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지음/252쪽/1만7000원/마음산책 ‘이웃’ 박용만 일상 담은 에세이…나눔·신앙 고백 등 종교적 성찰 눈길
박용만(실바노) 전 두산그룹 회장이 거대한 기업 조직을 이끌던 손에서 벗어나, 일상을 통해 삶의 소소한 결을 어루만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작 산문집 「지금이 쌓여서 피어나는 인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인에서, 기업인의 소임을 벗어나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이웃 박용만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책이다.
전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가 경영 일선에서의 굴곡과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낸 회고록이었다면, 이번 책은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층 더 부드럽고 깊은 사색으로 채워져 있다. 기업을 떠난 후의 삶 속에서 발견한 작은 기쁨과 소박한 통찰을 전하는 인생 에세이다.
커리어와 관계, 용서와 거절, 일상과 신념 등 인생 2막에서 마주한 것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 ‘어떻게 월요병을 이겨냈는지’, ‘뒷담화를 어떻게 견뎠는지’ 같은 사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그의 ‘삶의 경영’ 노하우를 공유한다.
특히 인맥 쌓기, 경력 관리에 대한 조언은 기업 경영의 영역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귀중한 인생의 지혜로 다가온다. 유머와 체험이 어우러진 이 이야기들은 독자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와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전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청년 세대를 향한 깊은 애정과 현실적 조언이다. 젊은이들을 다정하게 응원하면서도 때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고만 하지 말고, 그 기회를 만들려는 책임감은 누구의 몫인가?”라고 묻는다. 기성세대를 향해서는 “진짜 도전을 하지 않는 건 우리”라고 말한다. 젊은 세대를 믿고, 그들에게 기회를 맡기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해야 할 마지막 도전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따뜻한 장면들은 오히려 소박한 일과 속에 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던 유학 시절 아내와의 연애 이야기, 손자와 함께 요리하며 웃던 기억,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준 밥상의 향기 등… 그 속에는 ‘삶은 결국 사람’이라는 저자의 신념이 스며들어 있다.
무엇보다 새벽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좋은 재료로 손수 반찬을 만들고, 숨이 차는 골목을 올라 독거노인을 찾아가는 그의 일상은 나눔 실천의 힘을 보여준다. 국제 구호 봉사단체 ‘몰타기사단’ 한국지부 설립, 신자로서의 삶에 대한 고백은 그저 신앙적 메시지를 넘어서, ‘이웃에게 어떻게 다가설 것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인이 되기보다는, 말과 행동으로 솔선수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책의 제목이자 메시지이기도 한 ‘지금이 쌓여서 피어나는 인생’은 저자가 오랜 시간 살며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그는 미래를 향한 무조건적인 낙관보다, 성실한 오늘을 꾸준히 쌓는 것이야말로 삶의 기회를 여는 길임을 강조한다.
“성실한 오늘을 꾸준히 쌓아나가는 것이 커리어의 첫 번째라고 늘 이야기한다. 그래야 기회가 찾아오고 보이는 것도 많아진다. 다짜고짜 큰 비전이나 목표를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다. 미래가 무엇인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늘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바꾸는 것은 오늘만 가능한 것이다.”(본문에서)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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