명 농산물을 신자들과 나눈다는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에 마음이 끌려 바로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선배 농부들에게 생명 농업의 의미를 배우고 실천하며 가톨릭농민의 일원으로 자리 잡은 그는 이후 다양한 생명 농업 관련 단체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가톨릭농민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에서 감사로, 전국친환경농업협회에서 이사로 활동하며 땅을 살리는 농부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지난 4년간 가톨릭농민회 부회장으로 활동한 김 회장은, 고령화로 인한 농촌 공동화와 대농(大農) 위주의 정부 정책 등 가톨릭농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정부의 농업 정책은 대농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큰 규모로 농사짓기 어려운 유기농 농가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농촌의 현실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톨릭농민회는 농민운동과 물류 유통을 함께하다 보니, 자칫 농산물 판매에만 집중하게 되어 본래의 농민운동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내외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회 활동을 강화하고,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어 “가톨릭농민회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다른 농민단체나 북한 농민들과의 연대 자리도 만들고 싶다”며 “청년 농업인과 여성 농업인 육성을 위해서도 힘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끝으로, 기후위기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농업’이라는 가톨릭농민회의 정신을 더욱 충실히 실현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1면

[인터뷰]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장 재임명된 정연정 몬시뇰

로마에는 80여 개의 교황청립 신학원이 있다. 그 가운데 로마한인신학원(Pontificio Collegio Coreano)은 필리핀신학원과 함께 아시아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원으로 꼽힌다. 보편교회의 중심인 로마에서 한국교회 성직자들의 고등교육을 돕는 동시에, 한국 주교회의의 로마 연락사무소 역할도 맡고 있다. 로마교구 안에 거주하는 한인 신자들의 사목을 담당하는 본당이기도 하다. 지난 1월 27일 교황청 복음화부 교령을 통해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 원장에 재임명된 정연정 몬시뇰(티모테오·서울대교구)은 “로마한인신학원의 위상에 걸맞게 보편교회와 한국교회를 잇는 가교로서 성심을 다해 원장직을 수행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정 몬시뇰은 로마한인신학원을 “로마에 거주하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 ‘고향집’ 같은 장소”라고 표현했다. 그는 “공동체가 한데 모여 시공간을 넘어 신앙의 친교를 나누는 곳”이라며 “이러한 만남과 친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화의 사명을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1월 25일 교회법적 설립 승인을 받은 로마한인신학원은 올해로 설립 26주년을 맞았다. 정 몬시뇰은 “설립 당시와 비교하면 신학원에 거주하는 사제 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출신 국가도 다양해졌다”며 “현재는 여섯 개 나라에서 온 사제들이 함께 살아가는 국제적 공동체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세계교회 안에서 달라진 한국교회의 위상과도 맞닿아 있다. 정 몬시뇰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님을 비롯해 교황청 각 부서에서 활동하는 한국교회 성직자와 평신도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고, 여러 국제 수도회 총장들도 배출됐다”며,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는 더 이상 받기만 하던 변방의 작은 교회가 아니라, 나눔을 실천하는 지역 교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로마한인신학원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 몬시뇰은 “한국 주교회의의 로마 연락사무소로서,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황청 부서와의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로마 코디네이터(Rome Coordinator)로 활동 중인 그는 “SNS 등 디지털 소통이 급속히 발달했지만, 보편교회의 중심인 로마와 직접 연계하는 실제적이고 신속한 소통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이곳이 교황청을 방문하는 대회 준비 관계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임기 목표에 관해 정 몬시뇰은 “로마한인신학원은 이제 50주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며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를 알리는 국제적 친교의 장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1면

