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손 예쁘게 모으면 우리도 하느님 부르심 듣게 될까요?”

4월 21일 성소 주일을 맞아 전국 각 교구에서는 기념 미사와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신학교를 방문한 참가자들은 미사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성소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는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1)를 주제로 제61차 성소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신학생이 함께하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70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서는 굿즈 키링 만들기나 다트 던지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기반한 생태 지킴이 프로그램 등을 마련됐다. 특히 ‘수단 한 번 입어보자’ 코너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음식 부스와 신학과 밴드 동아리 우니따스(UNITAS) 공연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욥) 주교는 강론에서 “오늘은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소 개발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우리 모두가 일깨우는 날”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등학생 시절 냉담을 하다가 청평본당에서 총고해를 하고 ‘거룩한 사람,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사제의 길을 결심했다고 자신의 성소 동기를 밝힌 구 주교는 “특별히 일기 쓰기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과 이끄심에 귀 기울여보자”고 덧붙였다. 대구대교구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 교정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했다. 예비신학생과 신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동행’을 주제로 소그룹 친교 모임과 레크리에이션 등이 진행됐다. 파견 미사는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격년으로 진행되는 신학교 개방 행사는 내년 성소 주일에 열릴 계획이다. 광주대교구는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주례 미사와 행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2)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수도회 홍보 및 스탬프 투어’와 기숙사 개방·수단 입기 체험 등의 ‘신학생 프로그램’, 신학생과 수도회 공연이 있는 ‘어울림 한마당’으로 구성됐다. 옥 대주교는 미사 중 “미사에 함께하는 분들은 이 자리에 있는 부제, 학사, 수사, 수녀님들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예수님을 따를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며 참가자 4000여 명의 성소를 북돋웠다. 전국 교구, 신학교·교구청 등에서 행사 예비신학생·교구민 함께 어울린 ‘잔치’ 사제·수도자 참여해 성소 참의미 전달 전주교구는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4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소 주일 미사와 행사를 열었다. 미사를 집전한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는 강론에서 “하느님은 사람을 통해서도 부르시고 말씀 혹은 어떤 사건을 통해서도 부르신다”라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서 찾아오는 평화를 통해 하느님이 나를 부르는지를 식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전교구는 교구청에 예비신학생을 초대해 의미 있는 성소 주일을 보냈다. 참가자들은 ‘나도 곧 신부님’, ‘성경 가로 세로 퍼즐’ 등 퀴즈를 풀며 성소를 키우는 시간을 가졌다. 부산교구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교정에서 성소 주일을 맞아 주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10)와 함께 미사와 ‘수녀복 입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천교구는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를 주제로 성소 주일 미사와 행사를 마련했다. 수원교구는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지내십시오’(1코린 7,20)를 주제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성소 주일 미사와 행사를 열었다. 미사는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리노) 주교가 주례했으며 수도회와 재속회 소개, 사진 및 콘텐츠 전시회와 여러 부스를 진행해 참가자들이 성소를 알아가도록 도왔다. 마산교구는 20여 년 만에 교구민 전체 대상의 행사가 교구청에서 열려 1200여 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교구 내 수도회 등이 준비한 21개 부스를 돌며 성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며 사제·수도자와 자연스레 어울리는 게임과 공연에도 참여했다. 안동교구는 교구청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진행했다. 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례 미사를 시작으로 레크리에이션과 부스 관람, 공연 등을 통해 약 350명의 참가자가 성소를 길렀다.

