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의 희망이 되길

폭염이 막 몰려오기 시작한 7월 24일 낮 서울 경복궁도 달아올랐다. 동티모르 리퀴도이에서 온 현지 고등학생들이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그렇게 그들의 ‘경복궁 투어’에 동행했다. 날씨는 순탄치 않았다. 경복궁 구조상 그늘이 많지 않아 긴팔인 한복을 입고 다니기에는 더 불편했다. 하지만 궁내 시설들을 구경할 때면 안에 뭐가 있는지 고개를 쑥 내밀고 열심히 내부를 둘러본다. 사진 찍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동행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선교사 이형우 신부는 스마트폰으로 학생들을 찍어 주며 연신 “한복 입으니 다들 예쁘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애정이 남달라 보였다. 한 달간의 한국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가 현지에서 학업을 잘 이어간다면, 다음에는 유학생으로서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고향에 돌아가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동티모르의 발전에 이바지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 일련의 프로젝트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동티모르 학생들의 질 높은 교육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확실히 똘똘하고 총명한 모습이 아이들이었지만, 아직은 영락없는 ‘학생들’이었다. 한 학생은 수원 스타필드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게 요즘 외국인들 사이에 유행이라고 한다. 학생들 표정은 무더위 속에서도 호기심, 앞으로의 체험들에 대한 기대감도 역력해 보였다. 마치 이날 날씨처럼 모든 게 순탄치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들과 동행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학생들의 미래와 동티모르를 응원하게 된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23면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에페 5,14)

제주 엠마오연수원 성당에서 아침 7시 피정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앉은 한 분이 갑자기 나에게 살며시 열쇠고리 하나를 건네줬다.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데, ‘그냥 넣어 둬라’는 손짓과 눈짓에 내게 주는 선물임을 알았다. 뭘까, 궁금해하던 찰나 내 눈에 들어오는 열쇠고리에 달린 글귀는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에페 5,14)였다. 순간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졸려 보였나? 아까 하품을 했나?’ 하지만 순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그분의 표정에서 -당연하지만- 악의는 없음을 알았다. 타이밍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정성스레 만든 열쇠고리를 보고 ‘나는 정말로 깨어있을까? 사실은 잠자는 사람 아닐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사 후 절물 휴양림으로 가는 길에는 ‘제주 4·3 평화공원’과 ‘세월호 제주 기억관’이 있었다. 들르지는 못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숙연해졌다. 또다시 ‘깨어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다음날 열쇠고리를 자세히 보니 성경 구절 밑에는 작게 ‘오일팔’이라고 쓰여 있었다. 광주대교구에서 오신 분이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으로 늘 깨어있으라는 뜻이었다. 이번 집중 호우로 광주대교구가 다른 지역들과 더불어 수해를 크게 입었다.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 있지만, 수습 후 더 나은 재난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가는 것이 바로 ‘깨어있음’ 아닐까. 비 피해를 본 모든 분을 위해 기도드린다.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23면

여름이 재난이 되지 않도록

“날씨는 이데올로기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그의 저서 「신화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날씨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해석되고 사용되는 기호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여름은 생존의 문제였다. 기후재난의 책임을 지우는 동안, 폭염으로 수많은 이가 삶을 마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폭염을 지목했으며, 질병관리청 조사 결과 지난해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4명으로 집계됐다. 간접 사인인 경우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자 수는 더 많다는 해석도 있다. 취재하며 만났던 쪽방 주민은 “쪽방과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매년 여름마다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한다”고 전했다. 시카고 폭염 사태를 다룬 「폭염사회」의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는 “가장 위험에 처한 사람이 가장 도움받기를 꺼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쪽방 주민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에어컨 없는 방 안에만 머물며,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희망’이 존재했다. 누군가에게 여름이 재난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꾸준히 다가가는 이들이 있었다. 타인의 처지를 내 일처럼 여기며 ‘생존’이 아닌 삶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집 없는 이들의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올해는 정기 희년이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희년 메시지를 기억하며, 이제는 희망의 불씨가 더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할 차례다.

발행일 2025-07-20 제3451호 23면

악의 평범성

‘자기결정권’(헌법 제10조) 행사는커녕 기초 의사소통도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들 편에서 강제 탈시설에 반대해 온 가톨릭 사회복지계에 상처를 준 사건이 석달 전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4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애도 기간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을 무단 점거하고 탈시설 주장 플래카드를 내걸며 농성과 집회를 벌였다. 한 수도권 교구 주교좌성당에도 허락 없이 들어가 교황 빈소의 영정을 배경으로 플래카드를 내걸고, 조문 온 신자들에게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투쟁’이라는 공격적 언사도 했다. 6월 3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거주시설 혁신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중교 신부(야고보·수원교구 중증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는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으로 해석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독일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분석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상식과 대화가 통하던 인간이 집단화하자,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비합리적 수단도 동원하고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개개인은 선량할 시민들이 집단 논리에 매몰돼 ‘대수롭지 않게’(Banal) 이행한 이해타산 때문에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실제로 피해를 봤다. 2022년 1월부터 탈시설 시범 사업이 진행되며, 장애인 당사자 중 3개월 만에 욕창 패혈증으로 사망하거나 2주 만에 장폐색으로 죽는 일이 속출했다. 그래서 기원하게 된다. 우리 모두 집단 헤게모니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으며 더 큰 참극을 막을 수 있기를.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3면

