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청년 자립 지원 쉐어하우스’로 아파트 기증한 김춘미 씨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가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대표 김하종 빈첸시오 신부, 이하 안나의집)의 청년 자립 지원 쉐어하우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안나의집은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며, 안정된 일상과 독립을 대비할 수 있도록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은 안나의집이 경기도 곳곳에 운영하는 ‘쉐어하우스’ 가운데 열 번째 시설로,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김춘미(예수의 성녀 데레사·82·수원교구 분당구미동본당) 씨의 기증으로 가능해졌다. “20여 년을 남편과 함께 살아온 집이에요. 근처 호수공원을 자주 산책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집을 처분해 노후 자금으로 쓸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이곳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김 씨가 증여한 아파트는 실면적 148㎡(45평) 이상으로, 방 네 개와 넓은 거실 등을 갖췄다. 이미 두 명의 청년이 입주해 직장생활을 하며 자립을 준비 중이다. 안나의집은 현재 단기쉼터, 중장기 쉼터, 그룹홈, 자립지원관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집이 있는 청년들이 한 달에 두 번 방문해 상담과 지원을 받는 형태, 집이 없는 청년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쉐어하우스’ 형태 등을 운영한다. 김 씨는 오래 전부터 안나의집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정기 후원도 이어왔다. 실버타운으로 이주하면서, 김하종 신부를 직접 만나 아파트 기증 의사를 밝혔다. “오랫동안 위기 청소년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언젠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안나의집 홈페이지를 보면서 신부님이 청소년과 노숙인을 돌보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고,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깝다’, ‘아쉽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김 씨는 "그런 섭섭함보다는 ‘내가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을 했구나 라는 기쁨이 더 크다”며 “신부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고, 남편도 ’복 받을 거야'라는 말로 응원해 줬다”고 전했다. ‘쉐어하우스’는 김 씨의 세례명을 딴 ‘대 데레사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거실에 작은 팻말도 걸렸다. “예전 십자가와 성모상을 걸어두었던 곳에 자리한 팻말을 보니 참 기뻤다”는 그는 “하느님께서 ‘나누고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는 자부심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어떤 청년이 들어와 살게 되든, 이 집에서 잘 지내며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누구든 행복하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1면

[인터뷰] 노숙인 위한 목욕탕 ‘우리물터’서 25년간 봉사한 홍순용·조재순 부부

“봉사를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물터에서 봉사하며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서울대교구 남대문시장준본당 ‘우리물터’에서 25년 간 봉사해 온 홍순용(이냐시오)·조재순(클라라) 부부는 “노숙인 이용자들과 함께한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지난 5월 21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명의 감사패를 받았다. 우리물터는 노숙인, 쪽방촌 거주자 등이 목욕·빨래를 할 수 있도록 본당이 마련한 공간이다. 본당 초대 사목회장이었던 홍 씨는 본당 초대주임 이성원(베드로) 신부와 함께 우리물터 설립에 앞장섰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로 노숙인이 급증한 때였다. 성당 완공 후 “내적 성전을 세우자”는 이 신부의 제안에 홍 씨는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을 직접 만나 식사나 방한도구 등을 전하며 노숙인을 위해 봉사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도움은 큰 힘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고, 모임을 구성해 지속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해 마련한 곳이 우리물터다. “단 한 두 사람이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물터의 문을 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봉사합니다. 굉장히 어렵고 막막한 순간에도 일이 해결되는 걸 보며 ‘이건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남대문시장 신자들이 좋은 뜻으로 설립한 곳이었지만,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많은 노숙인이 모여들어 민원이 들어오고, 후원금과 봉사자 부족으로 운영 중단을 고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물터에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왔다. 홍 씨 개인적으로도 가게 운영이 어려운 시기도 있었고, 암 투병도 했다. 그래도 그는 힘 닿는 대로 매주, 또 우리물터에 문제가 생기면 가게를 비우고서라도 찾아 봉사했다. 홍 씨가 그렇게 봉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준 것이 아내 조 씨였다. 홍 씨 대신 가게를 지켜야했기에 우리물터 현장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조 씨는 홍 씨가 봉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런 노고에 감사패도 함께 받았다. 조 씨는 “처음에는 세상일은 뒷전으로 하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온전히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라며 “노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잘 대접하려는 남편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이 아들을 얼마나 예쁘게 생각하실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용자들이 가족 같다는 느낌입니다. 힘들었던 순간들도 이용자들과 함께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봉사하면서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은, 참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1면