만리장성 넘어…조선 복음화 간절했던 열정의 길 돌아보다

브뤼기에르 주교(1792~1835)는 이승훈(베드로)이 1784년 중국 북경 북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시작된 한국교회가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로 설정될 때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성직자다. 한국교회 초대 교구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초석이 됐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브뤼기에르 주교는 그토록 바랐지만 자신이 돌보아야 하는 조선대목구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선종했다. 또한 지금의 한국교회 신자들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한국교회 초대 교구장으로서 남긴 발자취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욥 주교)는 4월 16~21일 브뤼기에르 주교가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뒤 조선에 입국하려 거쳐간 발자취와 유해 이송로를 따르는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실시했다. 3회에 걸쳐 순례기를 싣는다. ■ 2000km 넘는 대장정 순례단은 서울 순교자현양위 부위원장 원종현(야고보) 신부와 직원들, 순교자현양회 조화수(바오로) 회장과 이래은(데레사) 부회장, 양두석(토마스) 전 회장 등 전현 회장단, 성지순례 안내 봉사자 등 20여 명으로 구성됐다. 순례단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브뤼기에르 주교가 고향을 떠나 아프리카를 돌아 동남아시아를 거치고 다시 중국대륙을 지나 조선을 향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고자 했다. 이동 거리는 총 2000km가 넘었다. “조선 선교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프랑스에 머물러 있었고 그때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 당시 조선의 신자들이 사제 없이 불쌍하게 버려진 소식은 제게 그들에게 가고자 하는 큰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교회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 남긴 글이다. 조선교회에 대한 선교 열망을 이미 지니고 있었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알려진 길이 없었기에 길을 만들어 내야 했던 시기에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된 브뤼기에르 주교가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거쳐 가야 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순례단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이라는 간절한 염원에서 중국대륙을 지나간 장소 중 1년간 머물며 사목했던 서만자(西灣子), 서만자에 도착하기 전 통과했던 만리장성, 마지막 기착지이자 선종 장소인 마가자(馬架子), 조선 입국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선종한 뒤 유해가 이송된 경로에 위치한 심양(沈陽)과 변문(邊門), 단동(丹東)을 주요 순례지로 정했다. 4월 16일 오전 7시 이제 막 어둠이 걷힌 시각, 순례단은 중국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에 모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다는 생각에 순례단의 얼굴에는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순례단은 16일 오전 11시경 북경공항에 내려 명·청대 천문 기구를 관장하던 흠천감(欽天監)과 예수회 마테오 리치 신부가 세운 남당(南堂)을 둘러본 뒤 한국교회 첫 영세자인 이승훈(베드로)이 1784년에 세례받은 북당(北堂)을 찾았다. 이승훈이 북당에서 세례받음으로써 한국천주교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조선대목구 초대 교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와도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기념비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원종현 신부는 한국천주교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고 초대 교구장 임명으로 교회의 초석이 놓인 사건의 의미와 관련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던 시기에는 신분이 존재를 규정했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조선대목구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는 교구 설정이라는 교회사적, 제도적 의미에서는 물론 사회사상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 서만자성당에서 찾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흔적 순례단은 북경에서 219km 떨어진 장가구(張家口)로 이동해 하루 숙박한 뒤 4월 17일 오전 8시30분 만리장성 제1문이라 불리는 대경문(大境門)을 찾아 버스로 출발해 9시15분경 도착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을 향해 이동하던 중 서만자에 도착한 것은 1834년 10월 8일이었다. 서만자에 들어오기 전 만리장성을 넘은 것은 바로 전날이었다. 초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지 정확히 3년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만큼 앞서간 사람이 없는 길을 만들며 가는 일이 험난했음을 알 수 있다. 순례단에게 만리장성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만리장성을 바라보며, 브뤼기에르 주교가 만리장성 어딘가를 통과해 지나갔을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다. 순례단이 만리장성 대경문을 출발해 약 30km 떨어진 서만자성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였다. 현재의 서만자성당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 때 건물이 철거되는 수난을 겪은 뒤 2009년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브뤼기에르 주교가 사목하던 당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현재 성당 측면 한켠에 과거 성당 건물의 주춧돌이 보존돼 있다. 버스에서 내려 서만자성당을 올려다본 서울 순교자현양회 성지 안내 봉사자 이명애(소피아)씨는 “서만자성당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려 한다”며 “한국교회 신자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서만자성당은 큰 외형에 비해 내부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 성화 외에는 성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쓸쓸한 풍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당 바로 맞은 편으로 보이는 토굴과 신학교 건물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서만자에서 사목할 때의 원형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토굴은 중국 지방 관리가 유럽에서 온 선교사를 체포하려 하자 브뤼기에르 주교가 일시적으로 피신했던 곳이며, 신학교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서만자성당과 신학교가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신학교에도 그의 흔적이 남겨졌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신학교 뒤편으로 서만자 지역에서 사목했던 성직자 묘역도 조성돼 있다. 순례단을 안타깝게 했던 것은 외형만 겨우 남아 있는 신학교 건물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순례단이 서만자성당을 방문했던 날에도 신학교 건물 바로 옆에서 굴삭기가 땅을 파는 작업을 하며 모래바람을 심하게 일으키고 있었다. 순례단은 서만자성당에 도착할 때부터 ‘주위의 시선’이 순례단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단체 순례단이 서만자성당을 방문했다는 점에 예의주시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서만자에서 사목할 당시 지방 관리들에게 받은 그 시선이었을지 모른다. 순례단은 서만자를 떠나 브뤼기에르 주교가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다 선종했던 마가자로 떠날 채비를 했다. < 계속 >

