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군중이 그 군중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였다고 한다. 아름답고 총명한 그녀를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가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그를 거절했으나 아폴로는 그녀에게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예언의 능력을 주며 그녀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 예언의 능력을 받고도,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신은 불멸이고 늙지 않는데, 자신은 인간이고 늙고 죽으니 그 결과는 비참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그녀가 이 당연한 것을 알고 있다니 놀랍다. 대개 젊은 아가씨일 경우, 얼굴이나 성격이 맘에 안 들어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가 아닌가. 그러니 어쩌면 그녀가 아폴로에게 능력을 받기 전에 이미 예언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아, 어쩌면 예언이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 아무튼 이 신의 아들은 화가 났으나, 한번 부여해 준 예언의 능력은 철회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카산드라의 입에 침을 뱉으며 자신이 사랑하며 축복하던 그 입으로 저주를 내린다. “그래 너는 올바른 예언을 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도 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카산드라는 아름다워서 사랑을 받았다가 총명했기에 신의 사랑을 거부하자 바로 그 이유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형벌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고독과 고통의 터널로 영원히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나라와 함께 멸망하여 목숨을 잃는다. 일전에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라는 책에도 썼지만, 몇 년 전 예루살렘 광장에 섰을 때 나도 카산드라를 떠올렸었다. 내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거기서 군중에게 돌에 맞아 죽은 스테파노 성인을 생각했고, 이곳에서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벌이던 젊은 예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구세주를 환영하던 그 군중들이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했던 그 군중으로 변해버렸던 것을. 하지만 또 생각해 본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것도 분명 저주이지만 어떤 사람이 거짓만 말해도 열광하는 군중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저주라는 것을 말이다. 이미 인류의 역사는 우리 모두를 비극으로 이끌어 가던 이런 종류의 열광을 수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만일 두 기로에 서 있다면 어떨까. 만일 둘 중에 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묻는다면 말이다. 스테파노 성인 혹은 이 땅과 온 세상의 순교자들을 생각할 때 그들이 겪은 육체적 고난보다 더 고통스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그들의 외로움이었다. 언제나 그것이 나를 더 많이 울렸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어둡고 절망적인 책이 아니다. 요나가 있고 니느웨의 군중들도 있다. 그곳의 군중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했고 절제하기 시작했기에 멸망의 예언을 거슬러 구원받았다. 니느웨의 백성들은 말하자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다가, 예언자의 말을 듣고 깨달아 “호산나”라고 외친 것이다. 어떤 순서를 밟을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예수에게 외쳤던 내 지난날은 변화할 수 있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 하고.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반드시 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거짓을 말해도 열광 받으며 이 지상의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힘겹지만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결심,“이의 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는 용기. 그리하여 홀로 있는 시간에 “주님 저는 많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당신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결심을 말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2면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배달하 필립보 신부님을 내 젊은 날 주말마다 가던 시골집의 본당 신부님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행운이었다. 당시 고3이던 딸이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주일 미사에 참례했다가, 신부님의 강론에 감동하여 고3인데도 바로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해서 세례를 받은 것도 그분의 훌륭하고 좋은 강론 때문이었다. 그분의 여러 가지 좋은 강론 중에서 기도에 대한 것은 아직도 내게 선명히 남아 있다. 탈출기 17장 12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싸우는 동안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려놓으면 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모세는 지치기 시작했고 자꾸 손이 내려가자, 사람들이 그를 앉히고 양쪽에서 그의 손을 억지로 받쳐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이 구절이 무슨 소린지 몰랐다. 특히 구약에 보면 ‘이런 걸 왜 성경에 썼을까’ 싶은 구절이 많이 나오는데, 신부님이 이 구절을 가지고 강론하신 것이었다. “무엇이든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의 이치입니다”라는 말로 강론은 시작되었다. “스포츠도 등산도 요리도, 하다못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매 맞는 행위라도 소위 이골이라는 게 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도는 해도 해도 힘들어요. 이 모세의 행위는 기도에 대한 말입니다. 기도는 자발적으로 이렇게 해도 좋지만 정말 힘들면 억지로 남에게 끌려서라도 하라는 말이에요. 이 구절은 그런 뜻입니다. “ 좋은 말씀을 들었을 때 언제나 그렇듯, 가슴이 작게 콩콩 뛰었다. 기도에 어려움을 겪던 나에게, ‘왜 나는 묵주기도를 하는 동안 잡념의 잔치를 벌이는 것일까?’ 죄스럽던 나에게 하신 말씀인 것 같아서였다. 이 강론은 후에 아빌라의 데레사의 거둠기도라는 것에서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기도하려는 의지를 보신다. 기도하는 시간이 힘겹고 아무 감동이 없어도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무르려는 ‘사랑의 선택’ 자체를 받으신다." 운전할 때나 여행할 때 늘 묵주기도를 하곤 하는데, 가끔은 ‘내가 어디까지 했지’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의식적으로 했던 묵상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곤 하는데, 한번은 어떤 나눔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묵주기도는 묵상이야. 그렇게 양으로 많이 한다고 해서 묵주기도가 제대로 되는 거야?”하고 누군가 묻기도 했다. - 대체 이 바리사이 자매들은 어디에나 있고, 꼭 제때 나타난다! - 가끔은 그런 말들에 기운이 빠져 ‘내가 지금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싶지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를 보시는 거’라는 말씀에 힘을 내곤 한다. 가끔 누군가가 묻는다. ‘기도하면 믿어지나요? 믿어져야 기도하나요?’ 나는 대답한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믿음은 그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기도합니다.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제가 늘 당신을 마음속에 그리고 매 순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라고. 혹시나 – 그럴 리가 없지만 - “'예수님이 내게 오셔서 무엇을 주랴. 하나만 말해보라' 한다면 저는 대답할 거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요즈음 하느님은 내 기도를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는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마음이 그리 상하지 않는 것은 그 지루한 양의 기도를 통해 나의 믿음이 아주 작게 자랐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분은 언제나 내 바람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깨닫게 되었기에 말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2면

