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몰아쳐도 ‘멈출 권리’ 없는 노동자들…"생명권 보장하라"

7월 9일 경북 경산에서 쿠팡 새벽 배송을 하던 40대 여성 노동자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폭우로 자동차가 물에 잠기자 급히 탈출하는 과정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쿠팡의 물류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이와 관련해 “기상악화로 인해 배송되지 않거나 지연되는 경우 배송 기사들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없기 때문에 배송 기사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박상호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롯데본부 본부장은 7월 17일 기후위기 비상행동 기자회견에서 “기록적인 폭우에도 쿠팡은 배송을 중단시키지 않았고 해당 노동자에겐 업무인 배송을 중단할 권리인 작업중지권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기후위기로 한반도의 날씨가 달라지고 있다. 여름철 비의 양은 많아졌고 기온은 올라가고 있다. 이는 폭우로 인해 더 많은 배송 기사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폭염으로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기후재난은 뿌리 깊은 불평등의 경계선을 따라 약한 생명부터 무너뜨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생각보다 가까이 와닿고 있는 기후재난. 매일 생명을 걸고 일하는 이들은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기후재난이 무너뜨린 가장 약한 생명 기상청에 따르면 2020년 7.7일이던 폭염일수는 지난해 14.2일로 3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났다. 올해 강수량 또한 평년 평균 보다 124.3% 증가해 재해의 횟수도 늘어났다. 단순한 기상이변으로 여기기엔 꾸준히 증가하는 수치가 공통적인 원인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은 2020년 ‘재난의 인적 비용: 지난 20년(2000~2019년)의 개요’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7348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홍수 3254건, 태풍 2043건, 지진 552건으로 전체의 90.9%가 기후와 관련된 재난이었다. 이는 20세기 말(1980~1999년)에 발생한 재난(4212건)의 1.7배에 이르는 수치다. UNDRR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1℃ 올랐고, 그 영향으로 폭염·홍수·산불 등의 극한기후 현상의 빈도수가 증가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분석했다. 이미 올라간 지구 온도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뜨거워진 지구가 내 가족과 이웃의 목숨을 위협한다면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7월 17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재난 속에서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고 호소했다. 이 자리에는 배달플랫폼 노동자, 에어컨 서비스 노동자, 건설노동자, 가스점검원, 오송참사유가족 등 기후재난을 겪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폭염과 폭우로 위험이 닥칠 때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작업을 멈출 권리, 참사의 피해자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고 실현할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시간에 쫓기고 인원이 부족해서 위험한 노동환경을 감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 모든 것이 기후재난 앞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고 국가가 응답해야 할 시민들의 권리”라고 밝혔다. 배달플랫폼과 건설 노동자 등 폭염·폭설 등 노출 환경에서 안전권조차 보장 못 받아 인간 누구나 지닌 생명·행복권 위험앞에서 일 멈출 수 있고 생계 위협 없는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 기후위기 속,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생명 여름철 건설 현장은 한증막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건설기계를 비롯한 장비, 철근, 망치 등 햇빛에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들이 건설노동자의 손에 쥐어진다.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박세중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고용노동부는 물, 그늘, 휴식 3대 원칙을 잘 지키면 폭염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휴식도, 작업 중지도 지켜지지 않는다”며 “실질적인 작업중지, 제대로 된 휴게시설 설치, 제대로 된 세척시설이 현장에 시급히 필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한파와 폭우에 속수무책인 것은 배달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김지수 사무국장은 “극한의 기후일수록 추가 배달 운임과 프로모션을 통해 우리를 재해의 위험으로 유인하는 배달플랫폼 기업의 정책, 안전하게 일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AI 알고리즘,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 제도의 부재로 우리는 매일 생명을 걸고 일하고 있다”며 “기후재난으로 인해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호할 수 있는 기후실업급여 제도가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방문노동자인 가스점검원의 시름도 기후변화와 함께 깊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 허보기 분회장은 “가스 안전 점검원들은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시가스 사고 예방을 위해 가가호호 가스 누출 여부 등을 점검한다”면서 “그런데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 폭설, 한파, 장마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점검원들의 안전은 누구도 책임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후위기 속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 폭염, 폭우, 한랭, 한파 시 작업 중지 실질화를 위한 법제화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제한적인 고열작업 기준 확대 ▲ 악천후가 발생해 건설노동자가 일하지 못해 소득이 감소할 경우 건설노동자 생계 보장할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하다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국민의 권리가 온전하게 보장되지 못하는 가운데,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헌법재판소에서 병합 심리 중인 기후 헌법 소원의 판결을 촉구했다. 기후헌법소송 청구인인 기후위기 비상행동 김은정 공동운영위원장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들 그 어느 하나, 기후위기로 인해 온전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며 “기후위기로 더 이상 아까운 삶들이 스러지지 않도록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의 기본권 보호책무를 인정하는 기후헌법소원 판결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다. 인간 기본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에 교회도 힘을 보태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인간도 생명권과 행복권을 누리며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이 세상의 피조물”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환경 훼손, 현재의 개발 방식, 버리는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4~5월 청소년 환경 단체가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의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낸 헌법소원의 공개 변론을 두 차례 진행했으며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 단체 ‘청소년 기후 행동’이 낸 사건과 시민, 영유아 부모 등이 낸 비슷한 사건 3건을 합쳐 한꺼번에 심리 중이다.

