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 공부

“다행이야, 사람들이 안 믿어서”

이주연
입력일 2025-07-29 17:06:12 수정일 2025-07-29 17:06:12 발행일 2025-08-03 제 345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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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밤마다 악몽을 꾸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더구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도 나에게는 작지만 의문이다. 영화 <레퀴엠>(동명의 미국 영화가 아니라 2006년도 독일 영화)과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에밀리 로즈의 퇴마) 2005>가 그들이다. 

이 두 영화는 모두 1976년 독일에서 일어난, 아넬리즈 미헬의 구마 의식으로 인한 사망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이비 종교가 아니다. 직접 교구의 허락을 받은 가톨릭의 두 신부가 이 구마를 집전했었다. 미헬은 당시 대학 휴학 중이었고, 죽었을 때 체중은 탈수와 영양실조로 30kg에 불과했다. 두 신부는 물론 부모까지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고,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왜 30년도 더 지나 영화화가 될 만큼 화제가 되었던 것일까. 두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해간다. 독일 영화 <레퀴엠>이 좀 더 현대적이고 심리학적 방식으로 그리고, 미국 영화는 할리우드의 전형적 방식으로.

미헬은 16살 때부터 간질 발작을 보였다. 정확하게 간질은 아니었다. 의학도 정확히 그 원인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원인 불명의 기억상실, 환청과 환시 성물이나 교회에 대한 혐오, 극도의 종교적 불안 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바야흐로 1970년대 독일의 대학. 68혁명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는 독일에서 미헬이 이런 증상을 호소할 자리는 없었다. 그녀의 신앙은 비웃음을 당했고, 가족은 구태의연했다.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전통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미헬이 이런 분위기에서 외로웠을 것도 짐작이 된다. 친구들이 끝까지 병원행을 권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은 악화했고 미헬 자신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구마를 허락한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정신병이든 빙의든 한 젊은 여성이 그렇게 죽어가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처음으로 영화 말미에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법정에서 증거로 제시된 녹음테이프를 통해서였다. 모두 여섯 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들의 실제 목소리가 – 미헬의 입을 통해 나오지만, 그 여섯 명의 목소리는 모두 다르다 - 영화 말미에 소개된다. 

우리가 살면서 악마의 목소리를 듣게 될 날이 또 있을까? 가장 끔찍했던 것은 묵주에 관한 질문이었다. 신부가 묻는다. “왜 묵주를 무서워하지?” 그러자 악마가 대답한다. 여러분은 설마 악마의 대답이 순하고 논리적이라고 상상하지는 않으시리라. 그는 단절적인 단어로 중얼거리며 혼란스럽게 대답한다. 정리하자면 대답은 이랬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를 방해해.” 그리고 악마는 웃는다. “하지만 아무도 기도하지 않아. 다행이야 사람들이 안 믿어서.”

법정은 유죄를 인정했으나 신부 두 사람에게는 모두 집행유예를, 부모에게는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고통이 어떠한 형벌보다 더했으리라는 것을 참작하여 석방한다. 녹음테이프를 통해 생생히 전해지는 악마의 목소리를 중세 법정도 아닌 곳에서 인정하기도, 그렇다고 거짓말로 치부해 버리기도 난감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여름, 나는 두 영화 덕에 묵주를 꼭 붙들고 살고 있다. 그들이 또 이렇게 말할까 봐 말이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없다고 말하는 거야. 다행이야, 그들이 안 믿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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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