[인터뷰] 프라도 수녀회 전 국제총장 마리 조 바리에르 수녀

프라도 수녀회 전 국제총장 마리 조 바리에르(Marie-Jo Barrier) 수녀가 프라도 한국 진출 50주년 기념 행사 참석을 위해 5월 24일부터 6월 9일까지 방한했다. 프랑스인 바리에르 수녀는 프라도 한국 진출 직후인 1978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하며 프라도 영성을 널리 전파하고 프라도 수녀회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한국교회 ‘노동사목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고(故) 올리비에 드 베랑제 주교(한국명 오영진)가 한국 프라도 사제회 발전의 선구자였다면, 바리에르 수녀는 한국 프라도 수녀회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바리에르 수녀는 “한국 프라도가 ‘파견된 고장 사람들의 생활 조건,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 그들의 기쁨과 갈망을 함께 나누는’(프라도 수녀회 회헌 202항) 영성을 한결같이 지켜왔기에 50주년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서 함께했다는 게 저희 사도직의 특별함이에요. 우리는 설립 초기부터 각자 공장 일꾼, 파출부, 비닐하우스와 밭에서 땀 흘리는 삯일꾼이 되어 노동자들과 가난한 농촌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생활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내어놓고 같은 인간이 되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요.” 프라도 수녀회는 사제들과 달리 수도자로서 공동생활을 한다. 바리에르 수녀는 “그래서 오히려 제약 없이 가난한 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동체(수녀회)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덕에, 구성원은 바뀌더라도 가난한 이들을 도중에 두고 떠날 일이 없었다. 덕분에 한국 프라도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과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었다. 바리에르 수녀는 “마치 ‘옆집 아줌마’처럼 그들과 밀착해야만 가능한 사도직들을 펼쳤다”고 회고했다. 1994년에는 장애나 생활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파출부’ 활동에 나섰다. 같은 해 서울의 낙후된 마을에서 시작한 ‘맛있는 것 해 먹는 모임’도 가난과 가정불화 등으로 방치된 청소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몸과 마음의 굶주림 모두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회적 안전망이었다. 바리에르 수녀는 “가난한 이들이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만나 꽃처럼 활짝 피어날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5월 2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린 50주년 기념 미사에서 바리에르 수녀를 감동시킨 것도 성당을 가득 채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프라도 수녀회 회원들과 긴 세월 동고동락했던 노동자와 아이들, 가난과 아픔을 짊어진 이들이었다. “그날 한 자매님의 증언이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와요. ‘계속 가난한 삶을 살더라도, 가난 속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제가 계속 가난한 사람으로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고백이었죠.” 바리에르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주체”라며 “그런 복음의 사도들과 일치해 살아가는 소중한 영성을 프라도 사제회와 프라도 수녀회, 프라도 여성 재속회 등 한국 프라도회 모든 가족이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1면

