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51·끝) 성탄 전례

성탄 미사성탄 전례의 특징으로 오늘날에도 고유 기도문과 독서들로 이루어진 밤미사, 새벽미사, 낮미사 세대의 미사를 드리고 있다. 성탄 축일의 이 세 미사는 교황청 전례에 기원을 둔 것으로서 로마의 여러 교회에서 행해지던 지역 예배와 관련 되어 있다. 원래 성 레오 대 교황 시대까지도 성탄에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낮미사 한대만 드렸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인정한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이를 기념하여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건설하였다. 그 다음 세기에 사람들은 로마에 베들레헴의 구유 유물을 모시길 원해서 대성당 곁에 구유 경당을 건설하였고, 사람들은 성탄에 이 경당에서 베들레헴에서 행해지는 것과 비슷한 밤 전례를 지내기를 열망하였다. 바로 이것이 밤 미사의 기원이다. 또한 로마에서는 12월 25일에 빨라띠노 언덕 아래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성녀 기념일을 지냈다. 이 축일은 이 성당 곁에 있는 왕궁에 살던 비잔틴 권력자들이 드리던 것이었는데, 이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교황은 성탄 미사를 드리러 성 베드로 성당에 가기 전에 성녀 아나스타시아를 기리는 미사를 드리러 갔다.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계속 미사를 드리던 중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교황은 그 성당의 주보 성녀를 기념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이 미사 때 예수 탄생에 관한 기도문들을 사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성탄 새벽미사이다. 이리하여 밤에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구유 경당에서, 새벽에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낮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례를 거행하였던 것이다.성탄 팔부성탄의 기쁨 역시 팔부(8부)를 통해서 계속 된다. 그러나 부활 팔부와는 달리 축일의 급수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다른 축일들(스테파노, 사도 요한,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이 이 팔부 안에서 거행된다. 왜냐하면 생일 축제는 본 날 하루만 국한되어 지내졌기 때문이며, 성탄 축일과 팔부를 지낼 당시에는 이미 이러한 축일들이 12월 25일 이후에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성탄 축제에 대한 개념이나 사상이 오늘날과 같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탄 팔부 중에 1월 1일은 성탄 팔부 마지막 날로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는데 이것으로 성탄의 주제가 마리아의 휘광 안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고 있다. 성탄 다음의 주일(또는 12월 30일)에는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가정생활의 모범을 그리고 있다. 이 축일은 1921년에 제정되어, 1969년에 성탄 팔부에 포함되었다. 구유예수께서 나신 동굴과 구유를 보여주는 구유 장식은 서방 교회 성탄 축일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다. 가장 크게 공경의 대상이 되는 구유는 분명히 베들레헴의 구유이다. 베들레헴의 구유 다음으로 오래된 것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구유이다. 여기에 있는 구유의 나무는 12세기 이래 예수께서 태어나신 바로 그 구유라고 인정되었는데, 이 구유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중앙 제단 밑에 보존되어 있다.우리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구유는 성탄 밤 기도를 좀 더 대중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 주교좌 성당들과 대수도원들에서 행해졌던 전례적 행사에 기인한다. 1223년 성탄 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그레치오에서 성탄 행사를 좀 더 잘 지내기 위하여 짚으로 가득찬 구유를 놓은 다음 그 곁에 당나귀와 황소 한 마리씩 놓았다. 그리고 교황의 허락 아래 이 구유를 제대 위에다 놓았으며 사제는 여기서 미사를 드렸다. 이 당시 부제였던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봉독한 후 근처에서 온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강론을 하였고, 그 이후 프란치스코 회원들은 구유 신심의 전파자들이 되었다.