2024-04-28

“노동자는 소모품 아닌 사람”…부당 현실 개선 위해 노력해야

임금 체불, 휴식 미보장, 부당해고, 산업재해…. 아직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노동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특히 산업재해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기에 예방뿐만이 아니라 사후 보상도 중요하다. 하지만 책임을 피하는 기업의 농간으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해 절망하는 노동자가 많다. 5년 전 부산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고(故) 정순규(미카엘)씨의 아들 정석채(비오·39·서울 성산동본당)씨도 아버지 죽음의 진상 규명을 위해 사측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정씨 사연을 통해 부당한 대우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하고, 그들과 동반자로 함께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알아본다. ■ 비수를 꽂던 것들 2019년 10월, 20년 이상의 건설노동 경력자였던 아버지 정씨는 옹벽을 설치하는 작업 중 비계(임시로 설치한 발판)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다음 날 숨을 거뒀다. 회사 관계자들은 유가족에게 “정씨가 2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다”고만 전할 뿐, 사고가 어쩌다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사측이 최소 8가지 안전 규정을 위반했다는 전문가들 견해대로 경동건설의 잘못임이 확실했다. 아버지 정씨 휴대전화에 담겼던, 사고 1시간 전 현장 사진 속 비계에는 추락 방지 안전망도, 안전난간대도 없는 데다가 옹벽으로부터 45㎝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5일 후 유가족이 현장을 찾았을 때는 안전망이 씌워져 있었고 난간대도 설치돼 있었다. ‘추락주의’ 경고판도 붙었다. 은폐 공작은 계속됐다. 피고가 된 사측은 아버지 정씨가 친필 서명했다는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현장 안전 관리자인 아버지 정씨가 본인 사망과 산업재해 피해에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유가족이 필적 감정을 맡긴 결과 위조된 서명임이 드러났고, 하청업체 관계자는 “고인의 부탁으로 대신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의당 강은미(아가타) 국회의원의 국정감사와 여러 시사 프로그램으로 경동건설 측의 조작과 은폐 행적은 알려졌으나 유가족은 계속 싸워야 했다. 아들 정씨는 50번이 넘는 정보공개 청구와 1인 시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2심(항소심)까지 진행됐던 형사재판에서 책임자 처벌은 집행유예에서 그쳤다. 하청업체만 검찰에 송치하는 꼬리자르기식 수사도 유가족의 투지를 시험했다. 책임 회피하는 사측 안전장치 미비로 숨진 노동자 정씨 사측은 책임지지 않으려 은폐 공작 급기야 사문서 위조 시도하다 들통 가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빈소를 다녀간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유가족이 폭력배를 동원해 폭행, 협박을 했다”고 허위 고소를 했다. “고소를 취하할 테니 아버지 정씨 사건을 종결하자”는 사측의 종용이 이어졌다. 국정감사 후에는 ‘정순규는 술 먹고 자기가 실수해서 죽었다'는 근거 없는 악성 댓글들이 달렸다. 고군분투였다.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핑계가 되기도 했고, 경동건설과 수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언론사와 시민단체, 종교계에 외면받았다. “살 만큼 산 사람의 죽음을 청년들 죽음에 비교할 수 있냐”는 말은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대기업을 상대로는 안 된다’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니 싸움은 그만두고 네 인생을 살라’는 말이 가장 상처가 됐어요.” 아들 정씨는 “가까운 이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멀어지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호소했다. 이어 “잔혹한 산재 사망의 현실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무감각한지 여실히 드러나는 방증”이라고 역설했다. ■ 교회의 동참 교회는 「간추린 사회교리」에서 “교회의 사목적 관심의 중심에는 더욱 시급한 노동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267항)고 언급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에 대해 깊은 사목적 관심이 필요하며,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노동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열악한 조건을 견디는 나쁜 일자리가 느는 현실에서 가톨릭교회는 용기 내어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자 “이웃이 되어주는 것”(루카 10,35)은 성경에도 명시된 교회의 역할이다. 가톨릭교회의 동반 노동자도 하느님 모상 닮은 창조물 비정규직 등 노동 현안에 주목하며 아픔 달래주고 부당함 함께 외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김시몬 시몬 신부)도 그러한 가르침에서 원·하청 구조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 사내 하청 불법 파견, 정리해고, 정부 주도의 노동조합 탄압 등 주요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노동 현안에 주목하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단식 및 고공 농성을 하는 노동자, 산재사망 유가족을 지원하고 돌봄노동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피정을 마련했다. 또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모임인 ‘반올림’ 농성장 지킴이들, 코로나19를 핑계로 정리해고된 아시아나케이오 항공 노동자들 등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꾸준히 연대해 왔다. “교회의 연대는 힘없는 저희에게 가장 큰 방패였어요.” 아들 정씨도 “함께하는 교회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싸우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당 성가대 단원들은 같은 단원인 정씨를 위해 1주기에 부산까지 내려와 연도를 바쳤다. 다른 교구 성당들까지 발로 뛰어다니며 탄원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의 노력으로, 집행유예로 그쳤던 1심 이후 대검찰청 앞 항소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2주기부터는 부산교구에서 기일마다 추모미사를 봉헌하게 됐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전국에서 사제·수도자들이 달려와 줬고 자필 탄원서도 보내주는 등 힘을 보태줬다. 2022년 5월에는 서울·부산·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항소심 재판,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비난받는 가족에게 방패가 되어줬다. 현재 ‘사문서 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고소로 새로운 대응을 준비하는 정씨는 “특히 연대해 주시는 수도자들 말씀에 큰 격려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예수님도 이해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의 죽음도 그와 다르지 않지요.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수도원이 아니라 형제님 옆에서 같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셨을 겁니다. 저희가 응원합니다.” ■ ‘사람’인 노동자를 위하여 교회의 역할은 노동자들은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어떤 경우에도 돈이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는 없다는 하느님의 뜻을 끊임없이 전하는 것이다. 김시몬 신부는 “이익만을 추구하면 사람에게도 효율의 잣대를 적용하게 된다”며 “저마다 일터에서 충실히 일하는 모든 이가 나와 같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마음을 갖고 인격적인 존중과 감사한 마음을 갖는 신앙인의 모습을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여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정부과 재계의 무력화 시도를 막고, 원·하청 구조에서 안전과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활동도 노동·시민단체와 더불어 개선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4-04-28

[가톨릭 청년 단체를 찾아서] (7) 부산가톨릭청년합창단 ‘첼레스티스’

부산가톨릭청년합창단 ‘첼레스티스’(단장 박수현 가브리엘라, 지도 이원용 빅토리노 신부)는 부산교구를 대표하는 청년 합창단이다. 2022년 10월 첫 오디션을 진행한 이후 교구 젊은이의 날(Busan Youth Day, BYD) 등 행사 무대에 서며 꾸준히 인지도를 높인 끝에 지난해 12월 창단미사를 봉헌하며 데뷔했다. 20개 본당 23명의 단원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저녁 모여 연습하는 등 꾸준한 노력 외에도 실력 향상을 위해 외부 강사를 초빙한 워크숍을 개최한다. 지금은 교구 및 교회 행사에 주로 참여하고 있지만 복지시설, 병원 등 기관을 찾아가 공연을 펼치는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낮은 자리에서 사랑하는 태도는 단원들이 공유하는 마음가짐이다. 연습 중 간식을 먹을 때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쓰레기를 치우고 설거지하는 등 드러나지 않게 봉사한다. 장애인 단원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장난을 친다. “네가 없는 합창단이 상상이 안 된다”는 애정 표현 속 단원들의 우정은 돈독해진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께 나아가는 신앙심은 단원들이 바쁜 일상에도 활동할 힘을 준다. 창단미사를 준비할 때, 연습이 끝나는 늦은 밤도 예외 없이 100일간 매일 묵주기도, 미사 봉헌, 희생 봉사를 돌아가며 바쳤다. 박수현 단장은 “십자가에 매달리던 그 순간까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했던 예수님처럼 기도와 희생을 생활화하는 단원들 덕분”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사랑과 신앙으로 뭉친 공동체기에 단원들은 첼레스티스가 지친 일상의 ‘힐링’(치유)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새빛 단원(안드레아·토현본당)은 “함께 노래하다 보면 어느덧 웃음이 난다"며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한 회복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오수민 단원(마리아·양정본당)은 ”무너진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을 생각하며 노래하다가 옆 단원을 보며 함께 눈물 흘렸던 기억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밝혔다. 같은 하느님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기쁨은 단원들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김미라 단원(세라피나·주교좌남천본당)은 “함께 성가를 부를 때 ‘주님께서 곁에 계시는구나’ 하고 실감한다”며 “하는 일에 용기가 생긴다”고 고백했다. 이상윤 단원(안드레아·모라성요한본당)은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성가를 흥얼거리고 가사 뜻을 생각하는 가운데 신앙도 더더욱 자라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첼레스티스를 지도하는 이원용 신부는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음악으로 세상 복음화를 향해 나아가고 싶은 청년들 누구나 환영한다”며 “돌멩이처럼 한참 다듬어지고 있는 첼레스티스의 ‘조약돌의 여정’에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2024-04-28

