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7·끝)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올리브산의 그리스도’

‘장엄미사’와 ‘C장조 미사’를 제외하고는 교회음악을 거의 작곡하지 않았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유일한 오라토리오로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를 남겼다. 오라토리오는 대개 종교적인 소재를 취하고는 있지만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이 아닌 세속음악이다. 더구나 그리스도 수난사의 일부를 작곡한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작품이었다. 베토벤보다 한 세기 앞선 바흐나 헨델 시대만 하더라도 배우나 가수가 예수 그리스도 역할을 맡아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같은 성금요일 전례음악에는 예수 역할을 맡는 가수가 등장하지만,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같은 세속음악의 무대에 예수가 등장할 수는 없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는 예수 역의 가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데도, 당시 관객들은 이 작품이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헨델의 ‘불경죄’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올리브산의 그리스도’ 대본을 쓴 프란츠 크사버 후버는 베토벤 시대에 이름 있는 오페라 대본가였다. 그는 복음서에 나오는 ‘겟세마니에서의 기도’(마태오 26,36-46 마르코 14,32-42), 그리고 같은 내용인 ‘올리브 산에서 기도하시다’(루카 22,39-46) 부분에 예수님이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부분을 덧붙여 이 작품의 대본을 만들었다. 십자가 수난을 앞둔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니 동산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간 다음 혼자 기도하러 올라가시면서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어려운 문제를 혼자만의 결단으로 풀어야 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내 고통과 근심에 동참해준다면 얼마나 든든한 일일까.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있지 못하고 모두 잠이 들었다. 예수님이 가장 믿으셨던 수제자 베드로도 다를 게 없었다. 기도하다가 내려와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라고 자꾸만 채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하느님과 직접 이야기할 수도 있는 그분이 어째서 나약하고 하잘것없는 인간의 관심과 사랑을 그토록 간절히 바란단 말인가. 이 고통과 죽음이 사람들 모두에게 구원과 부활을 약속하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면서도, 인간인 예수님은 너무나 외롭고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나 두려움이 컸으면,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을까.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말로 결연히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대본가 후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외로움과 두려움을 강조해 대단히 드라마틱한 대본을 만들어냈다. 성경의 핵심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긴 하지만 세라핌 천사(소프라노)와 예수 그리스도(테너)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점이 독특하다. 예수가 병사들에게 잡혀가는 장면에서는 베드로(베이스)도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예수는 천사에게 하느님의 뜻을 묻는데, 그 질문 속에는 고통스런 죽음을 면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천사는 “십자가를 통한 용서와 구원이 완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그러자 마침내 예수는 결단을 내리고, 천사와의 듀엣 속에서 그는 “고통과 두려움이 너무나 크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라고 말한다.베토벤이 이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시기는 1801년에 오스트리아 쇤브룬 근처에 머물렀던 2주일간이었고, 작품의 초연은 1803년 4월 5일에 이루어졌다. 베토벤은 대본가 후버의 음악적인 감각을 높이 평가했고 2주일 내내 함께 작업했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쓴 대본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이 많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작곡에 대해서도 “너무 드라마틱해 경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이 작품 전체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이 ‘올리브 산의 그리스도’는 베토벤 생전에 대성공을 거두고 청중의 사랑을 받게 된 많지 않은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이 작품 덕분에 베토벤은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작곡을 의뢰받기도 했는데, 실제로 ‘올리브산의 그리스도’의 피날레를 비롯한 몇 부분은 그의 ‘피델리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극적 효과가 강조되어 있다. 병사들과 싸우려는 베드로를 제지하시며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넣어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때 나오는 천사와 예수님과 베드로의 3중창 ‘너희를 미워하는 이들을 사랑하라, 그래야 하느님이 너희를 사랑하신다’는 이 오라토리오의 절정을 이루며, 부활의 영광을 예시하는 천사들의 마지막 합창은 긴 사순절 동안 수난의 고통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준다. Tip영화 ‘불멸의 연인’ 속, 베토벤이 그의 ‘불멸의 연인’과 어긋나는 장면에서 오라토리오 ‘올리브산의 그리스도’가 격정의 화면을 감싸 안는다. 이 영화에서는 베토벤의 운명적인 삶의 단편과 함께 그가 전 생애 동안 완성해 낸 위대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베토벤 음악의 권위자로 알려진 게오르그 솔티가 음악감독을 맡아 더욱 관심을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올리브산의 그리스도’는 베토벤이 처음으로 작곡한 교회음악 장르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곡에 비해 평소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니며 곡의 특성상 사순시기에 관심이 더욱 끌린다. 이 곡을 작곡한 시기를 전후로, 베토벤은 귓병의 괴로움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청각 장애가 심해지면 자신의 음악적 재능까지 묻혀버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살까지 생각하며 유서를 써놓을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운명에 대한 체념과 고통의 극복을 묘사한 이 오라토리오의 가사는 베토벤이 직접 겪은 고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이용숙 칼럼니스트는 이 곡을 들어볼 만한 음반으로 세르주 보도가 지휘하고 리용 국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모니카 피크 히에로니미 등이 연주한 음반(Harmonia Mundi)과 크리스토프 슈페링이 지휘하고 다스 노이에 오케스터 쾰른, 코루스 무지쿠스 쾰른 등이 연주한 음반(Opus 111) 등을 추천한다.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세 사람의 독창과 혼성 4부 합창, 관현악 편성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십자가 수난을 앞둔 예수의 고통과 심경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합창곡인 ‘천사들의 합창’은 베토벤 특유의 힘차고 생명력 넘치는 분위기도 선사한다. 주정아 기자 그동안 ‘쉽게 듣는 교회음악 산책’과 ‘쉽게 보는 교회미술 산책’을 집필해 주신 이용숙씨, 최호영 신부, 고종희 교수, 김현화 교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발행일 2009-03-29 제2641호 18면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6)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架上七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신약성경의 네 복음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부분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 기록된 이 말씀들을 모으니 ‘일곱개의 말씀’이 됩니다.가톨릭교회는 7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7은 완전한 숫자이고, 6일간 창조 후의 거룩한 날을 의미하며, 나아가 영원성과 불변성의 부활을 의미하는 8을 향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개 말씀은 완전한 말씀이며, 당신의 삶 속에서 드러난 말씀과 행적의 요약이고, 죽음 후에 맞이할 부활에 대한 준비를 의미합니다.이러한 ‘가상칠언’의 각 말씀과 그 성경적 문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말씀 : Pater, dimite illis nesciunt enim quid faciunt.그들은 다른 두 죄수도 처형하려고 예수님과 함께 끌고 갔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루카 23,32-34)두번째 말씀 : Hodie mecum eris in Paradiso.그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 42-43)세번째 말씀 : Mulier, ecce filius tuus, Ecce Mater tua.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9,26-27) 네번째 말씀 : Eli, Eli(Heloi, Heloi), lema sabacthani.오후 세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마태 27,46 마르 15,34)다섯번째 말씀 : Sitio.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9,28)여섯 번째 말씀 : Pater, in manus tuas commendo spiritum meum.낮 열두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시까지 계속 되었다.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그대에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4-46)일곱 번째 말씀 : Consummatum est.거리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9,29-30)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말씀은 교회 음악의 역사 안에서 많은 음악가들의 신앙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에 하인리히 슛츠(Heinrich Schuetz), 프란츠 요셉 하이든(Franz Joseph Haydn),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 샤를르 뚜르느미르(Charles Tournemire : 오르간곡), 테오도르 뒤브와(Theodore Dubois) 등 많은 작곡가들이 작품을 남겼는데, 어떤 곡은 예수님의 일곱 말씀에 따라 일곱 개의 곡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또는 일곱 말씀의 전에 도입곡, 후에 마침곡을 첨가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을 묵상하고, 또 음악으로 감상함으로써 이 시기를 성화시키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 Tip F.J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등에 앞서 ‘십자가 위의 마지막 일곱 말씀(Die sieben letzten Worte unseres Erlosers Kreuz)’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올해는 하이든의 서거 200주년이어서 그에 관심이 더욱 높다.하이든은 ‘십자가상…’에 큰 애정을 보이며 여러 버전으로 작곡을 시도했다. 1787년, 그는 관현악곡을 작곡했다. 이어 하이든은 이 곡을 현악사중주 곡으로 편곡했으며, 같은 해에 피아노판 악보도 출판했다. 1796년에는 독창, 합창을 추가하고 관현악 편성을 넓혀 오라토리오로 편곡할 정도였다.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십자가…’은 ‘서주’와 일곱가지 말씀에 이어 ‘지진’까지 총9장으로 이어진다. EMI 레이블의 DVD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인 리카르도 무티가 1982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하모닉과 연주한 실황을 선보인다. 무티는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1991년과 2000년 두 번에 걸쳐 연주 실황을 담은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하이든 오라토리오의 또 다른 음반으로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고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이 연주한 음반(Teldec)이 유명하다.현악연주로는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타티아나 그린덴코가 고음악 연주자들과 함께 결성한 앙상블 오퍼스 포스트가 연주한 음반 ‘Haydn : The Seven Last Words’(CCn’C)를 빼놓을 수 없다. 앙상블 오퍼스 포스트는 일곱 말씀에 어울리는 일곱명의 연주자를 통해 새로운 연주 버전을 제시, 정갈한 악기 소리와 일체감이 돋보이는 화음을 선보인다.하인리히 쉬츠가 작곡한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Die sieben Worte Jesu Christi am Kreuz)’의 음반으로는 클레망 잔느캥이 지휘하고 레 사크부티에 드 툴루즈가 연주한 음반(Harmonia Mundi)과 루돌프 마우에르스베르거가 지휘하고 독일 드레스덴 소년합창단이 연주한 음반(Berlin Classics)이 음악 애호가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꼽힌다. 주정아 기자

