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

예전에 살던 시골집 주차장에 전 주인이 심어놓은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있었다. 거의 30년은 더 넘을 수령을 자랑하는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릴 만큼 꽃이 오래가는 나무이다. 배롱나무는 꽃들이 몸살을 하는 장마 기간에 꽃을 피우는 몇 안 되는 귀한 나무였다. 이층 창에서 바라보면 흰 레이스 커튼 사이로 어리는 창밖의 진분홍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꽃들이 모두 잠시 쉬어가는 장마철 무렵 배롱나무는 꽃을 피웠다. 그리고 정말 거의 거짓말 보태서 백 일 동안 피어 있었다. 처음에는 고맙고 기뻤다. 그런데 해가 가고 날이 갈수록 나는 그 진홍빛 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진하디진한 진홍빛도 내 싫증에 한몫을 더했다. 연하고 하얀 꽃이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 내가 종국에는 차 보닛 위로 떨어져 내린 꽃잎들을 쓸어내리며 ‘오래오래 피는 꽃이라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회의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곳에 집을 짓고, 정원을 마련하고, 나는 백 가지 꽃을 심었다. 아름다웠다. 아침마다 정원에 나가 물을 주며 살펴보노라면 하느님에 대한 찬미가 절로 나왔다. 이 빛깔은 어디서 왔을까, 이 연하디연한 고운 꽃잎은 어떻게 저 죽음 같은 딱딱함을 이기고 여기로 나왔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 집에 온갖 꽃들이 다 있는데 남쪽 지방의 명물인 배롱나무가 없네. 현관 옆에 배롱나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하고. 나는 손을 내젓는다. 의아한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겪어보세요! 꽃이 백일이나 빨갛게 피어 있는 것을요.” 올해는 우리 집 정원에 30그루나 있는 키가 큰 동백들이 다른 어떤 해보다 꽃을 잘 피워 나는 아직도 눈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역시 꽃은 꽃이라, 한 나무의 꽃이 열흘이 가지 않는다. 정원을 가꾼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나로서 말하자면, 꽃이야말로 딱 열흘이 적당한 수명이다. 그러므로 내가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은 세간의 사람들이 영화의 허무함을 일컫는 데 쓰이는 것과는 달리 하느님의 멋진 설계를 일컫는 단어이다.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안부를 주고받다가 나는 말하곤 했다. “우리 집에 동백 피었어. 우리 집에 수선화 피었어. 우리 집에 사과꽃 피었어. 우리 집에 금목서 꽃 피었어. 보러와.” 그들은 대답한다. “아 보고 싶다. 가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바쁘기 때문이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벚꽃잎이 일제히 떨어져 꽃비가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찬란한 봄날도 일 년의 딱 하루, 길면 이틀이다. 꽃보다 고운 낙엽이 일제히 떨어져 내리며 아름다운 한해의 마감을 알리는 멋진 가을날도 일 년 중 하루, 길어야 이틀이다. 해마다 꽃이 질 때면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 꽃들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고. 당신은 일생에 몇 번이나 일제히 지는 꽃잎들과 일제히 지는 낙엽 비를 보았나? 진저리가 날 정도로 씽씽하고 반들거리고 흠 하나 없는 것들은 다 가짜이다. 진짜들은 가끔 시들고, 가끔 흠 있고, 그리고 허망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선종 소식 앞에 눈물을 흘리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멀리서나마 흠모한 교황님이셨는데, 한 번은 꼭 뵙고 싶었는데, 너무 빠르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나는 이 허망함을 찬양한다. 가고 있는 이 봄날을. 그리하여 내 영혼에 말해본다. 이 허망함을 누리자. 있을 때 보고 사랑하자, 카르페 디엠!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2면

