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시그니스와 커뮤니케이션

이형준
입력일 2025-07-16 08:48:12 수정일 2025-07-16 08:48:12 발행일 2025-07-20 제 345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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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이었다. 방아다리 약수터로 가는 길은 돌밭과 같았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운동밖에 하지 않고 살던 어느 날, 가톨릭 언론인 선후배들과 산행을 하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걸음은 느리고 숨은 가빴다. 말과 글로 평생 살아온 분들이라 여기저기서 ‘깊은 산 고요’(정지용 프란치스코, 「장수산 1」)를 깨우는 탄성이 나오곤 하였으나, 중력을 실감하며 걷는 한 중년에게 그것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도 산행을 마치고 나눠 마신 막걸리는 달콤했다. 너나없이 세파 속에서도 언론인의 정도를 걸으며 살아온 이들이기에 수다스러워도 가볍지 않았고, 농담에도 뼈가 있었다. 으레 그렇듯 뒤풀이가 본풀이가 되려는 순간 산행 대장의 버스 승차 명령이 떨어졌다. 평창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있으니 그의 판단은 옳았으나, 다들 엉덩이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눈치였다.

일은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벌어졌다. 고속의 주행음 속에서도 다들 산행의 피로와 막걸리의 취기로 눈을 붙이고 있는데 두 선배가 옆자리로 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가톨릭독서아카데미’의 사무국장을 맡아 달라. ‘가톨릭언론인산악회’ 총무가 되어 달라. 그렇게 한 자리에서 두 가지 제안을 받았다. 다들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들이었기에 쉽사리 말하기 어려웠다.

실은 세례를 받던 해에 느닷없이 가톨릭 방송인들의 모임인 ‘서울커뮤니케이션협회’(시그니스) 사무국장을 맡아 정신없이 일하던 기억이 있었기에 더욱 답하기 어렵기도 했다. 일천한 신앙생활에 교회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처지였던지라 2년의 임기 동안 참으로 부실한 사무국장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KBS, MBC, SBS, EBS 등 시그니스 소속 교우회들의 연합 미사를 기획하고, 합동 피정과 성지순례를 추진하는 동안 조금씩 길눈을 뜨고 신앙생활도 깊어졌음을 느꼈던 터라 고민 끝에 가톨릭독서아카데미 사무국장을 맡겠노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방송계 선배가 회장으로 있는 쪽을 택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사 출신 선배가 회장으로서 어렵사리 부탁한 가톨릭언론인산악회 사무국장을 수락하지 못한 것은 못내 송구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된 가톨릭 언론인 공동체에서의 봉사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가운데 지난 2022년 8월 서강대학교에서 개최된 ‘시그니스 세계총회’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이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다 언어가 다른 형제자매들을 영접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커뮤니케이터들이 4년마다 모여 회의도 하고 세미나와 이벤트도 펼치는 자리에 미력이나마 전시공연 PD로서의 경험을 보탤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기도 했다.

역시 오대산이었다. 방아다리 약수는 신체 건강에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 초기의 어리숙한 한 신자가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뛰어들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버스 안에서 내게 사무국장을 제안했던 한 선배는 말했다. “봉사가 은총입니다.” 실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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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재홍 요한 사도(시인·문학평론가, 가톨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