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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특집] 성미술로 보는 ‘주님 변모’

8월 6일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다. 복음(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을 통해 전해지는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화하시어 세 제자에게 당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신 순간을 기념한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신 직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하얘졌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했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율법과 예언의 성취, 하느님 아들의 정체가 이 순간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554~556항)는 이 사건을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의 믿음을 준비시키고,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 준 것”이라고 설명한다. 변모는 제자들이 맞닥뜨릴 고난을 견딜 힘을 주고, 예수님의 길이 실패가 아니라 영광으로 이어짐을 가르친다. 예수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의 체험을 통해, 신앙의 길이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과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계시였다. 이 축일은 5세기 동시리아에서 처음 전례적으로 기념돼 점차 동방교회로 확산했다. 서방교회에서는 9세기 무렵부터 이탈리아 나폴리와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기념했다. 그리고 1457년 갈리스토 3세 교황은 이날을 로마 전례력에 도입하고 전 세계 교회가 축일로 삼도록 했다. 1456년 8월 6일 베오그라드 전투 승리의 감사를 기념한 것이 계기였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은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40일 전에 거행하는데,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40일 전에 변모하셨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거룩한 변모 사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화가의 영감을 자극해 왔다. ‘변모의 순간’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 색채와 양식으로 표현됐을까.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변모’를 다룬 기억할 만한 작품을 소개한다. 타보르산 주님 변모 성당 모자이크 이스라엘 북부 타보르산 정상에 들어선 주님 변모 기념 성당의 금빛 모자이크는 성당을 찾는 순례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예수님이 광채 가운데 서 계시고 좌우로 모세와 엘리야, 아래에 놀라 두려워하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등 세 제자가 배치돼 있다. 위쪽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빛 광선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퍼져가는 모습이다. 1924년 이탈리아 출신 모자이크 예술가 도메니코 브루나티가 제작했다. 전통 비잔틴 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20세기 모자이크 양식으로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목판화로 표현된 주님 변모 독일 다뉴브 화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는 북유럽 르네상스 시기 자연풍경과 빛의 표현을 종교화에 적극 도입한 화가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체 표현을 받아들이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세밀한 자연 표현을 결합했던 그는 1513년 제작한 목판화 <주님의 변모>에서 산 위의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을 선묘로 표현했다. 예수님이 산 위에서 빛으로 변모하는 장면과 하늘과 산, 나무를 세밀한 선으로 새기고 있다. 흑백 작품임에도 빛과 공간감이 도드라진다. 유명 화파들의 특징 반영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거장,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1560년경 제작한 <변모>는 베네치아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부드러운 붓질이 특징이다. 타보르산 위에서 빛으로 변모한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가 보이고 화면 아래쪽에는 경탄과 두려움 속에 땅에 쓰러진 제자 세 명이 그려졌다. 이 작품은 빛의 색채와 인간적 감정을 결합한 전환점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바로크 초기 화가로 이탈리아 볼로냐 화파를 이끌었던 루도비코 카라치의 대표작이다. 1595년 작품으로, 상단에는 빛나는 흰옷의 예수님이 중앙에 떠 있으며 모세와 엘리야가 구름 속에 있다. 하단에는 놀란 제자들을 극적인 원형 구도로 배치했다. 화면 상단과 하단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하늘의 빛과 세계와 인간 세상의 긴장을 드러냈다. 부드러운 색조와 생생한 동작으로 긴장감을 더한다. 이콘·수채화·유화 등 다양한 소재와 기법으로 표현 정통 비잔틴 구도를 가진 초기 러시아 이콘에서도 ‘주님의 변모’는 많은 작가에 의해 다뤄졌다. 