발행일 2004-12-26 제2429호 16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50) 성탄·공현 축일

원래 성탄과 공현 축일은 강생의 신비를 고유한 주제로 삼고 있는 동일한 축일이었으나, 동방과 서방 교회에서 공현(동방 교회)이란 이름으로 1월 6일에 또는 성탄(서방 교회)이란 이름으로 12월 25일에 이 축일을 지냈다. 이 두 축일의 내용이 달라지게 된 것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성탄 축일성탄 축일은 부활 축일과는 달리 구약 전승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고대 희랍 및 로마 문화권에서 영향을 받았다. 희랍인들과 로마인들은 생일 축제, 특히 황제의 탄신 축제나 저명한 사람들의 생일 축제를 관습적으로 지내왔다. 그러나 생일 축제를 정하는데 있어 태어난 바로 그 날에 생일 축제를 지낼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장본인과 관련된 어느 의미 있는 날을 정하여 지내기도 하였다. 이런 관습의 영향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던 그 당시 아리아니즘을 배격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신자들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참 신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신 탄생 축제를 성대하게 경축하고자 하였다.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 탄생일이 전승되어 오지 않고 실제로 그 날을 정확히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뜻 깊은 다른 어느 날을 선정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선정된 날이 새로운 해가 다시 소생하는 날로서 태양의 탄일인 12월 25일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은 곳으로 떠오르는 참 빛이시요 태양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성탄 축일은 고정 축일이 되었다. 이에 따라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이 9개월 전인 3월 25일로 되었고, 요한 세례자 축일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잉태되었기 때문에(루가 1, 36) 6월 24일로 정했다. 공현 축일동방 교회에서는 서방 교회의 성탄 축일의 내용을 가진 주의 공현 축일을 이미 지내고 있었다. 그 유래는 성탄 축일의 유래와 비슷하나 동방 특히 이집트에서는 겨울철 해가 바뀌는 축제를 1월 6일에, 즉 태양의 탄일 축제를 1월 6일에 지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현(에피파니아)이라는 용어는 인간들 가운데 신이 출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므로, 이 명칭으로써 빛의 상징과 연관시켜 참 빛이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타나셨음을 뜻하였다.동방 교회에서 지내오던 주의 공현 축일이 4세기 말엽에 서방 교회에 도입됨으로써 예수 성탄 축일과 혼동을 막고 차이점을 둘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동방 교회에서는 이 공현 축일을 예수의 세례와 연관시켜 후대에는 완전히 주님 세례 축일로 지내게 된 반면에 서방 교회에서는 새로 탄생한 왕을 전 세계에 공포하는 뜻에서 동방으로부터 온 현자들의 조명을 부각시켜 「삼왕내조」(三王來朝)라 칭하기도 하였다.성탄과 공현 축일의 동기를 보았을 때 이 두 축일은 강생의 신비를 고유한 주제로 삼고 있다. 구태여 차이점을 둔다면 「성탄 축일」은 가정의 축제와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된 강생의 신비에 더 치중하고, 「공현 축일」은 세계적 축일로서 이 어린 아기의 신적 차원으로 눈을 돌려 세상에 밝게 나타났음에 치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요르단 강에서의 예수님의 세례나 가나의 영적 사건이 이 공현 축일과 연관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발행일 2004-12-19 제2428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9) 주일(주님의 날)

