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교회, ‘위기의 이주민’ 지원 나선다

[외신종합] 미국 로스앤젤레스(LA)대교구장 호세 고메즈 대주교가 위기에 처한 이주민들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본당들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7월 23일 발표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강압적인 정책을 시행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주민들을 돕기 위한 조치다. LA대교구는 ‘가족 지원 프로그램’(Family Assistance Program)을 진행하고 있는 지역 봉사조직, 자선 활동가와 협력할 계획이다. ‘가족 지원 프로그램’은 식료품과 식사, 의약품 등이 위기에 처한 이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제공되도록 재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고메즈 대주교는 23일 LA 남부에 있는 성 파트리치오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우리 친구와 가족, 이웃 그리고 본당 신자들이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있다”며 “착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이들, 신앙을 지키는 이들, 오랫동안 미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은 일하러 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구속돼 추방될까 봐 거리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메즈 대주교는 기자회견에서 “LA 카렌 바스 시장 그리고 연방 당국자들과 실질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LA 거주 이주민들은 몇 주 동안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급습을 받으면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LA 지역 지도자들과 시민단체, 이주민 권리단체 등이 7월 2일 트럼프 행정부의 이주민 정책에 법에 따른 제재를 요청한 뒤, LA 연방판사가 이민세관단속국의 단속 행위를 임시로 중단시켰다. ‘가족 지원 프로그램’에 후원하고 있는 ‘라틴계 지도자 가톨릭협의회’(The Catholic Association for Latino Leadership) 마이클 몰리나 이사장은 “내 인생에서 가톨릭신자가 성당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날이 올 줄은 전혀 몰랐다”며 “우리 회원들에게도 이주민 후원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남부 가톨릭 본당들은 미국 정부의 이주민 단속 결과로 부모가 구금되고 수입이 끊겨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샌버나디노교구장 알베르토 로하스 주교는 구금될 위험이 있는 이주민 신자들에게 주일미사 참례 의무를 관면했다.

교황, 달 착륙 56주년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와 영상통화

[외신종합] 레오 14세 교황이 아폴로 11호 달 착륙 56주년을 기념하며 7월 20일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중 유일한 생존자인 에드윈 버즈 올드린(95)과 영상통화를 했다. 교황은 이날,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이탈리아 로마 남쪽 카스텔 간돌포에 위치한 바티칸 천체관측국도 방문했다. 교황은 올드린과 통화하며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역사적 사건을 회상하는 한편 시편 8장에 기록된 것처럼 하느님 창조의 신비와 위대함 그리고 창조물의 나약함에 대해 함께 묵상했다. 올드린은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에 내렸고, 마이클 콜린스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표면을 걷는 동안 궤도선을 조종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자 암스트롱과 올드린, 콜린스를 ‘달의 정복자, 우리의 밤과 꿈을 비추는 엷은 빛’이라고 표현한 메시지를 보냈고, 1969년 10월 16일 교황청에서 세 명의 우주비행사과 만나기도 했다. 1969년 당시 13살이었던 교황은 올드린과의 통화에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은 인간의 창의성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고 말하며 창조계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이지만 하느님은 자비롭게도 인간에게 놀라운 존엄성과 능력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개신교 신자인 올드린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지구로 돌아가면서 킹 제임스 성경에서 시편 8장을 읽었다. 교황청은 교황과 올드린, 올드린의 아내 안카 파우어가 영상통화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올드린은 7월 20일 자신의 X 계정(@TheRealBuzz)에 “레오 14세 교황님이 아폴로 11호 달 착륙 56주년을 기념하면서 축복을 보내 주셔서 아내와 나는 감사했고 감동을 받았다”며 “우리 부부는 건강과 장수를 위해 그리고 모든 인류의 번영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바티칸 천체관측국을 방문해서는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했고, 망원경이 밤하늘을 촬영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바티칸 천체관측국은 1930년대부터 카스텔 간돌포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00년대 후반에는 몇 년 동안 운영되지 못한 후 레오 13세 교황이 1891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돔 뒤편 비탈에 공식적으로 천문대를 다시 설립했다.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1578년, 교황청 정원에 천체 관측탑을 세운 것을 바티칸 천체관측국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7면

