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모교 빌라노바대학교에 생명운동 단체 창립
[필라델피아 OSV] 레오 14세 교황이 모교인 미국 필라델피아 빌라노바대학교 생명운동 단체 설립에 참여했던 사실이 조명되고 있다.
1955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교황은 1973년 가을부터 1977년 5월까지 빌라노바대학교에 재학했다. 교황이 빌라노바대학에 입학하던 1973년 1월 22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24주 이전에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s. Wade)을 내려 미국에서 임신 24주 이전까지는 낙태가 합법화됐다.
일정 임신 기간 동안의 낙태가 헌법적 권리로 인정되자 미국 사회에서는 낙태 허용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격화됐다. 빌라노바대학 학생들도 1974년 1월 22일 ‘로 대 웨이드 판결’ 1주년을 기해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프로라이프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 미래의 교황인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도 참여했다. 빌라노바대학 재학생들이 생명운동 단체 ‘생명을 위한 빌라노바인들’(Villanovans for Life)을 캠퍼스 안에 창립한 것은 1974년 봄이었고, 창립 회원 중 한 명이 교황이었다. 빌라노바대학 프로라이프 단체는 1975년부터는 버스를 타고 워싱턴으로 가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Life)에도 참석했다.
교황과 빌라노바대학 동창생인 로라 파인은 “생명을 위한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버스에서 프레보스트를 만났던 것은 기억하지만 정확히 1975년인지, 1976년이나 1977년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빌라노바대학에 재학하던 교황님과 같이 생명을 위한 행진에 참석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프레보스트가 미래에 교황이 될 줄 알았다면 우리는 그와 사진도 많이 찍고 기록도 많이 남겨 놓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교황은 빌라노바대학에 재학하는 내내 생명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졸업식이 열린 1977년 5월 19일, 매사추세츠주에서 1971년부터 1981년까지 하원의원을 지낸 예수회 로버트 드리난 신부가 낙태를 법적인 권리로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노바대학의 명예 학위를 받게 되자 교황은 학생들과 관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