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94세에 쁘레시디움 단장 맡은 전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 허융자 씨 새벽 미사·묵주기도 100단 매일 봉헌하기도…교구장 명의 축복장 받아
”94세라는 나이에 레지오 단장을 권유받았어요. 한사코 거절했지만 회합 시작 부분만이라도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수락했죠.”
전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 허융자(헬레나) 씨는 올 초 레지오 마리애 ‘죄인의 희망’ 쁘레시디움 단장이 됐다. 고령에도 평소 왕성한 기도와 활동을 하는 허 씨였기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허 씨는 1957년 교구 전동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시작한 레지오에서 무려 68년째 활동하며 동료 단원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건강을 염려한 의사의 소견에 따라 몇 달 전 중단하긴 했지만, 허 씨는 입교 후 매일 새벽 미사를 참례했다. 성당에 허 씨의 지정석이 있을 정도였다. 또 다리 수술로 입원했을 때를 빼고는 레지오 회합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를 방문했다가도 주 회합 참석을 위해 서둘러 집에 왔다. 이러한 근면한 활동으로 5월 17일 봉헌된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 기념 미사’에서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명의의 축복장을 받았다.
성실한 참석 비결에 대해 허 씨는 “우리는 성모님의 군단인데 어떻게 레지오를 빠질 수가 있냐”고 반문했다. 젊은 시절 하루에 묵주기도를 100단씩 바쳤던 허 씨는 지금도 70단 이상을 바치고 있다.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도 개인 한 명 한 명을 다 기억하시는 성모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허 씨는 늘 손에 쥐고 다니는 묵주에 대해 “특별히 아끼는 묵주는 없다”며 “묵주는 다 똑같이 거룩한 성모님께 기도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남편 때문에 힘들었지만 성모님께 모두 맡기며 버텼어요. 남편이 가끔 집에 올 때마다 정성을 다해 대접하니 결국 마음을 다잡고 80세에 세례와 견진까지 받았죠.”
허 씨는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며 60여 명의 입교를 도와 2014년에는 레지오 선교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건 남편 전교였다. 당시 현실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하루는 죽느냐, 사느냐 문제로 성당 성모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때 허 씨에게 ‘피에타’ 상이 떠올랐다. 허 씨는 ‘내 고통은 성모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깨달은 후 성모님께 더욱 의탁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이따금 집에 들러 이혼을 요구했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발톱을 직접 깎아주고 밥상을 극진히 차려 줬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다는 일념에서였다. 자녀들과 본당 신부·수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세례를 받은 남편은 이후 병자성사까지 받고 평안히 선종했다. 허 씨는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저는 늘 ‘지금이 천국이다’라는 말을 하며 살아요. 제 마음에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을 모시고 사니까요. 그걸 생각하면 저절로 겸손하고 조심하게 되고, 그분들 마음에 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된답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