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평양교구 신우회’가 갖게 하는 꿈

박지순
입력일 2025-06-18 08:48:58 수정일 2025-06-18 08:48:58 발행일 2025-06-22 제 344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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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3년 전이던 2012년 6월 ‘평양교구 신우회’ 총무로 일하던 김만복(로사) 씨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80세였다. 평양에서 기차 한 정거장 거리인 평안남도 서포에서 태어난 분이다. 6·25전쟁 중 1950년 12월 7일 대동강을 건너 월남해 남대문시장에서 평생 장사를 하며 건실하게 살았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자택에서 만났을 때, 서포와 평양이 함께 나오는 위성 지도를 손에 들고 어릴 적 고향과 성당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생생하게 설명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13년 만에 평양교구 신우회를 다시 취재하며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평양교구 1세대 신자들은 대부분 선종했거나 생존해 있어도 외부 활동은 어렵다고 한다.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문화관 소성당에서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평양교구 신우회 정기미사에는 자제들 위주로 10명 정도가 모이고 있다.

평양교구 신우회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외형적으로 작아진 것보다 더 큰 변화는 한국 사회가 갖는 통일에 대한 당위성과 열망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평양교구 신우회를 지도하는 장긍선(예로니모) 신부가 “제일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했던 말이 크게 다가왔다. 

분단 80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남한과 북한이 한 민족, 한 나라였고 그렇기에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사실조차 낯설게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청년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평양교구 신우회는 교회 안에서 분단과 6·25전쟁의 아픔을 가장 크게 안고 있는 단체다. 평양교구 신우회를 바라보며 남과 북이 다시 만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하나의 나라가 되는 꿈을 꾸게 된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