“신부님 오셨다!” 힘든 어르신들에게 더욱 절실한 교회의 손길

의정부교구는 올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요양 사목’을 시작했다. 다니던 본당마저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제에게 축복을 청하고 성체도 모시길 염원하는 요양시설 내 어르신 신자들에게 요양 사목은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급격히 증가하는 고령 인구로 인해 본당 사목자가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을 모두 감당하기엔 힘든 경우가 많아졌고, 앞으로는 더욱 그렇다. 이런 가운데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아 우리 주변 어르신 중에서도 각별한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방식의 사목이 필요할지 올해 첫걸음을 뗀 의정부교구 요양 사목을 통해 짚어본다. 의정부교구에 요양 사목이 더 절실했던 이유 의정부교구 관할지역은 전체 인구 대비 노인 인구 비율, 특히 요양이 필요한 노인 인구 비율이 다른 교구의 관할지역에 비교해 높은 편이다. 의정부교구 2지구 요양 사목을 담당하는 홍기환(베르나르도) 신부는 “서울은 임대료가 비싸고 시설이 들어설 물리적 공간도 부족하다 보니, 요양시설들이 경기도 등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연스럽게 의정부교구 관할지역 안에 노인 요양 시설이 월등히 많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이미 많은 본당 사제가 지역 내 어르신 신자들을 직접 찾아가며 병자 영성체를 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본당에 교적을 둔 어르신들만 돌보기에도 벅찬 게 사실이다. 홍 신부는 “일반 요양원이 자체적으로 어르신들의 종교를 파악해 본당에 알려주진 않기 때문에 결국 사제가 직접 가서 신자인 어르신이 있는지, 신자라면 교적이 어딘지, 가족과 연락이 닿는지 등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본당 사제가 모든 요양원을 돌며 어르신들을 돌보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의미다. 요양시설이 많은 의정부교구는 이런 특징이 더욱 도드라진다. 노인 인구 비율 높은 의정부교구, 2월 요양 사목 신설 4개 지구 파견된 사제들 요양시설 전담…소통과 돌봄 실천 병환으로 평소 신앙생활 힘들었던 어르신 신자들 호응 커져 신부들의 자원으로 시작된 요양 사목 홍 신부는 “본당 사목 시절 교구 차원의 요양 사목이 절실하다는 생각에 교구에 요양 사목 신설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제안을 교구가 수용했다. 올해 2월 의정부교구는 요양원이 많거나 넓은 지역에 분포돼 본당 사목자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는 네 개 지구(1지구, 2지구, 4지구, 8지구)를 선정한 뒤, 지구별로 사제 한 명씩을 선교사목국 병원사목위원회(위원장 고종향 가롤로 신부) 소속 요양 사목 담당으로 파견했다. 홍 신부가 포함된 네 명의 신부는 모두 요양 사목의 필요성에 공감해 자원했다. 큰 틀에선 사제가 본당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지구 내 요양시설을 전담해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병자 영성체를 주거나 어르신들을 돌보는 게 공통된 역할이지만, 더 세밀한 부분은 아직 초기 단계다 보니 담당 사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중 2지구를 담당하는 홍기환 신부는 의정부교구 광릉본당(주임 나준홍 바오로 신부)을 거점으로 총 3개 본당 관할지역의 요양원 어르신들을 돌본다. 수요일과 금요일 홍 신부가 봉사자들과 함께 요양원 등을 직접 방문하며, 워낙 요양원 수가 많다 보니 한 요양원당 방문 빈도는 한 달에 한 번꼴이다. 봉사자는 각 본당 소속으로, 담당 사제와 동행해 어르신들을 돌본다. 사제가 병자 영성체를 주는 동안 요양원 담당자와 소통하며 교적을 모르는 신자를 파악하거나, 요양원 내 알려지지 않은 신자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신부님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들 신자임에도 신부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어르신들에게 요양 사목은 큰 힘이 된다. 7월 17일 홍기환 신부는 광릉본당 관할 네 개의 요양시설을 방문했는데, 시설들은 비교적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곳부터 뇌경색, 사지 마비 등을 겪는 중증 어르신들이 있는 곳까지 다양했다. 홍 신부는 어르신들에게 병자 영성체를 주고 한 명 한 명에게 축복한 뒤 덕담을 건네며 소통한다. 예식을 마치고 나서려는 홍 신부의 뒤에다 한 어르신은 “신부님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홍 신부는 “요양원에서 말도 못 하고 누워 계신 분들도 과거 어떤 본당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교우들”이라며 “그런 분들이 타지 요양원에서 교회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기에, 요양 사목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양원 담당자들은 우리가 방문하는 날만 되면 신자 어르신들 얼굴이 활짝 핀다고 하는데, 그분들께 교회 손길이 얼마나 필요하셨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광릉본당 관할 구역 네 곳의 요양원 중 한 곳인 성모요양원에선 새 영세자도 나왔다. 이날 병자 영성체에 참례한 15명의 어르신 중 한 명인 우원동(막시모·75)씨는 딸과 손자가 보는 앞에서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 요양 사목이 없었다면 놓쳤을 수도 있는 소중한 교회 식구다. 이제 막 첫걸음이지만 교구 내 요양 사목 전담 사제 유무의 차이는 상당해 보인다. 광릉본당 봉사자 전용희(클라라)씨는 “전에도 본당 사목회가 어르신들을 찾아가긴 했지만, 관련 시설과 어르신 신자 수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 제대로 된 파악이 어려웠다”면서 “올해 담당 신부님이 오시면서 특히 신자 파악과 관련해 체계가 잡혀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2024-07-28

