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순례길에서 만난 스페인 영적 유산…「스페인을 순례하다」

이주연
입력일 2025-06-11 09:07:02 수정일 2025-06-11 09:07:02 발행일 2025-06-15 제 344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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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갑 교수 지음/452쪽/2만3000원/휴인
아빌라·톨레도 등 주요 성지 중심으로 역사·문화 등에 얽힌 배경 풀어내
예수의 성녀 테레사·십자가의 성 요한 두 성인의 삶과 영성 발자취 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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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을 삶과 영성의 자취를 쫓은 전용갑 교수는 "그분들의 올곧은 신앙과 개혁의 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초심을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성지순례만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여정도 드물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신앙적 성찰을 목적으로 떠나는 순례길은, 방문지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간으로 남기 쉽다. 아무리 오래된 장소라도 역사와 맥락을 모른 채 마주하면 낯설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통번역학과 전용갑 교수(요셉·수원교구 성복동본당)의 신간 「스페인을 순례하다」는 의미 있는 안내서가 된다. 저자가 직접 스페인 전역의 성지를 답사하며 써 내려간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에 머물지 않는다. 아빌라와 톨레도를 비롯한 주요 성지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인물에 얽힌 배경들을 깊이 있게 풀어낸 인문 교양서라 할만하다.

전 교수는 10년에 걸친 유학 생활과 스페인어권 역사와 문화를 강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방대한 자료와 생생한 현장감을 한데 엮었다. 300여 개에 달하는 각주와 참고문헌은 책의 학문적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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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문체는 친근하다. 스페인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듯한 서술 방식은 복잡한 배경지식 없이도 성지를 따라가는 여정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책의 부제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을 찾아서’. 16세기 가톨릭교회 개혁의 중심에 섰던 두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이 남긴 영적 유산과 발걸음이 담긴 공간들을 차근히 되짚는다. 구성은 1부 ‘삶’, 2부 ‘성지’로 나뉘며, 인물에 대한 입체적 서술과 현장 기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전 교수는 “‘삶’에서는 두 성인의 생애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으려 했다”며,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바라보려 했다”고 말했다.

“두 분이 살던 16세기 스페인은 안팎으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약자에 속했던 이들이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내면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어 그는 “성인들도 우리처럼 평범한 조건 속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나도 닮을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우리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특히 ‘성지’ 편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생생한 기록이 돋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을 바탕으로 서술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2008년 봄, 전 교수가 한 교회 잡지에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 씨앗이 됐다. 이후 2014년 출판사와 인연이 닿으며 기획이 구체화했고, 2023~2024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집필 작업이 이뤄졌다.

애초 스페인 성인 전반을 아우를 계획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두 인물에 집중하며 서술의 밀도를 높였다. 단순 정보 중심의 구성이 아니라, 전기적·역사 문화적 서술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방향도 수정됐다.

“두 성인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큰 보람이었다”는 전 교수는 “그분들의 올곧은 신앙과 개혁의 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초심’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롭게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예수회를 설립한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삶과 이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북부와 동부 지역(바스크·나바라·카탈루냐) 등을 다룬 후속 책을 차례로 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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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알베 데 토르메스 가르멜의 성모영보 수녀원의 성녀 테레사 선종의 방 앞에 선 전용갑 교수. 전용갑 교수 제공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