[인터뷰] 대만 ‘나프로 임신법’ 전문가, 아를렌 테 수녀

“나프로(NaPro) 임신법은 본연의 가임력이 회복되도록 치료를 하죠. 불임의 근본 원인은 치료 못하고 임신을 그저 성공률에 맡기는 인공수정 시술과는 달라요.” 대만 티엔추기경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나프로 임신법 전문가 아를렌 테 수녀는 5월 24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성의회관에서 개최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회칙 「생명의 복음」과 회칙이 의료 및 출산에 미치는 영향’ 주제 발표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나프로 임신법은 ‘자연적인 가임력 기술’(Natural Procreative Technology)의 영문 약자로,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건강한 자연임신 가임력을 극대화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통한 임신율이 26%가 넘은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주기법을 활용하기에 당장 빠른 결과를 보이는 인공수정에 비해 현실적으로 불편한 점이 존재한다. 테 수녀는 “이런 불편함을 극복하려 하기보다 부부가 서로 도우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어떤 자녀가 주어지든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부부의 친밀감을 두텁게 하고 하느님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프로 임신법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테 수녀는 “나프로 임신법과 자연주기법의 긍정적인 부분을 사목적 관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라며 “신학교 과정 도입이나 강론에서의 언급, 교리 문답, 콘퍼런스 개최 등을 통한 적극 홍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SNS나 웹사이트를 구축해 소외계층이나 농촌 사회에도 활발히 알릴 수 있다”며 “무엇보다 관련 책자를 여러 언어로 번역해서 해당 문화에 적합한 범위 안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생명을 낳는 것이 성스러운 것임을 알려야 해요. 나프로 임신법이야말로 인간 생명의 존엄과 결혼의 신성성이라는 본질과 잘 맞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목도하는 기쁨을 누리세요.”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1면

[인터뷰]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 활동 마친 구중서 문학평론가

1998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이후 27년간 운영과 심사에 참여해 온 구중서(베네딕토) 문학평론가가 운영위원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가톨릭신문사는 5월 22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열린 제28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에 앞서 한국 가톨릭문학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기리며 구중서 평론가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구중서 평론가는 “오랫동안 여러 글을 기고하며 교류해 온 가톨릭신문은 친근하고 안방처럼 편안한 공간인데, 임무를 내려놓는 자리에서 두터운 정을 나눠 주시니 과분하고 감사할 따름”이라며 “행복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내려선다”는 소회를 밝혔다. “1998년 당시 신달자 시인이 가톨릭신문사에 다녀와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소식을 전했습니다. 구상 시인, 신달자 시인과 함께 저도 운영·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고 하더군요.”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은 뜻밖이었다. 가톨릭교회가 문학상이라는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 문단과 직접 호흡하려 한 시도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신자인 정지용 시인은 가톨릭잡지 「가톨릭청년」 편집을 도우며 문단의 9인회 그룹을 초청해 그들의 작품을 싣는 등 당시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거점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제정하고 상금을 수여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본격적이고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기꺼이 의욕을 내서 운영에 참여했고, 우선 문단 중심부의 대표적 계층에 문학상을 알리며 소통했다. 이렇게 당시를 회상한 그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수상 대상에서 가톨릭 신자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문학성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현대 교회는 이미 폐쇄적인 교조주의를 벗어나 있었기에 문단과의 소통도 열린 시각으로 가능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긴 기준이나 원칙은 “도식적인 잣대나 기준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가톨릭교회의 양식과 품격이 지켜지도록 한 것"이었다. “가령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나타난, 이른바 순수문학 계열의 퇴영적 감상이나 허무 의식 또는 서구적 분석주의 내지 해체 의식에 기반한 난해한 문학 경향에는 거리를 뒀습니다.” 그는 “문단의 기존 인습인 권위 의식에도 추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원로 김남조 시인이 제17회 수상자로, 최다 독자층을 지닌 이해인 수녀가 제26회 수상자로 선정된 사례는 심사진의 잠재적 주체 의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는 “문학예술은 현대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고, 보다 나은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이라며,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회가 교회의 사목 현장과 더욱 긴밀히 연결되어 가톨릭문학의 본질을 함께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신자 문학인들의 소명 의식도 강조했다. “1960년대 이래 문학의 사회 참여와 리얼리즘을 지향한 문학평론가로서, 사회 참여는 단순한 이익의 쟁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적 역할 분담이며 이는 현대 가톨릭 신앙과 상통한다는 것을 내면적 가치관으로 지켜왔다”며 “앞으로 신앙을 지닌 문학인들은 보편적 가치를 심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문학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역임한 구중서 평론가는 다수의 문학비평서와 시조집 외에도 「김수환 추기경 평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용서하세요」, 「한국천주교문학사」 등 교회 관련 서적을 출판했다. 1988년 요산문학상, 2020년 구상문학상 특별상, 2023년 유심작품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21면

