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11월 16일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다. 기자는 세계교회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교회 활동들을 접하게 됐다. 우선, 레오 14세 교황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있던 11월 6일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세탁소’라는 이름을 붙인 무료 세탁소를 개장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시기에 처음 시작된 무료 세탁소 사업을 레오 14세 교황도 이어가는 것이어서 반가운 소식으로 느껴졌다. 빈민들이나 노숙인들이 무료 세탁소에서 빨래하고 샤워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교황청 애덕봉사부 장관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이 말한 대로 무료 세탁소는 큰 물질적 도움은 못 될지라도 가난한 이들이 존엄성을 되찾고 삶을 변화시키는 마중물은 될 수 있다. 무료 세탁소가 문을 연 비슷한 시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에 대한 강력한 단속 정책을 지속하자 오리건주 포틀랜드대교구장 알렉산더 샘플 대주교가 11월 8일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도 볼 수 있었다. 샘플 대주교는 성명에서 “이주민들이 적절한 서류를 지니고 있지 못해도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가톨릭교회 정신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같은 기사에는 이주민들을 단속하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지지하는 시위대의 활동도 언급돼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이웃과 이주민들이 많다. 가난을 가난한 이들만의 탓으로 돌리고, 이주민들을 배척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세탁소’를 만든 교황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23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시선이 중요한 것 같아요.” 평신도 주일 특집 인터뷰를 위해 만난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김수지(가브리엘라) 이사는 “‘당연히 안 되겠지,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라는 생각을 깨야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며 한국교회의 모든 구성원 특히 평신도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의 말에 문득 모두가 당연하게 여긴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겼던 용기 있는 평신도들이 떠올랐다. 평신도 주일은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이 동지사로 떠난 시기에 맞춰 제정된 날이다. 선교사 없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신앙 선조들이 ‘천주를 공경하는 참다운 방식’을 알고자 파견한 이승훈이 중국으로 출발한 때가 이즈음이었다. 당시 교회를 이끄는 이는 모두 평신도였다. 모든 의사 결정이 평신도들의 논의로 이뤄졌고, 선교사 파견 이후로도 평신도들은 회장직 등을 통해 사제를 보필하며 다른 평신도들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했다. 신앙 선조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사제가 공동체를 신앙으로 이끄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평신도들이 공동체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남녀 차별이 ‘당연한’ 조선사회에서 복자 강완숙(골룸바) 같은 여회장이 활약했다. 세계 교회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선교사 없이 평신도가 세운 교회는 ‘당연한’ 것에서 벗어난 신앙 선조들에게서 비롯했다. ‘평신도가 세운 교회’를, 그를 이룬 신앙 선조를 두고두고 자랑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과연 그들의 모범을 따르고 있을까. 평신도 주일을 맞은 오늘, 혹시 ‘평신도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당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23면