주일은 「주님의 날」(묵시 1, 10)이다. 주일은 그 기원으로 보나 교회의 전통으로 보나 또는 주일이 지니는 신학적 의의에서 보거나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중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대의 제반 여건들은 주일의 성화에 적지 않은 저해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즉 물질주의의 만연과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종교심이 약화되었고, 주 40시간 근무제로 인해 주말의 여가 내지 관광 등도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데 저해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주일의 의의와 중요성을 이끌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주일 거행에 있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파스카 신비 거행으로서의 주일의 의미를 명백히 부각시켰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에 그 기원을 둔 사도시대의 전통을 따라, 그리스도의 성교회는 여덟째 날마다 파스카 신비를 경축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날을 합당하게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날에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 성제에 참여함으로써, 주 예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 하여야 한다. … 그러므로 주일은 근원적인 축일이니, 신자들의 신심을 일깨워주어 이 날이 또한 즐거움과 휴식의 날이 되도록 강조해야 한다. 참으로 극히 중요한 것이 아니면 다른 축제를 이와 대치하지 말 것이니, 주일은 전례 주년 전체의 토대이며 핵심이기 때문이다』(전례헌장 106항).사실상 위에 언급된 전례헌장 106항은 신약성서와 초기 교부들이 주일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바를 다시 회상케 하며, 주일 신학의 총체를 이룬다고 하겠다(사도 시대의 전통, 그리스도의 부활 기념, 여덟 번째 날, 주님의 날, 태양의 날, 세례의 기념, 말씀과 성찬을 위한 모임).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원초적인 주일 신학으로 환원하여 주일은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주님의 기쁜 날 임을 분명히 하면서 주일거행 안에서 「그리스도교 집회(모임)」,「하느님 말씀을 들음」과「성찬례 거행」이 중심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이러한 원초적인 주일 신학의 풍부한 전례적 완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혁에서 나오게 된 「미사 전례 성서」(독서집)와 「미사전례서」(미사경본) 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독서집에서는 주년의 매 주일을 위해서 구약의 많은 구절처럼 거의 모든 신약성서를 듣도록 하기 위한 방법에서 3년 주기의 독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성찬례 안에서 말씀 전례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 말씀의 선포가 주일 신학과 거행에 있어 중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미사 전례서(미사경본)에서도 주일에 대한 8개의 감사송과 성찬기도문(특히 성찬기도III) 등을 통해 주일에 대한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주일 성화는 주일이 지니는 이러한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성찬례(미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교적 기쁨과 형제적 사랑으로 가득 찬 휴식을 취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단순히 쉬거나 즐기는 차원을 넘어 경건한 하루, 영성적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는 하루, 영원을 향한 자기 삶의 지표를 재확인 하는 하루, 자신과 가정이 함께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하루가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발행일 2004-12-12 제2427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8) 대림시기의 전례

대림(adventus)이란 용어는 이교 세계에 기원을 둔 그리스도교 용어이다. 예배 관점에서 볼 때 이 용어는 신이 자기 신도들을 만나러 자기 신전에 연중 한번 찾아오는 것을 뜻한다. 이와 비슷하게 궁중 예절도 이 대림(adventus)이란 용어로써 한 중요 인사의 즉위 또는 부임 즉 첫 공식 방문을 가리키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초세기에 그리스도교의 저서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사이에 오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대림(adventu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육화, 세상 끝날에 구원 사업을 완성하러 영광스러이 오심(재림)을 이 용어로써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대림 전례를 드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기쁨 중에 항상 깨어 기다림, 희망, 회개라는 본질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도록 불린다.기다림의 태도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이룬다. 왜냐하면 계시의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당신의 신실함을 드러내신 약속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림시기 동안 교회는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히브리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 약속의 결정적 구현인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결과 대림시기에는 「희망의 하느님」(로마 15, 15)을 기념하며 기쁨에 찬 희망을 체험한다(로마 8, 24~25 참조). 대림 첫 주부터 부르는 입당송의 시편 24편이 그런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주님, 제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뵙나이다. 저의 하느님, 당신께 굳이 바라오니, 이 바람을 헛되이 마시옵소서. 원수들이 저를 두고 좋아라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께 바라는 자는 부끄러울 이 없으리이다』또한 그리스도 안에 오신 하느님은 인간에게 끊임없는 회개를 요청하기에 대림시기는, 특히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통해서 본 대림시기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곧 오실 주님을 맞을 수 있도록 회개하라는 초대의 시기이다.4주간으로 구성된 대림시기는 두 시기로 이루어져 있다. 첫 시기는 대림 첫 주일부터 12월 16일까지로, 이 시기에는 종말에 대한 기다림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도래를 기다리도록 신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두 번째 시기는 12월 17일부터 12월 24일까지로 더욱더 성탄 준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두 시기가 각각 담고 있는 특징과 의미는 특히 두 개의 대림 감사송 안에서(대림 감사송 I, II) 잘 드러나고 있다.무엇보다도 대림시기 전례는 복음 안에서 그 의미가 잘 드러나고 있는데, 제1주일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에 관한 것으로 『깨어있으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제2,3주일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에 관한 것으로 『회개』를 강조하며, 제4주일은 요셉에게 한 예고(가해), 마리아에게 한 예고(나해),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다해)에 관한 복음을 전해준다. 그리고 사도의 서한은 예언자들의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었는가를 증언한다.대림시기 전례문에서는 특히 마리아, 세례자 요한, 이사야 예언자가 부각되고 있다. 이 시기에 마리아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구원신비와 마리아와의 관계, 그에 대한 마리아의 협조에 대해 강조하는 전례시기이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는 그의 임무가 메시아의 전령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이스라엘에게 「구원 받는 깨침」(루가 1, 77~78 참조)을 제공하며, 이미 당신 백성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를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전체 교회의 전통에 따라 이 시기에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데, 그 이유는 다른 예언서들에서 보다 이사야 예언서에서 아주 어렵고도 결정적인 상황에 처해있던 선택된 백성(이스라엘)을 위로하였던 큰 희망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발행일 2004-12-05 제2426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7) 전례성가