[인터뷰] 로마 교황청립 레지나 아포스톨로룸대 교수 조셉 탐 신부

“대화는 스스로 지닌 진리와 객관화에 부족함을 느끼고 회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해요. 여기에 의지와 인내심만 있다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로마 교황청립 레지나 아포스톨로룸대학교 생명윤리학 교수 조셉 탐 신부는 5월 24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성의회관에서 열린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대화, 문화, 그리고 정체성: 회칙 「생명의 복음」 30주년을 맞이하여’를 발제하기 위해 방한했다. 탐 신부는 무엇보다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탐 신부는 “몸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지체가 있듯이 학자, 성직자, 평신도 등의 역할이 다른 것은 당연하기에 각자의 방법으로 진리를 구현하면 된다”며 “그보다 진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갈망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대화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려는 개방성이 있을 때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진리는 고난받은 그리스도처럼 박해받기도 한다”며 “변화는 문화를 통해 오기에 생명의 문화가 구축될 때까지 예수님처럼 묵묵히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탐 신부는 대화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지적 연대성’을 강조했다. 지적 연대성이란, 사랑은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조차도 존중과 겸손, 배려의 태도로 대할 것을 요구하기에 함께 대화에 나서야 함을 뜻한다. 탐 신부는 “나와 입장이 달라도 그도 여전히 인류 사회를 돕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며 “최근 레오 14세 교황님이 서로 공통의 근간을 찾고 가교를 만드는 과정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셨듯 ‘내가 진리이고 너는 틀렸다’가 아닌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의 입장을 경청하고 그 안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동의하지 않는 이들과도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진실성과 선의가 있다면 이성과 진리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 믿어요.”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21면

「찬미받으소서」 반포 10년…“가난한 이들과 지구 함께 돌봐야”

도덕신학 및 국제 개발 전문가로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보(deputy Secretary)를 역임한 아르헨티나 출신 아우구스토 잠피니-다비에스(Augusto Zampini-Davies) 신부가 5월 7일부터 16일까지 방한했다. 잠피니-다비에스 신부는 방한 동안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제시한 ‘통합적 생태론’(integral ecology)의 비전을 나눴다. 제55회 가톨릭 에코포럼에서는 「찬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 특별 강연을 맡았고, 연세대학교와 UN 사회개발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생명을 위한 대안 경제 관련 회의에도 참석해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발표했다. “회칙 139항에서 밝히듯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그동안 분절적으로 접근돼 온 사회 위기와 환경 위기가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보게 한 영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생태 파괴와 사회 불의는 어째서 불가분할까. 두 가지 모두 ▲착취하고 버리는 문화 ▲존엄성보다 이윤만 추구하는 경제 ▲연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지구를 외면하는 세계화된 무관심이라는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잠피니-다비에스 신부는 “땅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은 똑같은 상처의 양면”이라며 “모든 피조물과 교감하는 ‘돌봄’의 문화가 통합적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의 집 지구가 파괴되고 가난한 이들이 착취당하게 된 건 무한한 수요를 신격화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얻으려는 욕망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어요. 그러니 멸종 위기인 돌고래를 보호하려는 사람들,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선택이 서로 충돌한다고 볼 수 있나요? 타인, 이방인조차도 적이나 경쟁자가 아닌 형제로 대하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랑인걸요.” 잠피니-다비에스 신부는 “「찬미받으소서」가 교회 밖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문서임을 보면, 장벽 없는 돌봄의 문화는 교회와 사회 모두가 꿈꾸는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청년층과 수도자들을 주축으로 생태적 의식이 성장하는 한국교회의 독특한 목소리는 전 세계가 함께 생태적 회심을 이루는 데 톡톡히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불의가 무적은 아닙니다.’(「찬미받으소서」 74항)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한 악은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새 교황 레오 14세께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과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21면

“레지오 활동 68년째…마음에 주님 모시면 언제나 천국”