사랑하라 더욱 헛되이

신약성경 전체에서 어머니 마리아만큼 중요한 여인, 나는 부활과 예수님 그리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생각할 때마다 부활 새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그를 무덤에 묻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와 십자가 밑에서 끝까지 그를 지켰던 요한조차도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공허한 새벽,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다.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헛된 행동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본인의 그리움을 만족시키는 자기 위안이라고 분석할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현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간다.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하기에 설사 그 사람이 죽었고,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더운 나라에서 이미 화학적 부패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나 먼발치에서라도 그냥 서성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그리움이 마리아보다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무친 사랑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성경을 살펴보면 마리아는 그리 수선스러운 여자가 아닌 듯하다. 사람들에게 잡혀 예수께 끌려왔을 때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나중에 언니 마르타가 예수를 동구 밖까지 마중 나가고 음식을 장만하고 수선을 떨 때도 그녀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마리아를 표현하는 말은 그저 발치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그녀가 얌전한 고양이처럼 부뚜막에 올라가는 때가 있었는데, 그건 그녀의 사랑이 사무칠 때였다. 처음이 아마도 과감히(?) 불륜을 저지를 때였을 것이고, 다음이 예수가 돌아가신 다음이고, 그리고 또 한 번이 예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부을 때였다. 내가 그녀의 친구였다면, 나도 말렸을 것이다. 유다처럼 말했을지도 모른다. “발에 향유를 붓지 말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렴”이라거나, “다 돌아가셨는데 무덤엔 가서 뭐하니”라고 말이다. 그러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마리아보다 나는 현명하고 현실적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부터 나를 일깨우는 사랑의 기억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 아닌가.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비를 맞고 걸어가는 데 우산을 가지고 빗속을 걸어오던 어머니. “이미 비 맞았는 걸 뭐?” 했지만, 그 사랑은 기억이 난다. 당연히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했는데도,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사랑. “먹고 온다고 했잖아?” 퉁명을 떨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헛되고 쓸데없었기 때문에 사랑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내가 힘겨웠던 날에 나의 자존감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었으니, 사랑은 헛되어도 아니 어쩌면 헛되어서 더욱 빛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묻히시고 난 새벽 헛되이 무덤을 찾아갔던 여자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보는 월계관을 쓴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처음 천국 티켓을 거머쥔 사람은 흉악한 범죄자 우도였는데,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류 최초로 뵙게 되는 영광을 받는 이는 마리아다. 둘 다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예수님이 너무 좋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 예수님 없이는 위로라는 게 완전히 불가능함을 깨닫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오늘,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본다. 더 사랑하리라 더욱 헛되이!!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4-27 제3439호 22면

세상에서 가장 큰 형벌

우리나라의 전설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섬뜩한 이야기가 있다.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지만, 악행을 일삼던 한 여자가 악행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였다. 재력이 풍부한 좋은 집으로 시집갔고, 아들을 셋이나 연거푸 낳는다. 그 아들들은 또 얼마나 잘나고 착하며 공부도 잘하는지… 구색을 갖추어 아들들은 효심까지 뛰어났다. 그렇게 엄친아로 자란 아들 셋은 어느 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나 나란히 모두 급제를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여자는 잔치를 준비하고 아들을 기다린다. 돌아온 아들들은 마당에 꿇어앉아 어머니에게 먼저 감사의 절을 올린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싶은데 바로 그 순간, 절을 하며 고개를 숙였던 아들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놀란 어머니가 고개를 들라 하지만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다가가니 그들은 하나씩 옆으로 쓰러졌다. 모두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었다. 이토록 기이한 일의 사연을 알기 위해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다 불렀지만, 아무도 그 기이한 죽음들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스님이 그 집을 지나가다가 이 죽음의 비밀을 이야기해 준다. 그 이유는 그녀의 악행에 대해 하늘이 분노했고 그 벌을 내릴 때를 기다려, 그녀의 행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걸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두고두고 인간의 행과 불행에 대해 묵상하게 하는 이 이야기를 이번 성주간에 문뜩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십자가 아래에 서 계셨던 마리아를 자주 묵상한다. 십자가의 길 뒤에서 따라가셨던 마리아도 묵상한다. 마리아는 아마도 대충 오십 언저리, 요즘의 기준이 아니라 그때의 기준으로 하면 70이 다된 노파였을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다른 여인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예수 곁에 매달렸던 다른 강도들의 말도 기록되어 있지만 마리아의 말은 없다. 짐작건대 마리아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마리아가 슬픔으로 실신했거나, 마리아가 비명을 질렀거나, 마리아가 매 맞고 고문당하고 벌거벗긴 채 매달려 있는 아들에게 단 한마디라도 했다면 복음서의 기자는 분명 그걸 기록했을 테지만 마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사연이 많기로 치면, 하느님께 할 말이 많기로 치면 인류 전체를 통틀어 마리아만 한 사람이 없을 거였다. 그런데 마리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단 한마디도.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던 예수가 제자 요한 더러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 곁에 서 계신 마리아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 인류 구원의 프로젝트에서 마리아는 마치도 엑스트라처럼 서서 예수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아직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최고의 고통은 부모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어미가 되고 나서 이 생각은 더 굳어졌다. 심지어 죄 많고 악한 나도 ‘아이들을 대신해 네 목숨을 바치겠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성모님은, 원죄도 없으신 성모님은 그 최고의 형벌을 침묵과 순종으로 받았다. 죄 많은 우리도 잘 받지 않는 그 고통을. 그러므로 인간 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어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뿐 아니라 죽어가는 아들 곁에서 우주 무게의 침묵을 견뎌낸 인간 마리아의 희생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을 예측하고 침묵으로 지켜봐야 했던 성부. 그는 예수의 아버지시기도 하셨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4-20 제3438호 26면