예수 성심을 찾아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두 건의 취재가 있었다. 수원교구 사제 성화의 날 행사와 수원화성 성지순례. 사제 성화의 날 행사에서는 교구 사제단 300여 명과 성시간을 함께하며 마음속에 예수 성심을 되찾고자 묵상했다. 주님의 뜻을 찾는 여정은 성전 안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날 저녁, 수원화성순교성지 달빛순례에 참여한 22명의 순례객은 순교자가 걸었던 길을 함께 걸으며 그들이 어떻게 예수 성심을 지켜냈는지 되짚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매질을 당하고 순교를 하셨다고요?” 100여 년 전, 수많은 천주교인이 공개 처형을 당한 수원화성의 팔달문과 장안문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오갔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임 당하는 이들을 지켜봤을 신앙 선조들은 어떤 마음으로 신앙을 지켰을까?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 성심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었을까? 순교자의 자리에 선 순례객들은 오랜 시간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듯했다. 3시간가량 진행된 순례를 마치고 다시 성지로 돌아오자, 막연했던 예수 성심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내 삶에서 예수님을 잊지 않는 것. 박해보다 더 혹독한 유혹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기쁨으로 가는 길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달빛순례를 마치며 수원화성순교성지 전담 김승호 신부는 “하느님이 주신 축복 가득한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주님 안에서 기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예수 성심을 찾았을까?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23면

우공(愚公)의 희망

흔히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의미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말만 보면 우공이 산을 옮긴 것 같지만, ‘우공이산’의 유래가 된 「열자」를 보면, 산을 옮긴 건 우공이 아니다. 우공이 산을 옮기기로 하자 가족들이 함께했고, 이웃도 동참했다. 1년이 지나자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우공은 “내가 죽더라도 자식이 남아있고, 또 그 자자손손이 있으나, 산은 증가하지 않으니 걱정 없다”며 자신의 희망은 반드시 이뤄지리라 확신했다. 여기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했다. 우공의 말을 전해 듣고 그 정성에 감명한 하느님이 산을 옮겨준 것이다. 산을 옮긴 건 하느님이었다. 매주 토요일, 500번을 이어온 의정부교구의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토요기도회에서 이런 ‘우공의 희망’을 느꼈다. 토요기도회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끊임없이 평화를 희망하며 열렸다. 6월 21일 열린 500차 토요기도회에는 마치 우공이 가족과 이웃과 함께했듯 기존에 오던 이들에 더 많은 이가 함께해 예상 참가자 수의 세 배가 넘는 1000여 명이 모여 기도했다. 손희송 주교는 이날 강론에서 “기도는 우리가 하지만, 응답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렸다”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참석자들을 독려했다. 한반도 평화도, 세계 평화도, 나아가 공동의 집 지구 생태계의 평화도, 인간의 눈으로 보면 막막하기만 하다. 도저히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공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그렇기에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로마 5,5)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3면

‘평양교구 신우회’가 갖게 하는 꿈

꼭 13년 전이던 2012년 6월 ‘평양교구 신우회’ 총무로 일하던 김만복(로사) 씨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80세였다. 평양에서 기차 한 정거장 거리인 평안남도 서포에서 태어난 분이다. 6·25전쟁 중 1950년 12월 7일 대동강을 건너 월남해 남대문시장에서 평생 장사를 하며 건실하게 살았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자택에서 만났을 때, 서포와 평양이 함께 나오는 위성 지도를 손에 들고 어릴 적 고향과 성당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생생하게 설명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13년 만에 평양교구 신우회를 다시 취재하며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평양교구 1세대 신자들은 대부분 선종했거나 생존해 있어도 외부 활동은 어렵다고 한다.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문화관 소성당에서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평양교구 신우회 정기미사에는 자제들 위주로 10명 정도가 모이고 있다. 평양교구 신우회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외형적으로 작아진 것보다 더 큰 변화는 한국 사회가 갖는 통일에 대한 당위성과 열망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평양교구 신우회를 지도하는 장긍선(예로니모) 신부가 “제일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했던 말이 크게 다가왔다. 분단 80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남한과 북한이 한 민족, 한 나라였고 그렇기에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사실조차 낯설게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청년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평양교구 신우회는 교회 안에서 분단과 6·25전쟁의 아픔을 가장 크게 안고 있는 단체다. 평양교구 신우회를 바라보며 남과 북이 다시 만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하나의 나라가 되는 꿈을 꾸게 된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23면

