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솜씨 어설퍼도 열정만큼은 나도 일류 셰프”

이호재
입력일 2025-06-11 09:20:00 수정일 2025-06-12 08:52:38 발행일 2025-06-15 제 3446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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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배동본당 ‘집밥 프로젝트’…실버 세대 남성 요리 수업으로 공동체 연대감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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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방배동성당에서 열린 ‘집밥 프로젝트’에서 참가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호재 기자

“고추장 한 스푼, 간장 한 스푼을 큼직한 볼에 담긴 고기에 넣고 고루 버무려주세요. 양념이 잘 배도록 살살 치대듯 섞은 뒤 잠시 재워둡니다. 이제 달궈진 후라이팬에 재운 고기를 올려 중불에서 천천히 볶아주세요. 고기에서 나온 육즙이 자작해졌다가 사라질 즈음, 맛있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할 거예요. 자, 이제 직접 한번 해볼까요?”

6월 5일 서울대교구 방배동성당 지하. 백발에 주름진 이마, 얼핏 봐도 연륜이 묻어 나는 나이 지긋한 남성 신자들이 모여 어색한 손놀림으로 조심스레 칼을 들고, 조리 도구를 만지작거리며 요리에 집중하고 있다. 방배동본당(주임 권철호 다니엘 신부)이 마련한 ‘집밥 프로젝트’ 현장이다.

본당은 이날부터 4주간 매주 목요일 남성 신자들을 위한 요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고령의 남성 신자들이 집에서 스스로 한 끼쯤은 직접 차릴 수 있도록 간단한 요리법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권철호 신부가 사제 연수 기간 제주도에서 혼자 식사를 준비하며 느꼈던 불편함에서 비롯됐다.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나이 많은 신자들은 더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본당은 이 요리 수업이 단순한 기술 전달을 넘어 신자들 간 정을 나누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 교류의 장이 되길 바란다. 함께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며 웃고 이야기하는 사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연대감도 자연스레 깊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은퇴 후 목적 없는 일상 속에 있던 신자들이 직접 음식을 완성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향후 프로그램 정례화를 위해 참가자들의 의견도 수렴하고 있다.

박동호(스테파노) 씨는 “아내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친구들과 여행 준비로 바쁠 때도 항상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걸 보고 마음이 쓰였다”며 “이번 기회에 요리를 배워 가족에게 직접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고령 신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본당에서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하다”며 “오늘 형제님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니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낙현(시몬) 씨도 “혼자 요리할 때 양 조절이 어려워 늘 막막했는데 여기서 요리 비법을 배워 딸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본당의 65세 이상 신자 비율은 전체의 약 35%. 본당은 이에 맞춰 ‘집밥 프로젝트’ 외에도 고령 신자를 위한 다양한 사목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매년 시니어 아카데미 회원들을 대상으로 단체 병자성사를 거행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권 신부는 “고령 신자들은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병자성사를 받는 것이 중요한데, 팬데믹 이후 가정 방문 성사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며 “신자들이 건강할 때 편히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매년 단체로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