원폭으로 사라졌던 ‘나가사키 종’ 80년 만에 본모습 되찾아

[외신종합] 일본 나가사키대교구 주교좌우라카미대성당 종이 원자폭탄에 의해 손실된 지 80년 만에 다시 설치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도시 대부분을 폐허로 만들었다.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로,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실제 전투 상황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우라카미대성당 종 제작을 위한 모금을 주도한 미국 윌리엄스대학 사회학과 제임스 놀란 교수에 따르면, 우라카미대성당 종을 제작하고 설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1년여 만에 12만5000달러가 모금됐다. 모금에는 6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나가사키 지역 가톨릭신자들은 원폭이 투하된 후 우라카미대성당 종 가운데 하나를 가까스로 찾아냈고, 그 종은 1959년 새로 건축된 대성당 오른쪽 종탑에 설치됐다. 그러나 왼쪽 종탑은 종이 없는 채로 유지되고 있었다. 놀란 교수는 일본 나가사키에 종종 방문해 가톨릭 신자들의 원폭 투하에 대한 반응과 관련된 책을 집필하거나 연구를 하던 중, 우라카미대성당 신자인 고지로 모리우치로부터 “미국 가톨릭신자들이 왼쪽 종탑에 필요한 종을 보내 주면 멋진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새 종을 제작하는 일에 앞장서게 됐다. 놀란 교수가 우라카미대성당 종 제작에 관여한 데에는 개인적인 사유도 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에서 의사로 근무했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후에는 조사팀과 함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온 적도 있다. 놀란 교수는 “7월 15일에 목표 액수인 12만5000달러를 모았고, 이 모금액으로 종 제작비와 운송, 설치비를 지불할 것”이라며 “모금 기간은 약 1년 4개월이었고, 628명이 기부금을 낸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밝혔다. 나가사키대교구장 나카무라 미치아키 대주교는 17일 종을 축복했고 종의 이름을 ‘성 카테리 희망의 종’(St. Kateri Bell of Hope)이라고 지었다. 종은 원폭에 의해 우라카미대성당이 파괴된 지 80주년이 되는 8월 9일에 공식적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놀란 교수는 “원자폭탄이 폭발한 시각인 8월 9일 오전 11시2분 타종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7면

이란 마티외 추기경 “힘으로는 평화 이룰 수 없어”

[테헤란, 이란 OSV] 이란 테헤란-이스파한대교구장 도미니크 마티외 추기경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비판하며 “힘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고는 고통을 준다”고 강조했다. 마티외 추기경은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이란이 공포와 근심에 빠졌고, 이란의 작은 가톨릭 공동체도 신앙적으로 시험대에 섰다”며 “분쟁 상황은 명백히 이란의 가톨릭 공동체를 포함해 모든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가톨릭 미디어인 Our Sunday Visitor(OSV)는 마티외 추기경으로부터 7월 12일 받은 이메일 내용을 23일 보도했다. 아울러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벌어진 12일간의 전쟁 후, 이란 가톨릭 공동체는 기도에 의지하며 희망을 찾고 있다”며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적했던 것처럼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의 한 국면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이스라엘은 6월 13일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했고, 이에 이란의 보복이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중재로 6월 24일 전쟁이 중단됐다. 마티외 추기경은 힘으로 평화를 이루려는 사고를 비판하면서 “공포심과 국가우선주의는 대화와 형제애를 약화시킨다”며 “이란 가톨릭 신자 2만1000명은 이미 규제와 물가상승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불안정성까지 마주하고 있지만 하느님 섭리를 신뢰하고 기도 안에서 인내하며 굳건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란을 비롯해 갈등을 겪고 있는 세계 다른 지역의 공포심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톨릭신자들은 전쟁과 갈등이 불러오는 고통을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요청을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티외 추기경은 아울러 “지금 같은 시련의 시기에도 평화는 우리 각자에게서 시작한다는 믿음으로 이란과 이 세상에 희망으로 두고 있다”며 “혼돈의 시기일수록 전 세계의 가톨릭신자를 비롯한 신앙인들이 굳센 희망으로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7면

