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나눔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미풍 같은 사랑이 강풍 같은 힘보다 강하다는 걸 느낀다.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생필품 공급매장 ‘희망을 여는 가게’ 부평점을 찾은 12월 5일. 시설장 김정(미카엘라) 수녀와 봉사자들이 실천하는 사랑은 15평 남짓한 반지하 빌라 공간을 넘어 150명도 넘는 지원 대상자들의 고장에 두루 미쳤다. 절망했던 마음들이 희망하도록 변화시키는 기적이었다. 한 대상자는 매달 수녀와 봉사자들이 배달을 올 때마다 장문의 감사 편지를 써서 안겨주고 있다.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에도 그는 수녀와 봉사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약과와 요구르트까지 편지와 함께 쥐여줬다. “하느님의 사랑을 나도 이웃에게 나누고 싶다”며 신앙까지 되찾았다. 대상자들은 수녀와 봉사자들의 ‘어떤 물건이 필요할지 우리가 많이 생각했어요’ 하는 묵묵한 진심에 변화했다. 희망이 가슴에 와닿은 적 없었을 사람조차 스스로 희망하게 하는 힘은 이렇듯 사랑에서 나왔다. 그러니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 건 하느님(사랑)보다 힘(혐오)을 숭상하는 사람들뿐이 아닐까. 권력에 집착하는 내면은 가뭄보다도 메말라 붙지 않았을까. 12월 3일 밤 온 국민을 기습한 내란의 시발점이 된 비상계엄령의 해제를 도운 건 무장한 군인을 껴안듯 제지한 시민들, ‘나도 시민’이라는 공감으로 움직인 군인들 등 사랑의 힘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풍 같은 사랑이 사실 얼마나 강한지 서막을 목격했다. 결국 콩쥐가 팥쥐를 이기듯 사랑이 이긴다는 믿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겨울을 무찌르는 봄의 훈풍은 원치 않아도 나부끼게 마련이듯 말이다.

2024-12-15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요

서울 대학동 고시촌에 있는 독거 중장년을 위한 쉼터 ‘참 소중한...’의 센터장인 이영우(토마스) 신부의 사제관은 작은 고시원이다. 교구는 고시촌에서 떨어져 있는 편안한 사제관을 제안했으나 이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 곁에 살길 택했다. 이 신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요.” 우리는 줄곧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소외된 이들을 후원하며 나의 것을 나누기도 한다. 성당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기꺼이 소외된 이들을 위해 했던 일들이 성당 밖을 나오면 어려워지곤 한다.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는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앙생활과 무관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의 일에 목소리를 내는 사제들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신앙생활과 삶은 떨어뜨려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간추린 사회교리」는 “정의, 자유, 발전, 민족들의 관계, 평화에 관한 문제들이나 상황처럼 인간 공동체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느 것도 복음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복음과 인간의 구체적인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이 서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복음화는 완성될 수 없다. … 만일 정의와 평화로 참된 인간 발전을 증진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랑의 새 계명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66항)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사회교리는 지킬 교리, 즉 생활지침서와 같은 것이다. 그릇된 정치로 가난한 이들의 가난이 심화되고, 한 형제였던 이들이 분열되고 다투고 있는 현장에서 예수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을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질 것이다.

2024-12-08

“네 자녀이기 전에 내 자녀다”

지적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부모와 인터뷰를 하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자녀를 돌보는 것 자체도 벅차고 힘든 일이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 남겨진 자녀의 삶이 그보다 더 큰 마음의 짐이다. 누가 부모처럼 자녀들을 돌볼 수 있을까.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취재로 만난 이원명(페르페투아) 씨도 분명 그 짐이, 그 멍에가 무거운 부모였다. 그러나 이 씨는 자신이 떠난 이후 자녀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걱정이 되지 않을 리는 없었다. 예순을 넘은 그는 지적장애인 자녀를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나 돌보고 있었다.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크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씨는 자녀들로 인해 힘든 상황 중에 “기도를 하던 중 문득 ‘네 자녀이기 전에 내 자녀다’라는 말씀이 떠올랐다”며 “자녀들이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 하나만 알고 살아간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믿음 어린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는 비단 장애를 지닌 자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지원하고자 의원연구단체를 구성한 김희영(루치아) 용인시의원도 인터뷰 중 “부모로서 아이들의 인생 전체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부족함을 항상 느낀다”면서 “그래서 신앙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의원에게 세계청년대회도, 젊은이들에게 열린 성지도 우리 자녀들, 아니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일이었다. 자녀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걱정을, 그리고 그 걱정 때문에 많은 일을 하고, 또 자녀에게 많은 일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예레 1,5)고 말씀하시듯, 우리 자녀는 우리가 낳기 전에 이미 하느님께 속한 자녀라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2024-12-01

‘괜찮아’