[더(熱)위를 열(熱)정으로 다스리는 사람들(하)] 한마음한몸운동본부·평화3000 국제협력 활동가

왜 변화하는 누군가를 볼 때 느껴지는 감동이 유독 잔물결처럼 짙고 긴 여운으로 다가올까. 혼자서는 풀어내지 못하는 굴레에 사로잡힌 누군가를 마침내 해방시키는 데서 기쁨을 느끼도록 우리가 태초에 빚어졌기 때문일까. 이렇듯 가난과 아픔 속 소외된 지구촌 이웃에게 기적을 안겨주고자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제협력 활동가들은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순수한 열망을 고백한다. 사시사철 불볕더위인 동남아시아에서 올 상반기에도 한결같이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변화’를 선사하고 온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이사장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 국제협력센터, 사단법인 평화3000(상임대표 곽동철 요한 신부) 국제협력 활동가들이 편지를 보내 왔다. ■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국제협력센터 박지영(소화 데레사) 활동가 4월 캄보디아와 필리핀 지원 사업 현장 모니터링을 다녀왔어요. 저희 활동가들은 세계 각국으로 매년 1~2회 현장 모니터링을 다녀옵니다. 본부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국가 및 협력기관과의 사업을 최대한으로 모니터링하고자 매년 다른 대륙과 나라를 방문하죠. 몸도 가슴도 가장 뜨거웠던 캄보디아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캄보디아에서는 농촌 빈농들을 위한 농업 사업, 아동·청소년 교육 지원 사업 현장을 찾았어요. 본부는 현지 단체와 협력해 캄보디아 6개 주의 가난한 농촌 지역 발전과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농민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농업 생산량을 늘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지속가능한 농법을 교육·보급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주민들과 농지를 방문해 사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지 점검하고, 가계가 나아지고 농업 기술이 향상되는 등 주민들의 변화를 직접 듣고 목격할 수 있었어요. 또 본부는 푸삿주에서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가 운영하는 방과 후 학교 ‘안나스쿨’과 8개의 마을 공부방을 통해 교사 급여 지원, 영양 급식 및 간식 제공, 영어·미술·음악 등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 지원을 하고 있어요. 저희는 마을 공부방에 가서 열악한 교육 시설, 부족한 교사, 학습 기자재 부재 등 취약한 교육 현실을 파악했어요. 그곳에서 수업하는 교사들도 인터뷰했죠. 가난한 형편에서도 계속해서 배우려는 의지를 갖게 된 아이들의 변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량 증가 질 좋은 교육으로 인재 양성 작은 도움으로 희망 선사한 일에 보람 바싹 익어버릴 정도로 작열하는 더위가 가장 힘들었어요. 캄보디아의 4월은 건기인 데다가 40℃를 넘고, 엘니뇨 영향으로 지난해 12월부터 해당 지역에 비가 한 번도 안 와 폭염이 계속됐어요. 얼굴은 빨갛게 익고 온몸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는데, 농민분들이 주시는 물 한 병이 어찌나 달던지요. 하지만 변화를 목격할 때의 보람은 그 모든 어려움을 상쇄해 버리죠. 이번에는 농업 사업에 3년 이상 참여하는 현지 농민을 만나 기적 같은 변화를 전해 들었어요. 처음에 이 사업이 시작될 때는 아무래도 주민들의 신뢰가 형성되기 전이라 그분 마을에서는 5가구만 참여했대요. 하지만 그분이 친환경 농법을 배워 실제로 농사에 적용하며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그 덕에 지금은 55가구가 농업 사업에 참여하고 있죠.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온 셈이에요. 저희 도움으로 질 좋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지역사회 일원으로 잘 자라나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안나스쿨의 한 선생님은 어린 시절 안나스쿨 학생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어른이 돼서는 안나스쿨 영어 교사가 됐답니다. 이러한 변화들이 혼자만의 힘이 아닌 후원자, 현지 활동가들, 주민들 등 모두의 참여와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식량난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난민 등 소외된 지구촌 이웃들의 일이 ‘우리 모두의 일’임을 기억해 주시고, ‘한집에 사는 한 가족’으로서 작은 실천으로 큰 변화를 불러오는 것, 어떠세요? ■ 평화3000 해외사업팀 정다와 팀장 6월 필리핀 산마태오시에서 치과의료 봉사활동을 다녀왔어요. 평화3000은 필리핀 치과의료 봉사활동을 사업을 2013년부터 매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물이 탄산음료보다 비싸서 설탕 섭취량이 많아 주민들 치아 상태가 처참해요. 그런데 치아 관리 인식도 부재하고 진료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서, 다들 머리가 깨지듯 아파도 통증을 버틴대요. 진료자 중 90%는 발치를 원하죠. 관리를 할 자신이 없기에 근원을 없애 달라는 거예요. 하지만 저희가 전하고자 하는 건 희망이거든요. 주민들에게 충치 치료 방법 중 하나인 레진(Resin)을 통해 치아 홈을 메꾸고, 충치로 구멍이 뚫린 앞니를 예쁘게 다시 만들어 줍니다. 진료 전후의 분명한 차이 사례를 접한 주민들은 무조건적 발치가 아니라 관리만으로도 치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에 눈떠요. 저희는 한 지역에서 최소 3년은 진료를 해야 변화가 있음을 경험하고 2018년부터 지금까지 산마태오시에서 매년 1회 봉사를 하고 있어요. 올해는 3일간 484명을 진료하며 그 어느 때보다 주민들 치아 상태가 많이 개선됐음을 확인했습니다. 무작정 발치보다 레진을 택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이제는 주민들이 먼저 레진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인식의 변화가 이뤄진 거죠! 현지에서 치아 치료 봉사활동 이 썩어 식사 못하던 분들이 완쾌 후 미소지을 때 큰 보람 봉사활동을 위해서는 2~3달 전부터 준비해야 해요. 한국의 사무국과 현지 코디네이터가 함께 봉사활동을 꾸립니다. 필리핀 의료허가서를 발급받고 현지 의사 선생님을 꼭 동반해야 해 동사무소(바랑가이), 보건소와 협조합니다. 한국에서도 봉사단을 꾸려요. 치과의 1명과 치위생사 2명을 1조로 해 올해는 의료진 3조를 구성했어요. 안내, 의약품 배부, 설문조사 등을 맡을 일반 봉사자 18명도 함께요. 준비 기간에는 양국 실무자 단톡방에 불이 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현지 상황을 공유하느라요. 특히 한국에서 준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버벅대기 일쑤니 더욱 긴장해야죠. 보람은 엄청나요. 앞니가 썩어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하던 사람이 마침내 활짝 웃으며 지어 보인 미소가 얼마나 찬란하던지요. 또 의료진과 봉사자들처럼 저희를 감동시키는 분들이 없어요. 사흘간 치아 200~300개를 뽑고 종일 마취 주사를 놓는다면 팔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런데 봉사자들은 치료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민들을 위해 제 한 몸 부서지게 투신합니다. 활동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사명감보다 ‘일’로 접근하게 돼요. 반면 봉사자들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가치’를 실현하고 계시죠. 조건 없이 섬기시는 주님 사랑을 배우게 돼요. 치과의료 봉사의 최고 장점은 주민들 건강 상태가 즉시 개선된다는 점이에요. 충치가 즉시 메워지고, 부었던 잇몸이 가라앉죠. 작은 정성으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데 정부는 도시빈민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대요. 가려진 이웃부터 섬기라고 하신 주님 말씀대로, 저희와 함께하실 분은 누구든 환영이에요!

