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과 20년 생활한 한국 프라도 수녀회 역사 산증인 “가난한 이웃과 일치하는 프라도 영성 오래 간직하길”
프라도 수녀회 전 국제총장 마리 조 바리에르(Marie-Jo Barrier) 수녀가 프라도 한국 진출 50주년 기념 행사 참석을 위해 5월 24일부터 6월 9일까지 방한했다. 프랑스인 바리에르 수녀는 프라도 한국 진출 직후인 1978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하며 프라도 영성을 널리 전파하고 프라도 수녀회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한국교회 ‘노동사목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고(故) 올리비에 드 베랑제 주교(한국명 오영진)가 한국 프라도 사제회 발전의 선구자였다면, 바리에르 수녀는 한국 프라도 수녀회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바리에르 수녀는 “한국 프라도가 ‘파견된 고장 사람들의 생활 조건,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 그들의 기쁨과 갈망을 함께 나누는’(프라도 수녀회 회헌 202항) 영성을 한결같이 지켜왔기에 50주년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서 함께했다는 게 저희 사도직의 특별함이에요. 우리는 설립 초기부터 각자 공장 일꾼, 파출부, 비닐하우스와 밭에서 땀 흘리는 삯일꾼이 되어 노동자들과 가난한 농촌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생활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내어놓고 같은 인간이 되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요.”
프라도 수녀회는 사제들과 달리 수도자로서 공동생활을 한다. 바리에르 수녀는 “그래서 오히려 제약 없이 가난한 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동체(수녀회)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덕에, 구성원은 바뀌더라도 가난한 이들을 도중에 두고 떠날 일이 없었다.
덕분에 한국 프라도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과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었다. 바리에르 수녀는 “마치 ‘옆집 아줌마’처럼 그들과 밀착해야만 가능한 사도직들을 펼쳤다”고 회고했다.
1994년에는 장애나 생활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파출부’ 활동에 나섰다. 같은 해 서울의 낙후된 마을에서 시작한 ‘맛있는 것 해 먹는 모임’도 가난과 가정불화 등으로 방치된 청소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몸과 마음의 굶주림 모두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회적 안전망이었다.
바리에르 수녀는 “가난한 이들이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만나 꽃처럼 활짝 피어날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5월 2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린 50주년 기념 미사에서 바리에르 수녀를 감동시킨 것도 성당을 가득 채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프라도 수녀회 회원들과 긴 세월 동고동락했던 노동자와 아이들, 가난과 아픔을 짊어진 이들이었다.
“그날 한 자매님의 증언이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와요. ‘계속 가난한 삶을 살더라도, 가난 속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제가 계속 가난한 사람으로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고백이었죠.”
바리에르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주체”라며 “그런 복음의 사도들과 일치해 살아가는 소중한 영성을 프라도 사제회와 프라도 수녀회, 프라도 여성 재속회 등 한국 프라도회 모든 가족이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