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이라는 우주에 스며든 사랑

“2020년 코로나19로 모든 일정과 여행이 취소됐을 적 문득 위탁아동을 돌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사회 혼란으로 위기 가정의 아이들이 더 큰 어려움에 내몰렸다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무너졌죠. 오랜 기도와 식별 끝에 위탁부모 자격을 신청했고, 긴 절차를 거쳐 열 살배기 카일을 만났죠. 4년을 함께한 끝에 입양한 ‘우리 아이’가 주님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정말 큰 행복이에요.” 7월 14일 미국 디트로이트와 서울을 잇는 화상 인터뷰 말미, 메리 힐리 박사에게 카일을 입양한 계기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미국교회의 대표적인 여성 성서학자로서의 성취도, 교황청 직책도 아닌 카일과의 이야기였다. 고통받는 아이를 안타까워하며 교회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한 아이를 위해 부모가 되는 사랑은 다른 차원의 인간애다. 메말라 붙었던 한 아이의 우주를 사랑으로 적시고, 혈연조차 초월한 뜨거운 모정으로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예수를 거부하지 않은 마리아처럼 기꺼이 부모이자 안식처가 되어주는 헌신이니까. 신앙을 접한 적 없었지만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했다”는 힐리 박사의 표현대로, 카일은 지난해 그의 아들이 됨과 동시에 세례와 견진, 첫영성체를 통해 예수님의 아이 또한 됐다. 지금은 본당과 가톨릭 학교, 청소년 신앙 모임 안에서 여느 때보다도 밝게 자라고 있다. 힐리 박사는 삶과 분리된 자리에서 하느님을 말해온 것이 아니기에 그 가르침이 공허하지 않았다. 결국 지성인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 건 그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가 아니라, 그 지식이 얼마나 깊은 사랑으로 이어졌느냐였다.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23면

[Reportage] Love That Found Its Way into the Universe named ‘Kyle’

This ‘reportage’ is released on July 26, 2026, in both print and online formats, alongside the Doctor Mary Healy instalment of Hearing the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 It was in 2020, when all my events and travels were canceled due to Covid, that I began to think about the possibility of fostering a child. I read in the news that with the increase in unemployment and other social disruptions, at-risk families were facing even greater pressures than usual, and children were suffering. Through much prayer and discernment, I decided to apply for a fostering license. It took a long time to go through the process, but finally Kyle, who was ten years old, was placed with me. After four years of fostering him, I was thrilled to be able to adopt him. It is a joy to watch him grow up as a young man who loves the Lord. » This is how Dr. Mary Healy answered when asked what had led her to adopt Kyle, toward the end of our interview session connecting Detroit and Seoul on 14 July. What most clearly revealed who she really is was her story with Kyle, more than any of her other accomplishments as one of the leading female biblical scholars in the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r her service in the Roman Curia. We all know that it's easy to express concern for children in distress and call upon the Church and society to act. Becoming a parent for the sake of one child, however, is ‘love’ of a different order. It means bringing love into a child’s once-parched universe, thawing their frozen heart with the warmest maternal love that can even transcend far beyond blood ties, and willingly becoming both a parent and a place of refuge — like Mary, who did not turn Jesus away. Kyle had no background in the faith, but, as Dr Healy put it, he « soaked it all up like a sponge. » Last year, he not only became her son but was also « adopted into the family of God through the sacraments of baptism, confirmation and First Holy Communion. » He is now flourishing in the vibrant community of his parish, Catholic school and youth group. Dr Healy’s teaching did not ring hollow because she has never spoken about God from a place detached from life. In the end, what gives an intellectual’s words their persuasive power is not simply how much that person knows, but how deeply that knowledge has been translated into love. by Bak Juhyeon ogoya@catimes.kr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23면

우리 이웃 이야기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저를 써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회 안에는 수많은 ‘이웃’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있는 하느님을 따르는 이웃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우리 이웃 이야기’ 코너에는 보통의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무더위 속에서 노숙인을 위한 식사를 만들어 대접하는 봉사자, 늦은 시간까지 순례객들에게 성지를 안내하는 성지 해설사, 주일마다 교회 행사 취재를 위해 현장을 누비는 교구 명예기자. 그들이 시간과 열정을 들인 대가는 사실 크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은 그들의 입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보낸 하루가 행복했다”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이웃을 향한 이러한 마음은 봉사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원교구 청년들은 7월 4일부터 11일까지 6개 성지를 순례하며 모두 216.7㎞를 걸었다. 함께 신앙의 기쁨을 찾고자 길을 나선 청년들은 자신의 고단함을 호소하기보다, 교회를 떠난 많은 청년이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걸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걸음을 내어놓은 이들의 기도와 실천은 교회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교회 안의 수많은 이웃을 바라보며 하느님 나라는 위대한 교회사적 업적이나 대단한 선행을 이룬 특별한 몇몇이 아니라, 평범한 신자들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소박하고 작은 이웃들의 이야기 안에는 하느님의 뜻과 복음의 위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23면