2024-07-28

[순례, 걷고 기도하고] 제주교구 ‘김대건길’

‘김대건길’은 2012년 9월 15일, 제주교구 6개 순례길(산토 비아조, SANTO VIAGGIO, www.peacejeju.net) 중 가장 먼저 열렸다. 제주의 서쪽 끝 아름드리 야자수가 이국적인 고산성당에서 출발해 신창성당에 이르는 11.5km 여정에는 바다와 섬, 포구와 산이 있다. 그리고 성 김대건 신부와 순교자들의 자취가 스며 있다. 그 흔적 찾아 첫걸음을 뗀다. 제주교구 고산성당 성 김대건 신부님 순례길 쉼터에서 출발해 해안 쪽으로 1.9km 걸으면 바다와 수월봉 입구에 다다른다. 한눈에 담기도 부족할 푸르고 너른 바다. 바다와 맞닿은 바위에 올라 낚싯줄 드리우는 강태공도 그 풍경에 녹아들었다. 순례자도 그 안에 들어 자구내포구까지의 해안 산책로, 여기 말로 ‘엉알길’이라 부르는 길을 밟아 걷는다. 왼쪽으로는 차귀도가 가지런히 누워 있고 오른쪽은 화산이 만든 신비로운 물결과 절벽이 조화를 이룬다. #1845년 8월 31일 - 이제 조선으로 간다. 불과 보름 전 사제품을 받았지만 마냥 중국에 머물 수는 없었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조선 신자 여럿이 함께 배에 올랐다. 토비아의 길을 인도한 대천사 라파엘의 이름을 단 배가 상하이 항구를 떠난다. 목자가 나셨다며 기뻐할 조선의 신자들을 생각하니 김대건 신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데…바람이 심상치 않다. 자구내포구에 닿으니 몸 가누기 힘들 만큼 바닷바람이 세졌다. 해풍에 맨몸 드러낸 한치가 포구 곳곳에 내걸려 펄럭인다. 걸음 내내 따르던 차귀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포구를 지나 당산봉에 오른다. 옛날 이곳에 호랑이를 모시던 신당이 있어 붙은 이름. 수월봉보다 높은 해발 146m지만 오르기는 수월하다. 당산봉을 내려와 용수포구를 향하는 1.1km 길은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을 뽐낸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푸른 바다와 차귀도를 이웃한 순례길이 고즈넉하다. #1845년 9월 28일 - 몸도 마음도 지쳤다. 표류 20여 일.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즈음 신자 한 명이 소리쳤다. “섬이 보인다.” 차귀도다. 육지에 이르진 못했지만 우리 땅 제주에 닿았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기뻐 덩실덩실 춤을 췄다. 육지로의 항해를 이어가려면 거친 풍랑에 몸살 앓은 라파엘호를 수리해야 했다. 아니 그 전에 감사와 찬미의 미사를 봉헌해야 했다. 제대를 차렸다. 제주교구 용수성지 입구. 김대건 신부가 오른손을 들어 순례자를 맞이한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의 정면은 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중국 김가항(金家巷) 성당의 모습이다. 등대 모양의 종탑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교회와 성인을 상징한다. 성지 마당 작은 연못 곁으로 라파엘호가 복원돼 있다. 김대건 신부가 간직했던 ‘기적의 성모상본’ 속 성모상도 라파엘호의 귀국길 때처럼 지금도 곁을 지키고 있다. 제주표착 기념관 옥상에 오르면 순례길을 함께한 수월봉과 자구내포구, 당산봉, 차귀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가 차귀도 너머로 뉘엿뉘엿 지고 있다. 성지 잔디마당에 둘러앉아 묵주기도를 봉헌하는 순례자들을 지나 성지를 나선다. 신창성당까지는 4.8km. 용수포구를 지나 풍차가 운치를 더하는 해안도로를 걷는다. 제주 해안을 따르는 180km의 일주도로 중 가장 아름답다는 이 길은 ‘성 김대건 해안로’라고도 부른다. 풍경에 취해 넣어두었던 묵주를 꺼내 들었다. ‘빛의 길’이라 이름 붙은 김대건길의 끝자락. 빛의 신비를 봉헌한다. #1845년 10월 어느 날 - 하느님의 섭리로 제주 해안에 닿았던 라파엘호가 다시 바다로 나섰다. 조선으로의 길은 곧 순교의 길임을 일행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꼭 1년 후 박해의 칼날 아래서 천상의 영광을 안은 성 김대건 신부가 오늘을 살아가는 순례자에게 당부한다. “교우들 보아라.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몸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하실 때를 기다리라.” 성 김대건 해안로를 따라 늘어선 커다란 풍차 너머로 붉은 하늘이 내려앉고 있다. ◆ 순례 길잡이 - 제주교구 김대건길(www.peacejeju.net/bbs/page.php?hid=course01) ‘김대건길’은 제주교구 고산성당에서 시작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수월봉 인근과 자구내포구, 성 김대건 신부의 라파엘호가 도착한 용수성지를 거쳐 신창성당에 이르는 11.5km의 순례길이다. 제주 올레길 12코스와도 여정이 겹치는 김대건길은 제주 천주교 여명의 역사를 묵상할 뿐 아니라 바다와 섬, 화산지형, 오름 등 제주 천혜의 자연 경관도 체험할 수 있다. 순례 여정의 중간지점인 용수성지에는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과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한 라파엘호도 전시돼 있다. 용수성지에서 신창성당까지의 성 김대건 해안로에서는 2023년 세워진 높이 2.5m의 김대건 신부 성상도 만날 수 있다. ▶ 용수성지 미사 - (월요일 제외) 오전 11시 ▶ 성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오전 10시~오후 6시) ▶ 문의 064-772-1252