청년의 열정 모아 ‘물 흐르듯’ 생태 영성 실천해요

인천교구 대야동본당(주임 한덕훈 스테파노 신부) 청년 하늘땅물벗 ‘도란도란벗’(반석벗 최진아 안젤라, 담당 한덕훈 신부)이 4월 7일 선서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개울물이 잇따라 흘러가는 소리 또는 모양’이라는 뜻대로, 본당 청년·환경분과 회원 17명이 본디 ‘도란도란’ 모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자는 의미와 함께 환경 움직임에 물 흐르듯 일상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임하고자 올해 1월부터 벗님(회원)들로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들은 하느님의 뜻 안에 하나 되어 생태환경을 지키고자 하늘땅물벗으로 발족했다. 일반 생태주의 단체가 아닌 평신도 생태 사도직 단체이기에, 본당 인근 환경 정화 활동 등 평범한 일상에서 창조 질서 수호를 실천할 방안들이 무엇이 있을지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손수 지으신 아름다운 자연…. 그것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망가지는 생태 현장을 마주했을 때 끓어오른 사명감이 활동 계기가 됐다. 지난해 지구 청년들과 다녀온 대부도 플로깅에서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쓰레기들이 봉투에 가득 찼다.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어요.” 벗님들은 “그날처럼 우리의 계속되는 작은 움직임으로 자연이 점점 정화된다면 공동의 집을 지켜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도란도란벗의 존재는 본당의 젊은 세대들에게 생태적 회심을 퍼뜨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뿐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회 간부들도 도움벗(협력회원)으로 함께하기 때문이다. 교리교사들은 벗으로 활동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도 환경에 대한 교리를 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있다. 도란도란벗 활동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환경에 책임감을 지니고 조그마한 노력부터 실천에서 나설 수 있는 기회이기에 벗님들에게 호응이 높다. 김지유(스텔라) 벗님은 “주님께서 지어주신 환경 속에서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또 “혼자라면 작심삼일로 끝날 수 있는 생태적 회심이지만, 함께이기에 일상에서도 계속해서 지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께하는 작은 실천들 속, 벗님들은 자신의 편리만을 추구하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환경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동찬(델피노) 벗님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손수 만드신 이 땅의 모든 것을 돌보라고 말씀하신 창세기 속뜻을 알게 됐다”며 “하늘땅물벗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생태적인 말씀을 새길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기에 직장, 학업에 집중하느라 주일 외에는 시간을 맞춰 활동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같은 본당 하늘땅물벗이기에 높은 단합력은 그를 극복할 원동력이 된다. 최진아 반석벗(회장)은 “현시점에서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는 본당의 공동체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여주기식이나 억지 활동이 아닌, 청년 스스로가 생태 영성의 중요성을 자각한 작은 발돋움이기에 본당 사목자들은 지지를 높은 지지를 보낸다. 주임 한덕훈 신부는 “청년들이 꾸준히 작은 결심과 실천을 통해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던’ 창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 주면 좋겠다”면서 “이들의 활동이 기성 신자들이나 비신자에게도 알려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2024-04-28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복순 작가