바벨탑

“물리학, 화학이 우리 산업과 생활을 완전히 바꾼 것처럼, 생명과학이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7월 4일 열린 WYD 수퍼클래스에서 구본경 박사는 생명과학이 바꿔 놓을 세상의 모습을 과학자의 눈으로 그렸다. 예전에는 10년이 넘게 걸리던 인간 DNA 전체 분석은 이제 하루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유전자 편집 기술은 염기 단위 조작까지도 넘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인공 세포’가 공개되기도 했다. 생명을 마치 ‘데이터’처럼 가장 작은 단위까지 뜯어 분석한 인류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조립하려 하고 있다. 생명과학 발달은 질병 치료에 큰 희망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어쩐지 희망보다는 ‘바벨탑’처럼 느껴진다. 레오 14세 교황은 회칙 「고귀한 인류」에서 “‘바벨 증후군’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벨 증후군이란 이윤의 우상숭배, 획일화, 그리고 인격(인간)의 신비까지도 ‘데이터’로 번역할 수 있다는 허상이다. 물론 생명과학 기술 자체는 악이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도 아니다. 그 기술을 고안한 것도,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선이 될 수 있을까? 같은 날 열린 ‘청년들의 성·생명·사랑 이야기’ 취재에서 그 힌트를 얻은 듯했다. 참가자들은 교육에서 “나를 왜 여성으로 창조하셨는가” 하는 물음을 통해 받은 감동을 표현했다. 생명 창조의 이유에 사랑이 빠질 수 없다.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과 사랑을 떼어 놓을 때 선에서 멀어져 바벨탑을 쌓게 된다. 생명과학의 발전이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의 길을 향하도록 우리의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3면

캄보디아 불교와 가톨릭의 아름다운 동행을 보며

캄보디아 인구 1800만 명 가운데 대다수는 불교 신자이고 가톨릭 신자는 2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교세 차이와는 무관하게, 캄보디아 불교계와 가톨릭교회가 아름답게 협력하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다. 프놈펜대목구장 올리비에 슈미트하우슬러 주교가 불교와 오랜 세월 동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고 지지하는 위대한 원로 재가 신자’라는 명예 호칭을 받았다. 슈미트하우슬러 주교는 20여 년 전 캄보디아에서 본당 사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불교계와 지역 개발 사업, 교육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협력했다. 가톨릭교회는 타 종교와는 대화를 장려하고 그리스도교 교회와는 일치를 촉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황청에는 종교간대화부와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가 설치돼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교황청 두 부서의 기능을 하나로 합친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종교들이 대화에 힘쓰기도 하고, 가톨릭과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등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일치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종교간 대화와 교회일치 증진은 레오 14세 교황이 6월 26~27일 교황청에서 소집한 특별 추기경회의 논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추기경단은 현대사회의 심화되는 양극화와 개인주의 심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가 어머니 같은 존재이자 환대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그 방편의 하나로 종교간 대화와 교회일치 증진을 제시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하나 되기를 바라셨다. 포용과 공존의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이기도 한 종교간 대화와 교회일치에 가톨릭교회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발행일 2026-07-05 제3498호 23면

모두가 ‘예스’를 말할 때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최근 종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의도적으로 AI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들을 만났다. 일상적으로 AI를 활용해 온 기자에게는 뜻밖의 답변이었다. ‘이 시대에 한 번쯤은 사용해 봤겠지’라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단정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6월 18일 종교환경회의가 개최한 종교인대화마당에서는 ‘장자의 양생과 AI시대 종교인의 역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천주교를 비롯해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AI시대에 종교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종교인이 이 시대에 건넬 수 있는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종교가 다른 만큼 AI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AI에 대한 경계와 우려를 드러냈다. 실제로 기자 주변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AI로 타로나 사주를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접 점집을 찾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 하나로 답을 얻을 수 있으니 편리하다. 하지만 편리함이 의존으로, 의존이 맹신으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어쩌면 AI를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다는 이들은 기술 자체를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두가 AI에 “예스”를 말할 때 누군가는 “노”를 말하며 기술의 한계를 묻고, 인간다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의 위로와 용기를 주고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신앙이고 종교가 아니었던가. AI가 수많은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종교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인간이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23면

