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안에 하느님 생각 머물게 하며 그 안에서 살려고 노력
사막 교부들은 기도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도는 하느님께 정향된 그들의 삶 자체였다. 스케티스의 압바 이시도루스는 말했다. “젊은 시절 독방에 머무를 때 나는 기도하는 데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밤도 낮과 똑같은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이시도루스 4) 키프로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는 “참된 수도승은 자기 마음속에 끊임없이 기도와 시편 낭송을 품고 있어야 한다”(에피파니우스 3)고 말한다.
에바그리우스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일하고 밤샘 기도를 하고 줄곧 단식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다. 대신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는 법이 있다.”(프락티코스 49) 사막 교부들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그 외 것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기도 수행을 위한 그들의 치열한 노력과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2회에 걸쳐 살펴볼 것이다.
끊임없는 기도의 이상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고 명령하셨다. 사도들은, 특히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이 명령에 따라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라고 권고하였다. ‘항상 기도하라’는 예수님과 사도의 이 권고는 초세기부터 우리 시대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의 항구한 이상으로 남아 있다. 이 권고를 실현하기 위하여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 어떤 이들은 너무 극단으로 치우치기도 하였다. 4세기 메소포타미아의 두 부류의 금욕단체, ‘에우키테스’(euchites, 기도하는 사람들)와 ‘아체미티’(acemiti,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가 대표적이다. 전자는 끊임없이 기도하기 위해 세속적인 일, 무엇보다도 손노동을 거부했다. 후자는 공동체에서 절대 기도가 중단되지 않도록 순번으로 돌아가면서, 그리고 여러 그룹의 수도승이 바치는 시간 전례로 ‘항구한 기도’(Laus perennis)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원칙은 ‘항구한 성체 흠숭’과 ‘항구한 로사리오’란 이름으로 서방에서 확산했다.
사막에서 꽃핀 이상
성 바오로의 권고를 명심한 초기 사막 수도승들은 끊임없는 기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념했다. 그들은 부단한 시편 낭송과 묵상, 기도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손노동 중이나 식사할 때, 또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휴식할 때조차 늘 하느님 기억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들은 이 ‘하느님 기억’을 영성 생활의 핵심으로 간주하였다. 사막 교부들은 언제나 카시아누스의 표현에 따른 기도의 상태(status orationis)를 살기 위해 기도에 할애된 시간을 늘리려 노력했다. 피곤함이나 분심도 그들의 외적 기도의 행위(actio orationis)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지속적 ‘기도의 행위’를 통해 항상 하느님 기억을 유지하고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며 살려고 노력하여 마침내 ‘기도의 상태’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와 삶 자체가 기도가 되었다.
하느님 기억
사막 교부들이 영성 생활의 핵심으로 삼았던 ‘하느님 기억’은 특히 성 바실리우스의 핵심 개념이다. 바실리우스에 의하면, 하느님 기억을 위한 주된 방법은 ‘성경에 대한 되새김(meletẽ)’이다. 이것은 영혼 안에, 하느님에 관한 생각을 머물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 기억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주의(prosoché)해야 한다. 이 주의(注意)는 영혼의 약이며, 영혼의 참된 약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욕정은 지속적인 하느님 기억을 방해하므로, 욕정을 거슬러 싸워야 한다. 이에 대한 가르침은 그의 「서간」 2의 기도에 대한 정의 안에 잘 요약되어 있다.
“영혼 안에 하느님 생각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훌륭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내주(內住), 즉 하느님 기억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하느님 기억이 세상 걱정으로 중단되지 않고 정신이 갑작스러운 욕정들로 동요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느님의 벗은 이 모든 것을 피하며 그를 방종으로 유혹하는 욕정들을 거부하고 덕으로 이끄는 행동 방식에 항구하면서 하느님께 피신합니다.”(「서간」 2,4)
멜레테 수행
사막 교부들은 하느님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창안해 냈다. 그들은 분심을 피하려고 반복해서 하는 짧은 기도문을 사용했다. 이 짧은 기도는 이집트에서 사용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나이, 팔레스티나, 시리아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全) 지역에서도 사용되었다. 이 기도의 일반적 특성은 간결성과 단순성에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한 구절, 특히 시편의 한 구절을 소리 내어, 혹은 마음속으로 반복하여 되뇌는 멜레테(meletẽ ,수행(되새김 수행))였다. 이 수행은 하느님 현존 의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이 사용한 멜레테 양식은 다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양식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은 복음의 세리의 기도를 즐겨 사용했다.
압바 암모나스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13)라는 세리의 말을 항상 마음속에 되새기라고 권고하였다.(암모나스 3) 압바 루키우스는 “하느님,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크신 선과 풍성한 자비로 제 죄에서 저를 구하소서”(시편 51,3)를 이용하였다.(루키우스 1) 카시아누스에 의하면, 압바 이사악은 “하느님, 어서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시편 71,2)를 지속적으로 암송하도록 권고하였다. “하느님을 끊임없이 의식하려고 하는 수도승이면 누구나 갖가지 다른 생각을 쫓아버리고 마음속으로 이 문구를 끊임없이 되뇌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담화집 10,10) 그들이 되새김 수행을 위해 즐겨 사용한 기도는 결국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기도’와 ‘도움을 청하는 기도’였다.
사막 교부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되새김 수행을 통해 하느님 기억을 유지하며 늘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살려고 노력했다. 이로써 끊임없는 기도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다음 호에서는 기도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을 볼 것이다.
글 _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