함께있음의 50년

1975년 2월, 서울 시흥동 산동네에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 세 명이 전진상의원·복지관(이하 전진상)의 둥지를 틀었다.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요청으로, 아프고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사회복지의 손길을 나누기 위한 걸음이었다. 그들은 약국을 열고 무료 진료소를 개설하고 가정 간호 활동을 벌이며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의 벗이 되었다.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 마음의 희망조차 붙들기 힘들었던 이웃들을, 밤을 새워 찾아가 진료하고 약상자를 열어 생명을 건졌다. 그 씨앗은 자라면서 장학사업으로 이어지고 지역아동센터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등으로 확장됐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그들에게서 A.F.I의 영성인 전(全)·진(眞)·상(常) - 온전한 자아 봉헌과 참다운 사랑, 끊임없는 기쁨 - 이라는 이름이 사랑 실천의 언어로 번역됐음을 느낀다. 반세기 동안 전진상의 활동에 동행한 의사, 간호사 등 봉사자의 숫자는 천 명이 넘는다. 10월 25일 열린 50주년 기념식에는 처음 진료를 도왔던 의사에서부터 개원 때부터 지금도 약국 일을 거드는 약사, 콩나물값과 전화비를 아껴가며 수십 년간 후원해 온 이들까지 전진상과 함께 걸어온 얼굴들이 모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인간적 공로를 넘어 ‘함께 나눔의 기적’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이경상 주교는 전진상을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낸 곳’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전진상의 역사는 복음이 문장이 아니라 ‘손길과 발걸음’으로 드러난 이야기 같다. 복지 시스템은 발전했지만, 여전히 제도와 제도 사이의 틈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온 ‘함께 있음’은 여전히 유효한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23면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일원화된 구조가 아닌 목회자 개인이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모아 운영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교회의 활력은 목회자의 재정 상황이나 전교 역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고, 탈종교화 현상까지 이어지면서 교회를 둘러싼 환경은 한층 더 위축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개신교는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공유교회’라는 개념이 그중 하나다. 일부 선교단체나 신도들이 자신들의 예배 공간을 나누거나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형 교회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더라이프교회 또한 이런 공유교회를 거쳐 독립한 사례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접한 최용택 목사는 공유교회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시기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작은 교회들이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선교지와 이웃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부활·성탄 대축일뿐만 아니라 산불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주민센터를 통해 구호 물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움직였다. 최 목사는 이러한 활동이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려는 몸부림이자 저마다의 사명을 지키려는 움직임이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교회를 세우기도 벅찬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규모나 재정이 아닌, 신앙이 어떻게 이어지고 지속될 수 있는가를 되묻게 되는 순간이었다.

발행일 2025-10-26 제3463호 23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어요.” 한국의 노동 현실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며 귀에 맴돌도록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득 9월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떠올랐다. 극 중 25년간 제지 전문가로 일해온 만수(이병헌)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해고당한다. 이후 재취업을 위해 벌이는 일들에 가족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합리화하며 대사를 반복한다. 기업 관계자들도 비슷하게 말한다. “노동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기업이 이윤을 남겨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그 돈으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면 기업이 버틸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그러니 더 큰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했다. 물질이 중요시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던 이들은 결국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을 해고했다는 세종호텔 측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 아직 해고자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화를 시작한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겼다고 전망했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야고 5,4)라는 말씀처럼 노동자들의 고통에 찬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발행일 2025-10-19 제3462호 23면

수도자들의 각오와 절박함

‘축성생활의 해’를 맞아 한국 남녀 수도자들이 준비한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오세요(OSEYO, Open Space Every YOuth)’ 취재를 다녀왔다. 수도자들이 청년들과 함께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이뿐 아니라 그간 수도자들이 축성생활의 해를 준비하며 준비위원회를 꾸린 과정부터 최근까지의 활동도 함께 취재해 왔다. 지금껏 안 해봤던 것들을 시도하고, ‘축성생활자’라는 정체성과 영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부터 각종 행사를 위해 따라오는 부수적인 행정 업무까지 수행해 내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올해 축성생활의 해를 정말 ‘제대로’ 보내겠다는 각오와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 절박함은 수도 성소가 줄어든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도자들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쇄신해야 한다”는 내적 요청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수도자들은 이렇게 스스로 설정한 과제를 다뤄보기 위해 심포지엄을 열고, 함께 걷기 위해 평화 순례를 개최했다. 수도회 장상들은 시노달리타스 경청 피정을 하고, 청년들과 어울리고 스스럼없이 다가가며 수도 성소를 알리는 것은 물론 청년들을 그 자체로 위로했다. 특히 이번 ‘오세요’에서 대부분 교육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던 수도자들이 청년들 곁에서 진심으로 함께 즐기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취재를 마치고 나서, 수도자들이 올해 축성생활의 해를 거치며 ‘축성생활자’를 알리는 것과 쇄신이라는 두 가지 고민에 대한 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도 이렇게 잘 놀 줄 알아”라고 말하는 듯하기도 했다. 올해는 아직 석 달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수도자들이 보여준 노력과 의지를 보건대, 이 1년을 ‘제대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발행일 2025-10-05 제3461호 23면