가로로 자를지 세로로 자를지

예루살렘 양 문 근처에 벳자타라는 연못이 있었다. 그곳에는 천사가 물을 출렁거릴 때 제일 먼저 그 못에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나으리라는 전설이 있었다. 가짜뉴스였다. 그걸 믿고 거기에서 38년을 누운 채로 기다리는 병자가 있다. 어느 날 예수가 그에게 다가가 묻는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신 거다. 좀 너무하신 것 아닌가? 빤히 보면서 누굴 놀리느냐고 뺨을 맞으신데도 편들어 드리진 못할 것만 같은데 병자의 대답은 한술 더 엉뚱하다. “저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니까요.” 그러자 예수는 말한다.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그는 그 자리에서 나아 버렸다. 병이 나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선문답처럼 기이했을지도 모른다. 이 장면이 내게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뻔히 아픈 걸 보시면서 “낫고 싶으냐”고 묻는 예수님도, 그런 질문에 ‘제가 처방을 안다’는 듯 대답하는 병자도 그랬고 더더욱. 그런데도 병이 나아 버리는 것도 그랬다. 돌아보면 여러 번 예수께서 내게 물으셨다. “구원받고 싶으냐? 평화로워지고 싶으냐? 혹은 진리를 알아 자유로워지고 싶으냐?”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했었다. “우리 남편이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이 철이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돈이 조금만 더 있어야 해요. 저 정치인은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건강해지고 싶으냐” 물었을 때, 그냥 “예 그렇습니다” 하는 대답은 내게도 38년이 지나서 60년이 되도록 그렇게나 어렵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20대에 세상의 이치를 다 안다고 생각했었고, 30대에 세상은 알겠으나 사람은 모르겠다고 문득 깨달았다. 40대가 되자 내가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50대가 다 지나가자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로 떠들었던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내가 다는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평화롭고 우리 인류가 평화롭고 우리 민족이 평화롭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이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예수께서 “이 나라의 평화가 오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면 “저기요 저 정당은 좀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고, 저 정당은 곧 독재할 것 같고, 미국은 좀 자제를 해야 할 것 같고”하는 말을 꾹 참고, “예수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라고 할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다만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며, 법정에서 한 아기를 놓고 ‘반 갈라 가지라’고 한 솔로몬의 판결을 듣고, 한 엄마는 ‘칼로 세로로 깨끗하게 자르자’고 하고, 한 엄마는 ‘가로로 잘라 나누자’고 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어떻게 아기의 몸을 세로로 반을 자르자고 할 수 있나요? 저는 반대입니다”라고 말하니, “그럼 넌 가로로 자르자는 편이구나?” 하고 몰아세우고, “어떻게 아이를 가로로 잘라요?” 하고 물으니 “그런 너는 세로로 자르자는 편이구나” 하며 몰이들을 해댄다. 사제들까지도 거기에 합세하고 있다. 좀 쉬러 성당에 가도 “너 세로 파야 가로 파야?” 이러는 강요를 듣는 것만 같아 정말 힘이 든다. 진짜 엄마는 법정에 들어오지도 못한 채 문밖에서 울고 있는데, 이 나라는 어디로 갈까. 주님 제게 물어주십시오. 꾹 참고 대답할게요. “예, 이 나라의 평화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4-13 제3437호 22면

