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오롯이 하느님께 맡긴 소녀, 비로소 진실한 사랑 찾았습니다
여러 방식을 통해 시청자나 관객에게, 배우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대화에 끼워주고 설명할 때 ‘플리백(Fleabag)’이라는 효과가 사용된다. 프랑스 풍속화가 오귀스트 툴무슈의 <주저하는 약혼자>(La Fiancée Hésitante, 1866)라는 작품에도 이처럼 플리백 효과가 사용된다. 위로하는 자매들에게 둘러싸인 소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도발하듯 관람객을 강렬하게 응시한다. 나는 그림 속 소녀가 ‘결혼보다 수녀원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볍게 해본다.
노르베르타 수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에서처럼 상대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주어진 운명을 거스를 수도 있다는 단호한 시선을 대입해 본다. 나는 여전히 노르베르타 수녀님을 보며, 결단을 해야 했던 ‘소녀 세실리아’(입회 전 이름)를 찾고 있었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수도원에 살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할까"라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밖에 모른다 해도, 내 맘 같지 않은 게 ‘부르심의 삶’이다.
“수도원에서 일상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울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 비결을 듣고 싶었다.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혼란스러움’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사실 저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때문에 못 잘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자문하게 되었지요. ‘이런 생각들이 날뛰도록 그냥 놔둬야 하는 건가?’ 시간을 돌아보면 언제나 주님이 계셨어요. 결국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그분’이 긴 여정 안에 계시고 모든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지요. 물론 이렇게 해결해도 문제들은 끊이지 않아요. 개인적인 문제, 수녀회와 세상에 관한 일 등…. 그분만 바라는 수도자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딛고 살아야 하는 상황들이 파도처럼 몰아치면, 저는 신덕송을 우선 바칩니다. 흔들릴 때마다요. 그리고 ‘주님, 저를 당신께 맡겨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평화를 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표징’을 살피는 거예요. 주어진 결정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머뭇거립니다. 이때 사람이나, 대화 그리고 현상을 통해서 사소한 표징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주님의 손끝인 이 표징을 깨달으면 혼란은 차츰 사그라지고 평화가 자리하지요. 이 ‘혼란’도 여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나는 한 소녀가 천사를 만나 자신의 인생을 두고, 전하는 말씀에 순명했다는 성모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거룩하지만 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가. 수도자는 청빈, 정결 그리고 순명 서약을 한다. 글로는 몇 자 되지 않은 이 서약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시련을 감당해야 하는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짐’처럼, 하나가 빠지면 그 위에 버티던 모래알들이 차례로 내리누르는 모래시계처럼 서약은 다가온다.
마리아의 종 수녀회 노르베르타 수녀님께, 이 서약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수녀회에 입회할 때는 순명보다 ‘정결의 의무‘가 더 크다고 느꼈어요. 살아가면서 45세가 되자, ‘순명의 품위’를 더 생각했지요. 순명, 그것은 저에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었어요. 제가 수도회의 총장으로 선출됐을 때, 제게 그 자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공황 상태였어요. 피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지요. 받아들이기 힘든 그때, 제 영적 지도자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다윗 소년이 부르심 앞에 어땠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주님이 선택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님이 하실 뿐.’ 지금 살고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 근교 갈레아짜로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주님의 이끄심‘은 원하는 길이 아닐지라도 받아들여야 해요. 노르베르타가 ‘총장’이라니?! 그러나 순명으로 ‘예! 여기에 있습니다’하고 답했어요. ‘주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기도 중에 알았거든요. ‘이곳, 창설자 신부님이 하신 일에 동참해 주길 주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응답했지만, 동시에 이 소임의 무게를 느껴야만 했어요.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순명할 때 그 속에서 기적을 알아갑니다. 차츰 자유스럽고 좋아하는 일이 되어갔어요. 이제 순명이 저를 이끌고 있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순명에 몸을 맡기자, 건강해지는 걸 느껴요. ‘오늘 내가 하는 것이, 바로 당신과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답니다.”
어디선가 전에 들은 꽃병 이야기가 생각났다. ‘빈 병에 술을 넣으면 술병이라고 부르고, 거기에 물을 넣으면 물병 그리고 꽃을 넣으면 꽃병이라고 부른다’는…. 주저하는 소녀는 이제 주님이 함께하시자 수도자가 되었다.
나는 수녀님의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다.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세요.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제 하루를 이끌어 주셔요. 저의 약함과 소명 속에서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분은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는 분이시고, 두려움 속에서 안전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요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했다는 뉴스라도 듣는 날이면, 불안을 느끼며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모든 산 위에 가장 높이 빛날 것이다'라는 성경 찬미가가 저를 혼란스럽게 하지요. 묵상은 흩어지고 혼란 속에 말씀드립니다. ‘주님, 당신이 꿈꾸시던 예루살렘이 지금은 이렇습니다. 아! 당신이 바라시는 새로운 예루살렘이, 인간의 이해와 다를 수 있다는 기도에 이르면, 그나마 산란한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온 인류를 해방하실 하느님이시니까요.”
소녀 세실리아는 사랑을 찾았고 하느님을 만났다. 그리고 새 이름 ‘노르베르타’를 선물로 받았다. 순명을 위해 신뢰와 내맡김이 필요했고, 그 순명은 소녀 세실리아를 수도자로 살게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요즘 어떤 기도를 하시는지 듣고 싶었다.
“복음서 몇 구절을 자주 암송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모든 날에 너희들과 함께 있겠다’, ‘내 영혼이 주를 찬미하며.…’ 이 말씀들은 우리가 나약하지만,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오늘, 이날을 허락하신 예수님께 저는 감사드립니다.”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