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활 시기가 끝나갑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부활 시기의 마지막 날인 동시에,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강림하심으로써 교회가 탄생한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 미사 전례에서 부르는 찬가 중 가장 오랫동안 널리 사랑받는 곡은 흔히 성령 송가라 부르는 부속가 <오소서, 성령님>(Veni Sancte Spiritus)과 찬미가 <오소서 창조주님>(Veni creator Spiritus)입니다.
특히 ‘오소서 창조주님’은 주교, 사제, 부제 서품식이나 시노드, 콘클라베, 성당 봉헌식 등에서 두루 부르기 때문에 아주 친숙한 곡입니다. 가톨릭 성가에도 ‘임하소서 성령이여’라는 제목으로 146번에 수록되어 있지요. 그밖에 성공회와 루터 교회에서도 이 찬미가를 영어와 독일어 번역으로 널리 부릅니다. 얼마 전 새 교황님을 뽑는 콘클라베에 임하기 위해 추기경단이 시스티나 경당에 입장할 때, 그리고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찬미가의 가사는 풀다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장과 마인츠 대주교였던 성 라바노 마우로(Rabanus Maurus)가 9세기 초에 쓴 것으로 알려졌고,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도 늦어도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워낙 유명한 찬미가인 만큼 수많은 작곡가가 이 찬가의 가사와 선율 혹은 양쪽 모두를 소재로 작품을 썼는데, 화려하거나 웅장하기보다는 소박하고 내밀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습니다. 교향곡 8번에 가사를 활용한 말러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중에서는 팔레스트리나와 빅토리아, 라수스의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고 바로크 시대에는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가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중에서는 세자르 프랑크(César Franck, 1822~1890)의 작품이 마음에 남습니다.
벨기에의 리에주에서 태어난 프랑크는 20대 중반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 생 클로틸드(Sainte-Clotilde)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생 클로틸드 성당에는 19세기의 명제작자 아리스티드 카바이예-콜(Aristide Cavaillé-Coll)이 제작한 아름다운 오르간이 있는데, 이 악기를 마음 깊이 사랑했던 프랑크는 악기의 아름다움을 활용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프랑크가 1872년 무렵에 쓴 ‘오소서 창조주님’은 테너와 베이스 독창자와 오르간 반주로 이루어진 간소한 작품입니다.
두 명의 독창자가 서로 가사를 주고받으며 별다른 장식 없이 레가토로 담담하게 노래하는데, 오르간은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을 살짝 암시합니다. 프랑크는 당대 관습대로 전례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노래할 때 오르간으로 화성을 넣어 반주하는 데 탁월했다고 하는데, 그런 경험에서 우러나온 작은 보석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