재난 가방

얼마 전까지 나와 지인들이 가끔 나누던 화제는 앞으로 곧 있다는 후지산 폭발과 난카이 대지진에 대한 것이었다. 동일본 쓰나미야 일본 열도가 가로막혀 있고, 또 거리도 상당하다고 하지만 난카이 해구는 부산 앞바다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염려스러웠다. 한번은 가족 모임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공계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평생을 과학 도시에서 살고 있는 오빠가 “그거 7월 5일쯤 난다고 하니 그 무렵엔 절대 일본에 가면 안 될 거야” 하기에 마음속으로 그 날짜를 새겨두고 다른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오빠 그거 지질 연구소나 해양 연구소 친구분들이 측정한 거야?”라고 묻자, 오빠가 태연하게 “아니 일본 예언가가 그랬다는데 유튜브에 나와” 하는 것이었다. 순간 입에 물고 있던 음식을 뿜을 뻔했던 건 비밀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40년 내로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만이 확실했고, 그 날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산 중턱에 살고 있으니 좀 낫겠지’ 했는데 그만 얼마 전 지리산 너머에서 산불이 나고 말았다. 지리산 북쪽에서 시작된 산불이 내가 글을 쓰는 순간에도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리산국립공원과 그 권역이 서울시의 1.5배 정도로 넓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째 불이 지속되자 남의 일 같지 않았고 바람이 불면 가슴이 후르르 쓸려나가곤 했다. 두려움도 있었고 근심도 있었다. 다시 또 생각하는 일이지만, 은총이 아니라면 한순간이라도 우리에게 안전한 곳이 있을까 싶다. 이번에 불이 난 곳은 드론을 타고 우리 집에서 하늘을 올라가면 몇십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기에 나도 크게 안심하고만은 있을 수가 없긴 했다. 전화기에서는 계속해서 경보가 울리고 집 뒤 봉우리로 헬기들이 쉴 새 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만일 우리 동네에도 경보가 울리면 나는 무엇을 가져갈까’ 싶어 소위 재난 가방을 챙기려고 작은 여행 가방을 꺼냈다. 우선 지갑 여권 그리고 노트북 …. 그러고 나자 더 넣을 게 없었다. 3일 여행에도 뚱뚱한 가방을 싸던 나였는데 그냥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집이 불탄다고 가정을 하니, 하나도 넣을 게 없었다. 고심 끝에 겨우 하나 더 추가한 것이 보조 배터리와 커피 텀블러였다.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재난경보를 받고 챙겨야 할 것이 이거라면 이 지상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을 때 나는 무엇을 챙길까. 오래전부터 나는 죽음을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성인의 말씀대로 ‘새의 발목을 쇠사슬로 묶어놓든 명주실로 묶어놓든 날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라는 것을 새기며 이 지상을 떠날 때 혹여라도 미련을 둘 것을 하나씩 정리해 왔다. 그리고 요즘 들어 얼마간은 정리했다고도 생각했다. 아빌라의 성 데레사의 말처럼 ‘삶을 낯선 여인숙의 하룻밤’까지 여기지는 못했어도, ‘누군가 공짜로 주신 좋은 리조트에서의 여러 날’이라고 생각해 왔다. 처음 도착할 때부터 “내가 부르면 너는 와야 한다”라는 조건으로 살게 된 이곳. 그러니 부르시면 손에 쥐었던 모든 것을 놓고 기쁘게 “네!”하고 대답하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너무 비관적인 거 아냐. 뭐 그런 생각을 해.” 나는 앞날에 대해 그리 세세하게 근심하는 스타일의 사람은 아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는 철학을 학창 시절부터 지켜왔다. 숙제도 결국 못한 적이 많았고 시험은 초치기가 거의 다였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의식은 나의 삶을 더 경쾌하고 가벼우며 의미 있고 감사로 가득 차게 만들어준다. 생각해 보라. 언제 떠날지 모르는 리조트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아름답다면 당신은 커튼을 치고 낮잠을 자겠는지 아니면 그곳을 돌아보며 감사하겠는지. 하느님 부르시면 텀블러도 여권도 소용없겠지. 다만 그게 지금이라면, 그래서 죽기 전에 소망이 하나 있다면 국회의원들 세비 뺏어다 우리 고생하시는 소방관들에게 다 드리고 싶다.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4-06 제3436호 22면