떡잎부터 조각가 어릴 적부터 사람 얼굴을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친구들 얼굴을 그려서 많이 주기도 했고요. 할머니께서는 ‘쟨 공부는 안 하고 사람 대가리만 그린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셨어요. 저는 사람 얼굴을 보면 그게 다 입체적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얼굴을 주 대상으로 작품을 했어요.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한 건 서울 진명여중 다닐 때 했던 미술반 활동이었어요. 당시 교장 선생님이 좀 특이하신 분이었는데, 매일 오후 3시쯤 일과 수업이 끝나면 5시까지 특별 활동을 시켰어요. 미술반에서는 석고상 데생, 수묵화, 구성 등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각자가 가진 개성을 찾아주려는 것이었죠. 그중에서 저는 석고 데생을 열심히 했어요. 한번은 미술 시간에 부조 만들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제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뒤에서 쭉 지켜보셨어요. 반 애들이 ‘쟤는 미술반이에요’라고 하니, 선생님께서 ‘조각을 시켜야겠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한마디 말에 저는 ‘조각을 해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진명여고로 진학해서도 미술반을 했는데, 학교에 조각실이 따로 있었어요. 체육관 한구석에 있었는데, 자주 들락거리며 작품활동을 했어요. 2학년 때 진명여고 50주년 기념전이 서울신문사가 운영하던 화랑에서 열렸는데, 전신상과 두상, 그리고 나무 얼굴상을 만들어 출품하기도 했어요. 어려운 조각의 길 잠시 ‘조각을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미대 입시 준비를 하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못 다녔어요. 저는 5남매 중 맞이였기 때문에 동생들 챙겨야 했어요. 억지를 쓰면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러다 고3 때 홍익대에서 실시한 한 대회에 참가해 은상을 받고 나서는 ‘그냥 조각의 길을 가야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에 들어갔어요. 3학년 때에는 국전에서도 입선하고요. 하지만 4학년 때에는 입선하지 못했어요. 창피했죠. 대신 졸업작품 전에 몰두했어요. 대리석으로 토르소 하나와 자화상을 만들었어요. 당시 김종영(프란치스코) 선생님이 잘 봐주셨던 기억이 나요. 제 토르소 작품은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하셨던 임영방(베드로) 선생님께서 가져가셨어요. 지금은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있다고 하네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당시 학장이셨던 김종영 선생님 주선으로 금란여고 교사로 일하게 됐어요. 미술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틈틈이 작업을 계속했어요. 학생들이 쓰고 남은 흙으로요. 여류 조각가 조각전에도 출품하고요. 결혼과 신앙, 그리고 전업 성미술 작가의 길 금란여고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최의순(요한 비안네)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광화문에 있는 한 다방에서 만났는데, 한 남자와 같이 나오셨어요. 알고 보니 최 선생님께서 제 중매를 서신 거였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신앙도 결혼하면서 받아들였어요. 원래는 개신교 신자였는데, 결혼하려면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별 거부감이 없었어요. 그냥 ‘큰집으로 가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죠. 어떻게 생각하면 제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1980년대 초에 당시 가톨릭미술가회 총무를 하시던 권녕숙(리디아) 작가의 권유로 가톨릭미술가회에 가입했어요. 매년 작품을 냈고요. 1990년 예수회 김태관(토비아) 신부님께서 선종하고 나서 서강대 박갑성(안드레아) 교수님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당시 박 교수님이 유리화의 대가셨던 남용우(마리아)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이후 남용우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저도 성미술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맨 처음에 작업한 것이 청주 내덕동주교좌성당에 있는 한복 입은 성모상과 십자가의길 14처였여요. 대전 목동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프란치스코 성인상도 만들었고요. 서울 대치동성당에는 십자고상을 봉헌했죠. 남용우 선생님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서울 신림동성당(현 서원동성당)에 봉헌한 파티마 성모상도 기억에 남아요. 2미터가 넘는 대작이었거든요. 지금은 엄두도 못 낼 규모에요. 조각의 매력 조각의 매력은 제가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있다는 거예요. 특히 조소의 경우는 크게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요. 어릴 때 동생이 ‘그림도 잘 그렸는데, 왜 조각을 했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물감 살 돈이 없어서 조각을 했다’고 농 삼아 답하기도 했어요. 흙을 빚어서 석고로 틀을 떠내고 나면, 그 흙을 다시 쓸 수 있거든요. 금속이나 설치 미술은 비용이 좀 들겠지만요. 저는 성물을 주로 만들어왔어요. 성물을 만들 때 쏟는 정열과 열정에 매력을 느껴요. 성모님과 예수님에 대한 영성을 표현하는 일은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껴요. 지금은 7월에 열리는 가톨릭미술가회 정기전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 세례명이 아기 예수의 데레사(소화데레사)인데, 소화데레사 상을 만들려고요. ◆ 김복순(아기 예수의 데레사) 작가는 1945년 해방 전 중국에서 태어나 첫돌 무렵 귀국해 서울에서 자랐다. 1968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8년부터 1977년까지 금란여고 미술교사를 역임했다. 2009년 명동 평화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현재 전업 성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서원동성당 파티마 성모상, 성산2동성당 성가정상, 대치동성당 십자고상과 성가정상 등을 제작했다.