2024-07-28

[함께 보는 우리 성인과 복자들(7)] 하인 성 조신철과 복자 김천애

조선시대 신분상 ‘하인’으로 분류되는 성 조신철(가롤로·1796~1839)과 복자 김천애(안드레아·1760~1801)는 각각 마부와 노비 신분이었다. 이들은 비천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 준 주인 혹은 상관에 의해 신앙을 받아들였고,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교회를 위해 발 벗고 뛰었다. 결국 순교의 영광에까지 이르러 지위를 막론하고 교우들의 모범이 된 성인과 복자를 소개한다. 조선 하층민으로 살던 성인·복자 성 조신철은 강원도 화양에 살던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안 되는 가산은 아버지가 탕진해 앞길이 막막했던 소년 조신철은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스님들과 같이 몇 해를 지냈다. 그 후 환속하여 서소문 밖에서 이집 저집 다니며 머슴살이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23세 때 매년 동짓달 중국으로 파견되는 사절단(동지사)의 종인 마부(馬夫)로 일하기 시작했다. 복자 김천애는 그 출신과 고향에 대해서 정확한 사료가 전해지진 않는다. 직업이 노비인 것으로 비추어 볼 때 평범한 노비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 초남이(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의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1756-1801) 집 노비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각각 성인·복자에게서 하느님을 배우다 성인과 복자가 신앙을 받아들인 과정은 흥미롭다. 성 조신철은 성 유진길(아우구스티노·1791~1839)에게서, 복자 김천애는 자신의 주인이었던 복자 유항검에게서 신앙을 배웠다. 자신에게 신앙을 전해준 이들처럼 성인, 복자가 된 것이다. 성 조신철은 마부로 일하며 정직하고 용감해 동료들로부터 호감을 샀다고 전해진다. 동료들로부터 “사신의 종복(從僕)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평판도 들었다. 그런 와중에 함께 사신을 따라다니던 역관(譯官) 성 유진길의 눈에 띄었다. 성인의 성실한 모습을 보고 장차 조선 교회의 큰 일꾼으로 삼고자 입교시키기로 마음먹었던 것. 성 조신철은 그와 동행하며 세례와 견진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배움의 초기에는 쉽게 풀어주는 교리조차 알아듣지 못했으나 거듭된 과정 끝에 하느님을 진심으로 믿게 됐다고 전해진다. 성 조신철 중국 사절단 마부로 일하던 중 유진길 성인 인도에 신앙의 길로 형벌 이겨내다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인은 하느님을 믿게 된 기쁨에 넘쳐 신입 교우들을 자기 힘닿는 데까지 도우며 봉사했다. 또 아내에게 신앙을 권유해 입교시켰다. 성인은 조선 사회의 비천한 지위였음에도 오히려 그 지위를 사용해 조선 교회에 공헌했다. 동지사 마부로서 북경 천주교회와의 연락과 성직자 영입 운동 등에 깊게 관여한 것이다. 특히 모방 신부의 통역관이 되어 지방 전교 사업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복자 김천애는 평범한 노비로 살아갈 뻔했으나 다행히도 빈부와 신분에 차별을 두지 않았던 자신의 주인인 복자 유항검에게 사람답게 존중받으며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복자 유항검에게서 신앙을 전수 받아 1784년 세례를 받고 ‘안드레아’라는 세례명까지 얻으며 자신의 주인과 평등한 관계인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다. 제대로 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했던 조선 노비로서는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신앙인이 된 복자는 노복, 마름, 소작인 등 당시 조선에서 대우가 그다지 좋지 않던 하층민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신앙을 전파했다. 또 십계명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등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고결한 마음으로 신자의 본분을 지켜나갔다. 복자 김천애 복자 유항검 집안 노비로 살다 신자되면서 주인과 평등하게 지내 배교 강요 이겨내고 신앙 지켜 흔들리지 않은 신앙, 그리고 순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어느 날 성 조신철의 꿈에 예수님이 베드로, 바오로 사도를 거느리고 나와 “올해 너에게 나의 영광을 위해 피를 흘리는 특별한 은혜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꿈 속 말씀대로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성인은 일단 처가로 피신했다. 음력 5월, 포졸들이 처가를 습격해 그의 가족들을 결박하고 어린 젖먹이까지 잡아가자, 성인은 포도청으로 달려가 자수했다. 포도청·의금부에서 여러 차례 신문을 받는 도중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이 집에서 발견된 데다가 서양인 신부들의 은신처를 알려는 관헌들에 의해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어떤 형벌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킨 성인은 1839년 9월 26일 44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됐다. 사형 집행장으로 가는 와중에 성인은 옥리에게 “나는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인데, 내 가족에게 용기를 내어 나를 따라오라고 전해 주시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복자 김천애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주인인 유항검을 이어 그의 맏아들 유중철 요한과 함께 체포돼 전주 감영으로 압송됐다. 감영은 복자에게 모진 문초와 형벌을 가하며 배교와 밀고를 강요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양으로 압송된 후 형조에서도 그의 신앙은 굳건했다. 그를 천한 신분으로 여겨 무시하던 이들 앞에서 그가 최후로 한 진술이 전해 내려온다.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쳤다. 저에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는가? 스스로 범한 죄를 돌이켜 보건대 오직 빨리 죽기를 원할 따름이다.” 전주로 다시 압송된 복자는 41세의 나이로 참수당했다. 복자의 최후 진술과 용감한 순교는 교우들은 물론이고 복자를 무시하고 천대하던 이들에게도 큰 감명과 놀라움을 줬다. ◆ 전주숲정이성지 복자 김천애가 순교한 전주숲정이성지는 현재 전북 전주시 덕진구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아파트와 초등학교, 주택가에 둘러싸인 작은 부지지만 과거엔 숲이 우거져 있어 숲정이로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군사훈련장이었는데 근처에 피 묻은 칼을 씻을 수 있는 전주천이 있어 사형장으로도 사용됐다. 신유박해(1801) 때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가족 일부와 그의 동료 복자 김천애가 순교한 이후로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피를 흘렸다.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 때도 많은 이가 참수형 받았다. 이곳에서 순교한 성인 이명서(베드로)의 후손이 숲정이가 아무런 표지도 없이 방치된 것을 보고 직접 매입해 순교자비를 세웠고, 이후 교회가 관리하고 있다. 현재 전주숲정이성지는 전라북도가 지정한 기념물 제71호다.