“이것도 얼마나 참았다가 쏜 건데”

한 지인이 하소연을 해왔다. 먼 집안 조카를 데려다가 일을 시켰는데 어느 날 그 조카가 회삿돈을 들고 남자와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경찰에 바로잡히기는 해서 손실은 크지 않았지만, 지인은 덧붙였다. “얌전한 아이였는데 설마 이런 어리석은 일로 자기 자신을 망치고 나와의 관계를 끊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 했어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다니.” 내가 지인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그런 일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였다. 돈 계산을 알아서 하시라고 어떤 이에게 그걸 맡기고 믿었던 것은, ‘나중에 이 모든 일이 점검되면 횡령이 드러나고 그 자신은 밥벌이를 잃을 텐데 설마’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점검해 보니, 그가 내 돈을 많이 횡령해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장 거래는 끊겼고 나와의 계약은 파기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아주 곤궁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의 교만은 “내가 없으면 자기가 돈을 벌지 못할 텐데 설마 그런 어리석은 짓을”에서 멈추어 있었고, 나중에 나는 내 게으름과 교만을 깊이 반성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픈 기억이다. 잘못은 그가 했지만 내 탓도 없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어릴 때 읽은 이솝 우화가 떠올랐다, 어느 지역에 홍수가 나서 전갈이 고민하는 이야기 말이다. 전갈은 물가에 서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두꺼비 한 마리가 막 강을 건너려고 하는 게 보이자, 전갈이 말을 건다. “두꺼비야 나를 네 등에 태워서 물을 좀 건네주라.” 두꺼비가 대답한다. “전갈아, 나는 너를 알아. 네게는 독이 있는 침이 있고 그걸로 다른 생물들을 죽여 왔잖아. 그런 네가 내 등을 한 방 쏘면 난 죽을 텐데 싫어.” 그러자 전갈이 대답한다. “그런 걱정을 하다니, 생각해 봐라 만일 네가 헤엄치는 동안 내가 널 쏘면 너는 가라앉고 수영 못하는 나도 같이 죽을 텐데 그런 어리석은 일을 내가 하겠니?” 두꺼비가 생각하기에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마음 착한 두꺼비는 전갈을 태우고 헤엄쳐간다. 그러나 물 한가운데쯤 갔을 때 등으로 따끔한 충격이 왔다.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이가 없는 두꺼비가 묻는다. “네 입으로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거라더니? 이러면 우리 다 같이 죽는 거잖아.” 그러자, 전갈이 대답했다. “아아 미안해! 그러나 이것도 얼마나 참았다가 쏜 건데.” 어린 시절 나는 대체 이 우화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기에 이걸 기억하고 있었다. 해석되지 않는 불편함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많은 고통을 겪고 이 우화를 보자 선명하게 그 뜻이 보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이성적이라면 전 세계의 감옥이 그렇게나 만원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우화의 뜻을 젊은 그때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내 인생은 다른 길로 갔을까?’, 나는 그 후로도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전갈의 그 특성은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내게도 있을 테니 설사 이 모든 것을 알았다 해도 나 역시 다시 이 어리석은 길을 걸어오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도, 자신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내가 전갈이 아닌지, 내가 두꺼비가 되려는 것은 아닌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큰 선거를 앞두고 두꺼비와 전갈을 떠올려본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6-01 제3444호 22면

