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바람이 전하는 말

민경화
입력일 2025-06-25 08:32:05 수정일 2025-06-25 08:32:05 발행일 2025-06-29 제 344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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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하고 보니 꼬박 10년이 걸렸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다큐멘터리 ‘바람이 전하는 말’ 이야기다. ‘바람이 전하는 말’은 작곡가 김희갑의 인생과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나의 첫 감독 데뷔작이다. 

김희갑, 1970년대 키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에서부터 양희은의 <하얀목련>, 혜은이의 <열정>, 김국환의 <타타타>,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작곡한 바로 그 작곡가다. 그뿐인가. 온 국민의 애창곡인 정지용 시인의 <향수>, 올해 30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도 그의 작품이다. 너무 많아 작곡자 본인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는 그의 작품 수는 약 3천 곡.

김희갑 선생님과의 인연은 2006년 시작되었다. 칠순을 기념하는 헌정 음악회 ‘그대, 커다란 나무’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리면서 공연의 작가로 처음 선생님을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좋아했던 수많은 노래가 모두 한 사람의 곡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그 후 가끔 부부 동반으로 만나 맥주도 마시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이번엔 인품에 반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어느 자리에서나 조용하고 섬세하면서도 늘 편안한 미소와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연장자라 하여 가르치려 하거나 ‘대가’라 하여 다른 이를 낮추어 보지도 않았다. 

2014년 봄, 다큐멘터리 창작자인 우리 부부는 카메라를 들었다. 공연이나 연주회, 가족 모임 등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촬영을 시작했다. 2016년 신사동의 ‘룰라톤’에서 인터뷰할 적만 해도 선생님은 기억력이 꽤 좋았다. 난청이 시작돼 큰 소리로 질문해야 했지만 그 정도면 괜찮았다. 

그러다 본격적인 촬영을 하려던 참에, 코로나19로 세상이 닫혔다. 선생님이 사시는 곳은 실버타운이라 더더욱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2021년 겨우 선생님을 모시고 다시 인터뷰했을 땐 이미 많은 기억이 지워지기 시작한 터였고, 난청이 심해져 대화가 어려웠다. 대화가 어려워지면 선생님은 예전의 그 맑고 순진한 미소로 웃기만 하셨다. 

1936년생인 선생님의 시간은 우리와 달랐다. 속수무책으로 푹푹 사라졌다. 이러다 영영 다큐멘터리가 완성되지 못하는가보다 싶어, 선생님과 함께한 음악과 시절을 말해 줄 주변 분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 <눈동자>를 구성지게 부르는 장사익, <타타타>로 인생이 바뀐 김국환, 지금도 <열정>으로 통하는 혜은이,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기타리스트 김광석 등 20여 명의 가수들과 연주자들, 평론가들과 뮤지컬 음악 감독을 만났다. 

만나서 인터뷰하니 더 조바심이 났다. 혹여 선생님께 이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하게 될까 싶어 편집 작업을 서둘렀다. 영화는 완성되어 지난봄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 가톨릭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할 때까지도 선생님은 극장에 나오지 못하셨다. 선생님의 컨디션이 좋아지길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 극장은 아니지만 계신 곳 가까운 곳에서 상영회를 만들었다. 선생님은 그날 영화를 보시며 아이처럼 활짝 웃으셨다.

영화 속 혜은이의 말처럼 대중음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또 위로’다. 희로애락의 순간마다 노래가 있어서 한고비 한고비 잘 살아왔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가지만, 다행히 작곡가 ‘김희갑’이 남겨준 수많은 노래는 우리에게 남아 있다. 우리는 그의 노래에 기대어 많은 날을 또 살아갈 것이다. 더 많은 이와 김희갑의 음악과 인생을 나누고 싶어 올가을 영화를 개봉하려고 한다. 11월이 될 것 같다. 

여덟 번의 ‘일요한담’ 연재를 마치며 개봉 소식을 미리 전한다. 길고 지루할 여름, 애창곡들과 함께 잘 견디시고 가을에 극장에서 꼭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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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