특정 개인 작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익명(Anonymous) 노브고로드 화파는 15세기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적인 성미술 속에서 변모 사건을 표현했다. 1824년에 제작된 러시아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이바노프의 작품은 수채화 기법으로 그려졌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지는 빛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낭만주의 특유의 색감과 해방된 붓 터치가 돋보인다. 덴마크 화가 칼 하인리히 블로흐는 19세기 유화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사실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했다. 광채 속에 흰옷을 입은 채로 계신 예수님 위로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는데, 이는 하느님의 현존과 영광을 나타낸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채롭다. 바위산과 안개, 빛으로 가득한 하늘은 이 사건이 초월적인 순간임을 강조한다. 두려움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이 생생하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11면

[이달의 잡지] 2025년 8월

■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는 ‘평화를 희망하다’를 주제로, 광복과 한반도 분단 80년을 돌아보며 남북한 청년을 잇는 ‘띠앗머리’ 프로그램을 통해 친구를 만난 정수윤(마리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레오 14세 교황과 함께’에서는 베드로 직무를 시작하는 레오 14세 교황의 사목 지향을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와 함께 살펴보았다. ‘이달에 만난 사람’은 대구대교구 도동본당 자모회장으로 활동하는 ‘독도 문방구’ 김민정(헬레나) 대표를 인터뷰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900원> ■ 빛 이번 호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이주민과 난민을 위해 힘써온 공로로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마리안나 수녀를 인터뷰했다. ‘김구노 신부의 사회복지 현장’은 ‘직장 안에서의 신앙적 잣대’라는 제목으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갈등과 분쟁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대구대교구/2500원> ■ 생활성서 ‘읽는 기쁨’을 주제로 삼은 이번 특집은 책 한 권 읽기 힘든 요즘, 읽는 즐거움을 다시 마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김금희(마리아) 작가는 자신을 작가로 이끈 그 ‘시원’(始原)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올여름 편집부가 Pick 한 책’으로는 「이태석 신부 서간집」, 「시와 물질」, 「여름」, 「생각에 생각을」이 소개됐다. ‘정오의 신앙 일기’에서 홍눈솔(잔다르크) 작가는 우도에서 경험한 특별한 고해성사의 감동을 풀어놓는다. ‘아름다운 성당과 작은 책’은 김연수(프란치스코) 작가가 어린 시절 집 앞에 자리한 김천 평화성당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눈다. <생활성서/4800원> ■ 월간 꿈CUM 이번 호에서는 대(大) 바실리우스의 1700년 전 설교가 광주대교구 노성기(루포) 신부 번역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다. 수원교구 이용삼(요셉) 신부는 ‘명강론 명강의’에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내용으로 복음 말씀을 강론했다. ‘영성 그리고 삶’에서는 심리학 박사 박현민 신부(베드로·수원교구 중견사제연수원 영성담당)가 ‘왜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일까?’를 주제로 우리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월간 꿈CUM/5000원> ■ 참 소중한 당신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로 선한 영향력을 전하며 각자의 빛깔을 완성해 나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재능의 그러데이션’이라는 주제 안에 담았다. 황소정(비아), 노경희(스텔라), 유태근(요한 세례자) 씨의 이야기를 실었다. ‘인터뷰-깨소금 신앙’에서는 입양 전문 통역사 유연실(젬마) 씨를 만나 처음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된 계기부터 현재 입양 전문 통역사로 활동하기까지, 자신의 재능으로 진실한 만남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래사목연구소/4000원>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15면

“영성적 삶이란 진정 원하는 바 찾고 식별하는 것”…「여성영성수업」

