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바쳐 완성한 문장들…세상에 따뜻한 희망 전하길
5월 22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열린 제28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은 소설과 시 분야에서 한국 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원로 문인 윤흥길(83) 작가와 김윤희(이레네·86) 시인의 수상으로 더욱 빛을 발했다. 작가들이 소설 「문신」과 시집 「핵에는 책으로」를 통해 오랜 세월 삶과 언어를 응시하며 길어 올린 깊이 있는 문학의 면모가 조명됐고, ‘사랑, 진리, 생명의 존엄성 등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담아낸 문학 작품을 발굴한다’는 상의 제정 취지와 정체성 또한 새롭게 두드러졌다.
◎…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장 최성준(이냐시오)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문학이 인간 감수성을 확장하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영적 개방성을 증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며 “이러한 믿음 아래, 한국가톨릭문학상은 1998년 첫걸음을 내딛고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가치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발굴하고 작가들을 격려하며 28년의 세월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가톨릭신문사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을 통해 복음 선포의 사명을 다하겠다”며, “이 상이 세상에 복음의 가치를 널리 전하는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는 격려사에서 수상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고, 수상작이 지닌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작가들이 들인 노고를 격려했다. 또 “오로지 실용과 실리, 과학과 기술, 재물과 권력만이 추앙받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보편적인 가치와 초월적인 신념 또 변하지 않는 희망을 제시했다”며 성원을 보냈다.
◎… 시상식에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우리은행에서 정진완(스타니슬라오) 은행장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시상식의 기쁨을 함께했다. 축사에 나선 정진완 은행장은 “수상자 두 분의 깊은 사유와 섬세한 필력 그리고 치열한 창작의 시간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전해주었기에, 오늘의 수상이 더욱 뜻깊게 느껴진다”고 밝히며 “수상작들이 오늘뿐 아니라 계속해서 많은 이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경과보고에서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신달자(엘리사벳) 시인은 “다가오는 2027년은 가톨릭신문 창간 100주년과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3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라며 “스물여덟 번의 시상식은 늘 감동이었고 수상자들이 ‘감사하다’는 소감을 들려줄 때마다 마음속엔 늘 깊은 울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가톨릭신문사와 우리은행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덧붙인 신달자 시인은 “한마디만 더 하면 따뜻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마디를 참느라 냉기가 흐르는 세상에서, 한국가톨릭문학상이 냉기를 풀고 서로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감싸며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수상 소감에서 윤흥길 작가, 김윤희 시인 모두 준비된 원고와는 별도로 허심탄회한 수상의 기쁨과 저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별히 문단의 원로로서 집필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운영위원인 김산춘 신부(요한·예수회)는 “문인으로서 연로하심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평했다. 산문 부문을 심사했던 우찬제(프란치스코) 서강대 교수는 “괴테의 만년처럼 원숙한 문학의 경지를 더 깊이 있게 천착하여 자기 문학을 혁신할 수 있는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환기해 준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 윤흥길 작가는 “소설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다”고 운을 뗀 뒤, “문학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스스로를 천재인 줄 알았는데, 유명 작가들과 교류하며 참신한 발상과 재기가 번뜩이는 그들 모습에 저는 ‘범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며 자존심도 상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나만의 달란트를 생각해 보니 바로 무거운 엉덩이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윤 작가는 “긴 작품을 쓰는 동안 두문불출하고 자리를 지키면서 계속해서 작품에 매달리는 그런 끈기를 타고났는데, 문학적 천재성 못지않은 이렇게 귀한 탤런트를 허락하신 창조주 주님께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쓰고 싶은 작품을 쓰다가 생을 마치게 해달라고 아내와 함께 계속 기도하고 있다”며 “아직 남은 여러 작품을 모두 쓰고 천국으로 가고 싶은 소망을 공개적으로 밝힌다”고 말했다.
◎…김윤희 시인은 건강 악화로 불편한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시만큼은 놓지 않았다는 심경을 전했다. 그는 “눈앞이 캄캄한 막다른 지경에서도 머릿속 기둥인 시가 생물처럼 꿈틀거렸기 때문에 그것을 동아줄 삼아 붙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상작 「핵에는 책으로」는 병마와 싸우며 얻은 소산”이라며 “이 상이 미래까지 넉넉히 보상하는 계기가 되어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도전하고 싶고, 오늘 이후로 하느님이 ‘한 번만 더 써라’ 하시면 오늘을 기점으로 또 한 번 써보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 시상식에 앞서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때부터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맡았던 구중서(베네딕토) 문학평론가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최성준 신부는 “1998년 제1회부터 2024년 제27회까지 진실한 봉사와 깊은 애정으로 가톨릭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며 구중서 평론가에게 감사패를 전했다. 구중서 평론가는 “시상식 자리에서 예외적으로 감사패를 받는 것이 생소하고 과분하지만,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27년간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에 관여해 온 것이 너무 오래되었다 싶어 이제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가톨릭문학상이 한국 문학의 발전에 있어 보편적 진리와 역사적 진보에 크게 이바지하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이어가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