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리알

[당신의 유리알] 기억 저 깊은 곳에(하)

이주연
입력일 2025-07-23 08:53:03 수정일 2025-07-23 13:07:34 발행일 2025-07-27 제 345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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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손 잡으신 어머니, 받았던 상처도 그리움으로 남아’

미리 말해 두자면, 지난 칼럼 ‘기억 저 깊은 곳에’ 상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나는 소셜미디어에서 ‘밀라논나’라고 불리는 장명숙 안젤라 선생님(이후 밀라논나 님으로 칭함)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 대화 중에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 특히 무관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가 작품을 통해 형상화했던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에 대한 것도 적었다. 

밀라논나 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나에게 질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상처가 넘쳐난다. 나는 먼저 물었다. 힘든 상황에 있는 청년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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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모습으로 앉아있는 밀라논나 장명숙 씨. 밀라논나 유튜브 갈무리

“제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오늘 하루는 성실하게 살아. 하지만 내일은 하늘에 그냥 맡겨!’ 아무도 몰라요. 저는 삼풍백화점 고문으로 있었는데, 퇴근하고 그 다음 날 그곳이 무너졌거든요.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다만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오늘만 잘 살면 되지요. 오늘 하루 당신이 하는 게 즐거우면, 그냥 하라고 자주 말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나는 선생님의 아침 일상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자리에서 눈뜨자마자 손에 쥔 묵주로 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 영상을 통해 가톨릭 신앙을 모르는 젊은이가 ‘세례를 받았다’는 댓글을 달자, 무척 기쁘셨다고 했다. 

“저는 다니는 성당 주변을 함께 청소해 주는 조건으로 세례 대모(代母, Godmother)를 서 주곤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기도가 ‘사도신경’이에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어떨 때는 그런 생각까지 들어요. 하느님은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을까 하는. 제 어린 시절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잖아요. ‘하느님, 당신이 저를 우리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구박을 받고 살았던 게 아닌가요?’ 솔직히 이런 식으로 하느님과 대화를 많이 한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
주님께 드리는 기도로 승화시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분노가 강했던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작품 <엄마>(Maman, 1999)를 통해 모성에 대한 양가감정을 9미터의 거미 형상으로 표출했다. 엄청난 크기의 거미 조각상은 알을 품고 있었으며, 긴 다리로 알들을 향하는 어떠한 접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보였다. 아버지의 불륜을 참았던 어머니를 향한 냉소와, 안전한 삶을 지키고 싶었던 작가의 희망이 작품에는 녹아 있었다. 후기 작업에서 작가는 ‘엄마’라는 존재를 이상적으로 꾸미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 자체로 보고 용서하며 품고자 했다. 

나는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와 밀라논나 님의 사연을 들으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내 생일이 가까울수록 불안해했고, 엄마에게 더 차갑게 대했던가. 태어난 존재를 축하하는 첫 번째 생일 케이크를 스물다섯 해가 지나서야 받아보았다는 게 그 이유였나’. 엄마가 해 주길 바랐다. 언제나 제사음식으로 내 생일을 축하하던 가족들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무심해서 지나쳤다. 

‘하기야 그게 뭐 대수라고 혼자 케이크를 사 먹으면 되지’ 싶기도 하다. 속 좁은 아들은 여전히 인생 첫 번째 생일 케이크를 놓친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움은 인정과 그리움에서 온다는 사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엄마를 미워할 권리가 자녀에게 과연 있을까. 상처라면 그녀가 받은 것이 더 클 텐데….’ 서운하면서도 그리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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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엄마>. 박홍철 신부 제공

밀라논나 님은 당신의 어머니를 이미 용서하고 계셨다. 

“나이 드신 어머니는 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셨어요. 이건 하느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하느님. 제가 어머니한테 착한 딸이라는 인정을 받게 해 주세요.’(여기서 길게 한숨을 쉬셨다.) 저는 그래서 어머니한테 더 잘해드린 거 같아요. ‘나에게 미안하게 해야지’하고 결심했나 봐요. 어머니가 낙상하시고 7년 정도 병상에 계시다 그 충격으로 치매가 오셨어요. 그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가서 챙겨드렸지요. 요양원도 집 근처로 해서 자주 뵈었고요. 어머니가 정신이 드실 때면 저에게 깊이 사과하셨어요. ‘너는 참 착한 딸이었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어.’ 누구나 임종의 순간이 오면, 원래 마지막까지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린다잖아요. 그게 바로 저였어요. 저를 보신 후에야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상처는 영혼을 떠다니게 한다. 다만 용서와 사랑만이 이를 잠재울 뿐….

나는 저녁 미사를 끝내 놓고, 다시 시작된 두 번째 인터뷰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신 밀라논나 님에게 옷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이나 복식 심리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특히 십자군 전쟁 이후, 중국 복식에 영향을 받은 옷 중 하나가 사제들의 옷인 수단이라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내가 옷에 관해 물었던 것은, 얼마 전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저의 아버지는 지난해 10월 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지금 중증 치매 2급이고요. 물론 저를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형제는 아버지의 죽음을 아직도 어머니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 장례식 이후, 엄마는 한동안 아주 아프셨다고 해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끈이 부부에게는 연결된 거 같아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장롱 속 엄마의 옷들도 제가 사는 성당 신자 분들에게 나눠드렸어요. 지금 입어도 좋은 옷들만 골라서요. 그러던 어느 날, 미사를 하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아들만 알 수 있는 엄마의 진달래 빛 블라우스를, 교우 할머니 한 분이 입고 오셨거든요. 그것은 분명 엄마의 옷이었어요. 치매로 제가 사는 성당에는 오실 수 없었는데 이렇게 옷으로 만나고 보니, 제 앞에 꼭 서 계신 것 같았습니다.”

세상의 엄마들은 무결점의 여신들이 아니었다. 나는 줄곧 밀라논나 님과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이야기를 하며 오랫동안 간직한 엄마의 실수를 지우고 싶었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 기억의 감옥을 깨고 한 여인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순간 솔직히 고백한다. ‘나의 미움은 결국 그리움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기억은 저 깊은 곳에서 눈을 감으며 나직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제 다시 사랑하고 사랑해라.’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