‘진보’세요? 그래서요?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오직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 ” 일찍이 칼 마르크스는 세상을 뒤바꾸어 놓은 그의 저서 「자본론」 맨 앞에 이 구절을 상재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이 구절은 뜻밖에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한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자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의 뜻만 빼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이 구절까지-그러니까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까지- 박제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이며 진보라고 우겼다. 보수라면 원래 있는 것들을 박제해도 더 할 말이 없지만, 진보도 이 정도 되면 진보 밀랍 인형이라도 할 말이 없다. 뭐 이상한 일도 아니다. 철학자 최진석은 ‘시대에 따라 도무지 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가 경험한 것만을 믿는 사람을 꼰대’라고 정의했다. 그는 말한다. 장자를 열심히 읽은 제자가 어느 날 그에게 와서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쓰신 「장자」를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장자처럼 살려고 결심했습니다” 하자, 이 철학자는 그에게 일갈을 가한다. “너는 헛공부를 했구나 장자는 너 자신으로 살라고 한 말인 것을, 기껏 장자를 읽고 장자처럼 산다는 말인가” 하고. “우리가 옛날에 정권에 대항해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던 시대에 감옥 같은 거 법 같은 거 아무것도 아니었지.” 나는 이런 꼰대의 출현을 나의 동기들에게서 지겹도록 보고 있다. 시대의 정신만 빼고 다 박제해버린 꼰대들 말이다. 한번은 신앙이 돈독하다는 어느 자매가 내게 다가와 “마리아 자매님, 저는 성경을 다섯 번이나 읽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혼하면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라고 했는데 잘 아시죠?” 하고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예, 자매님. 제 수많은 지난 날의 죄 중의 하나이지요. 다만 예수님께서 다시 세우신 새로운 계약, 즉 신약이란 간단히 요약하자면 – 제가 이해하기에 - 자구에 얽매이지 말고 하느님과 너의 이웃을 사랑해라, 아니었던가요?” 아직도 강연에 가면, “작가님은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하고 묻는다. 나는 대체로 진보적인 사람이지만, 요즘은 대체 어디에 그 진보라는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백 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역사는 지독한 수구 세력에 의해 모든 새로운 싹이 잘려 나간 아픈 시간을 가지고 있다. 동학부터 시작되었을 그 아픈 역사 때문에, 사실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대개 옳았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나는 2018년 소설 「해리」 발간 당시 인터뷰에서, “당분간 우리의 싸움은 가짜 진보 사기꾼들과의 싸움”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예언 아닌 예언은 불행히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저 수구 보수를 지지해? 난 진보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말한다. 김정은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시진핑은? 프랑스 혁명 후의 로베스피에르는? 루터는 분명 진보였다. 유명한 종교개혁 독재자 칼뱅도 말이다. 이 나라의 역사가 거대한 모퉁이를 돌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엄청난 파시즘의 악취도 감지되는 요즘, 나는 더 이상의 애타는 기도를 멈추고 오로지 하느님께 이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한나 아렌트가 그랬다. “파시즘은 광기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을 멈춘 자들의 고립감과 외로움, 소외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이 산골에서 스스로 고립되어 성무일도를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뇌를 선동꾼들에게 의탁하지 않겠다' 라고. 그리하여 절망하지 않을 용기를 청해본다. 아아, 주님께서 우리의 희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리라.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22면