2024-07-28

[특별기고] ‘천주교 중국화’에 노력 기울이는 중국교회

중국 정부가 천주교를 비롯해 5개 종교의 ‘중국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 신의식(멜키올) 회장이 최근 중국 천주교 단체의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신 회장은 이번 중국 방문을 통해 경험한 현재 진행 중인 ‘천주교 중국화’의 모습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본지에 다음의 글을 기고했다. 필자는 안양(安陽)사범학원 외국어학원과 허난성(河南省) 천주교중국화연구중심의 초청으로 7월 1일부터 5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방문 장소로는 베이징의 중국천주교신철학원(中國天主敎神哲學院), 허난성 안양의 안양사범학원 외국어학원, 안양주교좌성당 그리고 역사문화 명소였다. 전 일정은 안양사범학원 교수이자 허난성 천주교중국화연구중심 주임인 류즈칭(劉志慶) 교수가 동행했다. 이번 탐방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현재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천주교 중국화’에 대한 노력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과연 중국 현지에서 ‘천주교 중국화’의 실체를 찾아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반신반의하면서 탐방에 임했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중국천주교신철학원의 중국화 노력과 안양의 갑골문이다. 중국천주교신철학원은 중국 수도자와 성직자들 교육의 산실로 우리나라 대신학교격의 교육기관이다. 안양은 중국 상(商)나라 때 은허(殷墟)라 불리던 곳으로 왕릉이 있던 곳이며 갑골문이 발견됨으로써 중국이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된 역사적인 도시이다. 이러한 특별한 장소와 역사적 지역을 통해 천주교 중국화가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중국천주교신철학원의 중국식 성당 건축과 중국풍 성화 중국천주교신철학원은 원래 1992년에는 하이디앤취(海澱區) 창와제(厂洼街)에 있던 것을 2006년에 이곳 다싱취 싱예다제로 이전했다. 중국천주교신철학원 부원장 리수싱(李樹興) 신부로부터 반가운 환영을 받으며 학교를 둘러봤다. 중국천주교신철학원은 중앙에는 베이징 톈탄(天壇)공원의 치녠뎬(祈年殿)을 모방해 만든 성모영보(수태고지) 성당이 있었고, 그 둘레로 4동의 건물(성 요한 강의동, 성 야고보 양성동, 성 베드로 성당, 성 요셉 도서관)이 배치돼 있다. 신철학원 중앙에 위치해 있던 성모영보 성당은 치녠뎬을 축소시켜 놓은 모습이었다. 성당 건물로 지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치녠뎬은 황제가 매년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그러한 상징적인 건축물을 성당으로 건축한 것은 천주교 중국화의 대표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말 마테오 리치 선교사가 전교를 위해 승려의 승복을 벗고 사대부 복장으로 환복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신철학원에서 눈에 띈 것은 최후의 만찬 그림이었다. 신철학원 식당 정면 벽에는 고상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 최후의 만찬은 중국식 복장을 한 예수와 열두 제자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좌우로 효친존사(孝親尊師,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존경하라), 지은보은(知恩報恩,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라)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 또한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한 천주교 중국화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었다. ‘치녠뎬’ 모방해 만든 ‘성모영보 성당’ 중국식 복장의 ‘최후의 만찬’ 성화 등 중국교회 변화 반가우면서도 끝나지 않은 ‘의례 논쟁’에 노파심도 ‘중국식 천주교’로 오해할 수 있기에 중국화 대신 ‘탈외래종교화’ 썼으면 ■ 허난성 천주교중국화연구중심의 중국화에 대한 노력 중국방문 2일차 오후에는 허난성 천주교중국화연구중심을 들렀다. 그곳의 안내서를 통해서 중국화 내용을 잘 알 수 있었다 허난성 천주교중국화연구중심의 로고 가운데에 갑골문 ‘천’(天)자가 놓여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은 3000년 전 도읍을 안양으로 정한 것에 대한 의미와 ‘만물의 주재’라는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또 마테오 리치가 차용한 ‘천주’라는 말 자체가 이미 천주교 중국화의 의의를 갖추고 있다고 안내서에 언급돼 있다. 연구중심의 주임인 류즈칭 교수는 천주교 중국화의 연구 결과물로 ‘중국 천주교 교구 연혁표’와 ‘중국천주교 교구 현황 설명도’를 필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중국의 교구 분할 시기, 현재의 교구와 교구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로 만든 것이었다. 이 자료는 아직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중국천주교사와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안양교구 주교좌 성당의 중국화 노력- 갑골문 돌 모자이크 벽화 중국방문 3일차는 안양시 얼다오제(二道街)천주교당을 방문했다. 예수성심을 주보성인으로 하는 이 성당은 중국 정부와 교황으로부터 모두 인정받은 안양교구의 교구장 장인린(張銀林, 요셉) 주교가 계시는 주교좌본당이다. 안양교구는 예전에는 웨이후이교구(衛辉教區)라 불렸는데, 현재는 안양(安陽)교구라 불리고 있다. 안양주교좌성당의 전면은 아직 콘크리트 벽면 그대로 남아 있다. 로마 유학을 하고 온 옌즈밍(延志明) 신부가 갑골문의 글자 형태로 성경 내용을 돌 모자이크 벽화로 만들어 붙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교좌성당 내의 한 벽면에는 갑골문의 ‘안’(安)자와 ‘가’(家)자를 이용한 성경 구절을 벽화로 구현해 놓았다. 예술적으로 보기에도 독특하고 아주 훌륭했다. 어떻게 보면 천주교 중국화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 이러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다음번 안양주교좌성당을 방문했을 때 멋진 갑골문 형태의 성경 내용을 설명하는 돌 모자이크 벽화가 성당 정면에서 나를 반겨주기를 희망해 보았다. 필자의 이번 중국방문은 새로운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천주교 중국화’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천주교 중국화’보다는 복잡하지만 ‘천주교의 탈외래종교화’라는 용어가 그 의미상으로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전에는 천주교의 ‘토착화’ 또는 ‘현지화’라는 말을 사용했던 적도 있으나, 이러한 용어 역시 다양한 의미 전달로 인해 혼돈의 여지가 있기에 간결하게 필자는 ‘천주교의 탈외래종교화’라는 말의 상용이 좋다고 제안한다. 또 ‘천주교의 중국화’가 잘못 전달돼 ‘중국식 천주교’로 오인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교회의 변화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기쁘고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당 벽면에 ‘평등, 자유, 화해, 문명, 민주, 부강’이라는 내용의 글이 반드시 붙여져 있어야만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중국의 의례 논쟁이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의 노파심 때문일까? 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천주교 중국화가 중국인들에게는 평안과 위안이 되고 구원의 참 진리를 전하는 종교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기를 필자는 조심스럽게 기원해 본다. 끝으로 이번 중국방문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과 중국 교계 전체에 주님의 풍성한 은총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린다. 글 _ 신의식 멜키올(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 회장·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