신·구약 성서나 교회 전례사를 통해서 볼 때 유다교나 그리스도교는 성가를 전례기도의 정상적인 표현 양식으로 간주하여 왔으며, 이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에서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다른 예술 표현들 가운데에서 매우 뛰어난, 그 가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보고이다. 그것은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전례헌장 112항).전례헌장의 이 말은 음악이나 성가가 전례의 장식이나 부가물이 아니라 자체로 전례의 한 요소임을 뜻하고 있다. 그렇다고 본질적인 요소라는 말은 아니다. 즉 그것이 없으면 전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 보다는 전례 집전을 완전하게 할 때, 그리고 성대한 전례를 이루려 할 때 꼭 필요한 요소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전례 성가는 그 기능상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대한 인간의 감사와 찬미, 사랑의 표시이며 참된 기쁨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체 상호간의 친교, 일치 등을 표현하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미사 성가 지침미사 전례는 모든 전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공적인 특성이 가장 강하여 성가의 역할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는 여러 문헌들을 통해 미사 성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1) 주일과 축일, 그리고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는 미사에는 성가를 부르는 것이 좋다. 이런 날에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미사에 많이 참석하여 큰 집회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우 숫자가 적거나 성가를 부를 여건이 안 되면 성가 없는 미사도 언제든지 가능하다.2) 현행 성가 지침은 전례 안에서 공동체 성가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가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테면 「알렐루야」, 「대영광송」, 「거룩하시도다」, 「성체 성혈 축성 후의 기념 환호」, 「마침 영광송 다음의 아멘」 등은 교우 전체가 환호하거나 찬양하는 공동체의 노래이기에, 성가대나 독창자가 독차지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불러 본래의 기능을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3) 성가대의 주된 임무는 교우들의 노래를 도와주고 인도하며 예식을 더욱 성대하게 이끌어 주는데 있다. 그러므로 대축일(성탄이나 부활 등)의 경우에 그 축제 미사를 장엄하고 화려하게 지내기 위해 모든 교우가 함께 불러야 하는 공동체 성가(자비송, 대영광송, 거룩하시도다 등)를 성가대만 부르는 폐습은 지양되어야 한다. 미사 성가 선택 지침1) 미사를 비롯한 전례 성가의 선택 원칙은 보다 더 중요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이란 사제와 교우가 함께 또는 교대로 부르는 부분을 말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성가를 요하는 부분 즉 기도문 자체가 본래부터 노래이거나 노래로 불러야 그 의미나 특성이 나타나는 부분(환호, 찬미가 등)을 말한다.2) 미사 성가는 전례시기, 축일, 미사의 부분에 알맞아야 한다.3) 전례 성가에는 곡도 중요하지만 가사에 더 큰 비중을 두기에 성가를 선택할 때 성가 제목이나 곡에 앞서 그 가사에 유의해야 한다.4) 교회는 전례의 토착화를 장려하는 차원에서 지역과 민족의 정서에 맞는 토착 성가를 발전시키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사와 가락이 거행하는 전례와 조화를 이루는 토착 성가라야 한다.