콩고 성당서 신자 20여 명 집단 피살

[외신종합]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S)와 연계된 무장 그룹이 7월 27일 콩고민주공화국 북서부에 있는 한 성당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있는 신자 수십 명을 살해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연합민주군’(The Allied Democratic Forces, ADF)은 코만다 마을에 있는 성당을 습격해 기도하고 있던 신자들을 사살하고 약탈한 뒤 근처 건물들에 불을 질렀다. 이번 학살로 성당 안팎에서 최소 21명이 죽었고, 주택 여러 채가 불탔다. 콩고 이투리주에 위치한 코만다는 광물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서 지역 통치권을 놓고 몇몇 무장 세력 간에 다툼이 일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 안토니오 타자니 신부는 27일 자신의 X계정에 “코만다 성당에 가해진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곳에서 이라크·시리아 IS에 연계된 테러리스트들이 시민 40명 이상을 살해했다”고 말했다. 타자니 신부는 “종교 시설은 반드시 보호받고, 종교의 자유 역시 보장돼야 한다”면서 “이탈리아는 희생자 유가족, 콩고민주공화국 국민들과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민주군’은 1990년대에 우간다 정부가 무슬림들을 박해한다고 비판하며 우간다에서 출현했지만 현재는 국경을 넘어 콩고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며, 우간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콩고에서도 종교를 가리지 않고 시민들을 주기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연합민주군’은 수천 명의 사람들을 살해했고, 2주 전에는 콩고 이루무 지역에서 66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7면

[글로벌칼럼] 니케아 신경에 담긴 궁금한 이야기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주일 미사 중에 낭송되는 ‘니케아 신경’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신경은 325년 8월, 약 세 달간 이어진 니케아공의회를 마치며 발표되었으며, 올해로 1700년을 맞는다. 하지만 니케아 신경이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은 아니다. 그 영예는 초기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 고백을 바탕으로 한 ‘사도 신경’에 돌아간다. 그럼에도 니케아 신경은 교회 역사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에 관한 신학적 설명이 훨씬 더 정교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두 신경 모두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를 이루지만, 사도 신경이 간결하다면 니케아 신경은 더욱 정밀하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합법화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은 로마 제국 내에서 박해의 대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리적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토론을 넘어서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아리우스라는 사제가 “예수는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시간상으로도 본질적으로도 하느님과 같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적지 않은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리우스는 하느님의 절대적 우월성을 주장하며, 예수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최초이자 가장 사랑받는 피조물이라고 보았다. 그는 “하느님 아버지만이 시작이 없고, 무한하며 영원하다”고 말하며,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고 탄생한 존재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점이 있었던 유한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는 성경도 근거로 들었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요한 14,28),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콜로 1,15) 등의 구절을 인용하며, 예수는 하느님과 동등하거나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교구 내부에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고, 결국 교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됐다. 당시 교회 문제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논쟁을 종식하고자 직접 나섰다. 그는 325년 제국 전역의 주교들을 니케아(현재 튀르키예의 이즈니크)로 소집해 공의회를 열었다. 이는 교황이나 주교단이 아닌,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이교도 황제가 소집한 최초의 ‘보편 공의회’였다. 회의에는 주로 제국 동부 지역에서 온 300여 명의 주교가 참석했다. 성 실베스테르 1세 교황은 고령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지만, 두 명의 사제를 대표로 파견했다. 아리우스 본인도 참석했고, 그의 반대편에는 젊은 부제였던 아타나시오가 있었다. 그는 훗날 삼위일체 신앙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가 되었고, 평생을 아리우스주의와 싸우며 보냈다. 회의는 황제 본인이 주재했으며, 때로는 논쟁에 직접 참여하고 이끌기도 했다. 당시 아리우스를 지지한 22명의 주교는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우스를 중심으로 뭉쳤지만, 아리우스의 저술 일부가 회의에서 낭독되자 대부분의 주교는 이를 신성 모독이라며 비난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본질상 동일하다’는 삼위일체 입장을 옹호한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데르였다. 그의 후계자 아타나시오의 주장은 결국 공의회에서 채택되었고,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 본질(Homoousios)’이라는 표현이 니케아 신경에 명시되었다. 이는 아리우스의 주장과는 양립할 수 없는 신학이었다. 325년 6월 19일, 공의회와 황제는 알렉산드리아 지역 교회들에 회람을 보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파문하고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니케아에서 승리한 삼위일체 진영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리우스가 추방되었고 공의회에서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주의 논쟁은 지속되었다. 327년 알렉산데르 주교가 죽자 아타나시오가 그 뒤를 이었고, 콘스탄티누스는 점차 아리우스 측 인사들에 대해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이 초기 교회의 신학 논쟁을 되돌아보면 놀라움이 앞선다. 당대 사람들은 신앙과 신학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고 심지어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현대인들은 신앙보다는 경제와 부의 축적에 관심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니케아공의회는 신학적 문제에 관해 결정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셈법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아리우스주의는 신앙의 형태로 초기 교회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많은 신학자가 조용히 복권되었다. 이것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실제 삶에서 바른 믿음(Orthodoxy)과 바른 행위(Orthopraxis)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정답자에게 상은 없겠지만, 되새겨 볼만 한 질문이다. 글 _ 미론 페레이라 신부 예수회 사제로 평생을 기자 양성 등 언론 활동에 힘써 왔다. 인도 하비에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라 크루아(La Croix)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6면