2024-07-28

풋풋함 넘치는 찬양 열정, 공동체 ‘세대 공감’ 이끌다

“젊은 친구들과 우리 어른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함께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늘 차분하게 바치던 교중미사에 청년들만의 ‘활기’라는 빛깔이 더해졌달까요.” 주일인 7월 14일, 언제나처럼 오전 10시 인천 도화동본당(주임 양주용 바오로 신부) 교중미사에 참례한 윤경옥(사비나·64)씨는 “청년들이 전례에 동참하고 노래 찬양을 한 오늘 주일미사 덕분에 ‘다시 젊어진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는 열정’을 선물 받았다”며 미소 지었다. 이날 교중미사는 청년 전례단과 밴드가 해설, 독서, 보편지향기도와 찬양을 맡는 ‘찬양미사’로 봉헌됐다. 정형화한 일반 교중미사 전례와 다른 청년들의 활기찬 찬양법이 분심을 일으키지는 않았을까. 우려와 달리 윤씨 등 참례자들은 “오히려 청년들과 덩달아 뜨겁게 하느님을 찬양하고 한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며 웃어 보였다. 본당은 이렇듯 ‘젊은이다운 뜨거움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청년들의 미사를 더 많은 신자와 나누고자 이날 교중미사 노래 찬양에 청년들을 동참시켰다. 저녁 6시에 따로 청년미사를 봉헌하는 그들이 단절을 넘어 어른들과 신앙 안에 소통을 이루게 하는 취지다. “고령화하는 교회에서 가려져 있는 청년들에게 우리(어른)들이 얼마나 응원하는지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세대 간 단절 봉합의 첫걸음”이라는 주임 양주용 신부의 뜻대로다. ‘교중미사는 엄숙해야 한다’는 일각의 편견에도, 본당은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청년들과 어른들이 만나는 미사를 준비했다. 공동체 화합에는 청년들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5월 26일 교중미사는 엄마와 딸이 반주를 하고 아빠와 아들이 복사를 하는 ‘가족 미사’로 봉헌했다. 그날 교중미사를 찾은 많은 신자가 “성가정의 훈훈한 사랑을 통해 본당 교우들의 소중함도 되새기게 되고, 오히려 상투적인 미사 참례 습관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늘의 태양은 못 돼도, 밤하늘 달은 못 돼도, 주위를 환하게 비춰주는 작은 등불 되리라.”(생활성가 ‘하늘의 태양은 못 되더라도’) 청년들은 세대와 무관하게 많이 알려진 곡들로 찬양 노래들을 선곡했다. 배민우(노엘) 청년회장은 “우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하느님을 찾는지 어른들께서 잘 이해하실 수 있는 메시지가 내포된 곡들”이라고 밝혔다. 화답송은 기도문 낭독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항상 있단다, 두려움에 떨지 마라”하는 가사의 생활성가 ‘임마누엘’을 불렀다. 영성체 후 묵상곡으로는 갓등중창단의 ‘눈물이 흘러도’를 불렀다. 파견 성가 뒤에는 특별히 퇴장 성가로 “어느 곳에 있든지 나는 주를 향하리라”는 가사의 ‘주만 바라볼찌라’가 울려 펴졌다. 성당을 나서던 신자들은 발걸음을 멈춘 채 찬양에 집중하고 환호 섞인 박수를 보냈다. 포용해 주기보다 분심부터 호소하는 어른들에 대한 경험은 청년들을 주눅들게도 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드럼, 키보드, 기타가 곁들여진 청년 밴드의 소리가 미사에 맞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배민우 청년회장은 “이번 미사를 준비하면서도 ‘혹시라도 역효과를 가져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지지해 주는 어른들이 더 많다는 걸 알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 년 만의 교중미사 준비로 부담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본당 분과장들은 “늘 보여주던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청년들의 찬양은 언제나 기대된다”고 도닥였다. 김상수(요한 사도) 청년부회장은 “청년미사 후 신부님께서 ‘어떤 어른께서 너희를 도와주셨다’면서 ‘끝나고 저녁이라도 사 먹으라’고 쌈짓돈을 건네주시기도 했다”며 “액수가 아니라 그 마음에서 늘 묵직한 감사를 느낀다”고 말했다. 양 신부는 “조부모가 손주들의 재롱을 좋아하듯, 갈라진 세대들이 하나가 되는 우리 본당의 미사는 오히려 어르신 신자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이 특별히 준비하는 율동 찬양처럼 새로운 형태의 세대 공감 미사도 펼쳐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2024-07-21

