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예수님 대신 석방되어 목숨을 구한 바라빠

최용택
입력일 2025-06-11 09:13:37 수정일 2025-06-11 09:13:37 발행일 2025-06-15 제 3446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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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티소의 <바라빠>

2004년 개봉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열심한 가톨릭신자인 할리우드 스타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였다. 많은 이는 그의 영화가 과거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전혀 다른 영화를 연출했다. 영화의 첫 대사에서부터 현실감이 다가오도록 예수님이 말하던 당시의 언어인 아람어와 라틴어를 사용했다.

이 영화는 개봉 초기부터 예수님의 수난을 너무 잔인하게 묘사했다는 점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예수님이 유다인과 로마 군인의 무차별 구타로 눈이 퉁퉁 부어있는 장면, 로마 군인의 채찍질에 살점이 터져 나와 피가 흥건한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과거 영화에서 예수님은 수난 중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통이 여과 없이 그려졌다. 일부 평론가들은 인간의 폭력성은 실제상황에서 더 참혹할 것이라며 인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영화라고 했다.

유다인에게 중요한 유월절(유다인들이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에는 죄수 중 한 사람을 석방하는 전통이 있었다. 마침 바라빠라는 사형수가 있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바라빠를 데려와 군중에게 예수와 바라빠 중 누구를 풀어주겠냐고 물어본다. 바라빠는 반란에 가담해 로마에 대항하다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였다. 바라빠는 로마제국에 반대한 폭력투쟁의 지도자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군중들은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했다.

사슬이 풀린 바라빠가 당혹감 속에서 한쪽 눈이 거의 감긴 예수님과 마주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있어 보였다. 예수님 대신에 극적으로 석방되며 목숨을 건진 바라빠는 가장 운이 좋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라빠는 풀려 난 후 무엇을 했을까? 성경은 바라빠의 이후 행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이나 영화에 상상력이 더해진다. 스웨덴 출신의 작가 페르 라게르크비스트는 「바라빠」라는 책에서 바라빠는 예수님을 믿으려고 했지만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상상의 이야기를 저술했다. 어쨌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예수님에 대해 바라빠는 궁금해졌을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도 접했을 것이다. 예수님 덕분에 목숨을 건진 바라빠의 인생에는 그분이 이미 깊이 들어와 있었을 것이다.

2002년 일본에서 <미션 바라바>라는 한일 합작 영화가 개봉됐다. 영화는 회개한 야쿠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야쿠자들은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후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속죄하는 의미로 바퀴 달린 십자가를 지고 일본 전국을 일주하였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바라빠들이다. 덤으로 생명을 연장한 바라빠의 이후의 삶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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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