2024-04-28

‘이웃종교 만남’ 기획 참신…사회 갈등 극복 위한 심층 기사 필요

◎ 일시: 2024년 4월 17일 오후 6시30분 ◎ 장소: 한국프레스센터 ◎ 참석자 - 김지영 이냐시오 위원장(전 동국대 교수) -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 상봉동본당 주임) - 김용민 베드로 위원(국경없는 의사회 활동가) - 김재홍 요한 사도 위원(시인,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 - 성용규 도미니코 신부(대구대교구 구미 신평본당 주임) - 엄혜진 헬레나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기획마케팅팀) - 정다운 안젤라 위원(예수회 마지스 청년센터 청년사목 코디네이터) - 최현순 데레사 위원(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가톨릭신문 편집자문위원회(위원장 김지영 이냐시오)는 4월 1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25차 회의를 열었다. 2024년도 두 번째 회의에서 편집자문 위원들은 올해 1월부터 4월 14일(부활 제3주일)까지 보도된 가톨릭신문 기사와 기획·연재, 새롭게 개편된 홈페이지에 관한 의견과 개선 방향을 제안했다. 회의에 참석한 본지 사장 최성준(이냐시오) 신부는 편집자문위원들의 의견을 향후 신문 제작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 김지영 위원장 – 가톨릭신문이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실시간 온라인 보도 체제를 갖췄다. 다소 늦었지만 의미있는 시작이라 본다. 온라인 보도 체제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하루빨리 정착하길 바란다. 위원분들과 함께 가톨릭신문이 지난 3개월 동안 보도, 연재한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겠다. □ 성용규 신부 – ‘이웃종교 만남’은 종교간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타종교에 대한 편견을 깨는 참신한 기획이다. 특히 성공회 의장주교 인터뷰(2024년 4월 14일자, 17면)는 여성 사제직에 대해 가톨릭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도움이 됐다. ‘이런 사목 어때요’에 소개되는 모범적인 본당 사목 사례는 본당 사목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의정부교구 광적본당의 고령신자 위한 음향무선청취기’(1월 28일자, 5면)의 경우 고령 신자가 많은 우리 본당에서도 충분히 도입할 수 있는 사례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심층적인 기획도 담았으면 한다. □ 김용민 위원 – 단짝 친구를 세월호 참사로 잃은 심기윤 부제 이야기(4월 14일자, 11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보도된 여러 매체 기사 중 소재 발굴 측면에서 돋보였다. ‘여의도성모 안과병원, 각막이식 새 수술법 개발’(3월 17일자, 3면)은 새 수술법이 화제라고 전했지만 왜 화제인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남용 등 생태·환경 관련 기사 비중이 높은 것은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많이 사용되고 버려지는 마스크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도 다뤘으면 한다. 세월호 10주기 소재 발굴 돋보여…생태·환경 기사 비중 높아 긍정적 청년단체 다양한 모습 담아 풍성…청년들 목소리 담은 ‘세계청년대회’ 기획 보도 희망 □ 김재홍 위원 – 문화면 편집의 경우 기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지면 구성이 불일치되는 경우가 있다. 회화의 경우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데 작가의 인물사진이 더 크게 배치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출판면도 작품의 핵심이 되는 테마 문구를 제목으로 전달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문화·출판면의 경우 주로 전시 소식이나 행사 예고 비중이 많다. 교계 문화예술 동향이나 전망을 담은 기획기사 비중을 늘리면 좋겠다. 새 홈페이지는 지면의 구성을 그대로 온라인화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온라인의 특성을 십분 살린 기사 배치와 적절한 멀티미디어 활용이 필요하다. □ 정다운 위원 – ‘YOUTH’면의 경우 신심 단체뿐 아니라 야구나 음악 관련 단체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청년단체들이 소개되고 있어 소재와 읽을거리가 보다 풍성해졌다. 3년차 신부님의 하루에 관해 조명한 성소 주일 특집 기사(4월 21일자, 14면)도 신박하고 재미있었다. 여전히 여러 기사에 비문이 보이는 것은 흠이다.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간결하고 명료하게 작성했으면 한다. 한국교회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세계청년대회’다. 청년대회 준비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앞서 ‘어떤 청년대회가 됐으며 하는지’에 대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가톨릭신문이 기획보도로 대변해 주길 희망한다. 새 홈페이지가 이용자 중심으로 개편된 모습이다. 청소년·청년 기사를 비중 있게 배치한 노력도 보인다. 다만 과거 기사의 경우 검색이 되지 않거나 제대로 옮겨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관심 있는 기획기사를 목록으로 볼 수 있도록 ‘링크’ 형태로 연결하는 등 적절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 엄혜진 수녀 – 현장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반영하는 등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세 명의 기자들이 사순 시기 다양한 도전에 나선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은 흔히 할 수 있으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에 도전하는 과정을, 함께 걷는 느낌으로 읽었다. ‘교회 상식 팩트체크’ 또한 신자들이 알쏭달쏭하는 교리에 대한 상식을 쉽게 전하고 있다. 일러스트 등을 활용해 눈에 띄게 편집해 줬으면 한다. 홈페이지의 경우 기사 열람이나 지면 PDF 내려받기 등의 기능이 예전에 비해 훨씬 개선된 것이 인상적이다. 홈페이지 개선돼 획기적 변화…독자 중심의 온·오프라인 서비스 기대 신자들의 이해 돕도록 ‘시노달리타스’ 관련 교구·본당 사례 적극 발굴해야 □ 김민수 신부 – 지면 편집이 과거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다. 구독자들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신문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홈페이지 개편 등 온라인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도 여실히 느낀다. 4월 14일자 1면 기획보도를 비롯해 내지 3개 면을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집으로 할애한 것은 가톨릭신문만이 할 수 있는 복음적 시도라 본다. 한편으론 주교 임명과 서품식 축하 광고 비중이 지나치게 많다. 3월 10일자 신문의 경우 1~10면의 모든 광고가 주교 임명 축하 광고다. 광고라고 하더라도 너무 지나친 건 아닐까. 독자들을 위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과거부터 있었는데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짚어볼 문제다. □ 최현순 위원 – 알찬 내용이 늘고 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는 눈높이에 맞는 쉽고 유익한 내용으로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편 앞서 언급된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에 대한 생각은 좀 다르다. 시도가 새롭다 해도 이 글이 사순 시기와 관련 있는지, 지면에서 기사가 아닌 기자들의 체험기를 왜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제목 표기에 있어 ‘앗 리미나’ 등 신자들에게는 생소한 용어는 되도록 지양하고 부득이하게 쓸 경우에는 해설도 담아야 할 것이다. □ 김지영 위원장 – ‘이웃종교 만남’은 종교와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 구원의 길은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교회의 화두인 ‘시노달리타스’에 대해 체감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다. 교구와 본당 사례를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해 실어야 한다. 2월 4일자의 경우 신부 한 명의 사진이 3개 지면에 걸쳐 나왔다. 지면 편집에 있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보다 주의를 기울여 피치 못하면 다른 사진을 사용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

2024-04-28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카인의 후예(상)