발행일 2009-03-22 제2640호 18면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5) 루이스 바칼로프의 ‘미사 탱고(Missa Tango)’

“고향과 영원한 삶에 대한 그리움”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고백스페인어와 아르헨티나 탱고 리듬에 담아 ‘탱고’의 근본적인 사상은, 고향을 잃은 감정, 뿌리가 잘려나간 심정, 실향민의 애절함, 그리고 안주할 수 없는 불안감에서 기인합니다. 이러한 불안정성과 두려움은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완전성이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하느님께서만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삶에 대한 그리움과 바라봄일 것입니다.고향을 떠난 개인적인 애절함, 나아가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탱고’라는 음악적인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로 ‘미사 탱고’(Misa Tango)입니다.1997년 미사 탱고를 작곡한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33년 태어났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영화음악가로서 활동하는 그는 특히 영화 ‘일 포스티노 (Il Postino)’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졌습니다.이렇게 아르헨티나 출신이면서 로마에 살고 있는 작곡가는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탱고의 리듬’을 끌어안아 인간의 ‘근본적인 갈망’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최초의 나의 생각은 두려움이고, 점차로 그것이 발전해 나간다. 그러면서 탱고가 얼마나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나에게 명확해졌다.”“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종교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분의 신만이 우리 모두를 위해 계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이렇게 전례적인 미사를 스페인어와 아르헨티나의 탱고 리듬에 따라 작곡된 ‘미사 탱고’는 결국 바칼로프의 의지대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다교 모두를 아우르기 위하여 미사 통상부분의 본문 중에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부분을 줄여서 다음과 같이 다듬었습니다.자비송(Kyrie)에서는 ‘그리스도’ 부분이 생략되고 ‘주님’에 대한 호칭만 남습니다.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대영광송(Gloria)도 짧게 줄였습니다. :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평화. 당신을 기리나이다.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주님이시고 하느님이시며, 하늘의 왕이시여.”신경(Credo)에서는 오직 ‘한 분 하느님’으로만 내용을 한정시킵니다. : “한 분이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아멘.” 거룩하시도다(Sanctus)의 본문도 유사하지만 어느 정도 수정되었습니다.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우주의 주님이신 하느님, 하늘과 땅에 당신의 영광이 가득하도다!”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에서는 독특하게도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인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용어를 계속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아!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미사 탱고’에 있어서 아르헨티나의 독특한 악기인 ‘반도네온’(Bandoneon)의 울림은 거의 도입 동기(Leitmotiv)와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자비송’(Kyrie)의 시작부분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주님’(Senor)을 반주하는 현악기의 긴 울림에 이어 반도네온의 연주가 울려 퍼지며 이 곡의 독창적 분위기가 물신 베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자비송 전반에 걸쳐 반도네온의 음색이 지배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현악기의 솔로 연주가 이 역할을 넘겨받습니다. ‘대영광송’, ‘신경’, ‘거룩하시도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양’에서는 첼로와 피아노가 반도네온과 함께 어울리는데, 특히 ‘대영광송’과 ‘신경’에서는 피아노가 더욱 돋보이며 반도네온과 대화하듯 연주됩니다. 그리고 ‘거룩하시도다’에서는 반도네온이 솔로 첼로를 넘어서서 멜로디를 연주하고, ‘하느님의 어린양’에서 역시 반도네온의 주도적인 역할이 계속됩니다.여기에 덧붙여지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합창단과 메조소프라노 그리고 테너의 노래로써 ‘미사 탱고’의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면모가 음악적으로 표현됩니다.‘미사 탱고’를 지휘한 정명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음악이 높은 수준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쉽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음악의 힘이다.”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Tip‘미사 탱고’를 만든 루이스 바칼로프는 엔니오 모리꼬네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다섯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바칼로프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그의 본격적인 음악 인생은 모국인 아르헨티나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또한 피아니스트가 아닌 팝음악 편곡자로 이름을 알리면서 시작됐다. 또 영화음악계에서 대단한 경력을 쌓아왔지만, 엔니오 모리꼬네의 조수이자 공동작업자로도 활동했던 이력 때문에 늘 모리꼬네와 비교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1996년 아카데미상 음악상을 수상하며 영화음악가로서 뿐 아니라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까지 새로운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미사 탱고’를 담은 대표적인 음반으로는 도이치 그라마폰 199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녹음, 제작한 것이 꼽힌다. 정명훈의 지휘로 헥토르 울리시스 파사렐라가 반도네온 연주에, 미사 탱고의 작곡가인 루이스 바칼로프가 피아노 연주에 직접 나섰다. 또 미사 크리올라에서는 호세 카레라스가 열창했듯, 이 미사 탱고에서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멋스런 음색을 선보인 음반이다. 한동안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웠지만, 2007년부터는 각종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보너스 트랙에는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 랩소디 등을 담아 더욱 눈길을 끈다. 덧붙여 이 곡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도네온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듯하다. 반도네온은 넓게는 아코디언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쪽의 사각형 상자를 연결하고 있는 주름 부분을 열고 닫아 공기를 불어넣는 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양쪽의 수많은 단음 단추들을 눌러 화음을 연주하는 형식으로 피아노 이상으로 연주가 어려운 편이다.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악기는 초기에는 독일의 지방음악과 교회음악 연주를 위한 오르간 대용으로 쓰였다. 해외 선박 선원들에 의해 아르헨티나에 전해져 지금의 ‘반도네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사진설명▲바칼로프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탱고의 리듬'을 끌어안아 인간의 '근본적인 갈망'으로 승화시킨다. 남미 출신 선교사들이 미사 중 남미 전통 악기로 성가를 부르고 있다.▲1997년 미사 탱고를 작곡한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33년 태어났다.