지난 2016년, 저자 박정은 수녀(소피아·미국 홀리네임즈 수도회·홀리네임즈 대학 명예교수)는 여성 피정 ‘지혜의 원’을 오랫동안 이끌며 정리한 「사려깊은 수다」를 펴냈다. 여성 영성을 쉽게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풀어낸 책은 많은 여성에게 자기 삶을 해석할 언어와 영성적 성찰의 공간을 제시했고, 이후 이를 기반으로 더 깊이 있는 영성 지도를 요청하는 바람이 이어졌다. 「여성영성수업」은 그 응답이자 결실이다. 이번 책은 「사려깊은 수다」를 뿌리로 삼으며 ‘신비주의’, ‘식별’, ‘노년과 죽음’ 등 삶의 후반부를 아우르는 더욱 넓은 주제들을 더했다. 저자는 먼저 여성 영성의 특징을 세 가지를 정리한다. 고유한 관점을 중시하는 ‘인격주의’(personalism), 억눌린 목소리를 말하게 하는 ‘전복성’ 그리고 느슨하지만 깊은 ‘연대성’이다. 인격주의는 이론이나 교리를 앞세우기보다, 각 개인이 처한 고유한 삶의 자리를 중시하며, 작은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에 귀 기울이는 태도다. 또 전복성은 여성의 고통을 개인의 약함이나 수치심으로 돌리는 사회 구조를 돌아보게 하고, 말할 수 없던 경험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연대성은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나눔과 경청, 돌아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진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의 욕구를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개념을 빌려, 외부의 시선과 주입된 언어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식별하고 해방하는 과정이야말로 영성의 핵심이라고 밝힌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자신의 삶을 이끌 만한 중요한 여정인지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은 자기 삶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여성들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책은 ‘상실’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여성의 삶 후반부에서 피할 수 없는 실재로 다룬다. 노년은 단지 생물학적 퇴화의 시기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여전히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가야 하는 시기다. “상실의 미학을 배우지 못하면 가장 외롭고 슬픈 시기”라고 전하는 저자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처럼 허허로운 아름다움을 배워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더불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곧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살아내는 일이며,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성찰의 순간임을 일깨운다. 여성 신화를 통해 ‘여신’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정의했다. 여성 영성에서 말하는 여신은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고통, 상실과 희망을 끝까지 살아낸 인간의 한 형상이다. 제주 신화 속 자청비나 가믄장아기처럼 사랑을 선택하고, 하늘에 올라 신이 되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는 존재는, 여성의 자율성과 연대, 초월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박 수녀는 영성을 ‘삶을 텍스트처럼 읽는 태도’라고 말한다. 각자의 경험은 저마다 색과 질감을 지닌 텍스트이며,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 곧 하느님의 손길을 읽는 일이다. 중요한 사건을 과거의 해석에 고정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독선이 시작된다. 반대로 해석을 열어 두고 삶을 다시 읽어 나갈 때, 우리는 현재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머리말에서 그는 “내면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면서 고유한 진실을 엮어 나가는 것, 그것을 우리는 영성적인 삶이라고 부른다”며 “이 책이 여성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기본 틀을 제공하는 안내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15면

여성 인권 수호 ‘막달레나 공동체’, 설립 40주년 기념 미사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상처 치유와 회복을 위해 헌신해 온 막달레나 공동체(대표 이옥정 콘세트라타, 지도 홍근표 바오로 신부)가 설립 40주년을 맞아 7월 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 군종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 주례로 거행된 미사에는 설립 초기부터 함께해 온 수도자와 평신도,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이 자리해 공동체의 지난 여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더 많은 이와 사랑을 나누는 치유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했다. 미사는 공동체 설립의 주춧돌이었던 고(故) 서유석(요한 사도) 신부와 고(故) 문애현(요안나) 수녀의 사진 그리고 공동체 로고를 봉헌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서 주교는 “40년 동안 막달레나 공동체는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는 주님 말씀에 따라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실천해 왔다”며 “40주년 표어인 ‘새로운 곳에 더 많은 친구와 함께’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이와 사랑을 나누는 치유와 기쁨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사 후에는 공동체의 지난 40년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상영과 함께 감사장 수여식, 식사 나눔이 이어졌다. 