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방준식
입력일 2025-05-28 09:06:38 수정일 2025-05-28 10:00:04 발행일 2025-06-01 제 3444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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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사도 1,1-11 / 제2독서 에페 1,17-23 / 복음 루카 24,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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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느라, 사람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사람을 보느라, 하늘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오래전에 그린 그림의 글입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며, 이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하늘과 사람을 함께 품어야 하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사람을 함께 사랑해야 하는 이들입니다. 인스타그램 @baeyounggil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승천은 예수님께만 일어난 유일무이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성경도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성모님의 승천은 교리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과 성모님의 승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늘에 오르신 것이고, 성모님은 하늘에 들어 올려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두 사건 모두 승천이라고 부르지만, 라틴말로는 구별되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주님의 승천은 ‘Ascensio’, 성모님의 승천은 ‘Assumptio’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신 뒤 원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승천(昇天)이야말로 참으로 귀천(歸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승천 사건을 상식과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깁니다. 하지만 죽음을 잠시 멈추는 소생이나, 영원히 죽음을 반복해서 맞이해야 하는 환생이 아니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놀라운 사건인 부활을 이미 믿고 있는 이들에게 승천은 믿지 못할 일이 아니겠죠.

예수께서 언제 어디서 승천하셨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1.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때에 갈릴래아에서 승천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2. 루카 복음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베타니아 근처에서 승천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지 40일째 올리브 동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각각의 저자들이 모종의 이유로 승천의 때와 장소에 대한 기록을 달리하고 있으리라 추측할 뿐입니다. 게다가 예수께서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승천하셨는지도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승천 사건의 의미입니다.

오늘 루카 복음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승천이 공간적인 수직 이동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미완료 시제의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마치 예수께서 제자들의 눈앞에서 훨훨 날아오르신 것처럼 묘사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1장 9절은 예수께서 하늘로 날아오르시다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리셨다고까지 합니다. 이 말씀을 고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우주여행까지 가능해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문자 그대로 믿기 어렵죠. 이미 구름 너머에 하느님의 성전이 없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공간적인 수직 이동으로 묘사된 예수님의 승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어에는 특이하게 단수와 복수 외에도 쌍수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손이나 눈, 귀처럼 반드시 쌍으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것인데, 히브리어로 하늘은 ‘하샤마임(השמים), 즉 쌍수입니다. 하늘은 쌍으로 존재하는데, 하나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창공이요,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거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을 이 두 번째 하늘에 오르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곧 승천은, 오늘 제2독서인 에페소서 1장 20절이 증언하듯,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셔서 그 오른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실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부활 사건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가 예수님의 승천을 가시적인 사건으로 묘사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한 육신을 지니신 채 승천하셨다는 진리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인성을, 마치 달에 갈 때 우주복을 입어야 하듯, 지상에 존재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하시고는 사용 후에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성을 지니신 채로 아버지께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승천 이후에도 예수님은 줄곧 ‘나자렛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불립니다.(사도 2,22; 3,6; 4,10; 6,14; 22,8; 26,9)

이렇게 이 땅에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 사람이 천상의 존재가 될 길이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비록 흙에서 왔으나,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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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동교구 갈전 마티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