입력일 2009-02-15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4)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

“음악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독재권력·전쟁 혐오했던 베토벤 청력 잃은 상황서 작업1823년 평화를 기원하며 최고의 대작 ‘장엄미사’ 완성 전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랜 분쟁 지역들이 있다. 전 세계의 시선은 몇 년간 이라크 전에 집중됐지만 현재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가자지구가 뉴스의 초점이다. 모든 사람이 평화를 원하는 데도 왜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일까? 인종이나 종교 차이를 이유로 뿌리 깊은 미움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기만, 전쟁은 언제나 특정한 개인 또는 정부를 부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독재 권력과 권위주의와 전쟁을 혐오했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서양음악사의 걸작 ‘장엄미사 Missa solemnis’를 작곡했다. 여러 작곡가의 미사곡 대부분이 미사 전례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과는 달리 ‘장엄미사’는 미사용이 아닌 연주회용으로 작곡된 대규모 악곡이어서, 실제 미사에 쓰이는 일은 없다. 베토벤은 전체 작품 수에 비해 교회음악을 많이 작곡하지는 않았다. 미사곡 두 곡(‘C장조 미사’/ ‘장엄미사’)과 오라토리오 ‘올리브 동산의 그리스도’가 전부다. 대개의 미사곡들처럼 베토벤의 ‘장엄미사’도 키리에(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글로리아(대영광송)-크레도(사도신경)-상투스(거룩하시다)-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 양)로 나뉜다. 라틴어로 된 기도문들의 내용도 여느 미사곡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 많은 미사곡들 가운데 ‘장엄미사’가 듣는 이들에게 유난히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을 진정 사랑하고 후원했던 루돌프 대공과 베토벤은 깊은 우정을 맺었고, 베토벤은 대공에게 여러 작품을 헌정했다. 대공이 올로뮈츠의 대주교로 임명되자 베토벤은 대주교 취임식 때 연주할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이 작품이 바로 ‘장엄미사’였다. 그러나 ‘장엄미사’를 본격적으로 작곡하기 시작한 1819년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해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작곡을 한다는 건 초인적인 투쟁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무렵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져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작곡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1820년에 취임식이 열렸지만 ‘장엄미사’는 미완성 상태였고, 연주시간이 1시간 반에 달하는 이 대곡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난 1823년이었다. 베토벤 스스로가 ‘장엄미사’를 “나의 모든 작품 중 최고의 대작”이라고 칭했다. 사도신경의 라틴어 원제인 ‘크레도(Credo)’란 ‘저는 믿습니다’라는 뜻의 신앙고백이다. 다른 모든 미사곡의 작곡자들도 물론 이 기도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기도에 베토벤만큼 극적인 호소력을 불어넣은 작곡가는 없었다. 우리가 날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를 수천 번 되풀이한다 해도, 매번 그리스도의 수난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엄미사’에서 이 ‘십자가에 못 박혀(Crucifixus…)’가 연주될 때면 듣는 사람들은 그 음악의 간절함과 비장함 때문에 오히려 십자가의 고통을 사무치도록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노래가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Et resurrexit…)’에 이르게 되면, 듣는 이들은 오랜 사순 시기를 끝내고 부활을 맞이할 때의 넘치는 기쁨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음악은 제 흥을 이기지 못하는 봄볕처럼 찬란하게 터져 나온다. 자신이 작곡한 것을 귀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표현이 더욱 강렬해진 것일까? 30대 초반의 젊은 베토벤이 교향곡 제 3번 ‘영웅’을 구상하면서 매료되었던 나폴레옹의 ‘자유와 평등의 수호자’ 이미지는 1804년에 나폴레옹이 독재의 야심을 드러내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이후 스페인 독립전쟁, 오스트리아 독립전쟁, 러시아 원정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권력욕이 빚은 이 전쟁의 참상을 수년간 지켜본 베토벤은 평화를 기원하고 호소하려는 열망을 갈수록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장엄미사’의 ‘하느님의 어린 양’ 부분을 작곡할 때, 악보에 ‘안과 밖의 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메모를 적어놓았다. ‘안의 평화’란 마음의 평화일수도 있고 가정의 혹은 나라 안의 평화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밖의 평화’란 물론 국가 간의 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할 것이다. 어쩌면 이 메모는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모두의 평화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Agnus Dei... miserere nobis).’ ‘장엄미사’에서 베이스 솔로와 합창단이 이 부분을 노래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깨끗하고 넓은 성전 안의 미사전례보다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굶주리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탈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눈앞에 보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일부에서 ‘세속적인 미사곡’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어떤 교회음악보다 깊은 영성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천국만을 노래하는 영성이 아닌, 시대와 이웃의 아픔을 몸으로 나누는 영성일 것이다. 이용숙(안젤라·음악평론가) Tip ‘음악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이용숙 칼럼니스트가 전한 한마디 말에 퍼뜩 떠오른 일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긴장감으로 더욱 매서운 한겨울 밤, 연합군과 독일군은 비참한 격전의 전장 속에서 성탄 전야를 맞는다. 잠시 총격이 멈추긴 했지만 아군과 적군 모두 평화롭고 따스했던 지난날 성탄절을 떠올리며 눈물짓던 시간이었다. 그때 독일군 진영에서 성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졌다. 뒤따라 양쪽 진영 장병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총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선율에 목소리를 실었다. 심금을 울리는 한곡의 노래가 몇 시간 전까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이고 죽던 적대감을 순식간에 녹게 한 순간이었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지난 2005년 11월 4일 독일 드렌스덴 성모마리아성당에서 연주되면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단 사흘간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됐었다. 재건된 성당의 축성식 후 꼭 일주일 만에 성당에서 열린 음악회, 장엄미사의 선율은 새로운 평화의 상징으로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곡이었다. 당시 연주 실황은 DVD(Eklasse, 92분)로 출시, 한글 자막본도 판매되고 있다. 부록은 드렌스덴 성모성당의 역사와 재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녹음된 음반(DG, 1997)과 오토 클렘페러 지휘, 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의 연주로 녹음된 음반(EMI, 2001)도 들어볼만 하다. 클렘페러는 1927년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을 처음 연주, 이후 강한 애정과 경외심으로 곡의 연주를 이어온 인물이다. BBC가 펴낸 또 다른 오토 클렘페러의 장엄미사 연주 음반은 1963년 제5회 베토벤 페스티벌 실황을 담고 있다. 스튜디오 녹음곡과는 또 다른 멋을 내며 클렘페러의 거시적인 안목과 곡 해석능력이 탁월하게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Archive가 펴낸 존 엘리어트 가드너의 지휘 음반도 그라모폰지가 선정한 위대한 레코딩으로 꼽힌다. 사진설명▲베토벤의 장례식 행렬. 2만 명 이상의 반 시민들이 광장에 운집했으며 빈의 모든 학교가 이날 휴교했다.▲'장엄미사'의 악보.