마귀에게 절대 없는 것

누군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모든 면에서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마귀가 가지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하느님은 그걸 우리 인간에게 주셨어. 그걸 아니?”하고. 나는 별생각 없이 “사랑 아닐까?”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가끔 마귀도 자식 정도는 사랑하지 않을까? 그것에 ‘참’ 자가 붙는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는데, 그가 말했다. “정말로 마귀가 가지지 못한 것은 바로 ‘희생’이야. 네가 어떤 사람이 악한지 선한지 살펴보려고 할 때 이 부분을 유의해. 그가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지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는지.” 나는 이 땅에 여성으로 살면서 오랜 세월 희생이라는 것에 대해 민감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 또래 중에서도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이 오빠나 남동생을 위해 진학을 포기하는 것도 여러 번 보았으며, 경제력 없는 어머니가 남편에게 맞고 살면서도 아이를 위해 헤어지지 못하는 것도 숱하게 보았다. 이에 열거한 사례들에 대해 반항심 가득한 내가 반감을 품었음은 물론이며, 나는 희생이라는 말이 가지는 폭력성이 싫어 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회심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명제를 묵상하면서 오래전 들었던 마귀의 일화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 소녀들에게 강요되었던 희생, 힘없는 아기 엄마에게 강요되었던 희생, 더 나아가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들이나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에게 강요되었던 것을 우리는 희생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희생은 선로에 떨어진 할머니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청년에게 걸맞은 단어이다. 신장이 망가진 늙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주는 큰딸의 의지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건강하고 강한 자가 약자에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희생이라기보다 그냥 폭력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보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 보였다. 자신의 미각을 위해 신자 전체에게 다른 음식을 강요하는 사제부터,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런 희생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뻔뻔함은 전염병처럼 더 무섭게 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도소 봉사를 오래 한 법륜 스님의 말 중 하나는 그 정곡을 찌른다. “처음에 나는 교도소에 가서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로 애썼어요. ‘희망을 가지셔야 한다’고도 했고,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인생을 사시라’고도 했죠. 별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죠. ‘여러분 다들 억울하시죠?’ 그 순간 엄청나게 힘찬 합창이 들려왔어요 ‘예!!’ 하고. 교도소에는 억울하다는 사람이 이미 만원입니다.” 사순 기간 동안 나는 십자가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세 분의 희생이 수놓아져 있다. 하나뿐인 외아들을 내놓으신 하느님, 자신을 오롯이 희생하신 성자 예수님,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침묵으로 견디신 성모님. 그래서 십자가에는 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나 보다. 우리보다 만 배는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마귀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못하는 그것, 유다인들에게는 수치이자 어리석음으로만 보였다는 그것, 십자가의 희생. “그러니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30 제3435호 22면