발행일 2004-11-28 제2425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6) 전례언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전례 헌장에서는 전례의 본질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전례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복음을 선포하고 계시며, 백성은 하느님께 때론 노래로 때론 기도로 응답한다』(33항)이 가르침에 따르면 전례란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화답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대화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대화에서는 언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전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례상의 언어는 하느님 말씀인 성서 봉독과 전례 집회를 구성하는 사제, 봉사자, 교우들의 기도, 대화, 훈화 등 공동체의 말로 이루어진다. 주례의 말주례의 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가 전례 집전자와 주관자로서 바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주례 기도와 사적 기도로 나뉜다. 주례 기도는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교회와 공동체 전체의 이름으로 바치는 공적 기도이다. 미사 때의 주례 기도는 감사기도를 비롯하여 본기도, 예물기도, 영성체 후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바칠 때 사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대변하는 사제로서, 집회를 이룬 공동체의 대표자로서 누구든지 알아듣기 쉽게 크고 또렷하게 발음해야 하며, 기도 성격과 형식에 알맞은 소리로 바쳐야 한다.주례의 사적 기도는 주례가 자신의 봉사 직무를 더욱 잘 수행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바치는 기도로서 언제나 조용히 침묵 중에 바친다.미사 때의 사적 기도는 복음 봉독 전에 제대 앞에 허리를 굽히고 바치는 복음 봉독 준비 기도(『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복음 봉독 후에 바치는 기도(『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 주소서』), 예물 준비 기도를 바친 후 제대에 허리를 굽히고 바치는 기도(『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손 씻을 때의 기도(『주님, 제 허물을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성체를 나누어 성혈에 넣으면서 바치는 기도 (『여기 하나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주례가 영성체 직전에 바치는 영성체 준비 기도(『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에 제게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과 육신을 자비로이 낫게 하시며 지켜 주소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실 때의 기도(『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성작과 성반을 닦을 때의 기도(『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등이 있다.그 외에도 주례는 집회의 주관자로서 지정된 부분에서 공동체가 올바른 준비를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인사, 대화, 권고, 훈화, 해설 등의 말을 하거나 예식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말을 한다. 이 말들은 성격상 주례의 자율 부분에 속하기 때문에 미사 전례서에 있는 경문을 사용해도 좋지만 공동체의 실정에 맞게 자유로이 말하는 것이 좋다. 신자 공동체의 말신자들은 사제의 기도나 인사에 환호, 기도, 노래 등으로 응답하거나, 사제와 함께 또는 독자적으로 예식을 동반하는 기도를 바치거나 노래를 부른다. 이런 것들은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드러내고 증진시키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은 전례가 진정 공동체 전체의 행사가 되도록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뚜렷이 표현해야 한다.

발행일 2004-11-21 제2424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5) 전례공간 (5)

