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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가톨릭 청년 예술가를 만나다] 서은아 조각가

파주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 ‘돌붕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서은아 작가. “우리에게는 소중한 능력과 기회들이 있어요.” 가톨릭 청년 예술가, 조각가로서 서은아(체칠리아·32) 작가는 “하느님 뜻에 따라 창조된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형성해가는 것, 그것이 참 신앙생활”이라고 밝혔다. 실제 서 작가는 4대째 이어지는 신자 가정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연스레 접한 신앙 안에서 좋아하는 미술 작품 만드는 것을 하느님 일을 하는 소중한 기회라 여긴다. 특별히 ‘돌붕어’를 만들고 있다. ‘돌붕어’는 2018년 ‘기억의 흔적’ 전시에서 그가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돌에 물고기 지느러미가 나오도록 만들어 내는 형상이다. ‘금붕어는 기억력이 3초’라는 말처럼, 자신의 건망증에서 착안해 물고기가 지닌 역동성과 생명력, 돌이 가진 무게감과 단단함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들을 인스타그램(@eunah_sculptor)에 올리고, 여러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는 서 작가는 재료로 쓰일 돌도 직접 자연에서 수집한다. 지느러미는 돌에 에폭시라는 재료를 활용해 만든다. 이 작업 속에서 그는 창조주이신 하느님 모습을 찾고 예술가로서 소명의식도 되새긴다. 이 같은 활동에서 서 작가는 ‘성실함’을 가장 중요시한다. 성실이 쌓이면 노력은 꼭 빛을 발하고, 그렇게 얻게 된 성취감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서 작가는 성실함을 갖추기 위해 ‘쉼’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단순하게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만으로 편안함을 주고 싶어서, 어항이라는 요소를 작품 배경으로 사용하는 ‘스위밍 보-울’ 시리즈를 최근 선보이고 있어요. 감정과 마음 모양을 옮겨 담은 어항을 보며 관찰하고 하루를 돌이키며 수집한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요. 작품을 보는 순간만으로도 삶의 피로를 벗어나 지친 마음을 해독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2023-06-05

광주 세나뚜스,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 감사미사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 감사 미사에서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성모상에 화환을 걸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광주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단장 하청일 안젤로, 담당 최종훈 토마스 신부)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을 맞아 5월 20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감사미사를 거행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주례로 봉헌된 미사에는 전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안드레아)·김희중(히지노) 대주교와 사제·수도자·평신도 등 1만여 명이 참례했다. 미사에 앞서 참례자들은 한국 레지오 마리애 과거와 현재를 담은 영상을 시청했다. 참례자들은 성모님을 본받아 신앙생활을 이어가기로 약속했고, 미사 중에는 예비 신자 입교 2642명, 레지오 단원 입단 2656명, 냉담 회두자 6812명, 묵주기도 6억8112만1588단 등 ‘특별 접촉 활동’과 단원들이 진행한 ‘주님과 함께하는 마음 영성 일기’가 봉헌됐다. 세나뚜스를 담당했던 사제들과 세나뚜스를 위해 힘써 온 평신도들은 이날 감사패를 받았고, 장기근속 단원들에게는 축복장이 수여됐다. 옥 대주교는 강론에서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 신심과 덕행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라며 “그동안 성모님의 순명과 겸손을 모범 삼아 기도와 온유, 고행과 인내, 용기와 희생의 삶을 살아온 모든 단원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앞으로 100주년 때는 더 뜻깊은 사랑의 결실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옥 대주교는 특별히 “내가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고 전도하고 하느님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희생하길 바라고, 높은 자리가 아니라, 성모님처럼 겸손되게 봉사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멋진 단원들이 되시길 성모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고 강조했다.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는 ‘성모님의 군대’라는 뜻의 라틴어다.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신 영적 군대로서, 단원들의 성화로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1953년 5월 31일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처음 시작했고, 올해 1월 기준 현재 행동 단원 17만342명과 협조 단원 18만1282명 등 35만여 명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05-23