입력일 2009-01-25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3) 조스캥 데프레의 ‘미사 빤제 린과(Missa Pange Linqua)’

'미사 빤제 린과'의 악보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제로 한 판타지” 단순한 오르가눔 형태 뛰어넘은 르네상스 다성음악데프레, ‘이시대 최고의 천재’란 극찬 받으며 활동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 nus)의 바탕 위에 발전해 온 가톨릭 교회음악 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성음악(Polyphonia)이다. 이미 9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다성음악의 초기 형태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 옥타브 혹은 5도나 4도 관계의 음들을 덧붙임으로써 음향적 효과를 유도한 오르가눔(Organum)이다. 이렇게 단순한 형태로 시작한 다성음악은 교회 전례 안에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여 15~16세기에는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음악을 ‘르네상스 다성음악’이라고 한다. 15세기 초 영국 음악이 대륙으로 전해지면서 초기에는 플랑드르 지방 즉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점차로 이탈리아 로마로 중심지가 옮겨졌고, 로마에서 교육받은 음악가들이 고향인 스페인이나 베네치아에서 계속적으로 다성음악의 새로운 전통을 이어갔다. 조스캥 데프레(Josquin Despres, 약 1440~1521)는 플랑드르 악파의 대표적인 음악가로서 조스캥(Josquin)은 요세(Josse) 즉 요셉(Joseph)의 애칭이고 데프레(Despres)는 Desprez 혹은 Dupre 또 라틴어로는 프라텐시스(Pratensis)라고도 한다. 그의 일생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비교적 적다. 그는 1440년경 북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1474년 후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귀족 스포르차(Sforza)의 궁내 성당에, 또 1478~1494년에는 로마교황청 성가대 가수로, 그리고 1495~1499년에는 캉브레(Cambrai) 대성당 지휘자로 활동했다. 1501년부터는 프랑스 루이 12세(Louis XII, 1498~1515 재위)의 궁정에서 일했으며, 1503년에는 페라라의 에르콜레 데스테 1세(Ercole d’Este I) 공작 궁정의 성가대장으로 임명됐으나 얼마 후 자신의 고향 지역인 프랑스의 콩데(Conde)로 돌아갔다. 데프레는 ‘시대의 최고의 천재’, ‘음악의 거장’ 혹은 ‘음악에 있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혹은 미켈란젤로’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가 죽은 몇 해 후 마르틴 루터는 데프레를 가리켜 “조스캥은 음들의 주인이다. 음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다른 음악가들은 음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준다”라는 극찬을 남겼다. 20~30곡의 미사곡, 4권의 모테트 그리고 세속 음악 등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곡은 ‘미사 빤제 린과(Missa Pange Lingua)’다. 이 미사곡은 아마도 그의 마지막 미사곡으로 추정되며, 생애의 마지막 7년 안에 작곡되었으며, 출판은 그가 죽은 후 1539년 되었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그레고리오 성가 중 ‘그리스도 성체성혈 대축일’을 위한 찬미가인 ‘Pange Lingua’의 멜로디를 음악적 주제로 하는 ‘Missa Pange Lingua’는 특히 주제 선율을 변용(Paraphrase)하여 각 성부에서 모두 노래하는 모방(Imitation)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즉 ‘Pange Lingua’ 라는 음악적 멜로디의 사용을 통하여 우선적으로 음악적으로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고, 나아가 각 성부가 주체적으로 발전됨으로써 이 음악적 공간을 자유롭게 완성시켜 나간다. 이에 이 곡을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제로 한 판타지’(Fantasie ueber eine gregorianische Melodie)로 일컬으며, 그의 이러한 음악적 ‘모방기법’(Imitationstechnik)은 후기 르네상스의 음악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은 음향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얻기 위하여 5성부 혹은 6성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였지만, 조스캥은 4성부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멜로디를 창조해냈다.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Tip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황제와 귀족, 시민 등은 예술을 열렬히 후원하고 보호하는데 큰 관심을 두었다. 덕분에 이 지역에서는 루벤스와 반 아이크, 보슈 등 미술사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한 인물들이 배출됐고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랑드르 악파의 활동은 특히 교회음악 안에서 활짝 피어났고, 그들의 음악적 기법은 전 유럽에 퍼져 한세기 이상 유럽음악을 지배했다. 조스캥 데프레가 활동했던 캉브레 대성당도 유명 가수를 양성하는 곳으로 국제적인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또 1500년대 들어서 활자로 악보인쇄를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짧은 시간 내 유럽 전 지역에 악보가 보급됐으며 덕분에 플랑드르 작곡가들의 작품도 널리 알려졌다. 앞서 ‘…교회음악 산책’에서 살펴본 대로 데프레는 르네상스 전 기간을 통해 활동한 작곡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된다. 데프레의 샹송과 미사곡은 클래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익숙하리만치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꼽힌다. 그의 미사곡 음반은 지난 1995년, 영국의 음악 평론지 그라모폰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래식 레코딩 100선에도 포함된 바 있다. 그러한 미사곡 중 하나인 ‘미사 빤제 린과(Missa Pange Lingua)’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르네상스 음악 연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탈리스 스콜라스(Tallis Scholars)’ 아카펠라 앙상블과 지휘자 피터 필립스의 연주 음반(Gimell, 2006년)을 추천한다. 탈리스 스콜라스는 영국 10인조 혼성 아카펠라 앙상블로 내한 공연도 수차례 가져왔다. 매년 전 세계 성지와 콘서트홀 등을 찾아 순회공연을 하는 탈리스 스콜라스는 르네상스 시대 음악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곡을 완벽에 가깝게 연주하는 이들로 평가받는다. 이 앙상블의 설립자이자 음악감독 겸 지휘자인 피터 필립스도 일생을 르네상스 교회음악 연구와 연주에 공헌한 인물로, 주로 다성음악을 전문적으로 지휘해왔다.

입력일 2009-01-11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2) 프란츠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Deutsche Messe)’