성가대석성가대는 공동체의 일원이며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장소에 마련해야 한다. 또 전례 봉사를 쉽게 하고 모든 성가대원이 편리하게 성체를 영하며 미사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특히 회중이 그 노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위치라야 하므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회중을 향해 있고 가능하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지휘자는 성가대원과 회중 모두에게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성당 이층에 마련하는 것보다 회중의 성가에 잘 봉사할 수 있는 제대 가까이에 그 위치를 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지휘자는 성가대원 만이 아니라 회중 전체를 이끌어 한 목소리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제대 위에나 그 주위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모습이 있는 십자가를 모인 백성이 잘 바라볼 수 있도록 놓아둔다. 벽쪽에 이미 큰 십자가가 있으면 제대에 별도의 십자가를 놓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십자가는 전례를 거행하지 않을 때도 제대 가까이에 두도록 한다. 성수대성수를 찍는 것은 성당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례를 기억하며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 생각과 원의, 탐욕과 근심, 미움, 호기심 등을 모두 떨쳐 버리고 깨끗하게 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수대를 성당 안 쪽에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례대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한 세례성사를 기념하는 표징인 세례대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는 처음부터 별도의 세례당을 준비하였다. 원형이나 팔각형의 형태로 몇 계단 지면보다 낮게 만들어 이곳에서 세례를 집전함으로써 세례가 가지는 의미를 더 한층 풍부히 드러내고자 하였다. 팔각의 형태는 여드레 날에 부활하신 주님을 의미하고, 몇 계단 지면보다 낮게 만든 이유는 계단을 내려가며 악마, 권세, 영화를 포기하고, 올라가면서는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다는 세례의 의미를 드러내 주기 위함이었다. 세례대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의미를 띠므로 물에 잠기는 것(죽음)과 물에서 나오는(부활) 두 움직임이 잘 드러나는 침수를 위한 세례대로 만들어지면 세례가 담고 있는 의미를 더 한층 드러내 줄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의 부족이나 사목적인 어려움 때문에 침수는 못한다 하더라도 세례대를 설치하여 그 곳에서 세례자의 머리 부분만이라도 물로 씻었으면 한다.세례대의 위치에 있어 초기에는 세례대가 미사 봉헌을 위한 성당의 불가결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당 자체와는 따로 마련하였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 공동체가 참석하는 축제의 의미, 세례와 성체 성사의 필연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성당 안에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하느님 말씀과 입문 예식의 절정인 성체성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명백히 드러낼 수 있도록 제대와 독서대를 고려하여 세례대를 배치하는 것이 좋다. 성화상매우 오래된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성당 안에 신자들의 공경을 위해 주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및 성인들의 성화상을 모셔 두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성화상들은 성당 안에서 거행되는 신앙의 신비로 신자들을 이끌어 주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화상의 수가 무분별하게 많지 않아야 하고, 성화상들을 질서 있게 배치하여 미사나 전례에 참석하는 신자들에게 분심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성인들의 성화상을 제단 위에 모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같은 성인의 성화상을 하나 이상 모시지 않는다.

발행일 2004-11-14 제2423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4) 전례공간 (4)