침체된 빈첸시오 운동 활성화 방안 논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이사회 전국 교구이사회 담당 사제단과 회장단 간담회 참석자들이 5월 20일 대전 연축동 대전가톨릭사회복지회 3층 대회의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이사회 제공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이사회(회장 김인태 야고보, 담당 이재을 요한 사도 신부, 이하 빈첸시오회)는 5월 20일 대전 연축동 대전가톨릭사회복지회 3층 대회의실에서 전국 교구이사회 담당 사제단과 회장단이 모이는 간담회를 마련했다. 전국 교구이사회 담당 사제단과 회장단이 연석해 빈첸시오회 현안과 발전 방향을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침체된 빈첸시오회 활성화 방안과 어려운 이웃 사랑 실천 방법을 논의했다. 춘천교구이사회 담당 김학배(안젤로) 신부는 ‘빈첸시안의 삶’을 주제로 특강했다. 특강에서 김 신부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한 사람들만이 하느님 나라를 갈 수 있다”며 “기도와 성체 안에서, 복음을 읽고 살 때, 또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과 하느님 현존을 만나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교구이사회 회장단은 빈첸시오 운동의 국가적인 활동 전략을 새롭게 정립하고 빈첸시오회 회원 양성과 비전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교구이사회 간 자매결연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고, 교구이사회 담당 사제단은 회원들의 성화와 빈첸시오 운동의 기반이 되는 본당협의회 제 모습 찾기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2023-05-23

광주가톨릭박물관, ‘이 땅에 빛을: 믿음의 문’ 개편 전시

왼쪽부터 「그레고리오 성가집」(가르멜 수녀원 필사본, 1789, 스페인), ‘성합’(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1903, 광주대교구 도화성당), 최병수 ‘세월호 십자가’(2014, 철). 광주가톨릭박물관(관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이하 박물관)이 ‘이 땅에 빛을’전을 개편해 상설 전시 중이다. ‘이 땅에 빛을’은 지난해 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마련한 상설 전시로, 박물관은 3월 19일 개관 1주년을 맞아 개편 후 3월 25일부터 전시를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 땅에 빛을: 믿음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친필 메시지가 있는 주케토’를 포함해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기원전 1세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가톨릭교회 관련 유물을 비롯해 신규 소장품들을 볼 수 있고, 특별히 박물관은 2부를 새롭게 단장했다. 전시는 총 4부와 특별 세션으로 구성됐다. 1부 ‘복음의 기쁨’에서는 1658년 「로마 미사 경본」과 1789년 「그레고리오 성가집 필사본」, 1950년대 한국에서 의료 봉사로 활약한 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 수녀들의 여행 가방 등을 볼 수 있다. 2부 ‘믿음의 문’에서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를 표현한 장동현(비오) 작가의 ‘빛을 주노라’, 조수선(수산나) 작가의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생애와 우정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 ‘두 사제의 약속’ 등을 만날 수 있다. 조수선 ‘두 사제의 약속’(2021, 청동). 3부 ‘신앙의 빛’에서는 신앙의 선구자와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교회사와 광주대교구의 역사적 사건과 그 의의를 밝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특히 신규 소장품인 광주대교구 도화성당 ‘성합’과 임동주교좌성당 ‘십자고상’도 볼 수 있다. 4부 ‘모든 형제들’에서는 지역 사회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눈 광주대교구를 통해 앞으로 교회가 나아갈 사명과 역할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최근 광주대교구민들은 코로나19 기금 모금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했고, 이를 기리는 교황청 공식 감사 서한 원본도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4부와 연계된 특별 전시구역 ‘온전히 당신의 것’에서는 방한한 교황들을 통해 한국 순교 성인·복자를 기념하고 5·18 민주화 운동과 세월호 참사 등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03위 시성식 때 착용한 황금 제의 원작자인 김희진 매듭장의 황금 제의 복제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124위 복자를 시복할 때 주교단이 입었던 제의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전시와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과 인문학 강의 등은 박물관 홈페이지(www.gjcmuseum.org)에서 신청할 수 있다.

2023-05-23

청소년 주일에 만나는 ‘청소년 성인과 복자’