이옥정 대표는 “막달레나 공동체는 어려운 여성들의 친구이자 언니, 동생이 되어주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며 "특히 최근 심각해지는 온라인 성 착취 피해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그들의 삶과 인권이 더는 짓밟히지 않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막달레나 공동체는 1985년 7월 22일 문애현 수녀와 서유석 신부, 이옥정 대표가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와 한국 천주교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 지원으로 서울 용산역 인근에 ‘막달레나의 집’을 열며 시작됐다. 당시 사회의 외면 속에 있던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와 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40년 동안 변함없이 동행해 왔다. 현재 공동체는 ‘막달레나 드롭인 센터’, 청소년 건강센터 ‘나는 봄’, 고령 여성 지원 ‘소곤소곤 사랑방’ 등을 운영하며 상처받은 여성들의 치유와 자립을 돕고 있다. 홍근표 신부는 “절박한 상황 속 누구에게라도 의지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손을 붙들어주는, 착한 사마리아인 같은 막달레나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현재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있는 공동체를 종로로 이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하고 기도와 연대를 청했다. ※문의: 02-3275-1985 막달레나 공동체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6면

오직 하느님만으로 충만한 삶 추구한 ‘성녀 클라라’

세상의 모든 소유를 내려놓고 가난하게 살겠다는 선택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다. 성녀 클라라(1194~1253)가 평생을 통해 보여준 길은 가난을 통해 하느님으로 충만해지는 삶이었다. 아시시의 작은 봉쇄 수도원 안에서 시작된 그 길은 800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 안에서 ‘가난의 영성’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을 맞아, 그가 삶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가난의 영성을 돌아본다. “오, 복된 가난이여, 가난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영원한 부(富)를 주리니! 오, 거룩한 가난이여, 가난을 지니고 열망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하늘나라를 약속하시고 의심할 여지 없이 영원한 영광과 복된 생명을 베푸시리니!”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복음적 생활에 감화를 받아 그의 첫 여성 동료가 된 성녀 클라라는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동생 아녜스에게 이렇게 편지로 격려했다. 하느님 중심의 가난을 강조하면서, 가난의 삶을 추구하라고 초대한 것이다. 성녀의 삶은 말뿐이 아니었다. 가난을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려 온 힘을 다한 여정이었다. 클라라가 이끈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훗날 성 클라라 수도회)는 철저한 청빈으로 유명하다. 특히 초창기에 성녀는 고정적 수입을 거절하고, 복음 말씀대로 손수 일하면서 절대적 가난을 실천하려 애썼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가난한 자매들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극도로 단순한 삶을 택했다. 이런 생활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었다. 세상 것을 비워 하느님으로만 충만해지려는 영적 태도였다. 성 클라라 수도회 양평 수도원 홈페이지는 성녀를 소개한 글에서 “성녀에게 있어서 가난은 가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안에서 가치가 있을 뿐, 오로지 가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만이 완벽한 의미와 이유였다”고 밝힌다. 「사랑 가득한 마음-아씨시 클라라의 영성」 저자 일리아 델리오는 “성녀는 물질을 축적함으로써 하느님의 길을 막아버릴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길을 찾았다”며 “가난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가난을 포옹함이 곧 부를 얻음이며, 가난을 열망하고 지키는 것이 곧 하늘나라를 주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가 거리를 누비며 복음을 선포했다면, 클라라는 철저한 봉쇄 안에서 기도에 힘썼다. 봉쇄 수도원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하느님과 단둘이 머무는 자유의 공간이었다. 또 그녀의 기도는 단순한 개인의 경건이 아니라, 교회를 지탱하고 세상을 중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아시시를 위협한 사라센 군 앞에서 성체를 들고 서자 적군이 물러난 일화, 작은 빵 하나가 많은 자매를 배불리는 기적은 모두 하느님께 의탁한 가난한 신앙의 힘을 보여 준다. 죽음을 맞기 이틀 전, 성녀는 자신이 쓴 수도회 규칙에 대해 교황의 인준을 받았다. 그 규칙은 교황이나 다른 고위 성직자들이 ‘너무 엄격하다’고 우려할 만큼 절대적인 가난을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녀는 “죄에 대해서는 관대히 용서하시되, 그리스도를 본받는 의미는 늦추지 마소서"라고 간청했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19면