'독일 미사'는 슈베르트의 미사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곡이다. 2007년 4월 16일 독일 스투트가르트 라디오 심포닉 오케스트라가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80세 생일을 맞아 특별 공연을 펼치고 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 인구 비율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특히 시골에서는 글을 읽을 줄 아는 한 사람이 마을 사람들 모두를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는 일도 많았다. 모국어로 쓰인 글도 읽지 못하는데, 외국어로 된 글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글을 읽을 줄 알거나 남들이 모르는 언어를 안다는 것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글을 아는 사람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책의 내용을 마음 내키는 대로 바꿔서 읽어주기도 했고, 편지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일러줘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16세기에 마르틴 루터가 모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기 이전에는 독일 사람들 대부분이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 말고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해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성직자와 학자들의 독점적 권력이 흔들리게 됐다. 그때부터 민중은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 나름의 생각으로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교회의 가르침에 때로는 회의를 품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가 작곡한 ‘독일 미사 Deutsche Messe, D.872’ 역시 이와 비슷한 예가 된다. 슈베르트의 여러 미사곡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이 작품은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어 가사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바로 앞 시대의 고전주의 예술가들과는 달리, 슈베르트 시대의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고 모국어에 각별한 애정을 지녔다. 그래서 라틴어나 다른 외국어 서적들이 독일어로 번안되었고, 슈베르트 역시 그런 시대 조류의 영향을 받아 앞 시대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보다 적극적으로 독일어 가사를 성가에 사용했다. ‘사람들이 뜻도 제대로 모르는 라틴어가 아니라,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꿈꾸며 일상의 삶 속에서 온종일 쓰고 있는 독일어로 성가를 만들자. 그러면 그 가사가 노래 부르는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더욱 신앙심이 깊어질 거야.’ 슈베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독일 미사’의 가사를 쓴 사람은 빈 대학의 물리학 교수 노이만(Johann Philipp Neumann, 1774~1848)이었다. 노이만은 ‘독일 미사’를 위해 모두 여덟 곡의 가사를 썼고, 그 순서는 미사 전례를 따른다(미사 시작 - 영광송 - 복음환호송 - 봉헌 - 거룩하시도다 - 성체성사 - 하느님의 어린 양 - 파견성가). 그러나 이 가사는 라틴어 미사 전례집에 들어 있는 가사를 고스란히 독일어로 옮긴 것이 아니고, 상당 부분이 노이만의 자유로운 창작으로 채워져 있다. ‘가톨릭 성가’에는 이 ‘독일 미사’ 전곡이 우리말 가사로 번역되어 들어 있는데, 이는 미사 때 자주 불리는 성가들이다(‘가톨릭 성가’ 329~336번). ‘미사 시작’이라는 제목의 성가는 성가집 안에도 여러 개가 있지만, 특히 이 ‘독일 미사’에 수록된 슈베르트의 작품은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마음에 깊이 와 닿는 곡이다. “기쁨이 넘쳐 뛸 때 뉘와 함께 나누리슬픔이 가득할 때 뉘게 하소연하리영광의 주 우리게 기쁨을 주시오니서러운 눈물 씻고 주님께 나가리” 동네 성가대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노래하던 어린 슈베르트를 아버지는 당시 빈 궁정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선보였고, 살리에리는 슈베르트의 재능을 인정해 그를 궁정 소년 합창단 단원으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부터 교회음악 레퍼토리에 익숙해진 슈베르트는 스스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자 미사 전례음악에 특별한 애정을 기울였다. 하느님을 찬미하려는 그의 간절한 욕구과 깊은 신앙심은 그 자신이 쓴 메모와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신앙과 더불어 인간은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다. 신앙은 판단력과 지식에 앞선다. 어떤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슈베르트의 1824년 3월 28일 일기에서) 슈베르트 시대 로마 가톨릭교회는 라틴어를 자국어로 번역해 행하는 미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라틴어 미사 텍스트를 독일어로 바꿔 노래하는 이른바 ‘민족 미사’가 하이든 시대부터 존재해왔고, 슈베르트는 자신의 ‘독일 미사’로 그 전통을 확실히 굳힌 셈이다. 작곡이 완성된 1827년 주교구 행정청은 이 ‘독일 미사’의 공연을 허가했지만 성당에서 미사시간에 연주하는 것은 금지했다. 그 뒤 슈베르트 서거 100주기를 맞는 1928년이 되어서야 오스트리아 주교회의는 공식적으로 이 작품을 미사 때 연주하는 일을 허가했다. 100년 동안이나 미사 전례음악으로는 사용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 ‘독일 미사’ 성가들은 민요처럼 부르기 쉬우면서 경건한 멜로디 덕분에 꾸준히 민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언제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아름답고 오래 간다. Tip 미사곡이란 글자 그대로 미사 전례를 위한 가톨릭교회 음악이다. ‘…교회음악산책’에서는 기욤 드 마쇼의 ‘노트르 담 미사’를 통해 미사곡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 바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전환점에 선 마쇼의 미사곡을 계기로 조스캥 데 프레, 팔레스트리나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유명 미사곡들을 만들어냈다. 또 바로크 시대 이후 교회음악에도 오케스트라가 채용되면서 미사곡은 독창 뿐 아니라 중창과 합창도 곁들인 풍성한 연주로 변화했다. 특히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구노 등의 작곡가들이 대형 곡을 만들어내면서 미사곡은 전례용 외에 연주회용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됐다. 미사곡 중 고유미사곡이란 입당송이나 화답송, 복음환호송, 영성체송 등 미사마다 변하고 또 교회력에 따라 생략되기도 하는 미사 고유문을 음악화한 것이다. 통상미사곡은 전례력에 따라서도 그 내용이 변화하지 않는 대영광송과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 양 등 5가지 통상 기도문을 가사로 한 음악을 일컫는다. 음악 양식에 따라서는 ‘그레고리오 미사곡’과 ‘다성부 합창 미사곡’, ‘자국어 가사에 의한 단성부 개창 미사곡’ 등으로 나뉜다. 특히 ‘자국어 가사에 의한 단성부 개창 미사곡’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독려함에 따라 널리 보급됐다. 슈베르트와 하이든 등이 자국어로 쓴 미사곡도 이 종류에 포함된다. 슈베르트의 독일미사를 담은 음반으로는 볼프강 자발리쉬의 지휘, 바이에른 방송합창단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1986년 녹음된 것(EMI)이 유명하다. 우베 크리스티안 하러가 지휘하고 빈 소년합창단과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반(필립스, 2002년)도 추천음반으로 꼽힌다.

발행일 2009-01-01 제2629호 22면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1)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니피캇 안티폰(Magnificat Antiphon)’

“오, 내일 주님께서 오실지니” 주님 탄생 전야 전날까지 불리는 7곡의 안티폰메시아를 구약의 다양한 표상들을 통해 제시 아르보 패르트(Arvo Part)는 1935년 에스토니아(Estonia)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초기 음악은 프로코피예프(Prokofiev)와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의 영향을 받았고, 점차로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다성음악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경향을 형성해 나갔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 아르보 패르트 스스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단지 하나의 음이라도 아름답게 연주된다면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의 음, 혹은 고요한 박자, 혹은 정적의 순간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아주 적은 요소 즉 기본적인 자료들, 3화음, 하나의 특정한 조성만으로도 작업한다.” 이러한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 중에서 ‘마니피캇 안티폰’(Magnificat Antiphon)’이 있다. ‘O Weisheit’, ‘O Adonai’, ‘O Spross’, ‘O Schluesse Davids’, ‘O Morgenstern’, ‘O Koenig’ 그리고 ‘O Immanuel’ 이렇게 7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대림시기 동안 저녁기도의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의 후렴인 안티폰(Antiphon)으로 불리는 그레고리오 성가에 기원하고 있다. 대림시기 후반부인 12월 17일부터 가톨릭 교회의 전례는 ‘오실 구세주’에 대한 급박함을 서둘러 표현하고 기도한다. 미사(Missa)의 고유부분(Proprium)은 주간 단위가 아니라 매일 고유한 기도문으로 구성되며, 시간전례(Liturgia horarum) 중에서 특히 마리아의 노래인 마니피캇(Magnificat)의 후렴인 안티폰(Antiphon)은 구세주에 대한 표상을 다양하게 표현하게 된다. 12월 17일부터 12월 23일 ‘주님의 탄생 전야 전날’까지 7일 동안 불리는 이 노래를 O-안티폰(O-Antiphon)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7곡 모두 감탄의 의미로 알파벳 “O” 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O Sapientia(오 지혜시여)’, ‘O Adonai(오 아도나이, 저의 주님)’, ‘O radix Jesse(오 이새의 뿌리여)’, ‘O clavis David(오 다윗의 열쇠여)’, ‘O Oriens(오 동방의 빛이여)’, ‘O Rex gentium(오 만민의 임금이여)’ 그리고 ‘O Emmanuel(오 임마누엘이여)’. 이 7곡의 안티폰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구약성경의 ‘표상’을 구체적이면서도 성경적으로 또한 그 내용상 점층적인 방법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세주에 대한 희망과 기쁨 그리고 전례 안에서 나타나는 축제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7가지의 성경적 표상을 ‘O’로 시작하여 부르는 첫째 부분과 오시어(Veni)와 우리를 가르치시고 도와달라는 간절함을 나타내는 둘째 부분으로 구성되는 ‘O-안티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일 : 오, 지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말씀이여, 끝에서 끝까지 미치시며, 권능과 자애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이여, 오시어 우리에게 현명의 도를 가르쳐 주소서. 18일 : 오 주여, 이스라엘 집안을 다스리시는 이여, 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시나이 산에서 그에게 당신 법을 주셨으니, 오소서, 팔을 펴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19일 : 오, 이새의 뿌리여, 만민의 표징이 되셨나이다. 주 앞에 임금들이 잠잠하고, 백성들은 간구하오리니, 더디 마옵시고 어서 오시어 우리를 구하소서. 20일 : 오, 다윗의 열쇠여, 이스라엘 집안의 홀이시여, 주께서 여시면 닫지 못하고, 닫으시면 아무도 열지 못하오니, 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를 그 결박에서 풀어 주소서. 21일 : 오, 동녘에 떠오르는 영원한 빛, 찬란한 광채, 정의의 태양이시여, 오시어 어둠과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어 주소서. 22일 : 오, 만민의 임금이시여, 모든 이가 갈망하는 이여, 두 벽을 맞붙이는 모퉁이 돌이시니, 오시어, 흙으로 몸소 만드신 인간을 구원하소서. 23일 : 오, 임마누엘이여, 우리의 임금이시요 입법자시며 만민이 갈망하는 이요 구속자시니,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 주 천주여. 메시아에 대한 7개의 명칭은 ‘지혜’부터 시작하여 ‘주님’, ‘이새의 뿌리’, ‘다윗의 열쇠’, ‘동녘에 떠오르는 영원한 빛’, ‘만민의 임금’으로 발전하여 결국 ‘임마누엘’로 결론을 맺는다. 즉 오실 메시아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으로서 성탄의 가까이 바라보는 대림 제4주일의 영성체송의 내용과 일치한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 23). 또한 7개 표상의 라틴어 첫 글자(Sapientia, Adonai, Radix, Clavis, Oriens, Rex, Emmanuel)를 모아 뒷 글자부터 배열하면 “ERO CRAS” 즉 “내일 내가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된다. 이러한 ‘O-안티폰’의 내용을 아르보 패르트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언어로써 무반주, 짧은 프레이즈 그리고 길면서도 명상적인 쉼표 등을 사용하여 매우 넓고 깊게 그리고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Tip 유럽 교회음악 작곡 분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아르보 패르트는 초월적이면서도 신비적인 음악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14세 때부터 자신만의 작품을 작곡해온 패르트는 활동 초기, 실험적인 음악으로 주목받아왔다. 이후 1968년 ‘크레도(Credo)’를 발표하면서 패르트는 자신의 음악세계의 큰 변화를 드러낸다. 당시 공산주의 정권의 감시감독 등으로 작곡의 한계를 느꼈던 패르트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시대 다성음악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프랑스의 작곡가 마쇼, 오케겜, 오브레히트, 조스캥의 코랄 작품 등을 연구하면서 패르트는 자연히 이들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또 러시아정교회에서 쓰는 라틴어나 교회 슬라브어로 종교적인 가사도 쓰곤 했다. 1980년에는 서방세계로 망명, 현재까지 독일에 정착해 전업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에스토니아를 떠나온 그는 ‘요한 수난곡’을 발표하면서 종교음악 작곡에 본격적으로 집중했다. 1980~90년대 작곡, 세계적으로 널리 연주되는 곡으로는 ‘테 데움(Te Deum)’과 ‘마니피캇(Magnificat)’, ‘산상수훈(The Beatitudes)’ 등이 대표적이다. 패르트의 음악은 영화 ‘생활의 발견’, ‘텐 미니츠 : 첼로’ 등 다양한 영화에 삽입돼 일반인들의 귀에도 익숙한 곡이 많다. 그의 음악세계와 인간적인 면모를 한눈에 접해보고 싶은 이는 한번쯤 다큐멘터리(DVD, Ideale Audience, 104분)를 봐도 좋을 듯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작가 도리안 수핀이 5년간 패르트의 일상을 꼼꼼히 담아낸 작품으로, 작곡활동은 물론 천진하면서도 인간적인 패르트의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상과 2002 패르누 국제 다큐멘터리 & 인류학 필름 페스티벌의 수상작이기도 하다.