베노초 고촐리의 ‘성녀 세라피나’. 최근 열린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학술 심포지엄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이야기는 청소년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톨릭 사도로 활동할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충분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과거 성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고백한 청소년 성인들과 복자 중 활동 연도를 파악할 수 있는 5인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스도 상처가 더 마음 아프다” 성녀 세라피나 “나의 상처보다 그리스도 상처가 더 마음 아프다.” 15살에 하느님 품에 안긴 성녀 세라피나(Seraphina, 1238~1253)는 중병에 걸려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산 지미냐노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여읜 후 자신도 중병에 걸려 얼굴이 기형적으로 변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했다.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고아와 다름없어진 그는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을 특히 공경했다.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달라고 그녀는 청했고, 눈을 감기 8일 전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의 발현을 보았다. 교황은 그녀에게 “나의 축일에 하느님께서 너에게 안식을 주시리라”라고 말했고, 세라피나는 1253년 3월 12일 선종했다. 어릴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귀여움을 받고, 적은 음식조차 타인에게 선하게 나눠준 세라피나는 낮에는 가사를 했고, 밤에는 기도에 전념했다. 그녀가 잠든 무덤에는 하얀 제비꽃들이 자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높은 성덕을 증명하는 것으로 본다. 지금도 산 지미냐노에서는 하얀 제비꽃을 ‘산타 피나’(성녀 피나)라 부르며 나눠 갖는다고 한다. 최봉자 수녀의 ‘복자 이봉금 아나스타시아’. “천 번 죽어도 천주님 배반할 수 없다” 복자 이봉금 “천 번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하겠어요.” 124위 복자 중 최연소자로 추정되는 이봉금(아나스타시아, 1827?~1839)은 천주를 배반하면 살려 주겠다는 말에도 이를 거부했다. “오늘 천주님을 배반하고 욕을 하라고 하시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라면서다. 어머니인 복자 김조이(아나스타시아)에게 일찍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열 살 무렵 아침·저녁 기도 등을 배웠다. 선교사는 그녀가 아직 어린 나이지만 신심이 뜨거워 특별히 그녀의 영성체를 허락했다. 기해박해 당시 여러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옥중에서 순교하는 장면까지 목격했지만, 이봉금은 신심을 버리지 않았다. 관장은 한밤중에 이봉금을 옥에서 교수하라고 명했고, 1839년 12월 5일에서 6일 밤 사이, 이봉금은 12세를 넘기지 못한 나이로 추정되는 때에 하느님 품에 안겼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 성 도미니코 사비오(Dominic Savio, 1842~1857)는 기도 정신이 여느 큰 성인 못지않았다. 성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여러 특이한 고행을 원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사제를 꿈꿨다. 5살 때부터 매일 미사에서 복사를 섰고, 7살 때 예외적으로 첫영성체를 했다.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신부는 그의 영혼 속 충만한 은총에 감명받았고, 그의 지도로 도미니코 사비오는 고행보다는 일상 속 하는 일 하나하나에 충실하며 성화했다. 친구들과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를 조직해 성덕을 쌓은 도미니코 사비오는 학생들이 돌을 들고 싸울 때 십자가를 들고 그들 사이에 끼어들며 “그 돌을 먼저 나에게 던져라”하고 말했다. 요한 보스코가 과하게 고행에 몰두하는 그를 말리자, 도미니코 사비오는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침부터 몇 시간 동안 기도하며 그 시간 동안 ‘기분 전환’했던 소년은 건강이 나빠져 눈감기 전까지도 이처럼 밝혔다. “하느님, 당신께 영원한 찬미를 드리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그에 대해 「로마 순교록」에서는 “달콤하고 행복한 영혼을 지닌 어린 시절부터, 아직 청소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리스도교의 완덕의 길을 걸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03위 순교 성인화 중 윤여환의 ‘유대철 베드로’. “이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성 유대철 문초받기를 1회, 고문 14회, 태형 600여 대와 치도곤 45대 이상…. 이 같은 아픔에도 성 유대철(베드로, 1826~1839)은 항상 기쁜 얼굴로 지냈다. 가련한 몸에 옥 안에서 노끈에 목이 매여 죽을 때도 그의 나이 고작 14살이었다.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용감했다. 박해가 일어나자 마음에는 순교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었고, 옥에 갇힌 아버지와 여러 신자를 보며 1839년 7월경 관헌들에게 그는 신자라고 자수했다. 재판관은 그에게 배교한다는 말을 들으려 갖은 방법을 썼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 포졸이 담뱃대 통으로 그의 허벅지를 박아 살점을 떼어 내면서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라고 물을 때도 그는 확언했다. “그러면요, 이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그 후 포졸들이 붉게 달군 숯 덩어리를 들며 입을 벌리라고 했을 때도 그는 “예”하고 입을 벌렸고, 그에 놀라 포졸들은 물러났다. 이처럼 용맹했던 소년은 1925년 7월 5일 시복, 1984년 5월 6일 시성됐다. 얀 루이켄의 ‘성 펠라지오의 순교’.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 펠라지오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 펠라지오(Pelagius, 912년경~925·6)는 배교하고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면 모든 것을 주겠다는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관리들은 펠라지오에게 돈과 좋은 옷을 주고 훌륭한 말을 타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펠라지오는 “나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것입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그가 10살쯤 인질로 잡혀 감옥에서 3년을 지낸 그 시절은 압드 알 라흐만 3세가 스페인을 통치하던 때였다. 코르도바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을 지킨 펠라지오는 사형 선고를 받고 팔이 잘리는 등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했고, 코르도바 그리스도인들은 소년의 팔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존했다. 유해는 967년 레온의 한 수도원에 모셔졌다가, 984~999년 즈음 스페인 서북부 오비에도의 성 펠라기우스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2023-05-23