”94세라는 나이에 레지오 단장을 권유받았어요. 한사코 거절했지만 회합 시작 부분만이라도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수락했죠.” 전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 허융자(헬레나) 씨는 올 초 레지오 마리애 ‘죄인의 희망’ 쁘레시디움 단장이 됐다. 고령에도 평소 왕성한 기도와 활동을 하는 허 씨였기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허 씨는 1957년 교구 전동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시작한 레지오에서 무려 68년째 활동하며 동료 단원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건강을 염려한 의사의 소견에 따라 몇 달 전 중단하긴 했지만, 허 씨는 입교 후 매일 새벽 미사를 참례했다. 성당에 허 씨의 지정석이 있을 정도였다. 또 다리 수술로 입원했을 때를 빼고는 레지오 회합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를 방문했다가도 주 회합 참석을 위해 서둘러 집에 왔다. 이러한 근면한 활동으로 5월 17일 봉헌된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 기념 미사’에서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명의의 축복장을 받았다. 성실한 참석 비결에 대해 허 씨는 “우리는 성모님의 군단인데 어떻게 레지오를 빠질 수가 있냐”고 반문했다. 젊은 시절 하루에 묵주기도를 100단씩 바쳤던 허 씨는 지금도 70단 이상을 바치고 있다.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도 개인 한 명 한 명을 다 기억하시는 성모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허 씨는 늘 손에 쥐고 다니는 묵주에 대해 “특별히 아끼는 묵주는 없다”며 “묵주는 다 똑같이 거룩한 성모님께 기도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남편 때문에 힘들었지만 성모님께 모두 맡기며 버텼어요. 남편이 가끔 집에 올 때마다 정성을 다해 대접하니 결국 마음을 다잡고 80세에 세례와 견진까지 받았죠.” 허 씨는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며 60여 명의 입교를 도와 2014년에는 레지오 선교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건 남편 전교였다. 당시 현실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하루는 죽느냐, 사느냐 문제로 성당 성모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때 허 씨에게 ‘피에타’ 상이 떠올랐다. 허 씨는 ‘내 고통은 성모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깨달은 후 성모님께 더욱 의탁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이따금 집에 들러 이혼을 요구했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발톱을 직접 깎아주고 밥상을 극진히 차려 줬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다는 일념에서였다. 자녀들과 본당 신부·수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세례를 받은 남편은 이후 병자성사까지 받고 평안히 선종했다. 허 씨는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저는 늘 ‘지금이 천국이다’라는 말을 하며 살아요. 제 마음에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을 모시고 사니까요. 그걸 생각하면 저절로 겸손하고 조심하게 되고, 그분들 마음에 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된답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21면

[인터뷰] 신생아들 태명으로 매달 기부한 이미선 원장

목동라테라산후조리원(원장 이미선 체칠리아)은 입소한 신생아들의 태명으로 2021년 2월부터 매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본부장 오승원 이냐시오 신부, 이하 한마음한몸)에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 나눔 기업이다. 이미선 원장은 “‘내가 태어나 맨 처음 한 일이 이웃 사랑일 만큼, 나는 충만하게 사랑받는 존재이자 또 그만큼 사랑할 줄 아는 존재구나!’라는 뿌듯함을 아기에게 안겨주기 위해서”라고 꾸준한 기부 동기를 밝혔다. 생명이 깃든 아기들은, 생명이 꺼져가는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총 2550만 원의 후원금이 백혈병, 난치병 등으로 고통받는 국내 환자들의 치료비로 전해졌다. 기부를 이어온 3년여 기간 운영난 등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 번도 기부를 빠뜨린 적이 없다. 삶의 고비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은 만큼 나도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겠다는 마음에서다. “산모와 신생아는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수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소독·예방부터 하나하나 신경 쓰고 있습니다. 조리원을 운영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느님은 도움을 청하는 제 기도를 늘 들어주셨죠. 덕분에 제가 26년 동안 산후조리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마음한몸에서는 기부에 참여한 아기의 태명을 담은 감사장을 산후조리원에 매달 보내고 있다. 이 원장은 감사장을 산후조리원 안에 게시해 모두와 기쁨을 나눈다. 이 원장은 “특히 어머니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라며 “아기가 자라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이웃과의 나눔을 잊지 않고 어려움 속에도 선한 사람이길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힘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가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는 그 생명이 다른 생명과 더불어 나누며 살아갈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간직한다면 우리 사회도 서로 나누는 ‘가정’ 같은 공동체가 될 수 있겠지요.” 산모들이 마주하는 육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산후조리원에는 모유 수유 전문가와 부모들의 아기 목욕 교육을 전담하는 간호사가 상주한다.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이 원장은 “생명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받고 또 사랑하는 기쁨을 아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답한다. “엄마 뱃속도 좋았지만, 이 세상도 따뜻하고 좋은 곳임을 아기가 느끼게 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이 원장은 한 산모가 남긴 인사를 전하며 "같은 감동을 우리 산후조리원을 다녀가는 모든 아기와 산모님이 간직할 수 있도록 저는 제 소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5면