美 산타페대교구 “모두를 파괴하는 핵무기 폐기하라”

[앨버커키, 미국 OSV]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대교구는 인류 최초로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에서 실시된 핵무기 실험 8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 핵무기 폐기를 요청하는 행사를 7월 13일 앨버커키에서 열었다. 이 행사에는 2017년 노벨 평화상 수상 단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The 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을 포함해 다양한 단체의 대표자들이 참석했고, 종교 단체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핵무기가 초래하는 충격적인 파괴 효과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 미국 뉴멕시코주 남부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White Sands National Park)에서 암호명 ‘트리니티 프로젝트’(Trinity project)로 80년 전 시행된 핵무기 실험의 폭발 위력은 반경 160마일(약 260km) 범위까지 감지됐고, 주민 약 50만 명이 영향을 받았다. 주민들은 대부분 라틴아메리카인이거나 원주민들이었고 이들은 방사성 낙진(radioactive fallout)에 의해 심각하게 피해를 봤다. 당시 핵실험을 체험했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미국 정부는 핵실험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건강상 악영향에 대해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핵실험이 이뤄진 장소는 주민들이 거주하던 곳에서 불과 수 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핵실험 몇 달 후에는 영아 사망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처음 나왔고, 암환자 수도 급증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종파들이 평화를 바라는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바쳤다. 핵무기 폐기 필요성에 대한 발언들도 이어졌다. 산타페대교구장 존 웨스터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핵무기의 비윤리성에 대해 언급하신 것은 획기적이었다”며 “교황청은 핵무기를 금지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한 일이 계속해서 한 줄기 빛을 밝히고 그 빛이 우리 마음과 전 세계에 평화의 사명을 더 확산시키기를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호주에서 미국에 온 ‘핵무기폐기국제운동’ 멜리사 파크 사무총장은 “미국 정부가 ‘삼위일체 프로젝트’ 핵실험 효과와 다른 핵무기 개발에 대한 진솔한 입장을 밝히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서 “핵무기가 국가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7면