사랑이 밥 먹여 준다

아주 오래된 어느 날, 그러니까 지금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우리 딸이 고3이었던 날, 나는 당시 수원교구의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새벽 미사에 다녀온 딸이 아침을 먹으며 호들갑스럽게 내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오늘 우리 본당 신부님 어디 가셨는지 다른 신부님이 오셨어. 이탈리아 사람이래. 그분은 성남시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밥 나눔을 하고 계신다고 자신을 소개하셨어. 그러더니 어눌한 한국어로 강론을 짧게 하시는 거야. 이렇게. ‘여러분 사람들은 노숙자들에게 묻습니다. 왜 술 먹습니까? 왜 일하지 않습니까? 왜 희망 안 가집니까? 하고요. 그러나 나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건 꼭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일까요?” 나는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도 그 강론을 기억한다. 내가 들은 – 실은 딸이 들은 - 강론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게 감동적인 말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분이 운영하시는 곳이 ‘안나의 집’이었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신부님은 30세 때 한국에 오셔서 성남시의 노숙인들에게 밥을 제공하시는 일을 40년이 다 되도록 지금도 하고 계신다. 그 후로 바로 서울로 이사를 가느라 안나의 집에 찾아가지 못했지만, 특별한 날이 오면 나는 그분과 노숙자들을 기억했고 그곳에 약간의 봉헌을 했다. 그리고 딸과 그분 이야기를 더 나눌 일은 없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가고 딸은 유럽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다. 다녀와 그녀가 말했다. “엄마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뜨자마자 미친 듯이 흔들렸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도 너무 무서웠어.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 싶어 기도했어. ‘하느님 제가 지금 죽는다면 죽으면서 받는 이 고통을 안나의 집과 그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님께 봉헌하니 받으세요’ 그랬는데, 그 순간 비행기가 흔들림을 딱 멈췄어. 이거 진짜야.” 딸은 내 얼굴이 영 마뜩잖아 보였는지, 진짜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순간 몇 가지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만일 죽는 일이 있다면 나도 몇 번 봉헌하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아이들, 우리나라의 평화, 북한의 해방 같은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이인 딸이 자신의 목숨이 죽는다 치고 그걸 안나의 집을 위해 봉헌한다니 그게 더 놀라웠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니야 믿어. 집채만 한 비행기가 흔들림을 멈출 만해. 네 착한 마음에 하느님이 감동받으셨을 것 같아. 너무나 대견하구나” 하고…. 그리고 이상하게도 힘들거나 희망이 사라진다고 느낄 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니면 그냥 속상해서 술을 한 잔 마실 때 이상하게 내가 바로 옆에서 들은 듯이 그분의 말이 생각났다. “왜 술 먹습니까? 왜 일하지 않습니까? 왜 희망 가지지 않습니까?” 신비했다. 이즈음 뒤숭숭하다 못해 황당한 시국 때문에 나는 거의 글을 못 쓰고 있었다. 책들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나라가 집채만 한 비행기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이런 때 김하종 신부님과 안나의 집 생각이 났다. 찾아보니 다행히 그분의 저서가 있었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였다. 상한 음식만 먹고 있다가 모처럼 신선한 채소를 섭취한 것처럼, 내 영혼은 책 속으로 바로 빨려 들어갔다. 집채만 한 비행기처럼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고 있는 이 나라를 위해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하느님, 우리가 받는 이 고통을 가난하고 희망 없는 사람들, 그분들을 위해 애쓰시는 안나의 집 여러분을 위해 봉헌합니다”하고…. 그러고 보니 또한 신비였다. 사제 한 사람의 짧은 강론이 엄중하다는 것이.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23 제3434호 22면

우도를 기림

고향 서울을 떠나 남쪽에 내려와 산 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간다.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내가 23년째 해 오고 있는 서울 구치소를 방문하는 일이다. 아침(?) 두 시 반에 일어나 전날 준비해 놓은 5~6인분의 도시락을 싸고 5시쯤 길을 나선다. 9시 반쯤 서울 구치소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나의 봉사가 시작된다. 그사이 부쩍 노쇠해진 내 몸은 오래전부터 ‘이건 무리야’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기도를 시작했다. ‘서울 말고 이곳에서 다른 봉사로 당신을 돕고 싶다’고. ‘이건 모른척하지 마시고 꼭 응답을 주셔야 한다’고. 힘겹게 두 시 반에 일어나 서울로 갈 채비를 차리면서 내 마음은 몇 번이나 이별의 말들을 준비하고 있었고, 실제로 지난 몇 달 동안 몇 번 말을 꺼냈기도 했다. 신부님도 난감해하셨다. 교육받은 봉사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도 오늘은 이 말을 꺼내리라 맘먹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나와 만나게 되는 한 사형수가 – 봉사자는 네 팀으로 돌아가고 사형수들은 현재 다섯 명이기에 우리는 몇 달씩 못 만나기도 한다 - 미사에 나왔다. 그는 얼굴이 몰라보게 환했다. 복음이 낭독되고 나눔을 하는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지난번 마리아 자매님께 약속드린 대로 하루에 묵주기도를 최소 75단씩 했어요. 많이 하는 날은 120단까지 했어요. 몇 단 했는지 잊어버릴까 봐 바둑돌을 얻어다 작은 종지에 옮겨가며 했어요.” ‘나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만 오려고 해요’라고, 말하려던 나의 입술은 멈추어졌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지난여름 더위와 절망에 지친 그에게 내가 위로를 건넸었다. “예수님 오른쪽에 있었던 죄수를 생각해 봐요. 그의 죄가 형제님보다 가볍지는 않았겠지요. 그도 사형수였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회개하자 예수님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으시고 인류 최초로 천국 문 티켓의 구매 확정을 해주셨어요.” 그 무렵 나는 하루에 묵주기도 100단을 하고 있었는데 나눔 중에 그 말을 듣던 그가 머뭇거리더니 자신은 5단도 겨우 한다면서 100단은 안 된다고 하기에, ‘그럼 50단은요?’ ‘조금만 더 하자, 60단은요?’ 뭐 이러다가 어찌 된 일인지 75라는 숫자에서 흥정(?)이 멈추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이 조용하지 않은, 이 분노와 소음으로 가득 찬 곳에서 그걸 해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목이 콱 메어왔고 눈물이 고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 꼭 매달 오기가 힘들면 그냥 쉬어가면서 그래도 … 계속하면 안 되겠니?” 대체 나의 하느님은 왜 이렇게 눈물 그렁한 목소리로 속삭이시는지, 나는 가끔 의아하곤 했다. 많이 받은 내가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퉁명하게 명령하셔도 나는 순종해야 할 것 아닌가. 감동을 받는 것은 받는 것이고 왕복 10시간을 운전하는 나의 몸은 파김치가 되어가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요즘 몇 달 만나지 못한 다른 사형수에게 편지가 와 있었다. “마리아 자매님 잘 지내시죠.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거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말을 신부님께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했어요. … 그래도 … ‘꼭 매달 오기가 힘들면 그냥 쉬어가면서 그래도 … 계속하면 안 되겠나요?’ 하고….” 온몸으로 소름이 후루룩 돋았다. 이 말은 내가 돌아오며 하느님께 받은 마음속의 응답 그대로가 아닌가. 하느님은 다른 사형수가 보낸 편지의 말들을 내게 먼저 전해 주셨다. 맙소사.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게는 요나처럼 도망칠 고래 배 속도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열어젖히시는 희년의 문중에서 ‘갇힌 자들을 위한 문’이 활짝 열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발행일 2025-03-16 제3433호 22면