봉사자석 봉사자들을 위한 좌석은 주례석이나 성직자석과는 분명히 구분되면서 그들이 맡은 임무를 편리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한다. 따라서 복사들을 위한 자리는 주례사제 곁이나 쉽게 도울 수 있는 자리에 배치하고 성서 봉독자들을 위한 자리는 독서대가 있는 쪽에 마련한다. 감실감실은 병자나 다른 이를 위하여 성체를 늘 모셔두어 개인의 조배나 기도를 돕도록 한다. 미사 중에 축성된 성체를 보존하는 관습은 임종의 위험에 처한 신자가 하느님 곁으로 가는 도중의 양식 즉 노자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로서 생겨났다. 초기에는 보통 주일에만 미사를 지냈기 때문이다.보존되는 축성된 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자체이므로 자연히 그 앞에서 기도를 바치게 되고 미사를 지내지 않는 평일에도 성체를 그날의 양식으로 영하는 관습이 생기게 되었다. 성체를 보존하는 그릇과 장소는 여러 가지 변화의 과정을 거쳐 경당의 제단 중앙에 놓인 감실에 안치하게 되었다.고대의 감실은 성당의 안쪽이나 제의실 벽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비둘기 형태를 한 그릇에 넣어 제대 위 천장에 매달거나 성당 내부에 조그마한 탑을 만들어 그 안에 모시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성체 앞에서 기도하거나 묵상하는 관습과 함께 소성당이 생기게 되었다.후대에 빵과 포도주 형태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강조됨에 따라 성체께 대한 흠숭과 경배가 전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감실은 점차 성당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소성당에서는 미사를 지내는 제대 위에 안치하는 곳이 늘어났다. 그 영향으로 감실은 미사를 지내는 중앙 제대에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법규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빵의 형태로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는 결과로 생긴 것이고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직접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전례의 현장에서 감실이 처음부터 제단에 놓여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감실을 중앙 제대 뒤편에 안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따라서 전례의 장만을 생각하는 경우에는 감실을 꼭 고려할 필요가 없으나 성체께 대한 개인적 경배나 묵상의 장을 갖기 위해서는 별도의 경당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감실을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별도의 경당을 설치할 공간이 없는 경우는 성당 중앙 제대 뒤편에 감실을 안치하는 재래의 관습을 피하고, 제단 안에 가장 적절한 장소에 둔다. 고해소고해소는 가능한 성당 밖에 설치하여 성당 내에서 두 가지 성사가 동시에 집전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특히 주일의 경우 한 성당 안에서 동시에 미사와 고해성사를 사목적인 이유 때문에 함께 거행하는 본당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성당 안에서 두 가지 전례가 동시에 집전되어 집회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분심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발행일 2004-11-07 제2422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3) 전례공간 (3)

독서대미사 전례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이루어지듯이, 두 장소의 거행 장소도 뚜렷이 구분된다. 전자의 거행 장소는 독서대이고 후자의 거행장소는 제대이다. 독서대는 라틴어로 「암보」(ambo)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장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5~6세기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큰 성당에는 대부분 중앙 통로 상부에 독서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나사 모양의 계단을 통해 독서대로 올라갔기 때문에 「암보」라고 불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울대교구의 명동 성당에도 옛날에는 이러한 독서대가 있었다. 독서대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이므로 복음을 포함한 독서는 반드시 독서대에서 봉독되어야 하고, 화답송과 보편 지향 기도도 독서대에서 행하기를 적극 권고하고 있다.독서대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거룩한 장소이기에 성당 안에서 말씀의 품위에 맞갖은 특별한 위치, 곧 높고 고상한 곳에 설치되어야 한다. 높고 고상한 곳이란 모든 교우들이 쉽게 볼 수 있고, 거기서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장소는 성당의 중심지에 설치되어 있는 제대 가까운 곳이 좋다.독서대의 재료는 제대와 조화를 이루는 고상하고 튼튼한 재료가 좋으며, 독서대 크기와 모양은 성당의 구조에 따라 설치하되 제대의 크기와 모양과 균형 있는 짝을 이루게 한다. 따라서 독서대는 제대와 같은 존경과 품위를 표시하기 위해 제대처럼 만든다. 또한 독서대는 해설대와 분명히 구별할 수 있도록 제작되고 배치되어야 한다. 독서대는 여러 전례를 거행하는 데에 적합하도록 주변을 충분히 넓게 만들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여러 명의 봉사자들이 독서대 주위를 둘러서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제대와 같이 독서대도 바닥에 고정시킨 독서대가 바람직스러우나, 이동 독서대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 용도나 미사 때의 의미로 보아 독서대는 하나만 설치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독서대는 제대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백성의 모임에서 구원의 신비를 가져다주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성부께 완전한 제사를 드리시는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독서대의 본 기능은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있다. 따라서 음향 시설에도 특별히 유의하여 성당에 있는 모든 이가 사제나 봉사자들이 바치는 기도와 독서자들이 봉독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제의 강론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명확히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한 점을 감안하여 성당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때에는 단지 독서대의 크기, 모양, 장식 등에만 관심을 집중하지 말고 방음 설비나 시설에도 반드시 신경을 써서 복음 선포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주례석주례석은 회중을 주관하고 기도를 이끄는 임무를 수행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는 성당의 구조와 다른 설비상의 장애가 없는 한 제단의 높은 자리에 신자들과 마주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주례석이 봉사자석과 확연히 구분되도록 해야 하지만, 그 자리는 명예석이 아니라 전례에서 직무를 드러내는 좌석이기에 왕좌 같은 형태가 되지 않도록 한다. 시작예식과 마침예식은 주례석에서 거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곁에 적절한 공간을 마련하여 미사 전례서와 음향시설 등을 갖추는 것이 좋다.