[이웃종교 만남] 대한성공회 새 의장에 박동신 주교 선출

대한성공회가 최근 전국의회를 열어 이경호 의장주교 후임으로 박동신 부산교구장을 신임 의장주교로 선출했다고 대한성공회 교무원이 7월 3일 밝혔다. 박동신 신임 의장주교는 성공회가 국내 선교 초기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소명을 다해온 것처럼 가장 성공회다운 모습으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를 다짐했다. 대한성공회는 6월 29일 대전교구 대전주교좌교회에서 열린 제34차 전국의회에서 올해 65세 정년을 맞아 퇴임하는 이경호 주교(서울교구장) 후임으로 박동신 주교를 선출했다. 부산교구장을 맡고 있는 박 신임 의장주교는 앞으로 2년 동안 대한성공회를 대표한다. 대한성공회 전국의회는 격년으로 열리는 최상위 의결기구로서, 3명의 주교와 각 교구를 대표하는 성직자 60명과 평신도 60명의 대의원으로 구성된다. 박동신 의장주교는 올해 주교 성품 13년 차로 지난 2017년 2년 임기 의장주교직을 수행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한편 이날 전국의회에서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 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한성공회의 노력과 관심은 물론 ‘녹색 성공회’를 지향하는 대한성공회의 선교 방향을 전국 교구가 함께 공유하도록 했다. 대한성공회는 이에 앞서 지난 2022년에도 제33차 전국의회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대한성공회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대한성공회는 비상선언문에서 모든 교우들이 기후비상사태 선언에 동참하고, 각국 정부에 기후위기 주범인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위한 조치를 촉구하는 한편, 우리나라 정부에 석탄발전소와 신공항계획 등 대규모 탄수배출산업 진흥을 중단하고 일본 정부에는 핵 오염수 해양투기를 중단할 것을촉구했다.

2024-07-21

[이웃종교 만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창립 100주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전개하는 가운데, 최근 기독교사회운동사 정리보존사업의 일환으로 온라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오픈 기념식을 열었다. NCCK 총무 김종생 목사는 지난 6월 27일 연세대 김순전홀에서 열린 NCCK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 설명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슬로건을 ‘다가올 역사, 기억될 미래’로 정했다”며 “지난 100년을 자축하는 시간을 넘어서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후 연세대 백양누리 더 라운지 최영홀에서 열린 온라인 아카이브 오픈 및 오픈기념식에서는 안교성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의 평가와 제언’ 기조강연과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1910년대 이후 사회운동 자료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ncckarchive.org)는 NCCK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조직된 ‘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주년 기념 기독교사회운동사 정리보존사업’의 일환으로 구축됐다. 인터넷 접속을 통해 자유롭게 관련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아카이브는 ▲1910년대 조선장감연합공의회부터 202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까지의 총회 회록 및 채택 문서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 사회신조(1932년), 3선개헌 반대 성명서(1969년), 구속자 석방에 관한 진정서(1985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 1988년) 등 교회협이 생산한 각종 성명서, 선언문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등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교회의 반응과 운동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사진과 문서 등 1910년대부터 현대까지 약 2만 5천 건의 자료를 제공한다. 아카이브는 특히 접속자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관련 문서와 사진 등의 새로운 자료들을 기증하거나, 오류 제보와 의견 제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연말까지 다양한 100주년 기념사업 진행 NCCK는 이번 온라인 아카이브 오픈 기념식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먼저 9월 20~22일 국내외 교회 일치 운동 관계자들이 참석,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9월 22일에는 서울 연동교회에서 100주년 기념예배를 봉헌하고, NCCK의 역사를 함께해온 이들로 구성된 ‘100인 합창단’이 100주년 기념 합창곡을 선보인다. 창립일인 9월 24일에는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다큐멘터리 ‘다시 쓰는 백년’이 CBS에서 방영된다. 10월에는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전3권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년사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이어 11월 18일에는 100주년 기념대회를 새문안교회에서 거행하는데, 특히 이 자리에서는 오늘날 기독교를 돌아보고 새로운 선교적 결단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기독교 사회선언’(가칭)을 발표한다.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국내 개신교 제 교단과 한국 정교회가 교회일치운동을 위해 1924년 9월 24일 창설한 범기독교 협의체다. 당시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연합 구축을 위해 결성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로부터 시작됐다. 약칭은 NCCK(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이고, 현재 8개 개신교 교단과 한국 정교회 등 9개 교단이 가입해 있다.

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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