한사람

몇 해 전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우리 성당에는 미사가 없는 날이 많아서, 나는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의 반경 안에 있는 다른 시골 성당들을 찾아다녔다. 대개는 미사 시간이 비슷해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지만, 평일 미사를 드릴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성당에 갔는데, 초로의 신부님 포스가 예사롭지 않으셨다. 한 달 후 쯤 다시 그곳에 가니 신자들이 다 같이 본당 신부님의 완쾌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보다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의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았다. 강론 시간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의 기도 덕에 좀 나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밤에 아파서 자꾸 깨는데 그럴 때마다 주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밤에 깨면 생각해요. 참 좋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어서.” 저간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이 말씀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 나도 밤에 깨어나면 뒤척이다가 그분 말씀이 떠올라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 가끔은 ‘왜 자꾸 깨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나도 생각했다. “참 좋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어서” 하고. 그 신부님은 그 이후로는 보이지 않으셨다.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잘 계시기를 빈다. 조금 다른 말 같지만 내게 몇 가지 특이한 은총이 있었다. 그건 성지나 순례지에 가면 이상하게도 눈물이, 흑흑 흐느끼는 눈물 말고 줄줄 흘러내리는 맨 눈물이 나오는 은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지를 몇 시간 순례하고 나면 사람들이 내 얼굴에서 빛 같은 것이 난다고 했다. 순교 성지의 은총이었다. 그리고 우리 본당에 새 신부님이 오셨다.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그분의 얼굴을 멀리서 보는 순간 내 눈에서 바로 그 맨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미사 내내 그랬다. 마음은 끝없이 여러 가지 추리를 시작했는데 , 뜻밖에도 실마리는 강론 시간에 풀렸다. “제가 여기 부임하기 전에 안식년이었어요. 그래서 자전거로 우리나라 전국 성지를 다 순례했습니다. 여기 성지마다 찍힌 스탬프도 다 있어요.” 신부님은 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책과 스탬프 책을 들어 보이시며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신기했다. 억지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어떤 꽃가루 비슷한 것이 순례지마다 잔뜩 쌓여 있다가, 내 눈에 눈물을 흐르게 했고 또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어딘가에 묻어 있다가, 그 사람이 내게 다가오자 또 눈물을 흐르게 만들었다는 말이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무언가가 거기에 분명히 있다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순례하고 돌아오신 우리 본당 신부님은 겨우 백여 명이 미사에 참례하는 평균 나이 70이 되는 이 작은 시골본당에 엄청난 활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지난 부활 제3주일 미사의 강론은 얼마나 좋았는지, 나는 그것을 통째로 외워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다 들려주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이 작은 시골 성당들 짓는데, 나는 벽돌 한 장 보탠 일이 없다. 내가 젊을 때 다른 교구의 신학생이셨을 저분들 양성하는데도 빵 한 조각 보탠 일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깊은 시골, 작은 고을에도 누군가가 봉헌한 성당이 서 있고 저렇게 훌륭한 신부님들이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봉사하고 계심을 생각하면 성지라도 순례하는 것처럼 눈물이 난다. 우리 레오 14세 교황님도 그렇게 작고 가난한 성당에서 사도직을 시작하셨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기가 순례성지이고, 어쩌면 저분들이 이 시골마을의 교황님들이 아닐까. 이 부활시기 저 신부님들 한 분 또 한 분들 덕에 내 마음은 진정 부활의 기쁨으로 넘친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6면