발행일 2004-10-31 제2421호 11면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42) 전례공간 (2)

제대 (2) -닫집형태(天蓋)로 덮인 제대(Ciborium)4세기에 이르러 제대 주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제대 상단 모두를 덮는 닫집 형태의 구조물이 세워졌다는 증거를 처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대개 돌, 대리석, 나무 또는 금속으로 제작되었는데 나무로 된 것들은 대개 금속으로 씌워졌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란 대성전에 봉헌한 닫집처럼 은으로 만들어진 예도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재료는 돌이나 대리석이었다.14세기 이후로 닫집 형태의 치보리움(Ciborium)은 제대를 벽이나 큰 창문이 있는 동쪽 벽에 위치시키는 변화된 조건에 적응해야만 하였다. 채광을 고려했던 북 유럽에서는 크고 넓은 창문을 동쪽에 설치하는 형태가 발전하였다. 이처럼 특이한 조건들 속에서 무거운 기둥들 위에 놓여져 있는 닫집 형태의 치보리움(Ciborium)은 하나의 장애물로 여겨졌기에, 이 상황에 맞게끔 적용시켜야 했다. 제대 주변의 기둥들은 존속되었지만, 이제 그 기둥들은 닫집이 아닌 커튼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보다 가느다란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반면, 성당에 자연광을 최대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원래 있던 닫집은 창문 위로 올라가 지붕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원래의 정방형 형태를 계속 지녔고 제대 상단과 제대 모두를 덮었다. 이처럼 크고 정교한 상부 구조물에 대한 열광의 결과로서 희생제사의 식탁인 제대 자체는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본래의 의미를 모두 상실하게 되었고 교회의 중심점이 되지도 못하게 되었다. - 감실제대(제대 변형의 마지막 단계)베로나 주교 마테오 질베르티(1524~1543)는 『심장이 가슴 가운데 있고 머리가 정신 가운데 있듯이』 감실을 제대 중심에 놓을 것을 강조하였다. 질베르티(Gilberti)의 이러한 영성에 힘입어 밀라노에서도 감실을 제의실에서 제대로 옮겼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바울로 4세 교황이 이에 적극 찬성하고, 바울로 5세 교황(1614)은 로마 교구의 규정으로 감실을 제대 위에 놓을 것을 명하였다. 그런데 그 제대 위에 놓인 감실이 제 나름대로 거창한 구조물이 되면서 제대에 의당 종속해야 할 위치와 비중을 벗어나 제대가 오히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제대에 대한 규정빵과 포도주를 그 위에 놓고 감사기도를 올리고, 빵을 나누는 제대는 동시에 제헌의 자리이자 형제적 애찬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그 위치는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라야 하며, 둘레는 시원스럽게 돌 수 있어야 한다. 새로 짓는 성당에는 제대 하나만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의 집회에서 하나의 제대가 한 분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성찬이 하나라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제대의 형태나 자료에는 별로 규정이 없으나 건물 전체와의 관계, 미적 고려, 관습을 참작하되 그 문화권에서는 품위 있고 귀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너무 거추장스럽게 커서는 안된다. 제대는 고정 또는 이동용 일 수 있으며 주교 예식서의 규정대로 축성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동 제대일 경우 축복만 해도 된다. 그리고 제대를 너무 편의 위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된다.

발행일 2004-10-24 제242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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