광주대교구, 5·18 민주화 운동 43주년 기념미사

5월 17일 봉헌된 광주대교구 5·18 민주화 운동 43주년 미사에서 교구장 옥현진 대주교와 사제단이 장엄강복을 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민석 루도비코 신부)가 5·18 민주화 운동 43주년 기념미사를 거행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가 주례한 이번 미사는 5월 17일 오후 7시30분 광주 남동 5·18 기념 성당에서 봉헌됐다.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을 되새기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봉헌된 이번 미사에는 400여 명이 참례했다. 참례자들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10·29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미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례자들은 6시30분부터 묵주기도를 함께 봉헌했다. 7시부터 광주의 5월과도 같은 미얀마 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이어 가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시청했고, 미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작됐다. 미사에서 옥 대주교는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민 학살을 명령했던 책임자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지만, 손자가 와서 사과를 해서 다행이었다”고 밝힌 옥 대주교는 5·18 정신 훼손과 왜곡 속에서도 5월 정신을 잊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날 미사 중 10·29 참사 유가족 고(故) 최민석씨 어머니 김희정씨는 ‘10·29 참사 특별법 제정’을 호소했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 기도회 성명서 낭독이 이뤄졌다. 김씨는 “하늘이 우리 편이기 때문에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거라는 믿음이 있다”라며 “힘들지만, 힘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3-05-23

‘여정… 뚜벅뚜벅’ 전시 여는 백승주 한지 그림 작가

작업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백승주 작가. ‘한지 그림으로 뚜벅뚜벅 하느님께 가는 사람.’ 백승주(미카엘라) 한지 그림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 ‘여정… 뚜벅뚜벅’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현재 ‘여정… 뚜벅뚜벅’을 주제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는 50세에 세례를 받아 올해로 영세한지 10년이 됐다. 백승주 ‘기도에 기도를 더하다’.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지만, 다른 사람의 속도와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하느님 은총을 작품에 담으며 그분께 뚜벅뚜벅 가고 있다”고 전한 백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하느님께 가는 여정을 녹인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하나하나 염색된 한지를 캔버스에 밀가루 풀로 붙이며 작업하는 백 작가는 원래 한지 공예 작품을 만들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어느 날 공예를 하기 어려워진 그는 그림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아픈 상황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다가 ‘성경 통독’을 결심했다. 천주교를 향한 끌림이 있었지만, 그전에는 원가족과 배우자를 따라 절에 다녔던 그는 그때부터 신앙심을 꾸준히 키워 나갔다. 입원해서도 성경을 읽고 2013년에 세례를 받은 백 작가는 제주도 여행 중 하느님 은총을 그림에 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라는 강론 내용을 되새기던 그는 여행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 이슬을 발견했다. 이를 보며 세상 어디에나 하느님 은총이 있음을 그는 깊이 깨달았다. “어디에나 있지만, 은총을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저는 세상에 있지만,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하느님 은총을 한지 그림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심이 커지며 삶도 많이 달라졌다고 전한 백 작가는 무엇보다 자신이 선해졌다고 밝혔다. 힘든 사람을 보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작품을 만들면서도 작품 받을 사람의 행복과 신앙을 위해 기도한다는 그는 “착해지고 있고, 제가 살아가는 밑바탕은 모두 하느님이시라는 걸 많이 느낀다”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 수익금 일부도 본당의 성당 신축을 위해 봉헌할 예정이라고 밝힌 백 작가는 “하느님께 가는 길, 양손과 두 눈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한지 그림 작업을 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대표작 ‘뚜벅뚜벅’은 하느님 앞에 5살 꼬마 아이인 저를 표현한 마음의 초상화예요. 신부님 옷자락을 잡고, 그 옆에 딱 붙어 한눈팔지 않고 하느님께 잘 갈 수 있기만 간절히 바라고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이에요.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잠시라도 구겨진 마음이 펴지기를, 하느님 나라가 아름답다는 걸 모두 알기를 바라고, 모든 신자분이 어린아이와 같이 하느님께 뚜벅뚜벅 향하면 좋겠어요.” 전시는 5월 25일까지. 백승주 ‘뚜벅뚜벅’.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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