메일린의 기적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날 나는 알았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사랑이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우주와 이 세상, 내 몸과 주변이 모두 사랑으로 운행되고 있음을 믿는다는 것을. 엄마가 아픈 예방주사 바늘을 들이대도 원망하지 않는 아이처럼, 그토록 좋아하는 사탕을 하나만 주어도 원망하지 않는 아이처럼, 상처에 더 아픈 소독약을 붓는 사랑으로 이해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니 믿음이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느님이 그것을 보고 계시며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이렇게 쉽고도 어려운 일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3살 아기 메일린은 집안의 작은 파티장에서 혼자 소시지를 먹다가 질식해 뇌사상태에 빠진다. 책과 다큐로 나온 <메일린의 기적>은 교황청이 가장 최근에 공식 인정한 그녀와 가족이 함께한 기적의 보고서들이다. 다른 장기들과는 달리 뇌는 3분 이상 산소공급이 중지되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뇌사는 의학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이므로 의료진은 수일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부모에게 산소와 영양공급을 중단할 것을 권한다. 그때 메일린의 부모는 묻는다. “애가 배고파서 죽는 거 아닙니까?” 이 구절은 의료진과 독자인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모는 고집스레 메일린을 지킨다. 이때 메일린의 아버지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예수로 추정되는 빛을 보고 뚜렷하게 “내가 그 아이를 살릴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는 신자가 아니었다. 메일린의 외조부모가 가톨릭신자였을 뿐이었다. 부모는 메일린을 극진하게 돌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자이든 아니든 기도도 시작된다. 소식을 들은 프랑스 리옹의 사람들은 가경자 폴린 자리코에게 전구를 청하며 9일 기도를 시작한다. 의사들이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메일린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후일 인터뷰에서 메일린의 아버지는 말한다. “꼭 기적을 바란 건 아니었어요, ‘낫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이 데려가시면 그녀를 더 사랑해 주시겠지요’ 하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또 그는 말한다. “처음에 기도할 때 너무나 외로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수억 명이 나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어요. 너무나 놀라웠지요.” 과거의 어떤 날에 나는 꼬박 보름을 거의 못 자고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한 일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외쳤었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기도해도 안 들어주실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네가 하는 행위는 어쩌면 기도가 아닌지도 몰라 그건 그냥 집착일지도 몰라. 메일린의 부모는 집착하지 않았다. 신자가 아니어도 기도했다. “혹시 데려가시면 당신이 그 애를 더 사랑해 주시겠지요” 하고. 우리 지구는 시속 1670km로 돌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4분 만에 갈 수 있는 속도이다. 또 우리 지구는 그렇게 뺑뺑 돌면서 초속 29.8Km로 태양을 돌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4초 만에 갈 수 있는 속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지럽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는다. 지으시고 나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이미 그 자체로 기적이다. 그런데 하느님과 착한 부모 그리고 이웃의 사랑은 그 기적마저 비집고 다시금 기적을 만들어 냈다. 아름다운 메일린과 그 가족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프시다는 우리 교황님을 위해서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09 제3432호 22면