[인터뷰] 한국교회 유일 농아 수도자 인보 성체 수도회 심재기 수녀

“나는 듣지 못해요. 하지만 더 많은 걸 들을 수 있어요. 나와 하느님은 서로 단 한 번도 침묵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우리 사이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가요. ‘너만이 나를 들을 수 있어’, ‘그런 너를 내가 많이 사랑해’라고요….” 언어라고 하면 흔히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 떠올린다. 그렇기에 침묵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한국교회 유일의 농아(聾啞) 수도자 심재기 수녀(루치아·91·인보 성체 수도회)는 ‘손짓의 언어’인 수어로 언어와 침묵의 본질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심 수녀는 “진짜 침묵은 나를 비워내어 상대로 가득 채우는 사랑이며, 진짜 언어는 상대를 소외시키지 않고 말을 건네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소통의 중심이 청인에게만 맞춰진 교회 안에서 스스로 입교해 57년간 수도자로 살아온 그의 삶과 영성은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1934년 강원도 강릉. 듣고 말할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끊임없이 심 수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어조차 배울 기회가 없어 가족과도 소통이 어려웠던 그는 “오래전부터 나를 부르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그 목마름을 따라, 나를 시집보내려는 부모를 훌쩍 떠났다”고 고백했다. 1956년, 심 수녀는 고(故) 김학순(악셀) 수녀를 통해 서울 대신학교에서 고(故) 한공렬(베드로) 대주교를 만나게 된다. 당시 대신학교 제4대 학장이었던 한 대주교는 식복사로 일하던 그의 수도 성소를 향한 열망을 알아보고 입회를 추천했고, 인보 성체 수도회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다. 1969년, 마침내 심 수녀는 정식으로 수도회에 입회했다. 청인들 사이에 홀로 농아로 살아야 했던 그는 늘 외로움을 안고 살았다. 늦은 나이에 배웠기에 표준 수어가 여전히 서툴렀고, 동료들과는 간단한 손짓으로만 소통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그분께서 끊임없이 보내주셨다”는 심 수녀의 회상대로, 하느님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바늘과 실’ 같았던 고(故) 신봉립(안토니아) 수녀는 2018년 선종하기까지 단짝이 돼 수도복 바느질 소임을 40년 이상 함께했다. 심 수녀를 위해 둘만의 수신호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둘만이 있는 바느질 방에서조차 단 한 번도 얼굴을 붉힌 적 없이 늘 웃으며 격려했다. 동료 수녀들도 두 사람의 수신호를 익히고 다 같이 수어를 배우는 등 다정하게 동참했다. 신 수녀 선종 후에도 하느님은 여전히 심 수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지금도 심 수녀에게는, 수어를 하는 전미숙 수녀(소화데레사·인보 성체 수도회 서울 수도원 원장)와 평신도 봉사자 한 명이 단짝이 돼 보살피고 함께 기도한다. 심 수녀는 51년간의 바느질 소임 동안 남들이 귀찮아하는 잔손질, 신경이 더 쓰이는 끝마무리 손질까지 기쁘고 정성스럽게 수도복을 만들어 ‘나를 비우고 상대로 채우는 침묵’의 모범을 가족 수녀들에게 보였다. 지금도 마른 행주질, 기도 시간 촛불 켜기 등 공동체를 소소하게 챙기는 노후 사도직을 해내는 심 수녀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언어’, 수어로 진심을 전한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오직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대요. 나를 수도자로 불러주신 하느님, 그리고 수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받아주신 수도회와 수녀님들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1면

[인터뷰] 봉사 위해 방한한 이탈리아 라파엘라 스비사 씨

“밥을 먹으러 오는 이들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놀라움이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안나의집 봉사 경험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심리 상담사로 일하는 라파엘라 스비사(Raffaella Sbisà·56) 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약 4주간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 노숙인 급식소에서 봉사했다. 2024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인 그에게 이번 방한의 주된 목적은 ‘봉사’였다.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뒤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빈첸시오) 신부에게 연락했고, 봉사자로 함께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과성 허혈 발작을 겪은 뒤 언어 기능에 이상이 생겨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언어 치료의 일환으로 의미 없는 문장을 반복해 외우는 훈련을 권했다. 그 전환점은 뜻밖에도 한국 음악이었다. 우연히 들은 노래에서 마음과 머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변화를 느꼈고, 이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인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문화와 음식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2024년 4월 처음 한국을 찾았을 당시, 그는 서울의 한 무료 급식소 앞에서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을 보게 됐다. “이탈리아에서도 알코올·약물 중독자들의 자활 프로그램을 돕는 등 오랫동안 봉사를 해왔지만, 그 장면은 제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다음에 한국에 오면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라파엘라 씨는 안나의집 첫인상에 대해 “노숙인들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는 분위기”를 꼽으며, “모든 과정이 매우 체계적인 점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은 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식사 중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려던 할머니에게 한 봉사자가 다가가 조용히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넸던 순간이다. “원칙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음에도, 할머니의 처지와 마음에 다가가는 봉사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습니다.” 그는 “이번 경험을 통해 물질적 결핍보다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외면, 소외가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을 느꼈다”며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회 안에서 져야 할 책임임을 거듭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라파엘라 씨는 조만간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며, “다음에도 의미 있는 봉사 현장에서 한국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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