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평화·정의·공동선·환경 수호하는 지도자 되길 희망

박지순
입력일 2025-06-11 09:12:24 수정일 2025-06-12 12:54:50 발행일 2025-06-15 제 344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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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정의평화·사회복지·생태환경 분야 전문가들, 새 정부 과제 제언…‘가톨릭 교리 걸맞은 정책' 당부

6·3 조기 대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가톨릭신문은 새 대통령 취임에 발맞춰 ▲남북화해 ▲정의평화 ▲사회복지(빈민) ▲생태환경 등 4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교회 내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새 대통령과 정부에 전하는 바람을 담았다. 계엄과 탄핵으로 얼룩진 6개월 간의 혼란에서 벗어나 가톨릭 사회교리에 걸맞은 정책의 변화를 ‘새 대통령’에게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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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개최 ‘2018 DMZ 평화의 길’ 캠프에 참가한 어린이가 통일을 기원하는 리본을 달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민족화해 - 남북 관계, 방송과 전단지로는 변하지 않는다

연말연시가 되면 늘 듣게 되는 상투적인 표현이 있다. 바로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라는 말이다. 꼭 연말이나 연초가 아니더라도, 과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다. 실제로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국민은 정말 ‘숨 가쁘게’ 일상을 살아왔다. 무너진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 수십만, 수백만의 시민들이 주말을 포기하고 광장으로 나섰다. 매일 뉴스를 지켜보며 오늘은 또 누가 꼼수를 부릴지 조바심을 내야 했다. 

이제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구성됐고, 많은 이는 이제는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국민들이 한숨 돌리기 위해서는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앞으로 책임을 맡게 될 이들에게 더 큰 기대와 응원의 마음을 먼저 전한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5,17)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선언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치기에,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한 개인의 회심이 그를 구원으로 이끈다면, 한 사회의 쇄신 역시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 것이다. 그렇기에 새 시대를 바라는 모든 이와 함께 과거와 작별하고 새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남북 관계에서 우리가 작별해야 할 과거 중 하나는 바로 ‘적개심’이다. 남과 북은 80년 가까이 서로를 미워하도록 강요받아 왔다. 일상의 작은 생산품에서부터 국가 단위의 외교와 국방에 이르기까지, 남북은 미움을 기반으로 한 경쟁의 길을 걸어왔다. 이미 경쟁이 무의미해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증오와 미움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남북의 경제력은 이미 50배 이상, 군사비 지출도 3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불안감을 느낀다면, 우리보다 북한이 더 크게 느낄 것이고, 위협 역시 상대가 더 크게 체감할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더 큰 포용력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 역량을 갖추고 있다. 새 정부는 우리 안의 적개심을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갖추길 바란다.

그리고 적개심을 극복한 자리에 자신감을 갖추었으면 한다. 무기를 쌓아 올려서 생기는 자신감이 아니라, 공감과 포용의 마음으로 상대를 품을 수 있는 자신감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을 열게 된다. 내가 살아온 길을 알고, 현재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이에게 진심을 보이게 된다. 남과 북 역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압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한반도에서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모습을 진정성 있게 보여 주길 바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선동에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불신, 불안, 증오, 미움, 혐오를 부추기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기다리고 먼저 손 내밀며 상대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 보자.

지난 3년 동안, 서로를 비난하는 방송과 전단지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 않았나?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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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사형제도 폐지의 바람을 담아 펼치고 있는 조명 퍼포먼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정의평화 - 단호함과 너그러움, 세상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어지럽고 메슥거렸습니다.

지난 6개월간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고, 거짓이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부끄러움이 실종된 시간에서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멀미 나는 듯한 역사적 장애물 경기를 함께 내달린 이웃들을 생각하며, 새 정부의 시작에서 두 단어를 입에 올립니다. 단호함과 너그러움. 서로 반대되는 말 같지만, 이 두 단어가 제 자리에만 선다면 세상은 훨씬 좋을 수 있습니다.

“진실은 정의와 자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입니다.” (「모든 형제들」 277항)

거짓에 대해 단호해지십시오. 거짓의 폐해는 그것을 말한 소수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수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공적 영역에서 진실을 다루는 언론과 미디어는 그 영향력만큼이나 엄정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사법 체계 역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법의 잣대가 누구에게는 단호하고 누구에게는 너그러워진다면,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닙니다.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한 과거는 ‘오늘날 거짓’의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지킬 수 있도록, 단호한 사법 체계의 올바른 회복이 새 정부의 첫 책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치의 정신에서 핵심이 되는 이 애덕은 언제나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입니다.”(「모든 형제들」 187항)

다름에 대해 너그러워지십시오. 6·25전쟁과 제주, 광주의 아픔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혐오와 분열의 유령은 아직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대, 성별, 지역을 가르며, 서로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문화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광화문 거리에서 한복을 곱게 입은 열 살 아이가 ‘○○○ 박멸’이라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린 손에 쥐어진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연 우리는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을 벌레처럼 대하는 태도에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단호한 혐오가 자리한 비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는, 혐오를 멈추고 연대를 키우는 교육, 다름이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정책, 소수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가 절실합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단호해야 할 자리에 너그러웠고, 너그러워야 할 자리에 단호했습니다.