대문호가 자녀에게 남긴 「찰스 디킨스의 예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 「올리버 트위스트」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는 산업혁명으로 급속히 발전한 자본주의 영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과 그 아래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촘촘하게 묘사해,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다. 이 책은 그런 대작가가 지극히 사적인 목적으로 쓴 것이다. 호기심 많은 어린 자녀들이 종교와 신앙에 대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디킨스는 출판할 생각이 없었고, 자녀들에게도 출판을 금지했다. 이 책은 가족의 유물로 보관되다가 1934년 출판되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에 영감을 준 원작으로 알려져 있다. 디킨스는 예수의 가르침이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자 가장 귀한 유산이라고 생각했고, 복음서의 정신을 간직하면 어떤 시대, 어떤 환경에 처하든 올바르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 성공회 성직자들의 선행과 친절에 감화를 받았던 그는 작품에 항상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녹여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자선 사업을 통해 많은 어려운 이를 도왔다. 또한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기부를 독려했다. 비평가 존 메이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저는 언제나 제 작품에서 주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존경을 표현하고자 애써 왔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신앙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그는 열 명의 자녀에게도 그리스도교의 교훈을 심어주고자 했다. 디킨스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삶을 아버지가 자녀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마치 편지를 쓰듯 자상하게 서술했다. 11장으로 구성된 책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서사로 예수의 삶을 쉽고 간결하게 요약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치유와 기적, 제자들과의 동행,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바오로의 회심과 전도 여행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 책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의 성경 삽화를 더해 시각적인 이해를 돕는다. 디킨스는 이 책의 의미에 대해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라고 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디킨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억하거라! 언제나 선을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교란다. ··· 항상 매사에 옳은 일을 하려고 겸손하게 노력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란다.”

발행일 2025-07-27 제3452호 15면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나는 여전히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올해 88세 박순전(바올리나·서울대교구 미아동본당) 어르신의 말이다. 그는 서울 번동에 있는 협동조합 겸 식당, ‘라떼는 집밥’의 도시락 포장팀에서 일한다. 이 도시락은 독거 어르신 등 취약 계층에 전달된다. 그는 틈틈이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을 닦으며 일을 돕기도 한다. 오랫동안 앓았던 우울증과 사별 후 혼자 지낸 긴 세월을 지나, 같은 처지의 어르신을 돕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으며 이제 자신을 ‘향기’라 부르며 웃는다. 나이 들었기 때문에 끝나는 삶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의 얼굴을 마주하는 모습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제5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고 했다. 박순전 어르신의 삶은 교회가 어르신을 어떻게 다시 바라볼 수 있는지, 사회가 고령화 시대를 어떻게 품어야 하는지에 관한 조용한 시사점을 던진다. 여전히 ‘향기’가 될 수 있는 삶 ‘나 때 먹던 집밥’이라는 뜻의 ‘라떼는 집밥’(이하 집밥)은 서울 번동에 자리 잡고 있다. 어르신들의 재사회화를 돕는 취지로 설립된 이곳은 건강한 집밥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강북구와 협력해 1인 가구를 위한 무료 도시락도 지원한다. 눈여겨 볼 점은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다. 박순전 어르신을 포함한 6명 직원은 평균 연령이 75세다. 60대부터 95세까지의 직원들이 요리하고 홀 세팅과 서빙을 맡는다. 정규직으로 근무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하는 이들도 있다. 박 어르신은 이전에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현재는 도시락 포장을 전담한다. 김성희 협동조합 사무국장은 “8시가 출근인데, 7시10분쯤 도착해 준비하시고, 포장도 하나하나 너무 예쁘고 야무지게 하신다”고 전했다. 여기서는 모두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향기’, ‘올리브’, ‘오렌지’ 등 이름 대신 따뜻한 정서가 담겼다.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허무는 수평적인 일터 문화 속에서 어르신들은 서로를 동료이자 친구로 받아들인다. 박 어르신은 ‘향기’를 별명으로 택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돼라’는 성경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향기를 내고 싶어서다. 