입력일 2008-12-14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20) 베르디의 ‘레퀴엠(Requiem)’

레퀴엠은 죽은 이의 영혼을 평온하게 하고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음악이다. 격렬한 슬픔으로 몰아넣는 ‘진혼곡’ 텍스트 의미 극적으로 표현하는 오페라 작곡 방식 반영죽은 아내와 아이들의 영혼이 영생 얻길 기도하며 작곡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삶의 슬픔과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작곡가였다.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일찍부터 가난한 부모 곁을 떠나 후원자의 집에서 살아야 했고, 그 후원자의 딸과 결혼했지만 따뜻한 가정의 행복도 잠시뿐, 젊은 시절에 아내와 두 어린 자녀를 연이어 저세상으로 보내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그의 초상화와 사진들은 진중하고 우울한 그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50세 무렵에 찍은 사진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한 얼굴이다. 그래서 베르디와 ‘레퀴엠’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는 언제나 죽음과 가까이 있는 예술가였고, 그가 작곡한 오페라들은 거의 다 처절한 비극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르디의 레퀴엠은 모차르트나 가브리엘 포레 같은 대표적인 레퀴엠 작곡가들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진혼곡(鎭魂曲)’이라는 번역어가 뜻하듯 레퀴엠은 죽은 이의 영혼을 평온하게 하고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음악이다. 세상을 떠난 이가 천국에서 기쁘고 영원한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말이다. 모차르트나 포레의 ‘레퀴엠’은 위령성월에 세상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해준다. 레퀴엠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음악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베르디의 ‘레퀴엠’은 우리를 다시금 격렬한 슬픔과 오열로 몰아넣는다. 심판날에 있을 하느님의 진노를 표현한 ‘진노의 날(디에스 이레Dies irae)’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폭발적이어서 우리의 혼을 완전히 빼놓는다. 하느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기도 ‘저를 구원하소서(살바 메Salva me)’는 처절하도록 간절해 마음이 불편할 정도다. 마음의 평화는 이 감당하기 어려운 음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바탕 펑펑 울고 탈진한 후에야 비로소 찾아온다. 베르디가 이처럼 격정적이고 강렬한 레퀴엠을 작곡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는 그가 성악적인 기교보다 극적인 표현력을 중시한 오페라의 개혁가였다는 사실이다. ‘레퀴엠’이 아무리 교회음악이라 하더라도, 오페라의 거장인 베르디는 텍스트의 의미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자신의 오페라 작곡 방식을 ‘레퀴엠’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다른 하나의 이유는 베르디의 개인사와 관련된 것이다. 포레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레퀴엠’을 썼지만 베르디의 ‘레퀴엠’은 (1873년에 세상을 떠난 탁월한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에게 헌정되긴 했으나) 결국 죽은 아내와 아이들의 영혼에 바치는 곡이었다. 그러니 두 작곡가가 지닌 근본적인 작곡 성향의 차이를 떠나, 작곡에 임하는 두 사람의 심경이 어떻게 달랐을 것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이면서도 베르디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던 ‘희극 오페라의 거장’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선배작곡가로서 로시니를 존경했던 베르디는 그를 위한 ‘레퀴엠’ 작곡을 앞장서서 추진했다. 다른 작곡가들과의 이 공동작업에서 베르디가 작곡한 부분은 마지막 부분인 ‘리베라 메(Libera me:저를 구하소서)’였다. 그러나 여러 작곡가가 작곡에 참여한 이 ‘로시니를 위한 레퀴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도록 사장되어 있다가 긴 세월이 지나서야 초연되었고, 그 이전에 베르디는 1868년에 작곡한 이 ‘리베라 메’를 토대로 자신만의 레퀴엠 전곡을 작곡해 1874년 밀라노에서 초연했다. 그래서 이 ‘레퀴엠’에서는 합창과 팀파니와 금관악기의 맹공(猛攻)으로 청중의 혼을 뒤흔드는 ‘리베라 메’의 주제가 ‘진노의 날’과 ‘악인들이 불 속에 떨어질 때(Confutatis)’ 부분에서도 되풀이된다. 레퀴엠에서는 일반 미사통상문에 포함되는 키리에(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글로리아(대영광송)-크레도(사도신경)-상투스(거룩하시다)-베네딕투스(찬미받으소서)-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 양) 가운데 글로리아와 크레도가 생략되고 그 대신 장례미사의 고유문에 해당하는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를 노래하는데, 하나의 세퀀티아(부속가)로 묶여 있는 이 ‘진노의 날’은 다시 ‘놀라운 나팔 소리’, ‘무서운 대왕’, ‘악인들이 불 속에 떨어질 때’, ‘눈물의 날’ 등 여러 개의 곡으로 세분화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봉헌송 ‘도미네 예수(Domine Jesu:주님이신 예수)’의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상투스’의 기쁨이 넘치는 화려하고 밝은 색채를 보면, 오페라의 거장인 베르디가 아니고는 결코 이처럼 기쁨과 슬픔의 대비가 뚜렷한 레퀴엠을 탄생시킬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극작가 버나드 쇼는 “베르디의 ‘레퀴엠’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페라”라고 말했다. 오페라 같은 세속음악이 아닌데도, 열정과 환희, 분노와 고통, 그리고 구원에 대한 절절한 갈망 같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들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음악 속에 날것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고통을 위로하는 음악, 그것이 베르디의 ‘레퀴엠’이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안젤라)씨 Tip 위령성월, 신자들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이 보다 마음 깊이 다가오는 시기다. 레퀴엠을 소개할 때 흔히 일반인들의 귀에 가장 익숙한 레퀴엠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미완성곡을 꼽는다. 그 외에도 가브리엘 어번 포레, 샤를르 구노 등의 곡이 유명하다. 베르디의 레퀴엠 또한 여느 곡 못지않게 전 세계적으로 연주되며 많은 이들의 감성을 울려왔다. 베르디의 레퀴엠은 오페라 외에 그가 작곡한 가장 대표적인 곡이다. 특히 이 레퀴엠은 다른 작곡가들의 곡과 비교해 극적 요소가 매우 풍부한 곡으로 평가받는다. 초연 당시 연주를 감상한 이들은 레퀴엠이 아닌 오페라라고 일컬을 정도였다고. 이곡은 1874년 5월, 베르디의 지휘로 이탈리아 밀라노 산마르코 성당에서 초연됐다. 이후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에서 일반 연주회 형태로 공연되는 등, 베르디 본인이 직접 지휘한 작품 중 가장 자주 선보이는 곡으로 기록되고 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연주로 녹음된 EMI의 음반이 들어볼만 하다. 또 BBC가 줄리니의 90세 생일을 기념해 줄리니 육성 인터뷰를 함께 담아 펴낸 음반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고 스웨덴 라이도 합창단, 에릭 에릭슨 실내합창단 연주 등으로 2001년 출시된 DVD(EMI)에서는 소리는 물론 연주가들의 표정을 통해 더욱 강렬한 선율을 감상할 수 있다. Domovideo가 출시한 DVD에서는 지난 1990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비롯해 3000여명에 이르는 월드 페스티벌 합창단이 펼친 대규모 공연을 만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진노의 날’의 웅장한 선율이 압권이다.