모든 생명이 빛나길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맞아 수원교구 남한산성성지 순교자 현양미사 취재가 있었다. 순교자들이 생명을 바쳐 희생한 덕분에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롭게 신앙을 키우고 있음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효주 아녜스’라는 한국 순교 성인 세례명을 가진 덕분에 축하를 많이 받았다. 의정부교구는 9월 3일 성 김효주(아녜스)의 순교일에 성인의 고향인 고양 덕양구 용머리에서 성모상을 모시고 축복식과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경받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많은 성인과 복자, 순교자들이 계속 알려지고 드높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또 다른 생명과 죽음이 기억났다. 바로 낙태된 태아들이었다. 똑같이 죽음의 세력에 스러진 생명인데 순교자는 영광의 월계관을 쓰고 올림 받는 ‘빛’이 되지만, 낙태아들의 생명은 누구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저 ‘어둠’ 속에 덮인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정부가 9월 16일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 및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국정과제로 확정했다. 생명 경시 풍조의 확산을 비판해 온 교회는 “함께 연대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며 즉각 반대 의사를 표했다. 주교회의와 각 교구도 법 개정과 국정과제 추진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사실 그 시대 순교자들 또한 모두가 쉬쉬하고 거부한 생명이었으리라. 찬란함만이 아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은 생명도 외면하지 않으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 깨어있어야 하겠다. 예수님 생애 또한 부활의 영광만이 아닌, 수난과 고통이라는 어둠을 함께 기려야 하듯이 말이다.

발행일 2025-09-28 제3460호 23면

수만 가지 가능성 중 선택한 이름

9월 11일 서울 동자동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열린 가수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밴드’ 나눔 모임의 쪽방촌 도시락 조리·배달 봉사 현장. 회원들은 어떤 원동력으로 5년 이상 시설에서 봉사하며 1억 원 넘게 기부해 왔을까. 그들은 답했다. “무명 때부터 선행해 온 임 씨를, 같은 실천으로 응원하는 마음뿐”이라고. 이렇게 사랑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들도 있지만 ‘절박함’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도 있었다.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보호자들이었다. 사단법인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 부모회가 ‘탈시설지원법’ 제정 즉각 중단을 촉구하며 9월 9일 국회 앞에서 연 집회에 그들이 있었다. 한 참가자가 낭송한 자작시에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힘든 자녀를 탈시설 위기로부터 지켜내고자 매달리는 부모의 ‘절박함’이 얼룩져 있었다. “나는 거름 없는 자리에 심어진 나무, 썩어 가는 아픈 열매를 바라보며 재까지 거름 되어 모든 걸 주는 나무”라고…. 지금도 세상에는 마실 물조차 빼앗긴 난민들이, 극한의 갈증에 치받친 나머지 오염된 흙탕물을 절망과 함께 삼키고 있다. 우리는 그걸 다 알면서도 방관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무력한 현실에 무너진 서로를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고자 사랑에 저마다 의미를 불어넣어 행하고, 의지를 다져 살아간다. 선각자나 위인, 가족이나 벗이라는 이름까지. 인류는 각자 살아가는 현실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사랑을 부른다. 그 수만 가지 가능성 중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선택해 교회를 이뤘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 일원이 된 우리는 이웃에게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그리스도’를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발행일 2025-09-21 제3459호 23면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었던 순교자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묘소가 있는 미리내성지에서는 경력 15년 이상의 베테랑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해설 중에 신자들이 어김없이 눈물을 훔치는 대목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 장면이다. 목을 잘 베려면 목이 단단해져야 하므로 숨을 쉬기 어렵게 얼굴에 회칠을 했다. 더욱 괴롭게 처형하기 위해 김대건 신부는 12명의 회자수가 조금씩 목을 쳤다고 해설사는 전했다. 순교자의 삶과 죽음은 숭고하면서도 이처럼 슬프고 아픈 기억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순교자들의 삶은 불안하고 아프기만 했던 걸까? 해설사는 성지 자리에 있었던 교우촌 밤 풍경이 은하수 같아서 ‘미리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난했지만 옹기종기 모여 하느님을 따랐던 신앙 선조들은 은하수처럼 아름다운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늘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교회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전 세계 젊은이에게 한국 천주교 이야기를 문화 콘텐츠로 재생산해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원교구가톨릭문화원은 순교자를 콘텐츠로 만들어 문화선교를 확장하고 청년들을 연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를 통해 구현된 성인은 고통받고 피 흘리는 모습이 아닌 걸크러시하고, 독립적이고 통찰력이 있으며 따뜻한 품성을 지닌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됐다. 나의 삶과 가까워진 성인에게서 숭고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나도 성인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은하수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성인을 새롭게 그려볼 수 있다.