수비아코

산골에 집을 짓고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렘은 내 정원과 내 텃밭을 가꾸며 사는 것이었고, 두려움은 고립과 어둠 때문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탈리아 수비아코다. 수비아코. 베네딕토 성인이 로마로 유학을 왔다가, 당시 로마의 타락과 세속화, 부패, 이민족들의 방탕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혼자 떠난 곳이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 대목을 설명할 때, ‘평양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베네딕토가 서울로 공부하러 왔다가 환멸을 느끼고 하느님을 찾아 강원도 정선의 어느 동굴로 떠났다’ 쯤으로 설명한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신부님께 여쭈어보니 대충 비슷하다고 하셨다. 나는 오래도록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에 하느님 공부를 하러 왔던 베네딕토는 왜 그리로 갔을까.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들이 제일 많은 곳이 로마인데. 누가 ‘하느님이 많이 계신 곳(?) 이 어디지’ 하고 물으면, 세상 천지에 로마가 그 대답이 아닌가 말이다. 젊은 날의 나였다면 유럽 문화 재건협의회나 기독교 문화 되살리기 운동 본부 같은 데 가입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십여 년 전 나도 수비아코로 갔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73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수도원기행2」에도 썼지만, 그곳은 산세가 만만치 않아 가는 길이 약간 험했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베네딕토 성인이 살았던 당시는 어떨까 싶었다. 아름답고 웅장한 몬테 카시노를 보고 오는 길이라, ‘굳이 가야 할까’ 생각도 있었다. 게다가 가을 저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녁은 빨리 내렸고, 수비아코는 스산했다. 나는 베네딕토 성인이 살았던 동굴을 돌아보며 그 어둠을 상상했다. 지금 방문해도 어둡고 춥고 스산한 곳, 베네딕토는 대체 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내가 산골로 가기로 마음먹고 집이 완성되었을 때 폭풍우 치거나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밤, 나는 베네딕토를 생각했다. 그 어두운 동굴 속에서 혼자 시편을 외우며 하느님을 만나려고 기도하는 그를 …. 신기하게도 그러면 이 어둠이 두렵지 않았고 비바람 치는 밤이 안온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내 주변의 개신교인들을 바라보며 ‘대체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뭐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인 성녀가 안 계시니 그렇구나’ 싶었던 것이다. 비바람 치는 산골에서 나는 수비아코의 베네딕토를 생각한다. 교회에 실망할 때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생각한다. 죽음이 두려울 때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늙음과 쇠약을 두려워할 때는 성 프란치스코를 …. 그들은 가까운 곳에 사는 우리의 맏형 누나들같이 구체적인 등불이 되어 주신다. 늘 생각하지만, 인간은 밥 한 그릇 때문에 동료를 적에게 밀고할 수도 있고, ‘안 믿겠다’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그리하지 않겠다며 목숨을 내놓는 엄청난 존재이다. 우리 안의 그 엄청난 신성을 늘 일깨워 주시는 성인 성녀가 계심에 오늘도 감사한다. 참 그리하여 1500년 후 베네딕토 성인은 유럽 문화의 수호자로 선포된다. 무슨 무슨 운동 본부에 가입하지 않고도 결국 로마를 타락으로부터 지켜내고 마는 것이다. 이 무슨 기발하고 멋진 결과란 말일까. 지난밤 이곳은 비바람이 거셌다. 나는 시편 127편을 읽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 헛되리라.”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22면

