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참모습 드러난 영광의 순간…시대·문화 따라 다르게 표현
8월 6일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다. 복음(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을 통해 전해지는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화하시어 세 제자에게 당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신 순간을 기념한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신 직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하얘졌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했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율법과 예언의 성취, 하느님 아들의 정체가 이 순간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554~556항)는 이 사건을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의 믿음을 준비시키고,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 준 것”이라고 설명한다. 변모는 제자들이 맞닥뜨릴 고난을 견딜 힘을 주고, 예수님의 길이 실패가 아니라 영광으로 이어짐을 가르친다. 예수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의 체험을 통해, 신앙의 길이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과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계시였다.
이 축일은 5세기 동시리아에서 처음 전례적으로 기념돼 점차 동방교회로 확산했다. 서방교회에서는 9세기 무렵부터 이탈리아 나폴리와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기념했다.
그리고 1457년 갈리스토 3세 교황은 이날을 로마 전례력에 도입하고 전 세계 교회가 축일로 삼도록 했다. 1456년 8월 6일 베오그라드 전투 승리의 감사를 기념한 것이 계기였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은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40일 전에 거행하는데,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40일 전에 변모하셨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거룩한 변모 사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화가의 영감을 자극해 왔다. ‘변모의 순간’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 색채와 양식으로 표현됐을까.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변모’를 다룬 기억할 만한 작품을 소개한다.
타보르산 주님 변모 성당 모자이크
이스라엘 북부 타보르산 정상에 들어선 주님 변모 기념 성당의 금빛 모자이크는 성당을 찾는 순례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예수님이 광채 가운데 서 계시고 좌우로 모세와 엘리야, 아래에 놀라 두려워하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등 세 제자가 배치돼 있다. 위쪽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빛 광선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퍼져가는 모습이다. 1924년 이탈리아 출신 모자이크 예술가 도메니코 브루나티가 제작했다. 전통 비잔틴 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20세기 모자이크 양식으로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목판화로 표현된 주님 변모
독일 다뉴브 화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는 북유럽 르네상스 시기 자연풍경과 빛의 표현을 종교화에 적극 도입한 화가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체 표현을 받아들이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세밀한 자연 표현을 결합했던 그는 1513년 제작한 목판화 <주님의 변모>에서 산 위의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을 선묘로 표현했다. 예수님이 산 위에서 빛으로 변모하는 장면과 하늘과 산, 나무를 세밀한 선으로 새기고 있다. 흑백 작품임에도 빛과 공간감이 도드라진다.
유명 화파들의 특징 반영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거장,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1560년경 제작한 <변모>는 베네치아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부드러운 붓질이 특징이다. 타보르산 위에서 빛으로 변모한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가 보이고 화면 아래쪽에는 경탄과 두려움 속에 땅에 쓰러진 제자 세 명이 그려졌다. 이 작품은 빛의 색채와 인간적 감정을 결합한 전환점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바로크 초기 화가로 이탈리아 볼로냐 화파를 이끌었던 루도비코 카라치의 대표작이다. 1595년 작품으로, 상단에는 빛나는 흰옷의 예수님이 중앙에 떠 있으며 모세와 엘리야가 구름 속에 있다. 하단에는 놀란 제자들을 극적인 원형 구도로 배치했다. 화면 상단과 하단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하늘의 빛과 세계와 인간 세상의 긴장을 드러냈다. 부드러운 색조와 생생한 동작으로 긴장감을 더한다.
이콘·수채화·유화 등 다양한 소재와 기법으로 표현
정통 비잔틴 구도를 가진 초기 러시아 이콘에서도 ‘주님의 변모’는 많은 작가에 의해 다뤄졌다. 특정 개인 작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익명(Anonymous) 노브고로드 화파는 15세기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적인 성미술 속에서 변모 사건을 표현했다.
1824년에 제작된 러시아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이바노프의 작품은 수채화 기법으로 그려졌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지는 빛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낭만주의 특유의 색감과 해방된 붓 터치가 돋보인다.
덴마크 화가 칼 하인리히 블로흐는 19세기 유화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사실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했다. 광채 속에 흰옷을 입은 채로 계신 예수님 위로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는데, 이는 하느님의 현존과 영광을 나타낸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채롭다. 바위산과 안개, 빛으로 가득한 하늘은 이 사건이 초월적인 순간임을 강조한다. 두려움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이 생생하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