발행일 2025-09-14 제3458호 23면

순교자의 갓

2023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성인상 축복식을 취재하면서 성인상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머리에 쓴 갓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갓을 쓰지 않은 모습을 상상하자니 그것도 어색했다. ‘김대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역시 ‘갓 쓴 신부님’이다. 실제로 김대건 성인을 비롯해 박해시기 신부들은 갓을 쓰고 다녔다. 당시 갓은 조선 남성의 일반 복식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신자들을 위해 늘 길을 나섰던 신부들과 갓은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는 늘 신자들을 찾아 길을 나선 탓에 갓끈 자리를 제외하고는 피부가 그을려 하얀 갓끈 자국이 생길 정도였고, 서양 선교사들도 상복 차림에 갓으로 얼굴을 가려 박해자들의 눈을 피했다. 신부들이 다들 갓을 썼기에 신자들이 신부를 ‘갓을 쓴 등불’이라는 의미로 ‘갓등이’라 비밀스럽게 부르기도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덕분에 성인상의 갓을 다시 보다, 문득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대사가 떠올랐다. “조선의 남자들이 다 쓰고 다니길래 나도 하나 샀다”는 미국인 등장인물은 그 이름이 ‘갓’이라는 것을 알고 “오, 마이 갓. 조선인들은 언제나 God(하느님)과 함께하는 건가?”라 말했다. 박해시기, 하느님을 거부하는 세상 속에서 박해자들이 가득한 길을 나서며 갓끈을 동여맬 때, 순교자들은 언제나 갓(하느님)과 함께였다. 새삼 다시 바라본 성인상에서 그 어느 부분보다 갓이 하얗게 빛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 김대건의 얼굴은 가리고 갓(하느님)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순교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듯.

발행일 2025-09-07 제3457호 23면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현장조사를 다녀와서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1792~1835)는 초대 조선대목구장이다. 하지만 한국교회 신자로서 교회사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브뤼기에르 주교가 한국교회사에서 갖는 의미를 잘 모를 수도 있다. 이승훈(베드로)이 1784년 중국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한 한국천주교회가 대목구로 설정된 것은 1831년 9월 9일의 일이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대목구 설정과 동시에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됐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1831년이라는 시점이다. 이때는 한국교회가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조선에 있는 사제와 신자는 언제 관헌에게 체포돼 순교의 길을 걸을지 알 수 없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초대 조선대목구장이 됐다는 것은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중국 대륙을 걸어 자신의 사목지인 조선에 들어오려다가 끝내 조선 땅을 밟지 못하고 1835년 10월 20일 중국 마자쯔(馬架子)에서 선종하고 말았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목숨을 걸고 가고자 했던 조선 땅에 온 때는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이 되던 1931년이었다. 9월 24일 그의 유해가 당시 경성대목구 주교관에 안치됐고, 10월 15일 명동대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된 후 같은 날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는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과정의 하나로 8월 22일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 장소는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가 거쳐 간 명동대성당 일대와 용산 성직자 묘지였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 땅과 교우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었고, 브뤼기에르 주교를 시복시성 해야 할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발행일 2025-08-31 제345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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