이탈리아 평신도들, 추방 위기 아프간 난민들 환대

[UCAN] 파키스탄에서 추방 위험에 처해 있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이탈리아 평신도 단체 ‘산 에지디오 공동체’(The Community of Sant’Egidio)의 도움으로 이탈리아에 정착하고 있다. 7월 10일에는 아프간 난민 119명이 ‘인도주의 통로’(Humanitarian Corridor) 사업의 하나인 ‘연대’(Solidaire)에 의해 배정된 특별기를 타고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인도주의 통로’는 산 에지디오 공동체가 이탈리아 정부 부처, 여러 종교기관과 비정부 단체와 협약을 맺고 운영하는 구호 사업이다. ‘인도주의 통로’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난민들이 여권을 갖추고 안전하게 이탈리아로 이주하도록 돕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 주거 제공과 정착 지원을 하고 있다. 바티칸뉴스에 의하면, 이번에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프간 난민들은 2021년 8월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뒤 비공식적인 거처와 임시 수용소에서 4년 동안 불안정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인도주의 통로’의 도움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은 8500명이 넘는다. ‘인도주의 통로’ 사업에 드는 비용은 산 에지디오 공동체와 협력 기관들이 자력으로 마련하고 있다. 2021년 8월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을 빠르게 장악하자, 아프간은 복잡하고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탈레반은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당초 약속을 깨뜨리고 공개 처형과 태형 등을 포함해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부과했다. 특히 여성의 교육과 취업, 이동, 옷차림 등에 엄격한 제한이 가해졌다. ‘이주 뉴스’(The Migration News)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 7080만 명 가운데 아프간 난민이 600만 명이나 된다. ‘이주 뉴스’는 “고국을 떠난 아프간 주민의 80% 이상이 파키스탄과 이란에 거주하고 있는 반면, 서방 국가로 이주하는 경우는 훨씬 적다”고 밝혔다. 수십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던 파키스탄은 올해 4월, 난민 추방 정책을 시행하면서 아프간 난민 약 20만 명이 파키스탄을 떠나 아프간으로 돌아갔다. 4월에만 13만5000명, 5월에도 약 6만7000명의 아프간 난민이 파키스탄을 떠났다. 산 에지디오 공동체의 ‘인도주의 통로’ 사업은 난민을 환대하고 그들을 사회에 통합하는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6면

“교회 일치 위해 헌신한 가경자 정신과 모범 따라야”

[UCAN] 교황청 국무원 외무장관 폴 리처드 갤러거 대주교가 인도 동방전례 시로말란카라(Syro-Malankara) 교회 설립자인 가경자 마르 이바니오스 대주교(1882~1953)가 보여 준 교회일치 정신을 따르자고 요청했다. 이바니오스 대주교는 ‘일치를 위해 쉼 없이 일한 사도’로 알려진 성직자로 1930년 시로말란카라 교회를 설립했다. 갤러거 대주교는 7월 15일 인도 케랄라주 시로말란카라 교회 본부에서 이바니오스 대주교 선종 72주기 기념미사를 봉헌하며 “가경자 이바니오스 대주교는 교회일치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했다”며 “시로말란카라 가톨릭신자들은 일상 생활에서 성화를 추구하고 타인을 위해 이타적으로 봉사했던 이바니오스 대주교의 모범을 따르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어 “이바니오스 대주교는 복음의 가르침인 일치와 성화, 봉사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멀리 내다보는 선각자였다”며 “이바니오스 대주교의 모든 사목은 일치의 정신에 따라 이뤄졌고, 진실한 일치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듯 우리도 하나가 되라는 복음의 정신에 이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갤러거 대주교는 “지금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기도와 교육, 일치와 봉사를 통해 이바니오스 대주교가 남긴 유산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요청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로말란카라 교회 홍보부 보바스 매튜 신부는 “갤러거 대주교께서 이바니오스 대주교 선종 72주기를 축하해 주셔서 큰 감사를 드린다”며 “이바니오스 대주교 선종 72주기 행사는 동시에 그분의 주교 서품 100주년도 기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바니오스 대주교는 1882년에 태어나 1908년 사제품을 받았고 1925년 주교가 됐으며, 1930년 9월 20일 시로말란카라 가톨릭교회를 설립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 3월 14일 이바니오스 대주교를 가경자(Venerable)로 선포했다.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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