누가 길을 아는가

디즈니의 영화 <이집트 왕자 2>(Joseph King of Dreams)에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압니다>(You know better than I)라는 요셉의 노래가 나온다. 처음, 이 노래를 듣고 엄청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가끔 힘들 때 이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아직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 안에 있는 교만들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 지하 감옥에서 부른 노래이며, 그의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중 하나는 복직되고 하나는 처형 되었으나 복직된 이는 요셉을 잊었다. 아마도 푸르른 청춘이었을 요셉은 이제 자신의 젊은 시절은 물론 평생을 지하 감옥에서 썩어갈 신세가 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제 내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생각했으리라. 어쩌다 자신이 이리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으리라. 지하 감옥, 잊혀짐 그리고 홀로 죽어감…. 그때 이 노래가 나온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가장 확실한 길을 선택했다고 믿었는데 그 길이 날 여기 데려다 놓았어요.” 나더러 번역하라면 아마도 “네가 생각한 대로 산 결과가 딱 이 꼴이야!” 이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구절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저항했죠. 이것이 시험이라면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진실이 확연해졌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을 아는 게, 이걸 헤쳐 나가는 길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놓아버렸어요. 왜냐고 묻는 그 마음을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아니까요.” 한때 이 세상과 내 인생에 대해 ‘왜죠? 왜죠?’ 하고 물었던 때가 생각났다. 대체 ‘왜 나입니까?’ 하고도 물었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내게 이러시는 건가요?’ 하고 물었던 것도 기억났다. 밤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소주병과 잔을 두 개 가져다 하나는 십자가 아래 놓고 하나는 내가 마시며 –두 잔 다 내가 마셨다- 원망과 주정을 하던 때도 있었다. (이건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아직도 권한다. 괜히 친구 괴롭히지 말고, 집에서 검약하게 이런 방법을 쓰라고.) 그때 가장 많이 물었던 단어가 ‘왜?’였던 것 같다. 오래도록 “당신이 어떻게 내게 그러실 수 있어요?” 하고 외쳤는데, 하도 오래 외치다 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주정이 “당신이 어떻게 내게…. 뭐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하고 바뀌는 날이 있었다. 기적 같은 변화였다. 팽팽하던 분노와 긴장이 일순간에 풀어져 내렸고 엷은 해방감 같은 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깨달음들이 왔었다. ‘날이 왜 이렇게 추워?’라든가 ‘웬 비가 이리 많이 내려?’라든가, ‘왜 이렇게 비가 오지 않는 거야?’라든가 하는 말이 얼마나 교만한 말인지 알게 된 것이다. 가끔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하면 나는 농담처럼 묻곤 했다. “네가 몸소 날씨 플랜을 하늘에 제출하고 왔어?” 나는 아직도 기도한다. “요래 요래 해 주시고요, 조래 조래 마시고요, 쟤는 좀 혼내주시고요. 쟤에게는 돈을 좀 주시면 좋겠어요!” 뭐 이렇게…. 이런 기도가 전혀 잘못은 아니겠지만, 그 후에 덧붙이는 것을 잊곤 한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가장 중요한 말이다. “하늘에 한 조각 구름이 떠 있었는데 나는 그게 하늘인 줄 알았어요.” 노래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전히 그것이 내 이야기인가 싶다. 그래서 다시 기도한다. “하느님 뜻대로 하시고 제게는 그것을 받아들일 은총을 주십시오. 어느 게 더 좋은지 저보다 잘 아시는 분이시니.”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3-02 제3431호 22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