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준형 클래식 순례] 드보르자크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드리는 찬가>

황혜원
입력일 2025-06-11 09:07:14 수정일 2025-06-11 13:52:06 발행일 2025-06-15 제 344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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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이 축일이 보편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중세 말기로 아주 이르지는 않지만, 아마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이를 향한 믿음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원이자 핵심이고, 따라서 교회가 이미 매일 영광송을 바치며 성삼위를 기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끝나기에 어찌 보면 모든 찬가가 오늘 대축일에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19세기에 활동했던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드리는 찬가>(Hymnus ad laudes in festo Sanctae Trinitatis)를 소개합니다.

드보르자크는 종교음악에서 헨델 같은 바로크 대가들의 작곡 양식을 바탕으로 멘델스존, 리스트, 바그너 등 낭만주의 작곡가의 음악을 받아들여 탁월한 작품을 여러 곡 썼습니다. 그 근원에는 깊은 신앙이 있었습니다. 독실한 집안에서 성장한 드보르자크는 평생 보헤미아 시골 사람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신앙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작곡가의 아들 오타카르는 훗날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아버지의 주님은 앙갚음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으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여행을 축복하시는 주님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린 딸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스타바트 마테르>를 써서 신앙과 음악으로 아픔을 승화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생 모토는 ‘하느님, 사랑, 조국!’이었고, 작품을 완성하면 악보에 ‘하느님께 감사’(Bohu díky)라고 썼습니다.

작곡가의 이런 소박한 신앙심은 <레퀴엠>이나 <스타바트 마테르>, <성녀 루드밀라> 같은 대곡보다, 체코어 시편을 직접 골라서 곡을 붙인 <성서 노래집>처럼 편성도 작고 짧은 작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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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자크가 오르간을 기증했던 트르젭스코의 성모 몽소승천 성당. 출처 위키미디어

1878년에 만들어진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드리는 찬가’도 좋은 예로, 알토와 오르간으로 이루어진 소품입니다. 가사로 쓴 라틴어 찬가는 삼위일체 대축일 아침기도에 바치는 기도문으로,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드보르자크는 젊은 시절 프라하의 성 아달베르트 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한 적도 있고, 40대 이후 비소카(Vysoká)라는 시골 마을에 여름 별장을 지은 뒤 그곳에서 머물 때면 인근에 있는 동네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했습니다. 1894년에는 성당에 새 오르간을 기증했는데, 안타깝게도 1950년대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이 곡의 초연에서도 그가 오르간을 연주하고 친구가 노래했다고 하는데,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G단조로 시작해서 G장조로 끝나는 평온한 음악을 듣다 보면 보헤미아의 전원 풍경과 시골 성당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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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