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와서 깨닫는 것이지만, 육체노동만큼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일은 또 없다. 농사일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이제는 200여 평의 정원을 돌보는데 매일 최소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의 노동이 소요된다. 해가 뜨면 너무 뜨거워 늦어도 6시 전에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 평범한 정원을 만드는데 이렇게 지난한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이제는 잔디와 세상의 모든 정원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상대로 했을 때 하루에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다. 지난여름에는 너무도 오랜 장마에 죽은 잔디를 어쩔까 하다가 붉은 벽돌을 주문해서 길을 만들었다. 혼자서 3천 장의 벽돌을 다뤄야 하는 일이었다. 시골 생활에서 깨달은 대로, “욕심부리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남은 것은 내일 하자” 다짐했다. 무리를 했다가는 열사로 쓰러질 위험도 있었고, 아니면 앓아누워 며칠을 중단해야 했으니 겸손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는 일도 새로 배우게 되었다.
어느 날은 일을 마치고 밥을 먹었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양이 작았다. 그래서 평생 거의 한 번도 밥을 한 공기 이상 먹어 본 일이 없었다. 그날도 밥을 한 공기 먹기 시작했는데, 내 밥숟갈의 크기가 내가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한 공기가 비워졌고, 정말이지 아무 갈등 없이 나는 한 공기를 더 비우고 있었다. 목구멍 아래에서 마법의 손이 나와 밥을 다 가져가 버리는 것 같았다. 평생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신기했다. ‘이게 바로 배고픔이고 이게 바로 ‘꿀맛’이라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의 기쁨은 얼마나 컸는지.
그날 저녁엔 좋아하는 막걸리를 반 잔도 못 들이켜고 자리에 누웠다. 침대 밑에서 커다란 자석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고 ‘불면은 무슨, 고민은 무슨.’ 나는 아마도 코까지 골며 잘 잤다. 돌아보니 육체 노동 – 가사 노동 말고 아니 어쩌면 그 가사 노동조차도 – 이런 강도로 해보는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어쨌든 우리 집에는 늘 도와주시는 분이 계셨고, 정원일을 혼자 도맡아 하는 것도 처음이었으니까. 수많은 동서양의 성인들께서 노동을 왜 강조하셨는지 새삼 또 납득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수많은 제국의 멸망 원인에 항상 있었던 ‘지배층들의 성적 타락’이 항상 궁금했었다. 어떻게 개인적 일탈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 타락이 제국의 멸망을 가져오는지 말이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성적 타락의 반대말이 건강한 육체노동이라는 것을. 톨스토이도 그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그 에너지를 건강하게 쓸 수 없는 자들이 빠지는 함정이 성적 타락’이라고 썼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혹은 하지 않았던 지도자들은 결국 기름진 에너지들을, 제국을 멸망하게 만드는 데 쓴다.
‘힘든 일은 내가 할 테니, 너는 공부나 하거라’라는 말만 들은, 좋은 대학에 간 모범생이 학생회장이 되어 세상을 호령하다가 남의 돈으로 공부하고 남의 돈으로 유학하러 가서 남의 돈으로 살고 돌아와 정치인이 된다면, 그는 모든 노동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도할까. 만 원짜리 한 장을 더 얻어내기 위하여 가끔은 내 자존심마저 짓밟히는 수모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눈물을 알까. 그리고 이건 비단 정치인들만의 일일까. 어쩌면 성직자들은? 햇볕이 뜨겁지만, 풀을 뽑으러 나가야겠다. 육체노동은 울화에도 효험이 있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