[인터뷰] 미얀마 파견 김태향 수녀, ‘지진 피해 도움 호소’

“밤이 되면 아직도 여진이 계속돼 성당 차고에서 사람들과 불안 속에 잠을 청해요. 5월이 되며 무료 식사를 제공하던 단체들도 철수해 어려움이 더 커졌죠.” 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 김태향(데레사) 수녀는 2009년부터 미얀마 만달레이 대성당 수녀원에 머물며 소임 중이었다. 지진은 3월 28일 만달레이 서북서쪽 17km 지역에서 규모 7.7 규모로 발생했다. 지진으로 사망자 3800명과 부상자 5100명, 실종자 160여 명이 발생했으며, 2000명 이상이 집을 잃고 거리나 성당, 사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 수녀가 거주하던 수녀원도 천장이 내려앉고 집기들이 부서지는 등 피해를 입어 복구가 필요했다. 만달레이 상황은 심각하다. 전기나 식수 공급은 지진 직후보다는 나아져 어느 정도 되고 있지만, 체감 온도 40℃가 넘는 무더위 속에 시신에서 나는 악취와 오염된 상하수도로 사람들은 전염병 위험에 노출돼있다. 여전히 이어지는 여진뿐 아니라 예상치 않게 내리는 폭우도 이재민들을 괴롭힌다. 김 수녀는 “함께 지내는 이들이 여진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비 때문에 한밤중에 잠자리를 옮기는 등 고된 밤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무료 급식 봉사를 하던 단체들은 장기간의 피로와 여러 어려움으로 5월이 되며 지원을 중단했다. 힌두교 사원은 자체적으로 식사를 준비해 제공하고, 성당은 직접 조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등 도움에 나서고 있지만, 이재민들의 끼니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얼마 전 지진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의 심리 치료도 시작했어요.” 육체적 돌봄뿐 아니라 정서적 지원도 시급하다. 아동심리학을 전공한 김 수녀는 이전까지 군부의 쿠테타로 난민이 된 아이들의 특수아동치료를 담당하고 있었다. 김 수녀는 이에 더해 지진이라는 큰 사건을 경험한 5~1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1시간 30분가량의 아동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참여한 60여 명은 명상과 당시 상황 회상, 감정 인식과 다독임 등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연습을 했다. 지진 현장에서 가장 힘든 점으로 김 수녀는 원조 전달 시스템의 미비를 꼽았다. “많은 분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고 있지만, 현재 미얀마 상황 속에서는 제때 온전히 전달받기 어려운 현실이라 안타깝다”고 말한 김 수녀는 자체적으로 힌두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 여성 리더들과 협력하며 구호 물품 전달이나 이재민 면담 등을 하고 있다. 함께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알리면 김 수녀가 그들에게 생필품이나 약품 비용 등을 지원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서적 안정까지 돌본다. 김 수녀는 길거리에서 당장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이재민을 걱정하며, 깊은 상처를 잎은 미얀마에 대한 관심과 기도를 청했다. “어려운 시간이지만 이 안에서 서로 돕고자 애쓰는 이들과, 힘들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 후원 계좌 국민 016701-04-028749 (재)천주교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미얀마선교)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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