삶을 건넨 집

누군가 집 한 채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자칫 단순한 기부 미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이 단지 부동산이 아니라, 한 사람, 한 가족의 시간과 추억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공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단순한 재산 이전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건네는 일이다. 소유의 이전을 넘어선, 존재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20여 년을 살아온 아파트를 자립 준비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김춘미 씨의 선택은 물질적 나눔을 넘어선 상징적 행위로 다가왔다. 그것은 가진 것을 비우는 결단이자, 청년 세대의 내일을 믿고 지지하는 어른의 마음이었다. 뿌리내릴 흙 한 줌 없이 사회에 내던져지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살 수 있는 공간’은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살아갈 가능성’이다. 재산을 불리거나 자녀에게 물려주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김 씨의 결단은 청년들이 절망 대신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다. 기성 세대가 청년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꼭 크고 거창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묵묵히 믿어주는 시선,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응원이면 충분하다는 마음이다. 김 씨가 봉헌한 ‘함께 살 수 있는 집 한 채’는 그 모든 응원이 ‘공간’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사례였다. 그 집은 청년들이 자립의 뿌리를 내리고, 훗날 또 다른 이에게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씨앗이 되었다.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현관문을 나서는 청년들의 발걸음이 그려진다. 그들에게 세상은 이제 조금 더 믿을 만한 곳,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미는 손길로 이어질 것 같다.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3면

한 생을 담담히 배웅하며

제3대 군종교구장을 지낸 유수일 주교가 투병 중이라는 이야기는 자주 접했지만, 선종 소식은 여전히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군종교구 담당 기자와 함께 고인을 기리는 빈소부터 장례미사까지 동행하며 기록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사진과 글로 담아낸 건 처음이었다. 입사 후 주로 본당 사목 모범 사례나 교회의 사회교리 실천 현장을 취재해 왔다. 이번엔 달랐다. 죽음을 마주하는 현장은 낯설고 감정은 무거웠다.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조심스러움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수도복을 입고 눈을 감고 계신 고인의 마지막 모습, 그 옆 영정사진, 관 앞에서 기도하는 조문객들을 한 장면에 담고자 애썼다. 혹여 행동이 고인과 조문객들에게 불편함을 드리진 않을까 선배 기자에게 물었고, “이 기록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생전에 뵌 적은 없는 분이었지만, 그분의 삶은 이미 기사와 서적을 통해 여러 갈래로 남아 있었다. 수도회 출신의 사제, 조용히 나눔의 삶을 실천하신 분. 남겨진 기록 속에서 고인의 삶을 조금씩 그려볼 수 있었다. 그를 기억할 누군가가 다시 고인을 떠올리는 데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그 마지막 여정을 조심스럽게 기록해 나갔다. 평소에도 겸손함 속에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삶을 실천해 오셨던 유수일 주교. 그분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며 기록할 수 있었던 건 기자로서도, 한 신앙인으로서도 큰 울림이자 감사였다. 생애의 끝자락까지 따라가 담아낸 한 장의 사진, 몇 줄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분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지도가 되길 바란다.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3면

전해야 하는 본질

‘이분 신부님 맞아?’ 홍보 주일 특집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속에는 눈길을 끄는 방법으로 선교하는 ‘인플루언서’ 신부가 여럿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본인의 재능을 적극 활용하는 신부들의 콘텐츠를 찾다 보니, 그 매력에 빠져들어 늦은 밤까지 잠 못 든 날도 많았다. 여러 플랫폼에서 노래하고, 강연하며, 숏폼 콘텐츠를 만들고, 심지어 디제잉까지 하는 모습은 그동안 알고 있던 ‘사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인플루언서 신부들의 선교 방법만큼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운영하는 SNS에 남은 이용자들의 다양한 반응이었다. 댓글 창에는 각기 다른 국가와 인종의 사람들이 남긴 진심 어린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인상적인 점은 출신과 배경은 달라도 모두 한 마음으로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의 말씀 덕에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졌어요. 사랑합니다.” 다양한 언어로 적힌 사랑의 말들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바쁜 신부들을 섭외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 자체로 즐거움과 배움이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그러나 결국 본질은 전하는 ‘방법’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그 자체였다. 서면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던 신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도, 그들의 SNS를 찾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것도 바로 그 ‘사랑’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장벽을 넘어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미디어 사도직을 수행하는 기자는 그 사랑을 담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 홍보 주일을 맞아 그 사명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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