화무십일홍

예전에 살던 시골집 주차장에 전 주인이 심어놓은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있었다. 거의 30년은 더 넘을 수령을 자랑하는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릴 만큼 꽃이 오래가는 나무이다. 배롱나무는 꽃들이 몸살을 하는 장마 기간에 꽃을 피우는 몇 안 되는 귀한 나무였다. 이층 창에서 바라보면 흰 레이스 커튼 사이로 어리는 창밖의 진분홍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꽃들이 모두 잠시 쉬어가는 장마철 무렵 배롱나무는 꽃을 피웠다. 그리고 정말 거의 거짓말 보태서 백 일 동안 피어 있었다. 처음에는 고맙고 기뻤다. 그런데 해가 가고 날이 갈수록 나는 그 진홍빛 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진하디진한 진홍빛도 내 싫증에 한몫을 더했다. 연하고 하얀 꽃이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 내가 종국에는 차 보닛 위로 떨어져 내린 꽃잎들을 쓸어내리며 ‘오래오래 피는 꽃이라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회의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곳에 집을 짓고, 정원을 마련하고, 나는 백 가지 꽃을 심었다. 아름다웠다. 아침마다 정원에 나가 물을 주며 살펴보노라면 하느님에 대한 찬미가 절로 나왔다. 이 빛깔은 어디서 왔을까, 이 연하디연한 고운 꽃잎은 어떻게 저 죽음 같은 딱딱함을 이기고 여기로 나왔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 집에 온갖 꽃들이 다 있는데 남쪽 지방의 명물인 배롱나무가 없네. 현관 옆에 배롱나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하고. 나는 손을 내젓는다. 의아한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겪어보세요! 꽃이 백일이나 빨갛게 피어 있는 것을요.” 올해는 우리 집 정원에 30그루나 있는 키가 큰 동백들이 다른 어떤 해보다 꽃을 잘 피워 나는 아직도 눈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역시 꽃은 꽃이라, 한 나무의 꽃이 열흘이 가지 않는다. 정원을 가꾼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나로서 말하자면, 꽃이야말로 딱 열흘이 적당한 수명이다. 그러므로 내가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은 세간의 사람들이 영화의 허무함을 일컫는 데 쓰이는 것과는 달리 하느님의 멋진 설계를 일컫는 단어이다.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안부를 주고받다가 나는 말하곤 했다. “우리 집에 동백 피었어. 우리 집에 수선화 피었어. 우리 집에 사과꽃 피었어. 우리 집에 금목서 꽃 피었어. 보러와.” 그들은 대답한다. “아 보고 싶다. 가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바쁘기 때문이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벚꽃잎이 일제히 떨어져 꽃비가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찬란한 봄날도 일 년의 딱 하루, 길면 이틀이다. 꽃보다 고운 낙엽이 일제히 떨어져 내리며 아름다운 한해의 마감을 알리는 멋진 가을날도 일 년 중 하루, 길어야 이틀이다. 해마다 꽃이 질 때면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 꽃들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고. 당신은 일생에 몇 번이나 일제히 지는 꽃잎들과 일제히 지는 낙엽 비를 보았나? 진저리가 날 정도로 씽씽하고 반들거리고 흠 하나 없는 것들은 다 가짜이다. 진짜들은 가끔 시들고, 가끔 흠 있고, 그리고 허망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선종 소식 앞에 눈물을 흘리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멀리서나마 흠모한 교황님이셨는데, 한 번은 꼭 뵙고 싶었는데, 너무 빠르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나는 이 허망함을 찬양한다. 가고 있는 이 봄날을. 그리하여 내 영혼에 말해본다. 이 허망함을 누리자. 있을 때 보고 사랑하자, 카르페 디엠!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2면