입력일 2008-11-30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19)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Magnificat anima mea Dominum)’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가난하고 비천한 이 돌보는 주님 사랑을 찬양그레고리오 성가 8선법 따라 장엄형식 노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Magnificat anima mea Dominum)는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사촌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가 될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그녀로부터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 39~45)이라는 인사를 받은 후 부른 노래로서, 노래의 첫 단어를 따라 ‘마니피캇’(Magnificat)이라고 한다. ‘마리아의 노래’라고도 하는 이 노래는 원래 ‘Canticum Beatae Mariae Virginae’(루카 1, 46~55)라고 하며,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 67~79), 시메온의 노래(루카 2, 29~32)와 함께 복음찬가(Cantica de evangelio)를 구성한다. 총 10절로 되어 있는 노래는 한나의 찬가(1사무 2, 1~10)와 아주 유사하며, 하느님의 위대함, 거룩함, 권능, 올바름 그리고 자비하심을 선포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신앙과 희망에 흠뻑 젖어 있는 ‘마니피캇’은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을 돌보시는 주님의 구원 업적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무조건적 사랑을 찬양하는 노래로서,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찬가다. 마니피캇은 시간전례(Liturgia horarum) 안에서 자신의 전례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원래는 비잔틴 교회와 마찬가지로 아침기도에 노래되다가 성 베네딕토 규칙서(제17장 복음찬가 ‘cantico de evangelio’에 대한 언급)의 영향으로 저녁기도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8가지 시편창법에 따라 각 절을 매번 도입부(Initium)부터 장엄형식으로 노래하며 마지막에는 2절의 영광송을 덧붙인다. 또한 이 찬가의 앞뒤에는 고유한 후렴(Antiphon)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교창형식으로 노래한다. 다성음악 시기에 있어서 마니피캇은 미사의 고유부분(Ordinarium)과 사은찬미가(Te Deum)와 더불어 교회음악의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작곡가 미상의 다성형식의 작품의 부분만이 남아 있으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자료로서는 15세기 초반의 작품(죤던스터블, 기욤 뒤파이, 뱅슈아)부터 시작하며 1600년대까지 거의 모든 작곡가는 빠짐없이 Magnificat 을 작곡하였다. 그중에는 한 작곡가가 여러 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팔레스트리나(G. P. da Palest rina)는 35곡을, 라쏘(O. de Lasso)는 100곡을 그리고 센플(L. Senfl)은 8곡을 작곡하였다. 일반적으로 짝수절은 단성 혹은 기악 악기와의 교창을 위하여 작곡되었으며, 다성 부분은 포부르동(Fauxbour don), 정선율(Cantus firmus), 혹은 모테트(Motet)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1600년대 이후에는 다성음악 형식, 단성음악 형식 혹은 여러 합창단을 위한 형식(H. Schuetz, C. Monteverdi) 등으로 작곡되다가 비발디(Vivaldi)와 바흐(J. S. Bach) 시대에는 그레고리오 선율과 관계없이 기악과 합창을 위한 칸타타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19세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저하게 마니피캇에 대한 작곡이 줄어들었으며 또한 일정한 작곡 형식도 없이 개별적으로 작곡되고 있다(W. A. Mozart, G. Donizetti, L. Cherubini, F. Mende lsshon, K. Penderecki, F. Peeters, A. Paert).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마니피캇은 두 가지 본이 있다. 첫 번째는 1723년 성탄 저녁기도를 위한 E-flat 장조의 곡(BWV 243a)이고, 두 번째는 약 10년 후 모든 시기에 부를 수 있도록 첫 번째 곡을 수정하여 만든 D 장조의 곡(BWV 243)이다. 라틴어 가사의 세 번째 절을 두 부분으로 구별(Quia respexit/Omnes genera tiones)하고 영광송을 한 절로 덧붙임으로써 총 12곡으로 구성된 이 곡은 많은 특징을 갖는다. 우선 레치타티보(Recitativo)나 다 카포(Da capo) 형식이 없으며, 처음의 주제선율이 마지막 합창에서 반복되고 있고, 전체적으로 5부 합창과 독창(2명의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큰 기악 편성(트럼펫 3, 플루트 2, 오보에 2, 현악기, 콘티누오, 팀파니)을 갖는다.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TIP 마니피캇은 가톨릭교회에서 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교회, 영국국교회, 루터파교회에서도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특히 성탄 시즌에 더욱 활발히 연주돼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성탄곡으로 알려질 정도다. 수많은 작곡가들과 음악가들이 마니피캇을 만들고 연주했지만, 그중 바흐의 BWV 243 마니피캇은 바로크 혹은 교회 관련 음악 단체 등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곡으로 꼽힌다. 바흐의 마니피캇은 그의 b단조 미사와 함께 라틴어 가사를 사용한 몇 안되는 곡 중 하나다. 바흐는 라히프치히에 머물던 1723년 마니피캇을 작곡하고 같은 해 성탄대축일 저녁미사에서 초연했다. 전체 12곡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는 합창과 독창이 번갈아 나오며 아름다움을 더한다. 바흐의 마니피캇을 감상할 수 있는 음반으로는 세계적인 지휘자 존 엘리어트 가드너가 지휘하고 몬테베르디 콰이어와 잉글리쉬 바로크 솔리스트 연주를 담은 것(Philips)이 잘 알려져 있다. 한국교회 복음성가 정착과 보급에 힘쓰고 있는 ‘임의 노래 연구회’도 4집 음반 ‘마리아 당신과 함께’에 마니피캇을 담아 출반한 바 있다. 또 마니피캇은 떼제 음악으로도 익숙하다. 성바오로 미디어는 최근 발매한 음반 ‘떼제’에서 마니피캇과 주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등 일반 신자들의 귀에 익숙한 곡을 기악연주로 담아 냈다.