2009년 선종한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수필가 고(故) 장영희(마리아) 서강대 교수는 첫돌을 앞두고 발병한 열병으로 1급 소아마비 진단을 받고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야 했다. 그런데도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스스로에게도 실의에 빠졌거나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늘 웃으며 ‘괜찮아’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웠다. ‘괜찮아’는 신체적인 불편함으로 성장하는 그가 숱한 어려움과 편견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다. 어릴 적 다른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놀 때 그저 자신은 목발을 세워두고 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때, 엿장수 아저씨가 깨엿 두 개를 손에 쥐여주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때 공짜 깨엿이 괜찮다는 것인지, 목발을 짚는 것이 괜찮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장 교수는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으며,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11월 16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장영희 교수 기림미사는 평소에 “유명한 학자나 역경을 이겨낸 신앙인이 아니라 그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고인의 삶을 통해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의 의미를 일깨웠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 곁의 친구와 이웃에게 ‘괜찮아’라고 먼저 건넬 수 있는 고리가 됐다. 2001년 처음 암에 걸린 후 눈을 감을 때까지 힘든 병상 생활을 했던 고인이 암 치료 중에 써낸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를 다시 펼쳤다. 글 속에서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은 누가 뭐래도 ‘천혜(天惠)의 삶’이라며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나눴던 그를 거듭 떠올려본다.

2024-11-24

함께라면 어디든 그곳이 바로

푸른 초원, 한라산, 여유로운 말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이어돈 신부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 성 이시돌 피정의 집을 찾았다. 기가 막히게 펼쳐진 풍경에 흥분해서 어디를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좋을까 장소를 물색했다. “제주도 하면 한라산이지!” 함께한 선배의 선택에 처음엔 피정의 집과 가까운 목장 안에서 저 멀리 우뚝 선 한라산을 배경으로 촬영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목장으로 들어갈 수 없어 차를 타고 이동했더니 안타깝게도 가까운 오름에 한라산이 가려져 버렸다. “그럼 목장 안에서 피정의 집을 배경으로 찍읍시다!” 우리는 목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다. 그러자 곧 말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어돈 신부는 수의사답게 익숙하면서도 친밀하게 말을 쓰다듬고 살폈다. 그렇게 한두 마리씩 접근한 말들은 내 등 뒤로도 콧김을 뿜어댔다. 처음엔 크고 낯선 동물이 다가오는 게 무서웠지만 나중이 되자 그럴 새가 없었다. 말들이 자꾸 (비싼) 카메라를 밀어대는 통에 두려움은 저 멀리 두고 손짓발짓을 해가며 카메라와 삼각대를 사수해야 했다. “도저히 안 되겠네요. 밖으로 나갑시다.” 촬영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결국 우리는 울타리를 배경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금 아쉬움을 느낀 찰나, 이어돈 신부 뒤로 어미 말과 망아지가 서로 부비며 울타리 근처에서 놀기 시작했다. 넉넉한 웃음의 이어돈 신부와 그 뒤로 예쁘게 장난치는 어미 말과 망아지라니. 이보다 더 멋진 장면이 어디 있을까? 사랑보다 멋진 배경은 없었다. ‘함께라면 어디든 그곳이 가장 근사한 장소’라는 말이 생각난 광경이었다.

2024-11-17

주거는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자리’

공공임대주택 공급문제와 관련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정책토론회에 다녀왔다. 내용을 보면 공공임대주택은 거스를 수 없는 정책의 흐름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가가 취약계층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누군가는 세금 문제를 들고나오고 누군가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빈민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도 적진 않다. 일부는 임대주택 거주민들을 비하하거나 차별한다. 빈민사목위원장 나충열 신부는 이에 대해 “보이지 않는 벽이 공공(共功)을 적(敵)으로 만들고 있다”며 “부동산이 ‘상품’이라는 인식을 가지면서 주거권이라는 권리 자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탄식했다. 주거를 인간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정부의 주택 공급도 안 좋게 본다는 말이다. 빈민사목위가 활동을 시작한 건 1987년부터다. 이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거라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최소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울부짖었는지 목격했다. 주거는 단순한 재산 증식 수단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최근 정치권에서 헌법에 ‘주거권’을 명시하는 헌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 말했듯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 마련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자리’를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정책에 지출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모습은 아쉽다. 누군가에겐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이지만 누군가에겐 절실한 삶의 안식처라는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정책의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2024-11-10

탓이 없는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느님은 내 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너무너무 많이 했어요.” 10월 23일 인천교구 노동자센터에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마련한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 간담회’. 나눔을 하던 한 희생자 어머니가 이 말과 함께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탓이 없는 지옥을 살아가는 사람의 호소라 더더욱 서글펐다. 그날 성경에서 욥의 이야기를 읽었다. 욥 또한 자기 잘못도, 하느님의 잘못도 아닌 지옥을 살았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전세사기 피해자, 임금을 빼앗긴 이주노동자, 성폭력 피해자…. 수많은 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모양만 다른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아는 것이 전부인 양 욥의 고통을 설명하려 했다. 비슷한 아픔으로 냉담 중인 지인은 “알지도 못하는 고통을 감히 설명하려 들고, 참아내야 할 과정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의 ‘말, 말, 말’ 때문에 하느님까지 미워졌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설명하려 드는 태도는, 고통에 근사한 이름을 붙이는 철학자 같을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십자가를 함께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신앙인답지는 않겠죠?” 평소 상담하는 한 신부님의 이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 신부님은 “고통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성자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서로 공감하고 편이 돼주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이유 없이 고통받고 돌아가셨다. 어떤 이유도 설명도 힘을 잃고 마는 그 절망의 심연에서, 똑같이 아프셨던 하느님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저 손을 잡아주시지 않을까. 일단 나부터, ‘공감하시는 하느님’을 닮은 신앙인이 되겠다는 마음이 강렬해졌다.