우리는 내년이면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지 80주년을 맞게 된다. 우리 겨레는 일본제국에 강제로 병합된 기간 36년 동안 일본에 저항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싸웠다. 그런데 일본제국이 패전하고 우리는 잠시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으나 곧바로 세계열강의 동서 냉전 구도에 편입되면서 국토가 분단되고 체제가 대립하고 겨레의 혼도 반쪽으로 쪼개졌다. 일제 식민 통치 기간의 두 배가 넘었는데도,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린 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갈수록 멀어지고 증오심을 키우고 있다. 동포를 적대하며 비무장지대 양쪽에 한반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고도 남을 엄청난 무기를 배치하고 해마다 수시로 전쟁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같은 핏줄이고 같은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이어받은 한 민족인데 왜 이렇게 오래 서로를 배척하고 단절과 대결의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뿐 아니라 소위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고 내세우는 남한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되고 소통이 단절되고 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주고받는 극단적인 언어의 구사는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선거철이 되면 한 집안에서도 사회 문제에 대한 이념적 입장과 가치관 충돌이 두려워 가족 안에서도 솔직한 대화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런데 정치·사회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도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미워하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응징하는 폭력적 상황을 연출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잘 아는 한 직장인은 직장 상사의 집요한 괴롭힘과 악의적인 모함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고 말았다. 학원에서 학생들 사이에 다양한 이유로 벌이는 따돌림과 폭행은 오래전부터 일상화되어 있다.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또래 친구에게 어떻게 그토록 몸서리쳐지는 잔인하고 난폭한 가학행위를 집단으로 자행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상대방에게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평생 치유되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고도 별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한다. 이런 포악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여가를 즐기고 서로 친목을 다지기 위한 각종 스포츠에서도 프로 영역으로 진입하면 선수들 사이에서는 따돌림과 폭력이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나는 테니스나 배구 시합 중계방송을 즐겨 보며 좋아하는 선수들의 재능 넘치는 활약에 감탄과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어떤 시합에서는 즐거움보다 마음속에 서늘함과 씁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선수들은 경기 중 자신의 강력하고 절묘한 스트로크를 상대가 받아내지 못하였을 때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거나 탄성을 지른다. 이는 선수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는 몸짓이니 멋있고 장하게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 선수들은 그런 순간에 외마디의 괴성을 지르며 상대 선수를 향해 거의 전투적이거나 위협적인 시선으로 쏘아보고 포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선수의 얼굴에는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단순한 성취감이나 기쁨보다는 먹잇감을 낚아채고 정복한 짐승의 포효나 강력한 적의가 여과 없이 묻어나는 난폭한 표정이 스친다. 나는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씁쓸함을 느끼며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흉포함에 놀라곤 한다. 그 사람 내부에 일상에서는 표출되지 않는 포악한 에너지가 숨겨져 있지 않고서는 그런 표정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부터 창세기를 읽으며 제일 알아듣기 쉽지 않았던 것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였다. 카인과 아벨 형제 사이에 무슨 큰 사건이 터졌거나 다툼이 있었거나 하지 않았는데 카인은 어느 날 갑자기 아우 아벨을 들판으로 끌고 가 죽여버렸다. 카인은 농사를 지으며 농부로 살다가 땅에서 난 소출을 하느님께 바쳤고, 아벨은 양치는 목자로 살다가 양의 맏배들과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굽어보셨으나 카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이에 카인이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사실 아벨이 바친 어린양 몇 마리보다 카인이 바친 농산물이 훨씬 값나가는 제물이다. 글 _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2024-04-28

[서울대교구 이경상 주교 서품] 교계 축하인사·답사

서울대교구 이경상(바오로) 주교의 서품식 중 2부 축하식에서는 이 주교의 주교 서품을 함께 기뻐하는 축하의 말들이 넘쳤다. 주요 축사와 이경상 주교의 답사를 정리해 싣는다. [축사] 주한 교황대사 직무대행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이 복된 주교 서품식을 맞아 주교단의 일원이 되신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에게 인사드리게 돼 참으로 기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서울대교구의 사목적 필요와 교구장님의 요청을 신중히 고려하시어, 신부님을 서울대교구의 새로운 보좌주교로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주교님께서는 서울대교구의 다른 보좌주교님들과의 친교 안에서 협력이 필요한 모든 사목적·행정적 사안에 대해 기꺼운 마음으로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을 도우실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주교의 사명을 ‘사랑의 직무’(amoris officium)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목자로서 주교는 언제나, 모든 행동 안에서, 자신의 직무를 사랑의 의무로 완수해야 합니다.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 이미 그렇게 해 오셨듯 교구장님과 다른 형제 주교님들, 사제와 수도자들, 국가 지도자들, 그리고 하느님의 온 백성과 서로 존중하는 좋은 관계를 가꿔 나가시길 빕니다. 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 주교님께 대한 환영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정, 그리고 기도를 약속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주교님을 위해 기도 안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을 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청합니다. [축사]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새 주교님의 첫 마음이 담긴 사목 표어의 뜻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기’(Vivere in Corde Jesus), 이 말씀에는 거친 바다의 풍랑과 같은 현세에서 예수님 마음으로 살겠다는 주교님 다짐과 이런 험난한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 성심을 닮자고 초대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주교님은 교회법 전문가이자 학교 법인과 병원 사목에 오래 헌신하신 분이며,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양 냄새 나는 목자’이십니다. 누구에게나 웃음으로 대하시고 사람들과 기쁘게 소통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시며 사람들과 동행했던 사제 생활처럼, 주교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변함없이 누구에게나 예수님 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실 것입니다. 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교님은 “세상 사람들의 일상 노고와 애환에 대해 깊은 감수성과 연민을 가지는 주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시고, 또한 “아끼는 마음으로 교구 신부님들 곁에서 신부님들을 챙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소망을 들으며 저는 ‘시노달리타스 시대의 주교님이 나셨다’고 내심 기뻐했습니다. 시노달리타스를 통해 ‘함께 걷는 교회’를 추구하는 이 시점에, 예수님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걷는 주교님’ 모습을 기대합니다. [축사] 서울대교구 사제단 대표 지상술(힐라리오) 신부 저를 신학교로 추천해 주시고 사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인연으로, 저는 주교님의 모습을 오랜 기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주교님의 재능과 역량은 너무나도 크고 많으셨습니다. 동대문본당에서 주임신부로서 첫발을 내디디신 때는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 감각으로 이내 본당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셨고, 깊은 영성과 재미를 담은 강론으로 신자들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방학동본당에서는 성당 건립모금을 위해 ‘오 마이 갓’이라는 음반을 제작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어느 본당에서든 그곳을 신자들이 오고 싶어 하는 기쁨과 잔치의 장으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사무처장 시절에는 학생들이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의료인이 되도록 온 힘을 다하셨고,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에서는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재정구조를 탄탄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재능과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한 경영 능력과 행정력을 두루 갖추신 만큼, 부담도 크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성심께서 주교님을 은총으로 이끄실 것이라 믿으며 저희도 주교님을 위해 기도드리며 함께 하겠습니다. [축사]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안재홍(베다) 회장 유머와 따뜻함과 웃음이 몸에 밴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의 주교 수품을 축하드립니다. 주교님은 웃음꽃을 몰고 다니는 분이십니다. 그 예로 주교님과 50년 지기이신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님은 “교회 정신에 충실하고 유머 감각은 물론 의리에 배포도 큰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교님의 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써준 ‘아버지 신부’ 김충수 신부님도 “친화력과 리더십을 갖춘 분위기 메이커”라며 “머리도 좋고 재주가 많아 신부가 된 뒤에는 이 사람이 주교가 되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교님의 막내 여동생 이상화 유스티나님은 “정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게 공부를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스스로 “세상 사람들의 노고와 애환에 깊은 감수성과 연민을 가지는 주교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주교님의 이러한 인품과 다짐처럼, 시노드 교회를 향해 교구민들과 함께 동행해 주시고, 교우들이 걷다가 힘들어할 때는 업어 주십시오. 배고픈 교우에게는 기도와 함께 먹을 것을 주시고, 진정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돼 주십시오.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아 행복한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답사] 이경상 주교, “사람들의 고통과 애환에 연민 갖고 살아갈 것” 저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해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감사드리며 순종을 서약했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저는 지난 2월 24일에 주교 임명 후 2월 29일 교황청대사관에서 교구장님과 교구 선배 주교님들 입회하에 신앙선서를 통해서 믿을 교리에 대한 저의 신앙을 고백했고, 곧이어 신앙선서와 함께 주교 수품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충성 서약문을 낭독하고 서약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가톨릭교회와 그 최고 목자이신 교황님께 항상 충성을 다하겠다는 문장을 시작해서, 가톨릭 신앙과 도덕이 만인에게 전파되기를 노력하고 교회 재산을 성실히 관리하고 주교의 협력자로 섭리된 모든 성직자, 특히 남녀수도자들을 각별한 사랑으로 보살피고, 성소 계발에 힘쓰고 평신도의 존엄성과 그들의 고유 분야를 인정하고 증진하며 인류 복음화에 각별한 관심을 두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복음 말씀이 수품자를 도와주시기를 간청하면서 마무리하게 돼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 응원에 힘입어,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어 그 서원을 잘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주 창조 이래 인간을 위해 맺으신 계약을 어긴 적이 없으십니다. 저는 이제 걱정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이 어머니 교회에서 조금씩 더 주님의 영을 제 안에 지니고, 사람들이 겪는 일상에 특히 노고와 고통과 애환에 감수성과 연민을 갖고 살아가렵니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 도와주십시오.