입력일 2008-11-09

[쉽게 듣는 교회 음악 산책] (18) 비발디의 오라토리오 ‘승리를 거두는 유딧’

“적장 쓰러뜨린 매혹적인 여전사” 민족 구원의 상징 유딧, 종교음악 주인공 등장대본 속 은유 통해 당시 전쟁상황 묘사 하기도 잘라낸 적장의 머리통을 쳐들고 있는 용감한 여전사. 왜군의 적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는 논개 이야기보다도 더 자극적이고 엽기적이지 않은가. 성경 속의 이 소재는 당연히 예술가들의 관심을 일깨웠다. 카라바조, 알로리, 클림트….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적장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처단한 이 유딧이라는 인물의 여성적 매력에 초점을 두었다. 그 그림들 속에 서 있는 유딧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무시무시한 머리통을 쳐들고 있어도 여전히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팜므 파탈(femme fatale)’로 보인다.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년경)만은 좀 달랐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이라는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유딧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그대신 남성 화가들이 그린 어떤 유딧보다도 단호하고 결의에 차 있다. 소매를 걷어붙인 유딧의 튼튼한 두 팔, 복수심과 혐오감으로 일그러진 얼굴, 공범인 하녀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 살인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구약성경의 ‘유딧’서는 아시리아 왕 느부갓네살의 ‘보복성 침략’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벌인 전쟁에 파병을 거부한 나라들을 전쟁이 끝난 뒤 침략으로 응징했던 것이다. 그가 최고사령관 홀로페르네스를 보내 점령하고 파괴하게 한 지역들 중 하나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베툴리아였다. 홀로페르네스의 군대에 포위된 베툴리아가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이곳에 사는 과부 유딧은 고향을 위해 목숨을 걸기로 작정하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간계를 꾸미는 이 입술을 이용하여 원수들을 넘어뜨리소서… 그리고 여자의 손을 이용하여 그들의 콧대를 꺾으소서… 당신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시고… 희망 없는 사람들의 구조자이십니다”(유딧 9, 10~11). 그러나 그녀는 간계를 쓰되 원칙을 저버리지 않으며, 적진에 들어가 적을 속이면서도 자신이 믿는 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타고난 미모 위에 갖은 치장을 하고 하녀와 함께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는 유딧. 천하를 호령하는 적장을 한눈에 사로잡고 만다. 연회에서 종들이 다 물러나고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둘만 남은 뒤 홀로페르네스는 미녀를 앞에 두고 기분 좋아 마신 술에 취해 곧 잠이 들고 만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칼을 가져다가 두 번 목을 내리쳐 죽이고, 밖에서 망보고 있던 하녀를 불러 그의 목을 곡식자루에 넣게 한 뒤 함께 도망쳐 베툴리아로 돌아온다. 베툴리아는 넘치는 기쁨 속에 해방되었고, 결연한 용기를 보였던 유딧은 순결과 품위를 잃지 않은 채 민족의 영웅이 된다. 민족 구원의 상징이 된 성경 속의 과부 유딧은 회화 작품들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스카를라티, 비발디, 오네게르 등 여러 작곡가들의 종교음악 작품 속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문학작품 속의 인물이 되어 성경에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보여 주기도 한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오라토리오 ‘승리를 거두는 유딧’은 유딧이 하녀 아브라(Abra)를 거느리고 홀로페르네스 진영을 찾아오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홀로페르네스를 비롯해 모든 아시리아 인들은 유딧의 빼어난 용모와 말솜씨에 반한다. 탐미주의적이라 할 만큼 이 오라토리오의 텍스트는 아름다움의 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유딧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앞다투어 그녀를 칭송하는 부분은 음악적으로도 듣는 이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킨다. 홀로페르네스의 오른팔인 내시 바고아(Vagaus)의 찬탄, 베툴리아의 지도자 우찌야(Ozias)와 베툴리아 인들의 유딧을 위한 기도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이 작품 속의 홀로페르네스 역시 피비린내가 뼛속까지 밴 야만적인 장수가 아니라 사랑 앞에서 저절로 시인이 되고 마는 부드럽고 매력적인 영웅이다. 1716년 ‘유딧’이 초연되었을 때 모든 배역은 비발디가 음악선생으로 일하고 있던 고아원 소녀들이 맡았다. 등장인물 중 남성이 셋인데도 모든 역할을 여성의 목소리로 듣게 되니 오늘날의 청중이라면 의아해하겠지만, 당시에는 여성 가수가 남성 배역을 노래하거나 남성 카스트라토가 여성 역할을 노래하는 일에 익숙했기 때문에 청중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무렵 로마를 비롯한 다른 음악의 중심지에서는 오라토리오 대본을 이탈리아어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베네치아에서만은 라틴어 오라토리오가 유행했다. 카세티가 쓴 이 라틴어 대본에서 적장 홀로페르네스는 터키의 지배자 술탄을, 유딧은 이슬람의 폭력으로부터 기독교 세계를 구할 사명을 띤 베네치아를 상징하고 있다. 또 하녀 아브라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고 민족의 지도자 우찌야는 교황을 뜻한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를 죽이기 전에 인간적인 연약함을 드러내며 자신의 두려움을 하녀 아브라에게 호소하는데, 이는 베네치아가 신앙의 힘에 의지해 기독교 세계의 아드리아해를 지킨다는 설정이다. 비발디가 이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고 있는 동안 마침 베네치아 연합군은 터키와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래서 오라토리오의 초연은 전승 축하연의 일부가 되었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안젤라)씨 Tip 바로크 음악사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승리를 거두는 유딧 (Juditha triumphans)’은 비발디의 오라토리오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해진다. ‘…유딧’은 종교 오라토리오지만 각 등장인물들이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고, 이야기 구조에서도 거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극적 긴장감을 선보여 더욱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또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 특히 비올라와 다모레, 바로크 클라리넷, 만돌린 등을 사용한 독특한 관현악법이 일품이다. 실제 ‘…유딧’은 비발디의 작품 중 가장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 편성을 보인 작품. 이는 비발디가 이 작품에서 종교음악의 색채를 보여주기보다는 각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극적 요소가 지닌 매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용숙 칼럼니스트는 이 작품을 담은 음반으로 이탈리아의 유명 고음악 레이블인 오푸스111이 2001년에 출시한 음반과 필립스가 2003년 출시한 음반을 추천하고 있다. 오푸스111의 음반은 알레산드로 데 마르키의 지휘로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합창단과 아카데미아 몬티스 레갈리스가 연주했다. 마르키는 특히 이번 레코딩에서 비발디가 지휘했을 때와 동일하게 테너와 베이스의 합창 부분을 한 옥타브 가량 올려서 해석했는데, 이 연출은 여성합창이 주는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아울러 유딧역의 막달레나 코제나는 배역이 지닌 복잡한 감정을 잘 표현한 가수로, 마리아 호세 트룰루 또한 여느 카운트테너보다 더욱 풍부하고 따뜻한 음색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설명▲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 캔버스에 유화, 1620년경,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딧', 캔버스에 유화, 1613년경, 피렌체 피티 궁 팔라티나 미술관.

입력일 200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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