2024-11-03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거름

1976년 11월, 전남 함평군에서는 지역 특산품인 고구마가 길거리에서 썩어갔다. 당시 고구마 값이 크게 오르면서 농협 측은 수매값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고 농민들이 고구마를 팔지 않고 기다렸으나 농협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농협은 약속했던 양의 40%만 사들였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자식과 같이 키운 고구마를 모두 버려야 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타들어 갔다. 하지만 힘없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유일하게 그들의 손을 잡아준 곳이 교회였다. 광주 계림동성당에서는 당시 윤공희 대주교 주례로 기도회가 열렸고, 사제와 농민들은 농협의 태도를 규탄하고 피해보상을 촉구했다. 이들의 함께한 기도는 농민들의 억울함을 푸는 열쇠가 됐다. 50여 년이 지났지만 농민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사짓는 어려움은 가중됐고, 각종 수입산 먹거리로 길든 입맛은 우리 농산물을 찾지 않는 원인이 됐다. 이제 목소리조차,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진 농민들 곁에서 손을 잡아 준 것은 여전히 교회였다. 10월 20일 열린 수원교구 상현동본당의 상현달장. 가톨릭 농민이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에서는 농산물뿐 아니라 희망이 오갔다. 흙때 묻은 농민의 손으로 전한 농산물은 농촌과 농민을, 우리 땅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살리며 농사짓는 이들에 대한 감사함도 남았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공존의 가치를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상현달장에서 사고판 희망은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기름진 거름이 되고 있었다.

2024-10-27

“우리말이 참 아름답죠?”

“우리말이 참 아름답죠?” 10월 12일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제20회 심포지엄 중 황경훈(바오로) 박사가 발표 중 한 말에 수원교구청 강당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유인즉 앞서 3번의 발제가 필리핀·대만·인도네시아에서 온 이들의 발표였기 때문이다. 동시통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어가 모국어인 대부분의 참가자들에게 오랜만에(?) 듣는 한국어 신학 발표는 가뭄의 단비 같았던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외국어는 아무래도 답답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좋지 않은 번역이라면 원문을 보는 것만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번역가의 노고를 치하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작품이 아무리 좋은들 이를 와 닿지 않게 번역했다면 노벨문학상은 요원했을 것이다. 좋은 번역의 중요성은 비단 노벨문학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 신학도 좋은 번역이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부들이나 성인들의 말씀도, 그리고 2000여 년에 걸쳐 쌓아온 신학연구도 대부분 우리말이 아니다. 언젠가 한 신학자가 유학 당시를 회고하며 “현지인들은 단어만 들어도 쉽게 이해되는 개념을, 우리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고 익혀야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좋은 번역이 있었다면 그도 그런 어려움이 적었을 터다. 위대한 신학 작품들을 좋은 번역으로 만날 수 있다면 우리 신학계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가톨릭학술상 본상으로 번역 작품들이 선정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 나오는 좋은 번역을 딛고 언젠가 아름다운 우리말로 신학을 하는 것이 더욱 자유로운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2024-10-20

또 하나의 밀알

1994년 2월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에서는 한 장학회가 만들어졌다. 엘리사벳장학회로 이름 붙여진 장학회는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이혜경(엘리사벳) 씨의 유지를 따른 것이었다. 가족들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씨의 뜻을 받들어 기금을 출연하자, 본당은 이런 귀한 뜻을 받아들여 대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장학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그 장학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꾸준하게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오는 사이에 600명에 가까운 청소년들이 장학금으로 학업을 지속하고 사회로 진출할 힘을 얻었다. 장학회 출범 당시 신문사 자료들을 검색하다 보니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생전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하던 고인의 마음, 가족 모두 비신자였음에도 이를 교회에 봉헌한 정성을 본당은 명동대성당 역사와 함께 길이 이어지고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한 모습이었다. 이후 본당은 공동체 신자들의 기도와 관심을 텃밭으로 조용하게 생활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어깨를 다독였다.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장학 활동을 이어온 여정을 보며 밀알 하나가 싹을 잘 틔워서 여러 나이테를 품은 큰 나무로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가족들은 그때 성금 전달식에서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에게 나눠진 기금을 통해 죽은 딸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아마도 고인의 넋은 나눔 속에서 매번 새로운 밀알로 뿌려지는 게 아닐까. 장학회 첫 회 기금을 받은 학생들은 이제 장년 세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다시 나누는, 그래서 다시 또 다른 밀알이 싹을 틔우는 따뜻한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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