2024-04-21

뜨거워진 한반도, 서울에서도 감귤이 자란다

‘나주 배, 대구 사과, 제주 감귤.’ 지역 특산물로 오랫동안 즐겨먹던 과일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올리브, 망고와 같은 아열대 작물재배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온난화로 뜨거워진 지구가 한반도의 과일 지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기온과 먹을거리의 변화는 곧 우리 삶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 과일 재배지 북상 중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 주요 과일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다. 기온과 재배지가 달라지면서 과일의 맛도 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남 지역의 배 재배지는 2020년 1734㏊로, 2010년(3297㏊)보다 47.4%나 줄었다. 줄어든 배 밭은 경기도까지 북상, 안성에서만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도 특산물인 감귤도 내륙을 넘어 수도권까지 올라왔다. 같은 기간 제주도의 노지 감귤 재배 면적은 소폭 감소했고 전남의 노지 감귤 재배지는 3배로 늘었다. 나아가 경기 지역을 넘어 서울에서도 노지 감귤 농사가 시작됐다. 통계청의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산물 주산지 이동현황을 보면, 사과의 재배지가 경북에서 정선·영월·양구 등 강원 산간 지역으로 확대됐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경북 지역의 사과 재배지는 16.7% 감소한 반면 강원도의 사과 재배지는 164.3%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복숭아 역시 충북과 강원 지역 재배가 늘어났으며, 포도 주산지는 경북 김천에서 충북 영동과 강원 영월로 올라오고 있다. 반면 아열대 작물 재배는 남쪽에서부터 증가하고 있다. 2001년 제주에서 첫 재배를 시작한 망고는 이제 ‘제주 망고’라는 이름을 달고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다. ‘지중해 특산물’로 잘 알려진 올리브 역시 2016년 시험 재배를 시작해 2020년 기준 제주와 전남, 경남 등에서 총 20.86.ha 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랄 수 없지만, 지구온난화 영향 등으로 제주의 겨울철 평년 기온이 높아지면서 별도의 난방 시설 없이도 바깥에서 재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2090년 맛있는 사과 사라져 농촌진흥청은 연평균 기온이 1℃ 오를 때 농작물 재배 가능 지역은 81km 북상하고, 해발고도는 154m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여름철(6~8월) 평균 기온은 2022년 24.5℃로 2002년(22.9℃)보다 1.6℃ 높아졌다. 지난 20년간 농작물 적정 재배지의 위도는 129.6km 북상하고, 해발고도는 246.4m 높아진 셈이다. 게다가 사과의 경우 기온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면 정상 기후 때보다 크기도 작고 당도도 떨어진다. 붉은색을 내는 안토시안 함량도 낮아져 품질도 떨어진다. 2022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한 6대 과일 재배지 변동을 예측한 결과, 사과는 2070년대에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며 배와 복숭아는 2090년대에 이르러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맛을 내는 고품질 사과와 배는 2090년대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2090년대에는 복숭아도 전 국토의 5.2%만 기후적으로 재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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