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4·끝) 무관심한 세계서 ‘평화’ 찾는 교회

박영호
입력일 2025-06-11 09:12:32 수정일 2025-06-11 09:12:32 발행일 2025-06-15 제 344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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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전쟁·기후위기…‘세상 속 교회’로 풀어 나가야

가톨릭신문은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맞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가톨릭교회 전체의 소명을 드러내며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 소명의 실천에 어떻게 협력하고 투신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총 4회에 걸쳐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와 하느님 백성의 나아갈 길을 살펴본다.

1. 시작하며 - 설문조사 결과 종합
2. 시노드 교회를 향해 - 시노달리타스의 실현
3. 교회는 쇄신돼야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
4. 세상과 교회 - 빈곤과 폭력을 넘어 그리스도의 평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교황명을 선택했듯이, 레오 14세 교황은 19세기 레오 13세 교황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레오 13세 교황은 노동과 자본의 문제에 대해 교회가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힌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했다.

사회교리, 세상과의 관계 방식

‘레오 14세’라는 이름은 사회교리의 현대적 적용을 통해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응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그의 교황직 수행에 있어서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나타낸다.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 5월 10일 추기경단 전체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어갈 것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에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분야의 발전에 직면해, 인간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수호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응답하고자 사회교리를 전 인류에게 선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황으로서 과거의 교도권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사회교리를 교회의 ‘세계와의 관계 방식’으로 여기며, 시대적 변화가 제기하는 새로운 물음에 신앙적으로 응답할 자세를 강조했다. 특히 그가 인공지능을 19세기의 산업혁명에 견주어 인공지능이 가져올 심대한 변화에 대응할 것을 요청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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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들은 교황과 교회가 세상에 만연한 분쟁을 중재하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월 7일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에서, 러시아의 공습으로 희생된 두 명의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다. OSV

빈곤, 그리고 가난한 교회

설문에 응답한 70명의 신학자들은 시노드 교회 건설 다음으로 ‘빈곤, 경제적 불평등과 세계화 문제’(27명, 19.3%)를 새 교황이 해결해야 할 두 번째 중요한 과제로 지목했다.

여기에서 가난과 빈곤은 단지 절대적인 궁핍의 상태에 대한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를 야기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상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한 ‘무관심의 세계화’ 현상과 연관되며, 갈수록 공고해 지는 제도적, 구조적 사회악으로서,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맹목적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오늘날 빈곤의 문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이념과 경제 체제가 만들어내는 극단적 양극화의 문제로 인식된다. 안전하게 자신들의 땅에 정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이주민과 난민은 그 상징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피해자들이다.

‘레오 14세’ 교황명으로 나타낸 주요 사목 방향 ‘사회정의 실현’
빈곤·분쟁·자연 파괴 등 원인…관계 단절에 의한 위기로 파악

만연한 폭력과 그리스도의 평화

‘폭력과 무력 분쟁 해소 및 평화 회복’(12명)과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보전’(8명)이 각각 4위, 5위를 차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력 충돌을 포함해 현재 세계가 직면한 수많은 분쟁 상황을 ‘제3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 역시 새 교황으로서 처음 맞은 주일인 5월 8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란다”며 전임 교황의 경고를 이어받아 “현재 우리는 ‘조각난 형태의 제3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신학연구소 박문수(프란치스코) 소장은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오늘날의 무력 분쟁들의 해소는 현 단계 인류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교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이 비극적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대학교 교수 방종우(야고보) 신부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전쟁과 민족주의, 난민 문제 등 폭력적 상황은 교회의 최우선 과제”라며 “레오 14세 교황은 교황 선출 직후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말로 시작해 시종 ‘평화’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강한수(가롤로) 신부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현대 세계의 상황을 지적하고 “한반도의 종전을 통한 평화 구축과 강대국에 의한 무력 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인류는 세상의 평화를 구축하는 가장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고 교회가 그 평화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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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극복과 생태계 보호는 교회와 신앙인의 본질적 소명이다. 로마 바오로 6세 홀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모습. CNS

기후위기와 「찬미받으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자신의 교황명을 따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는 일이 신앙인의 본질적 소명에 속하며, 인간 생태계와 자연 생태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통합적 생태론을 일깨웠다. 특별히 기후위기로 인해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이 살아가는 공동의 집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굴러가고 있다는 절박한 인식은 그리스도인들의 투신을 요구한다.

신학자들은 생태 문제를 단순한 자연 보호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을 넘어, ‘관계’의 문제로 인식했다.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박용욱(미카엘) 신부는 빈곤, 분쟁, 자연 파괴 등을 모두 ‘관계의 단절과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파악한다. 박 신부는 “관계를 잃어버리고 자본과 권력의 작동 기제에 소모된 현대인의 파편적인 삶인 인간 자신뿐만 아니라 생태 정의마저 파국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신학연구소 홍태희(스테파노) 선임연구원은 “현시대의 절제 없는 인간 중심주의를 경계하며, 「찬미받으소서」로 상징되는, 모든 피조물을 향한 교회적 관심이 식지 않고 더욱 열매를 맺을 것”을 희망했다. 한국 외방 선교회 학술연구소 소장 김병수(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기업이나 국가는 모두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기후위기 극복과 생태계 보호를 위한 노력은 교회가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