‘DMZ 평화의 길’을 걷는 또 다른 의미

2년 전 ‘DMZ 평화의 길’ 순례를 처음 접했다. 이후 몇 차례 취재할 기회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평화의 길’이 지닌 의미도 조금씩 알게 됐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때마다 기사에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사진으로 담을 순간을 찾는 데 마음이 더 바빴다. 순례가 품은 의미를 차분히 곱씹어 볼 여유는 많지 않았다. 6월 11일 DMZ 순례자들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평화의 길> 시사회에 다녀왔다. 그날만큼은 사진을 찍을 필요도, 누군가를 붙잡고 인터뷰할 필요도 없었다. 덕분에 오롯이 관객의 자리에서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를 따라갈 수 있었다. 천주교를 비롯해 7대 종교 종교인들로 구성된 육로 순례단은 비록 전례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평화라는 한 가지 바람을 간직한 채 서로 도우며 긴 순례 여정을 극복해 냈다. 한 수녀님은 타 종교인의 뜯어진 배낭을 휴식 중에 수선해 주기도 했다. 한편, 평화 운동가들이 참가한 해상 순례단의 여정은 더 고달팠다. 배가 고장이 나면서 일정이 늦춰져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를 뜬눈으로 항해하기도 했다. 난관을 겪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려는 영화 속 순례단의 모습은, 마치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며 겪는 감정과도 닮아 보였다. 때로는 걷는 것에서 기쁨을 얻고, 시원한 바람에 즐거워하고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을 때도 있지만, <평화의 길>에 출연한 한 수도자의 말처럼 “앞사람 발만 보고 걷는” 무료하고 힘든 시간과 싸움도 해야 하는 게 똑 닮았다. 이 순례의 의미는 남북 평화와 생태환경 보전의 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만 있지 않았다. 그 여정 자체가 더 이상 한반도에 아픔이 찾아오지 않길 바라는 참가자들의 간절한 기도였다.

발행일 2026-06-21 제3496호 23면

온기의 마태오 효과

‘마태오 효과(Matthew effect)’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라는 복음에서 유래했다. 1969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동일한 연구 성과를 놓고도 저명한 과학자가 무명의 과학자에 비해 많이 보상받는 현실이 이와 같다고 주장하며 처음 사용했다. 무료급식소를 취재하며 오늘날 마태오 효과가 벌어지는 현장을 봤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일어난 후 방위산업체들의 주가 상승 기대가 커졌다. 실제로 발발 직후 주요 방산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반면 전쟁이 초래한 물가 상승은 누군가의 밥 한 끼를 앗아갔다. 라면 하나, 빵 한 쪽으로 저녁을 때우는 이들에게 그마저도 빼앗아 갔다. 급식소에서 만난 한 이용객은 저녁을 못 먹을 것에 대비해 맨밥만 한가득 퍼 두었다. 동시에 희망도 목격했다.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이들이 존재했다. 돈이든 물품이든, 가진 것을 내놓는 이가 있었다. 정성스럽게 밥을 차리고 정리하는 이도 있었다. 역시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을 실현하는 이들이었다.(마태 14,13-21 참조) 마태오 효과가 다른 뜻을 갖길 꿈꾼다. 하느님 나라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6)처럼 말이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온기가 더 많은 이익을 불러일으킨다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23면

내일도 같은 시간, 일터로 간다는 것

“직업재활시설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공공 일자리가 장애인 노동의 중심축을 단기적인 공공 참여와 상징적 활동 쪽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5월 28일 서울가톨릭장애인복지시설협의회 세미나에서 서울 서초구립 한우리보호작업장 정영수(체레알리스) 원장은 공공 일자리가 내실이 있으려면 직무훈련과 직업적응, 보호고용, 전환지원으로 이어지는 체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고령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참여가 아니라, 매일의 리듬을 유지하고 건강 변화에 대응하며 관계와 소득을 지속시키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일자리’라는 말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 일자리의 성과를 참여 인원, 예산 규모, 활동 건수 등 수치로 확인한다. 산술적 참여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직업재활의 본질을 대신하는 순간, 일은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아니라 일회성 행사처럼 소비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장애·비장애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일터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삶의 필수 여건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자기 효능감을 찾고, 일상 리듬을 지키며, 돌봄·부양 부담을 덜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내일도 같은 시간 출근해 삶을 이어갈 이유를 얻는다. 더욱이 일터는 고령장애인에게는 복지 수혜자 입장을 넘어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게 해주고 돌봄, 건강, 관계, 소득을 종합 보장하는 삶의 축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사회 회칙 「노동하는 인간」도 “인간 노동은 전체 사회문제의 열쇠”(3항)라고 밝힌다. 그래서 기도하게 된다. 장애인 노동이 시혜나 참여 실적을 넘어 ‘인간’이 존엄하게 늙어 갈 수 있는 구조로 자리 잡기를.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23면

내 목소리와 얼굴을 지키는 방법

2025년 7월 수원교구는 사제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AI(AI)의 기본 원리와 활용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AI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폐단을 줄이고 바람직한 활용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기술을 활용해 사목적으로 신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긍정적 이야기와 방대한 가톨릭 정보 속에서 진짜를 식별할 수 없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났다. 빠르게 진화한 AI 기술은 더 똑똑해졌고 더 정교하게 인간을 닮아갔다. 편리성의 가면을 쓴 이 기술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휴대전화를 켜고 AI를 향해 질문 한마디를 던지면 어려운 일은 쉽게 해결됐다. AI 기술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을 누리는 와중에 누군가는 ‘내가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기술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더 갈망하게 된 것이다. 그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5월 21일 수원교구에서 열린 ‘AI 리터러시 통독반’ 강의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였다. 가장 획기적이고 현대적인 기술을 앞에 두고 참가자들은 몇천 년 전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느님과 관계 맺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인간. 참가자들은 육체와 지성을 가진 인간의 고유함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AI 시대에 우리가 얼굴과 목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고유함을 되찾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연대하고 공감하는 것.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나를 스스로 기억할 때 내 얼굴과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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