그 결과 어긋난 시간이 우리 공동체 모두를 베었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이제 그 어긋남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권력은 공동체 회복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단호함으로 거짓을 멈추고, 너그러움으로 상처를 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희망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박진균 안드레아(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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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취약계층 보호가 시급한 서울 동자동 쪽방촌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사회복지·빈민 -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고, 공공의 이익 우선시하는 정부 되길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재명 정부가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는 정부’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중에서도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따뜻함을 지녔으면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차별과 배제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 안에서 ‘나’와 ‘너’는 철저하게 구분되고, 가난한 이들은 ‘우리’라는 범주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선거철이나 혹서기, 혹한기 때에만 잠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명의 엑스트라로 동원될 뿐이다. 

지난 대통령 취임선서 때 새로운 대통령이 처음으로 찾은 사람들은 바로 국회 방호원과 청소 노동자들이었다. 혹자는 가식적인 쇼라고 비판하지만 그 모습이 진심임을 믿고 싶다. 그 모습 그대로 이 사회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낮은 자세의 대통령이 되길 희망한다.

모든 정부에서 예외 없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는 ‘민생안정’이다. 모든 사람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이들의 삶이 안정될 수 있도록,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가주도의 정책으로 힘을 실어주셨으면 한다. 이를 통해 인간중심의 대통합을 이루어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길 희망한다.

이를 바탕으로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15만 평이나 되는 공공의 땅인 옛 용산정비창이 그리고 2021년부터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이 계획되었던 동자동 쪽방촌이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의 바람과 원래 예정된 계획대로 공공개발이 된다면 그 이익은 비교적 골고루 공공(公共)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주도의 용산국제업무지구 추진과 토지, 건물주들의 민간개발 추구는 공익 보다는 사익을 우선시하는 기울어진 운동장만을 만들 뿐이다. 공공의 땅이나 주택이 사적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쓰일 때 약자들이 받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패널티를 내고도 공공임대주택의 소셜믹스를 거부하는 서울 모처 아파트 재개발 구역의 모습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께서 지난 3월 인터뷰에서 현재 급속도로 진행중인 인공지능(AI) 시대의 투자에 대해 수익의 일부를 국민에게 돌려 모두가 세금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살아가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공익을 우선하는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뜻을 변함없이 지켜나가시길 바란다.

나충열 요셉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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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 서울에서 열린 하늘땅물벗 전국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지구를 지키자’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생태환경 -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 주길 희망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한다. 길고 긴 겨울과 봄을 지나, 이제 전환과 통합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첫 날, 필자는 금강 세종보에 갔다. 봄은 짧고 여름이 오고 있어서 강변에 꽃들이 예쁘게 펴서 손짓하고 있었다. 세종보 재가동을 막기 위해 활동가들이 그 자리를 1년 넘게 지키고 있다. 이들은 자연과 벗 삼아서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폭염·폭우와 혹한에도 행여나 수문을 닫을까 걱정되어서 천막을 지키고 있다.

세종보만 이런 상황인 것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활동가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가덕도, 새만금, 홍천, 삼척, 설악산 등에서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들과 연대하고 이들의 소리를 온몸으로 전하고 있다. 이곳들은 정권이 뒤집히는 긴 세월을 관통하며 일관되게 추진되는 개발의 현장으로, 어떤 곳은 경제적 이익의 한계를 알면서도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4대강 재자연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댐과 보 건설 위주의 물관리 정책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이 공약이 단순히 전 정부를 부정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각의 개발 논리들은 이어져 있기에 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정책만 핀셋처럼 들어내서 폐기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새만금과 가덕도의 신공항은 윤석열 정부 이전부터 추진되었지만, 경제적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막대한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이제 익히 잘 알려졌다.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때이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핵진흥정책을 밀어붙이며 AI와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전력수급이 필요하다고, 즉 경제발전을 위해 핵발전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후위기 시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으나, 어떤 경로로 어떻게 전환을 만들어갈지가 당면한 과제로 남았다. 

임기 내 수명이 만료되는 핵발전소 10기를 폐로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이미 민영화, 외주화되고 있는 에너지 생산을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와 발전 노동자의 희생 없이 산업이 전환되고, 에너지 민영화로 인한 불필요한 개발과 요금 폭탄이 국민에게 전가되지 않기를 바란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승리의 기쁨과 찬란함 때문에 현장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장의 아름다움과 그늘, 웃음과 탄식이 지난 겨울과 봄의 다채로운 광장의 불빛을 만들었다. 부디, 이 목소리들을 소중히 들어주시길 부탁한다.

오현화 안젤라(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