사랑하라 더욱 헛되이

신약성경 전체에서 어머니 마리아만큼 중요한 여인, 나는 부활과 예수님 그리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생각할 때마다 부활 새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그를 무덤에 묻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와 십자가 밑에서 끝까지 그를 지켰던 요한조차도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공허한 새벽,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다.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헛된 행동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본인의 그리움을 만족시키는 자기 위안이라고 분석할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현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간다.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하기에 설사 그 사람이 죽었고,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더운 나라에서 이미 화학적 부패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나 먼발치에서라도 그냥 서성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그리움이 마리아보다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무친 사랑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성경을 살펴보면 마리아는 그리 수선스러운 여자가 아닌 듯하다. 사람들에게 잡혀 예수께 끌려왔을 때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나중에 언니 마르타가 예수를 동구 밖까지 마중 나가고 음식을 장만하고 수선을 떨 때도 그녀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마리아를 표현하는 말은 그저 발치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그녀가 얌전한 고양이처럼 부뚜막에 올라가는 때가 있었는데, 그건 그녀의 사랑이 사무칠 때였다. 처음이 아마도 과감히(?) 불륜을 저지를 때였을 것이고, 다음이 예수가 돌아가신 다음이고, 그리고 또 한 번이 예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부을 때였다. 내가 그녀의 친구였다면, 나도 말렸을 것이다. 유다처럼 말했을지도 모른다. “발에 향유를 붓지 말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렴”이라거나, “다 돌아가셨는데 무덤엔 가서 뭐하니”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마리아보다 나는 현명하고 현실적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부터 나를 일깨우는 사랑의 기억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 아닌가.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비를 맞고 걸어가는 데 우산을 가지고 빗속을 걸어오던 어머니. “이미 비 맞았는 걸 뭐?” 했지만, 그 사랑은 기억이 난다. 당연히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했는데도,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사랑. “먹고 온다고 했잖아?” 퉁명을 떨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헛되고 쓸데없었기 때문에 사랑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내가 힘겨웠던 날에 나의 자존감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었으니, 사랑은 헛되어도 아니 어쩌면 헛되어서 더욱 빛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묻히시고 난 새벽 헛되이 무덤을 찾아갔던 여자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보는 월계관을 쓴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처음 천국 티켓을 거머쥔 사람은 흉악한 범죄자 우도였는데,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류 최초로 뵙게 되는 영광을 받는 이는 마리아다. 둘 다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예수님이 너무 좋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 예수님 없이는 위로라는 게 완전히 불가능함을 깨닫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오늘,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본다. 더 사랑하리라 더욱 헛되이!!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4-27 제3439호 22면

세상에서 가장 큰 형벌

우리나라의 전설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섬뜩한 이야기가 있다.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지만, 악행을 일삼던 한 여자가 악행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였다. 재력이 풍부한 좋은 집으로 시집갔고, 아들을 셋이나 연거푸 낳는다. 그 아들들은 또 얼마나 잘나고 착하며 공부도 잘하는지… 구색을 갖추어 아들들은 효심까지 뛰어났다. 그렇게 엄친아로 자란 아들 셋은 어느 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나 나란히 모두 급제를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여자는 잔치를 준비하고 아들을 기다린다. 돌아온 아들들은 마당에 꿇어앉아 어머니에게 먼저 감사의 절을 올린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싶은데 바로 그 순간, 절을 하며 고개를 숙였던 아들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놀란 어머니가 고개를 들라 하지만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다가가니 그들은 하나씩 옆으로 쓰러졌다. 모두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었다. 이토록 기이한 일의 사연을 알기 위해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다 불렀지만, 아무도 그 기이한 죽음들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스님이 그 집을 지나가다가 이 죽음의 비밀을 이야기해 준다. 그 이유는 그녀의 악행에 대해 하늘이 분노했고 그 벌을 내릴 때를 기다려, 그녀의 행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걸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두고두고 인간의 행과 불행에 대해 묵상하게 하는 이 이야기를 이번 성주간에 문뜩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십자가 아래에 서 계셨던 마리아를 자주 묵상한다. 십자가의 길 뒤에서 따라가셨던 마리아도 묵상한다. 마리아는 아마도 대충 오십 언저리, 요즘의 기준이 아니라 그때의 기준으로 하면 70이 다된 노파였을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다른 여인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예수 곁에 매달렸던 다른 강도들의 말도 기록되어 있지만 마리아의 말은 없다. 짐작건대 마리아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리아가 슬픔으로 실신했거나, 마리아가 비명을 질렀거나, 마리아가 매 맞고 고문당하고 벌거벗긴 채 매달려 있는 아들에게 단 한마디라도 했다면 복음서의 기자는 분명 그걸 기록했을 테지만 마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사연이 많기로 치면, 하느님께 할 말이 많기로 치면 인류 전체를 통틀어 마리아만 한 사람이 없을 거였다. 그런데 마리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 한마디도.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던 예수가 제자 요한 더러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 곁에 서 계신 마리아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 인류 구원의 프로젝트에서 마리아는 마치도 엑스트라처럼 서서 예수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아직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최고의 고통은 부모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어미가 되고 나서 이 생각은 더 굳어졌다. 심지어 죄 많고 악한 나도 ‘아이들을 대신해 네 목숨을 바치겠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성모님은, 원죄도 없으신 성모님은 그 최고의 형벌을 침묵과 순종으로 받았다. 죄 많은 우리도 잘 받지 않는 그 고통을. 그러므로 인간 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어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뿐 아니라 죽어가는 아들 곁에서 우주 무게의 침묵을 견뎌낸 인간 마리아의 희생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을 예측하고 침묵으로 지켜봐야 했던 성부. 그는 예수의 아버지시기도 하셨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4-20 제3438호 26면

