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몸과 마음, 영혼까지 치유된 태중 소경

최용택
입력일 2025-05-27 10:21:00 수정일 2025-05-27 10:21:00 발행일 2025-05-25 제 3443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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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태어날 때부터 눈먼 이를 고치시는 예수>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1908-1989)은 21세의 젊은 나이에 모차르트 관현악단을 지휘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연히 그날 연주회의 청중 중에는 울름의 시립극장 지배인이 있었는데, 그는 시립극장에서의 오페라 지휘를 카라얀에게 부탁했다. 이 제안은 그의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카라얀은 최선을 다했고, 그가 세계적 지휘자가 되기까지에는 울름 극장 지배인의 도움과 결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지배인은 5년 동안 울름에서 지휘자 생활을 잘하던 카라얀을 갑작스럽게 해고했다. 울름에서 안주할까 봐 한 행동이었다. 카라얀은 새 직장을 찾으러 밤잠도 설치고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는 1년 만에 70여 명의 단원과 오케스트라가 있는 독일의 한 극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카라얀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를 처음 보고 난 후 음악적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카라얀은 토스카니니의 지휘를 통해 마음의 눈이 완전히 열려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평범한 선율이 지휘를 통해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새롭게 깨달았다. 그는 늘 토스카니니의 연주회를 보러 갔는데 한번은 400km 이상을 자전거를 타고 갔을 정도였다. 카라얀은 이러한 노력을 계속하며 마음의 눈을 떴고, 유럽의 모든 중심 도시로부터 출연 의뢰를 받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었다.

성경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태중 소경’이 등장한다. 유다 사회에서 소경의 삶은 너무 비참해 대부분 길거리에서 구걸해야 했다. 한 태중 소경이 어느 날 실로암 연못 근처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그도 예수라는 선생님이 무척 용하고(?) 메시아일지 모른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과 그 일행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태중 소경을 본 예수님은 흙을 침으로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시면서 말씀하셨다. “실로암 연못에 가서 물로 씻으시오.”(요한 9,1-7 참조)

태중 소경은 어찌 보면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한 가닥 믿음을 갖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었다. 그리고 눈을 뜨게 됐다. 눈을 뜬다는 것은 여태까지 몰랐던 것을 새롭게 깨닫고 알게 된다는 의미도 지닌다. 예수님 일행이 떠난 직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치유 받은 소경을 심문하며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서 율법을 어겼으니 그 사람은 죄인이라는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눈을 뜬 소경이 그분은 분명히 예언자라고 믿는다고 하자 화가 난 바리사이들은 그를 회당 밖으로 쫓아냈다.

태중 소경은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영혼의 눈도 떠서 전인격전 치유(全人格的 治癒)를 체험하고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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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