그와 이곳의 인연은 2018년 집밥을 있게 한 ‘두꿈인생학교’에 입학하면서다. 두꿈인생학교는 2016년 시니어를 위한 소통 교육을 이어오다, 2020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며 협동조합을 꾸려 ‘라떼는 집밥’을 열었다. 박 어르신도 이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원이 됐다. 1938년 북한 강계에서 태어난 박 어르신은 6·25 전쟁 때 남하했다. 결혼해 고된 시집살이와 네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우울증을 겪었고, 남편 안희백(바오로) 씨가 2006년 세상을 떠난 뒤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던 중 두꿈인생학교를 알게 됐고, 각종 수업과 소풍, 식사 나눔 등을 함께하며 삶은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성적이라 말도 잘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있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냥 ‘내가 이렇게 대접받을 때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우울감도 줄고,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굴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아요. 너무 좋습니다.” 집밥에서 일하며 박 어르신의 자아존중감은 더 높아진 듯하다. ‘위험하니 집에만 계시라’는 사회적 시선 대신, 식당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급여를 받는 과정에서 ‘나는 여전히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자긍심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매일 아침 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박 어르신은 나이에서 오는 신체적 어려움도 있을 법한데, “마음이 즐거우니까 몸도 가볍다”고 했다. “세상에 왔다가 이제 갈 때가 됐는데, 쓸모 있게 살 일이 생겼으니까 얼마나 즐겁겠어요.” ‘아무것도 못한다’ 치부하는 어르신 대접은 ‘유감’ 그가 정성껏 포장하는 도시락은 대부분 고독사 위험군에 놓인 독거 어르신과 중장년층에게 전달된다. ‘어르신이 어르신을 돕는다’는 입장에서, 도시락의 무게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움직임이 줄고, 식사 준비에도 점점 무심해진다고 말한다. 배가 많이 고프지 않으면 끼니를 건너뛰는 일이 잦아지고,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양념조차 자주 잊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성껏 담긴 도시락을 받으면 식욕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시락을 받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큰 자부심과 기쁨을 느낀다. 일하는 동안 힘들었던 순간들도 자연스레 잊게 될 만큼, 봉사의 시간은 그에게 소중하다. “집밥 근무는 그렇게 노동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곳에서 사랑과 봉사를 배우라’며 보내신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매일 되새기기는 자리”라고 전했다. 1993년 세례를 받은 박 어르신은 30년 넘게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며 개근상을 받았고, 구역 반장 역할도 25년 넘게 맡았다. 지금도 주회에 계속 참석하고, 평일 새벽 미사도 꾸준히 참례한다. 그는 본당 활동을 이어오며, 교회 안에서의 어르신 사목이 여전히 한계를 지닌다는 점도 조심스럽게 짚었다. 본당 내 여러 신심 단체는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참여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의지는 있어도 체력이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본당 프로그램이 어르신들을 ‘수동적인 존재’로만 대우하는 현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는 ‘노인 대접’은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덧붙여 나이에 맞는 신심 활동, 교육 프로그램, 자발적 참여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참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면에서, 함께 배우며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는 그는 ”초고령화 지수를 넘어선 한국 사회도 이제 노인들이 인구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배제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고 밝혔다. 같은 어르신들에게 나누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이 든 사람은 젊은이에게 말 한마디라도 좋은 말을 해주고 격려해 주고, 부담을 안 느끼도록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5회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한 소감을 묻자, “희망의 표징인 노인이라는 교황님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교회도, 사회도, 노인을 단순히 ‘老人’으로만 보지 말고, 비록 젊은이들처럼 체력은 없을지라도, 젊은 사람들 대하듯 여전히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대하고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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