가로로 자를지 세로로 자를지

예루살렘 양 문 근처에 벳자타라는 연못이 있었다. 그곳에는 천사가 물을 출렁거릴 때 제일 먼저 그 못에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나으리라는 전설이 있었다. 가짜뉴스였다. 그걸 믿고 거기에서 38년을 누운 채로 기다리는 병자가 있다. 어느 날 예수가 그에게 다가가 묻는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신 거다. 좀 너무하신 것 아닌가? 빤히 보면서 누굴 놀리느냐고 뺨을 맞으신데도 편들어 드리진 못할 것만 같은데 병자의 대답은 한술 더 엉뚱하다. “저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니까요.” 그러자 예수는 말한다.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그는 그 자리에서 나아 버렸다. 병이 나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선문답처럼 기이했을지도 모른다. 이 장면이 내게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뻔히 아픈 걸 보시면서 “낫고 싶으냐”고 묻는 예수님도, 그런 질문에 ‘제가 처방을 안다’는 듯 대답하는 병자도 그랬고 더더욱. 그런데도 병이 나아 버리는 것도 그랬다. 돌아보면 여러 번 예수께서 내게 물으셨다. “구원받고 싶으냐? 평화로워지고 싶으냐? 혹은 진리를 알아 자유로워지고 싶으냐?”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했었다. “우리 남편이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이 철이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돈이 조금만 더 있어야 해요. 저 정치인은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건강해지고 싶으냐” 물었을 때, 그냥 “예 그렇습니다” 하는 대답은 내게도 38년이 지나서 60년이 되도록 그렇게나 어렵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20대에 세상의 이치를 다 안다고 생각했었고, 30대에 세상은 알겠으나 사람은 모르겠다고 문득 깨달았다. 40대가 되자 내가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50대가 다 지나가자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로 떠들었던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내가 다는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평화롭고 우리 인류가 평화롭고 우리 민족이 평화롭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이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예수께서 “이 나라의 평화가 오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면 “저기요 저 정당은 좀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고, 저 정당은 곧 독재할 것 같고, 미국은 좀 자제를 해야 할 것 같고”하는 말을 꾹 참고, “예수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라고 할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다만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며, 법정에서 한 아기를 놓고 ‘반 갈라 가지라’고 한 솔로몬의 판결을 듣고, 한 엄마는 ‘칼로 세로로 깨끗하게 자르자’고 하고, 한 엄마는 ‘가로로 잘라 나누자’고 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어떻게 아기의 몸을 세로로 반을 자르자고 할 수 있나요? 저는 반대입니다”라고 말하니, “그럼 넌 가로로 자르자는 편이구나?” 하고 몰아세우고, “어떻게 아이를 가로로 잘라요?” 하고 물으니 “그런 너는 세로로 자르자는 편이구나” 하며 몰이들을 해댄다. 사제들까지도 거기에 합세하고 있다. 좀 쉬러 성당에 가도 “너 세로 파야 가로 파야?” 이러는 강요를 듣는 것만 같아 정말 힘이 든다. 진짜 엄마는 법정에 들어오지도 못한 채 문밖에서 울고 있는데, 이 나라는 어디로 갈까. 주님 제게 물어주십시오. 꾹 참고 대답할게요. “예, 이 나라의 평화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4-13 제343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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